오십만 냥 대회
-인간은 그렇지 않아
이른 아침.
호남성에 위치한 중원오악 중 남악(南岳)인 형산(衡山)의 험난한 산길을 올라가는 이가 있었다. 놀랍게도 열여덟에서 열아홉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소녀였다. 소 녀의 머리카락은 특이하게도 순은을 녹여놓은 듯한 은은한 은색이었다. 등 뒤에 은빛 보검이 비스듬히 비껴 매여 있는 것으로 보아 검사임이 틀림없었다.
이른 봄, 산이 평탄하지도 않고 길을 편하게 닦아놓은 것도 아닌데 소녀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유유자적 거침없이 형상의 능선 위를 올랐다. 처음 산을 오른 사람에겐 죽을 만큼 힘든 여정이겠지만, 수백 번을 오르내린 소녀에겐 이 길이 그저 가벼운 아침 산책길처럼 가뿐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반복의 반복이 가져다준 신 묘한 묘용이었다.
이윽고 소녀의 눈앞에 갈래길이 나왔다. 친절하게도 여기에는 표지가 있었다. 화살표는 왼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형산파’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곳 형산은 대대로 구대문파의 하나인 형산파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으로 이 산의 터줏대감 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향하는 곳은 그쪽이 아니었다. 소녀는 망설이지 않고 아무런 표지도 없는 오른쪽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참을 걷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병풍처럼 두른 제법 널찍하고 평 평한 평지가 나타났다. 그 절벽 바로 밑에 낙석도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모옥 한 채가 서 있었다. 비록 낡았지만 손질은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것에서 모옥 주 인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었다.
수백 명의 문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형산파와는 지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지만, 이곳이 바로 소녀의 목적지였다.
조심스럽게 문 앞에 다가간 은빛 머리칼의 소녀가 공손한 어조로 인사를 올렸다.
“사부님, 제자 류은경입니다.”
류은경, 그것이 이 은발 소녀의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이 모옥은 이 소녀의 사부가 기거하는 곳인 모양이었다.
“쿨럭쿨럭!”
모옥 안에서 대답 대신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가 언제나 듣는 사부님의 기침 소리였다.
“사부님?”
은발의 소녀 류은경이 다시 한 번 기별을 넣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사부님이 자신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러기 위해선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후에야 응답이 돌아왔다.
“들어오너라.”
“예.”
류은경은 공손히 대답한 다음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한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무척 안색이 창백한 여인이 몸가짐을 단정히 한 채 정좌를 하고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의 무릎 위에는 한 자루의 은검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머리카락 역시 소녀와 똑같은 은은한 은발이었다. 때문에 새하얀 안색이 더욱 창백하게 보였다. 마치 핏줄이 비쳐 보일 듯한 그런 피부였다. 이 여인이 바로 은발소녀의 스승인 검선자(劍仙) 이약빙이었다.
“제자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쿨럭쿨럭, 다시 한 번 잔기침을 한 후 이약빙이 인사를 받았다.
“일어나거라.”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허리를 숙인 다음 다시 스승 앞에 꿇어앉았다.
“오랜만이구나.”
“예, 사부님. 육 개월만입니다. 그동안 별고없으셨는지요?”
“보다시피 별일없었다. 그래, 모친에게 눈치 보여서 함부로 외출하기도 힘들다더니 어쩐 일로 이곳에 다 들렀느냐?”
류은경의 집은 이름난 무가로 바로 형산의 코앞에 형산파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수시로 들락날락거릴 수 있었으나 집안의 강제 때문에 함부로 나다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대리 가주(代理家主)님의 명을 받고 강호란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보고차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강호란도로 떠나기 전에 잠시 여유 시간이 남아 그간 격조했던 스승을 찾아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몇 달씩이나 계속해서 집 안에서 감금 아닌 감금 상태로 갇혀 지내야만 했을 터였다.
“하아, 모친을 ‘대리’ 가주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니 아직 여전한가 보구나.”
“한두 달로 바뀔 일은 아니니까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는 법이지요.”
어두운 안색으로 류은경이 대답했다. 제자의 고충을 알고 있는 만큼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 문제이다 보니 이약빙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 이 아니었다.
“그런데 강호란도엔 무슨 일로?”
이약빙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유흥 지역에 할 만한 일이 있다고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어…… 이번에 강호란도에서 개최되는 오십만 냥 대회라고 들어보셨나요?”
“글쎄, 한동안 산을 내려가지 않아 잘 모르겠구나. 그런데 대회 이름이 무척 특이하구나.”
“상금이 무려 오십만 냥이나 걸려 있어 그렇게 불린다고 합니다.”
“허허, 오십만 냥이라……. 이번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쳐 날뛸꼬.”
그만한 돈이면 사람의 이성을 단숨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액수였다.
“죄송합니다. 그 대회에 제가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깜짝 놀라 반문했다. 류은경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 원통(圓筒)투기장이 어떤 곳인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런 광기의 도가니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목숨을 내놓고 붙는 곳이다. 서로에게 치명상 을 입히기 전에 끝내는 일반 비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너는 아직..
“……”
“…알고 있습니다.”
“네 모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
그 순간 소녀의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
“…역시 알고 있구나.”
이약빙의 음성은 어둡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류은경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돈 때문이냐?”
“복수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엔 그자, 칠상흔이 있다고 합니다.”
“네가 보기에도 그게 진의더냐? 아니면 단지 네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인 것이냐?”
“아마… 후자겠지요.”
씁쓸한 감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류은경이 대답했다.
현재 류가엔 가주가 부재중이었다. 병치레 때문이었다. 류가의 가주에게 중상을 입혀 지금까지 침대에 눕혀놓은 장본인이 바로 백인참(百人斬)을 행했던 칠상흔 이었다. 그러나 대리 가주가 된 그녀의 모친은 그 소재를 파악하고도 몇 년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번에 강호란도로 달려가 복수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 우는 것이었다. 복수하기 전까지는 두 번 다시 집 안에 발을 붙일 생각을 말라고 했다. 누가 봐도 충분히 이상하게 여길 만한 일이었다.
그 배후에 오십만 냥의 상금이 있었다.
확실히 그 금액이라면 그 누구라도 혹할 만한 거액이다. 류은경도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고난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어려서부터 겪은 마음의 시련은 그녀를 같 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치도 알고 있었다. 보이는 것 이면에 감추어진 추악함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괴로워도 알게 되고 말았다, 복수는 허울 좋은 명목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짙은 그림자를 동반한 아픈 깨달음이었다.
“네 어머니도 참으로 너무하구나. 피를 이은 모녀지간인데도 아들과는…….”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와 함께 말을 잇지 못하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류은경이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요. 전 미움받는 운명이니까요.”
한창 싱그럽고 활기 넘칠 십구 세 소녀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핏줄과 가문은 이제 잊거라. 무거운 짐만 지우는 핏줄은 잊거라. 강호에 나가면 너는 나 검선자 이약빙의 진전을 이은 유일한 후계자니라. 너라면 충분히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좋다.”
위태위태한 제자에게 굳건한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은 게 사부 이약빙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 씀씀이에 류은경은 눈가가 시큰해졌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지금까지 그녀에게 이렇게 자상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사부 이약빙 말고는 없었다.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한 것을 이약빙은 그녀에게 주었다. 사실 이 따뜻한 마음 을, 이렇게 따뜻한 온기를 모친으로부터 받고 싶었는데.
똑!
참지 못한 류은경의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이 어린 제자의 속내가 손에 잡힐 듯 보여 마음이 아파진 이약빙은 말없이 다가가 두 팔로 흐느끼는
제자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울지 말거라, 아가. 난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다. 너에겐 재능이 있어. 너무나 뛰어나 친부모마저도 경계케 하는 재능이. 아들을 밀어내고 후계자가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빛나는 재능이.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다. 날카로운 송곳은 가죽 주머니 안에 있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 살아남거라! 있는 힘껏! 가슴을 활짝 펴고. 너에겐 그만한 가치가 있다.”
제자를 믿어주는 것, 그리고 제자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약빙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흐느끼던 류은경은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절대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아직, 이 세상에는 자신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 다.
제자의 눈물이 가슴 섶을 적시는 동안 이약빙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 쌓아둔 눈물이 마음을 곪게 만들기 전에 흘려보낼 필요가 있었다. 눈물로만 흘려보낼 수 있는 아픔도 있는 법이란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마도 언젠가는 끝이 나듯 쌓여진 눈물의 양에도 끝은 있었다. 겨우 진정한 류은경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식히며 사부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이약빙이 물었다.
“시합이 모두 삼인 일조로 치러지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 함께 조를 짤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전 외톨이니까요…….”
가족마저 자신을 버렸다. 차라리 혈혈단신 고아인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자연스레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확실히 큰 문제구나. 음…….”
이약빙은 한참을 고민했다. 이 안쓰러운 제자에게 무언가 비책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인맥 역시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다. 병약한 몸이다 보니 많은 사람을 사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사귄 사람도 대부분이 정파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강호란도는 명백한 흑도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연의 끈이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필사적인 노력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침내 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 딱 한 사람 네가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을 소개시켜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진짜요? 그게 누군가요?”
기대하지 않고 있던 류은경이 고개를 번쩍 들며 반문했다. 되묻는 모양새가 사부조차도 그다지 믿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신팽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듣자 하니 이번 천무학관 사절단 중엔 구룡칠봉이 모두 끼어 있다고 들었다. 그중 남궁세가의 아이들과는 안면이 있단다.”
정확히는 남궁세가주의 부인과 친분 관계가 있었다. 그 인연으로 몇 번인가 그곳을 방문하여 대접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났던 총명한 두 아이를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와, 그 남궁세가랑 면식이 있으시다니 대단해요, 사부님!”
그녀의 가문도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림팔대세가의 하나인 남궁세가에 비하면 크게 모자람이 있었다.
이약빙은 품 안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류은경 앞으로 내밀었다. 그 안에는 우아한 난초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이건…….”
“이 사부의 징표다. 이걸 보면 내가 보냈다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류은경은 공손하게 두 손으로 옥패를 받아 든 다음 하례하고 조심스레 품속에 집어넣었다.
“저… 사부님?”
“왜 그러느냐.”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그런데요, 그 사람의 이름이 무언가요?”
이약빙은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았구나. 네게 도움을 줄 만한 아이의 이름은 남궁상이라 한단다. 강호에선 뇌전검룡이라 불린다고 하더구나. 얼마 전 에 들은 바로는 그 유명한 천하오검수 중의 일인인 아미신녀 진소령과의 비무 내기에서도 이겼다고 하더구나. 진 매가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싸우긴 했지만 쉽지는 않았을 터. 분명 대단한 기재가 틀림없을 테니 네게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냥한 목소리로 이약빙이 말했다, 이걸로 제자가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내심 기대하면서. 그러나 그때 류은경의 가슴속에는 이미 새로운 불안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런데 사부님,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단 말이냐?”
류은경이 어두운 안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어쩌면 좋죠? 제겐 도움받을 대가로 지불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무척 심각한 얼굴이었다.
“글쎄, 그냥 도와줄 것도 같은데?”
그녀가 아는 남궁상이라면 분명 그렇게 해줄 것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엄마의 친구이자 이모라 불리는 자신의 부탁이 아닌가.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 의 제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에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아무런 대가도 없는데 공짜로 도움을 베풀다니요.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니 전 믿을 수 없어요.”
이미 그녀의 세상에 대한 불신은 병적일 정도로 깊어, 뭔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데도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모양이다.
“글쎄다, 세상엔 저런 사람이 있으면 이런 사람도 있는 법 아니겠니? 굳이 그렇게 단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류은경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인간은 그렇지 않다고요. 그런 건 순진한 아이들을 속이고 혹세무민하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 속의 인물일 뿐이라고요. 그런 가공의 인물들만이 아무런 이득도 없이 남을 도울 수 있는 거예요. 실제 인간은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구요. 이 세상은 썩었단 말이에요!”
너무나 달콤한 말이기에 류은경은 오히려 결사적으로 부인했다. 널름 믿었다가 상처 입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하아, 이 아이의 세상에 대한 불신이 이리도 뿌리 깊을 줄이야…….’
아무래도 성장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아이, 괜찮을까? 이렇게 불신이 깊고 세상에 부정적이어서야……. 엉뚱한 짓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이번 강호행이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약빙은 생각했다. 그 남궁가의 아이들이 이 제자에게 좋은 인연이 되기를……. 지금 이약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 기원뿐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사부님.”
류은경의 하직 인사를 받으며 이약빙이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너라. 승패에 연연해 몸을 상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거라.”
그런 것에 목숨을 걸 가치는 없다. 단지 모친의 명령 하나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피를 나눈 친혈육이 내린 명령 이라 해도 말이다.
“예, 사부님. 각골 명심하겠습니다.”
사부 이약빙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후, 류은경은 강호란도를 향해 단신으로 떠났다. 무슨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남궁상에게 무슨 짓 을 하게 되는지 알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은 다 그녀가 한 검은 옷의 여인과 조우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나중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