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3권 8화 – 은발의 소년(?)과 지나가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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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3권 8화 – 은발의 소년(?)과 지나가던 사람

은발의 소년(?)과 지나가던 사람

ᅳ찾고 있던 사람

인연이란 무척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별거 아닌 것 같은 우연을 가장하고 우리 곁에 살며시 찾아든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은 볼 것이요, 보는 눈이 없는 자는 그것을 영원히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소한 일들이 얽히고설키다 보면 종종 엄청난 대사의 전조(兆) 내지는 발단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물경 오십만 냥의 상금이 걸린 거금 투기제에 참가하기 위한 신청자들이 메뚜기 떼처럼 우르르 강호란도로 너 나 할 것 없이 몰려들다 보니 원통투기장 접수처는 업무 폭주로 접수 시작 단 하루 만에 업무 마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몰려드는 신청자들 중에서 자격이 되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것도 그들의 몫이 되었다. 사람도 줄이고 돈도 벌기 위한 일석이조의 목적으로 참가비조로 은자 오십 냥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참가자들이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창구 하나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업무를 분산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접수처가 생겨나고, 그 옆에 예선 관문이 설치되었다. 세 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하는 사람에게만 예선에 참가할 수 있 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는데, 이 세 가지 관문은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 신법 측정―멀리뛰기.

두 번째, 내공 측정ᅳ쇠솥 들어 올리기.

세 번째, 파괴력 측정ᅳ검으로 돌을 자르던가, 장법, 권법, 각법, 지법으로 바위를 부수거나 손도장을 찍거나 해서 자신의 파괴력을 과시해야만 했다.

이 정도 관문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면 참가해 봤자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쭉정이들을 걸러낸다고는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다. 참가자의 생명이 귀 하기보단 그 정도 실력밖에 안 되는 인간들이 참가하게 되면 재미가 떨어져서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게 원통투기장 측의 진심이었다. 게다가 이 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도 참가비는 돌려주지 않는다. 참으로 실속이 넘치는 비정한 체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까지 엄중하게 감별 작업을 하는데도 사람들은 환상에 빠지게 마련이 고 이럴 땐 약도 없다. 왠지 그 상금의 주인은 자기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마약 같은 효과가 있어 많은 이들의 망상에 불을 지폈다. “다들 난리군요. 저 정도 실력으로 참가해 봤자 위험하기만 할 뿐인데.”

연비랑 산책 나왔던 나예린이 대로 양측에 줄줄이 늘어선 신청자의 무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로서는 그 기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착각 속에 사는 걸 좋아하거든요. 다들 쓰디쓴 현실에서 눈 돌리는 덴 선수들이랍니다.”

연비가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그때였다.

“저기… 비켜주세요!”

가녀린 외침이 군중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크크큭, 못 비키겠다면 어쩔 건데?”

음험한 목소리가 뒤따라 울렸다.

“그건… 그건…….”

앳된 목소리의 주인은 무척 난감해하고 있는 듯했다.

“전 아직 참가 신청도 안 했어요.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하면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어제까진 그럴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부터는 안 돼. 크흐흐흐. 왜냐하면 이 접수처는 이 강남삼흉 어르신들이 접수했거든. 오늘 영업은 끝났어. 그러 니 다들 돌아가! 좋은. 말. 할 때!”

마지막은 거의 협박조였는데 아무래도 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뒤에 길게 늘어서 있던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좀 전까지 곤란 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소년을 보며 웃고 즐기던 사람들은 자신들까지 표적에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남이 곤란을 겪을 때는 마음껏 웃을 수 있었는데 자신이 그 처지가 되자 아무래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겁나게 값비싼 투기제에 참가하기 위해 강호란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별별 사람들이 다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부류가 각 곳에 산재된 접수처 중 한 곳을 점령하고 자체적인 검열을 통해 사람을 솎아내려는 거친 기질을 가진 참가자들이었다. 이들은 세 가지 관문도 너무 적다고 여기는 부류였다. 그래서 자체적으 로 시험하지 않으면 성이 안 차는 모양이었다. 사실 사람이 많아지면 귀찮아질 뿐이기 때문에 협박과 으름장으로 미리미리 솎아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본인들 의 실력에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다면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길을 비켜달라고 한 어린 소년도 아마 그런 재수없는 상황에 휘말 린 모양이었다.

이 세 사내는 강남삼흉이라 불리는 자들로, 강남 지방에서는 흉명깨나 떨치고 다니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명성을 들어온 군중들은 이들의 흉명과 자신의 명성을 이리저리 재보며 승패를 가늠해 보는 일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런 계산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맨 처음 이들 세 사람에 길을 가로막혔던 소 년이었다.

“비켜주세요.”

다들 이럴까 저럴까 궁리하고 있을 때 소년은 다시 그들 세 사람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사는 똑같았다. 그 순간 삼흉의 한쪽 눈썹이 동시에 꿈틀거렸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어린애가 이곳에 한 명 있었던 것이다.

나예린과 연비는 자연스럽게 그 소리가 터져 나온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 있는 자리에서 목소리만 들린 뿐 군중들에 가려 소년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 았던 것이다. 사람들의 무리를 가르며 앞으로 나가자 눈에 확 띄는 소년 하나가 세 명의 장정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척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이 각각 병장기를 보

란 듯이 꺼내 들고 있어 분위기가 무척 흉흉했다. 이들이 바로 악명 자자한 강남삼흉이란 이들이었다. 그러나 연비랑 나예린은 그런 데 관심없었다. 그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이름도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을 가져간 것은 다른 것이었다.

다가간 연비와 나예린이 그 웅성거림 때문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눈은 크고 새카맸고 피부는 우윳빛처럼 뽀얗게 빛나는 데다 잡티 하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 머리카락 색이었다. 옅은 회색빛이 도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가느다란 은발이었던 것이다.

“특이하네요, 은발이라니. 아직 어린 것 같은데.”

“그러게요.”

정말로 거친 사내들 셋에 둘러싸인 소년의 머리카락은 은발이었다. 그 은발은 더럽고 사나운 사내들에 둘러싸여서도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은발이라… 혈통 변이일까요?”

거의 주변에 무관심한 나예린도 그 은은한 빛깔에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그냥 흰 머리랑은 느낌이 달랐다.

“글쎄요… 반로환동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군요. 세외 사람도 아닌 것 같고. 하지만 저 은빛이 감도는 듯한 색깔은 아무래도 본인이 익히고 있는 비전무공의 영향 탓으로 봐야겠죠. 뭘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나예린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요. 신체적 변이가 나타날 정도로 내공을 익히려면 막대한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텐데요.”

내공이란 한마디로 말해 기(氣)의 축적체다. 기란 자연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질로 그것은 존재를 구성하는 근간이 된다. 존재(存在)란 요동치는 음양의 가운데서 형성되어진 거대한 기가 고도로 압축되어 구성되어진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공 수련을 통해 흡수할 수 있는 기의 양 은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육체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양이다. 다만 육체를 구성하는 기는 기 자체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특수한 운기조식을 통해 응집한 기는 보다 용이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신체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내공을 쌓으려면 정말 아득할 정도의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염도와 빙검, 그 두 사람의 무공 특성이 그토록 뚜렷하게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만 봐도 그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고수라 불리운다. 그 뒤에 다시 평범해지는 반박귀진의 경지가 있긴 하지만 그 경지까지 도달한 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저 소년은 너무 어렸다. 그렇다면 평범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음이 분명했다.

“저런 특성을 나타내는 무공을 지닌 곳이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군요.”

있었다면 나예린 자신의 귀에 들어왔을 것이 분명했다.

“이거 갑자기 흥미가 돋는데요.”

연비가 재미있다는 어조로 말했다.

“어떡하죠, 연비? 지금 나가서 도와줄까요?”

나예린의 물음에 연비가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 더 두고 보죠. 과연 어떤 무공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말이에요. 게다가 또 다른 비밀도 있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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