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4권 12화 – 풀어야 할 문제, 지어야 할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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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4권 12화 – 풀어야 할 문제, 지어야 할 매듭

풀어야 할 문제, 지어야 할 매듭

ᅳ사자매

“제 역할은 여기서 끝이에요. 이제 린 차례예요.”

나예린은 연비를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연비.”

“별말씀을.”

나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한시도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직도 영령이라 불리는 여인이 독고령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 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은커녕 확신만 커지고 있었다. 만약 독고 사자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녀는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기 위해 독고령을 쓰러뜨려야 된다면 그녀는 그럴 각오가 되어 있었다. 문득 사부님인 검후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부족하면 도와줄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는 엄격히 단련하도록 해라, 때가 되었을 때 쓸모가 있도록.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남는 것은 후회뿐일 테니. 알 겠느냐, 린아?”

“예, 사부님. 명심하겠습니다.”

자신은 그 말을 얼마나 지켰을까? 자신이 알았다고 내뱉은 만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예린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해왔다고 자부했다. 지금은 그녀의 힘이 도움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린은 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면 그 사람에게 칼을 겨눌 각오가 되어 있나요? 그 사람을 쓰러뜨릴 각오가 되어 있나요? 그 각오가 없다면 포기해요. 그 각오 없이 는 결코 이기지 못할 테니까요.”

“전 각오가 되어 있어요.”

연비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할 때 스스로에게 맹세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고령을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준비됐나요?”

연비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질문은 일종의 점검이었다. 현재 마음가짐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한. 만일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연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 예린을 막을 생각이었다. 설혹 자신이 비난을 받는 일이 있다 해도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 욕먹을 각오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네, 준비됐어요, 연비. 전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걸요.”

나예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투기장으로 우아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금 그녀는 이미 날카롭게 벼리어진 아름다운 한 자루의 검이었다.

“우린 다시 만났군요.”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예린이었다.

“끈질기군, 너도.”

영령이 아주 질렸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 말 자주 듣는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 그런 말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사자는 언제나 제가 집착하는 게 너무 없다고 나무라셨죠.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다고.”

나예린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누군지 몰라도, 물론 나는 아니겠지만, 맞는 말이군. 원하는 게 없으면 그걸 잡기 위한 노력도 할 필요가 없지. 그런 인간은 앞으로 나가지 못해!”

그러자 나예린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독고 사자도 딱 그렇게 말했어요. 역시 당신은 령 언니가 맞아요.”

그 사실은 이미 흔들림없는 확신으로 나예린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난 아니야. 사람 잘못 본 거라고 했지! 난 독고령이란 사람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어.”

나예린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그런 의문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만난 적이 없을 수밖에요. 왜냐하면 당신은 독고령 본인이니까요.”

“아직도 억지를 부리는 건가? 계속 얘기해 봤자 평행선이겠군.”

“동감이에요. 더 이상 대화로는 풀어갈 수 없겠군요. 안타깝지만 쉽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만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겠죠. 저의 소 중한 사람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그래서 어쩔 셈이지?”

“강제로라도 잃어버린 것을 되돌릴 수밖에요. 기억나지 않는다면 기억나게 해드려야지요, 언니.”

“뭘로?”

스르릉!

나예린은 대답 대신 차가운 한기를 발산하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평소의 나예린답지 않은 적극적인 태도였다. 이미 각오를 다진 나예린에겐 어떤 수단을 선택하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미있군.”

질 수 없다는 기세로 영령도 검을 뽑아 들었다.

“만일 네 검이 나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네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태도였다. 나예린이 진지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기억해 두겠어요. 이번엔 잊지 마세요, 꼭!”

“너는 내 기억력을 언제나 너무 의심하고 있군. 걱정하지 마,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어.”

“그건 왜죠?”

나예린이 되물었다.

“넌 날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이지.”

“그건 제가 할 말이군요. 그대로 돌려 드리겠어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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