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4권 8화 – 작렬(炸裂)! 아미파 검술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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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4권 8화 – 작렬(炸裂)! 아미파 검술비기

작렬(炸裂)! 아미파 검술비기

-천상의 꽃, 다시 한 번!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궁상은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고, 진령 역시 어떤 원망의 말도 내뱉지 않았다. 이미 그 순간은 지나갔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 고 있었다.

스릉!

먼저 검을 빼 든 것은 진령이었다. 남궁상은 그녀의 눈에서 망설임을 읽어낼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남궁상은 작게 한숨 을 내쉬며 검을 빼 들었다.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

그런 확신조차 없었다. 그는 사실 지금부터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더 나쁜 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뭔가 단단 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남궁상은 답답했다. 뭐라고 한마디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저…….”

쉬익!

입을 열자마자 진령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남궁상을 향해 쏘아졌다. 아무런 사전 동작 없이 갑작스럽게 펼쳐진 검초였다.

챙!

날아온 검날은 남궁상의 검에 가로막혔다. 거의 무의식중에 반응한 것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이럴 수가!’

남궁상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진령은 진심이었다. 말을 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자신의 검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상대가 대화할 준 비가 안 되어 있는데 말을 해봤자 그건 혼잣말에 불과했다. 남궁상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검을 곧추 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당분 간 흐드러지게 피었다 쏟아지듯 지는 꽃잎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가능할 성싶었다.

무표정한 진령의 검끝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

두 사람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누구도 승기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었고, 상대의 호흡에 대해, 버릇에 대해, 장점에 대해, 그리고 단점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었다. 서로 상대의 검술을 봐줘왔던 사이였다. 그들은 함께 ‘검’의 길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이 맞는, 관심거리가 같은 연인을 만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 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너무 무리하게 딴 탓인지 그 별이 다시 하늘로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아미파의 검은 화려하고 우아했다. 그러나 진령의 검은 단지 화려함에서 그치지 않았다. 화려한 우아함 속에 날카로움을 머금고 있었다. 그 날카로움이 깃들 수 있 도록 도와준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남궁상이었다.

“진령, 네 녀석의 검은 화려하고 변화도 많지만 대신 날카로움이 떨어져. 반면 궁상이 니 놈의 검은 제법 빠르긴 한데 변화가 없어서 너무 심심해. 서로를 보고 좀 배워라. 아니면 훔치던가. 그것도 싫으면 서로 가르쳐 줘. 알콩달콩, 헤롱헤롱거리지만 말고. 나보고 가르쳐 달라고? 싫다. 내가 왜? 귀찮아.”

언젠가 그들 두 사람에게 대사형이 해준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은 메워주었다. 마치 부부가 그러하듯 말이 다. 두 사람이 지금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악독한 대사형 탓도 있지만, 서로가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지옥을 경험했더라도 불가능했을 것 이다.

두 사람은 한 번도 서로에게 전력을 다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서로를 상처 주는 게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힘겹게 얻은 검술로 서로로 상처 입히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아무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 일을 멈추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먼저 남궁상이 검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실력이 많이 늘었소, 령.”

남궁상이 공격하지 않고 무방하게 있자 진령도 함부로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당신도요, 상.”

“그만 하는 게 어떻소? 그건 오해였소. 지금이라면 류 소저도 증명해 줄 거요.”

남궁상의 입에서 류 소저라는 명칭이 자연스럽게 나오자 진령은 더욱 불쾌해졌다.

“말처럼 가벼운 건 언제든지 번복될 수 있지요.”

진령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럼 말이 아니라 뭘 해야 한다는 거요?” “행동.”

진령의 대답은 짧지만 무거웠다.

“무슨 행동을 하면 좋단 말이오?”

진령은 남궁상을 쳐다본 다음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류은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건 상, 당신이 생각해 볼 문제예요.”

“글쎄, 그렇게 말하면 모르지 않겠. 쉐에에에엑!”

남궁상은 자신의 목을 베기 위해 날아드는 검기를 막느라 미처 말을 끝내지 못했다. 검날 저 너머에 진노한 진령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두 눈은 그를 잡아먹을 듯 불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안 되는 거예요, 이 바보 멍청이!”

진령의 검이 폭발적인 기세로 남궁상의 전신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겁쟁이, 둔탱이, 여자의 마음은 헤아려 보려고도 하지 않는 맹추!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당신의 말을 기다렸는지 모르겠죠? 아마 절대로 모를 거예요. 그걸 알면 그 렇게 낯짝 좋게 서 있을 수 없었을 테죠. 부끄러워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요!”

외치는 진령의 검끝으로부터 아미파의 연화검법이 연환되며 펼쳐졌다. 한마디 한마디가 더해질 때마다 그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내, 내가 뭘 말하지 않았다는 거요?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요?”

방어하기에도 급급한 남궁상이 간신히 틈을 내서 말했다. 그런 다음 더 길게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방어에 전념했다.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그것 자체가 죄라고요!”

쉐쉐쉑! 파바밧!

안면을 향한 세 번 찌르기가 펼쳐졌다.

“그러니까 말로…….”

이번에는 말을 채 끝맺을 수조차 없었다.

“닥쳐요!”

진령이 표독스럽게 외쳤다.

“내가 말을 입으로만 한다고 생각해요? 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당신에게 말해왔어요. 요구해 왔다고요. 기다렸다고요! 그러나 그 언외언(言外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건 바로 당신이었어요! 이 겁쟁이. 둔탱이! 무신경!”

외치면 외칠수록 남궁상을 쫓아가는 진령의 검은 더욱 빨라졌다. 검기가 사방으로 난무하며 남궁상의 전신을 옥죄어왔다. 조금이라도 기세를 늦추면 단숨에 남궁 상을 도륙해 버릴 기세였다. 무형으로 전해져 오는 압박 때문인가, 어째 아미신녀 때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위력적으로 느껴졌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남궁상이 외쳤 다.

“령, 이, 이, 이러다가 죽겠소!”

가문비전의 보법을 허둥지둥 밟으며 남궁상은 뒤로 물러났다. 진령 역시 아미파의 보법인 ‘난화보’를 밟으며 쫓아갔다.

“죽어욧!”

진령이 외쳤다. 그녀는 더욱 가열차게 몰아쳤다. “그렇게 젊은 여자가 좋았어요? 이 저질, 변태!”

휘두르는 검끝에서 살기가 무럭무럭 솟아났다.

“아, 아니, 그건 오해라니까 왜 그러시오? 맹세코 아무 일도 없었소!”

남궁상은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던 것이다.

“흥, 내가 문을 열지 않았어도 아무 일도 없었을지 어찌 알겠어요?”

다시 한 번 진령의 검이 남궁상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로 남궁상은 그 공격을 피했다. 가슴이 서늘했다. 어째 진령의 검은 갈수록 더 속력이 빨라지 는 듯했다.

“그건 사고였소, 사고!”

그런 구태의연한 변명이 지금 와서 먹힐 리가 없었다.

“흥! 나한테 청혼할 용기는 없고, 젊은 애를 벗겨볼 용기는 있었나 보군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순간 남궁상의 몸이 흠칫 굳었다. 지금까지 혼란스럽던 생각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듯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핵심에 다다랐다. 한참이나 때늦은 직감이긴 했지만 말이다. 쑥스러운 목소리로 남궁상이 말했다.

“그… 그게 문제였구려…..”

순간 진령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속마음이 드러난 탓이다. 그러자 또다시 남궁상에게 화가 치밀었다. 여자의 속마음을 눈치 챘으면 눈치껏 모른 척하고 가슴속에 묻어둘 것이지 꼭 그걸 티내서 여자를 부끄럽게 해야 되겠는가. 이건 배려심 부족 내지는 둔감의 끝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령이 소리쳤다.

“그걸 꼭 말로 해야 돼요?”

쉬잉!

검이 다시 한 번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그걸 꼭 말로 내뱉어야 하냐고요!”

쉐앵!

더욱 속력을 더한 진령의 검이 남궁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엔 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허겁지겁 도망치면서도 남궁상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여인의 섬세한 마음을 헤아리기에 그는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남자였다.

“헉헉헉!”

진령이 잠시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검이든 창이든 무공을 펼칠 때는 평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성질대로 검을 휘두르다 보니 금세 지치는 게 당연했다.

“하, 하면 되잖소, 령. 하면, 그게 뭐가 그리 어렵…… 으헙!”

찌릿!

진령이 비수 같은 눈빛이 남궁상의 심장을 꿰뚫었다. 남궁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일까? 진령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하고 있었다. 그 자신이 류은경 은 반쯤 벗겨진 상의를 붙잡고 있는 때보다도.

다음 순간, 진령은 뒤로 도약하여 거리를 벌렸다. 그녀의 입은 꾹 다물어져 있고 고개는 반쯤 숙이고 있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 었다.

“하면…… 된다고……? 그게 뭐가 그리 어렵겠냐고……?”

그녀의 검에서 기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 두 사람, 괜찮을까요? 분위기가 흉흉한데요?”

나예린은 용안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감정의 출렁임을 보며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음,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칼로 서로를 벨 듯한 분위기네요. 게다가 저 두 사람은 아직 부부도 아니잖아요?”

나예린이 지적했다.

“오, 예리한 부분을 지적했네요. 사실 그렇게 되지 못한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인지도 몰라요. 하긴 저 둔탱이의 기질을 생각한다면 용기있는 청혼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하겠지만 말이에요.”

“기분이 좋지 않아요.”

직감적으로 불안을 느낀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그리고 연비는 보았다, 진령의 손에서 펼쳐지는 그것을. 연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저건 확실히 물 베기엔 지나친 기술이군요.”

진령의 검이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본 남궁상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그는 이 초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이 초식 때문 에 거의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고 그것은 아직도 꿈에 볼까 무서워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것이었다.

“비상련화(飛翔蓮花)…….”

남궁상의 입에서 불신에 가득 찬 울림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분명 아미신녀 진소령의 손 안에서 한 번 펼쳐진 적이 있는 아미파 최고 비전인 이기어검술 ‘비상 련화’였다.

진령은 정말로 진심이었고,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놀지도 않고 자신을 절차탁마해 왔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연인인 남궁상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말도 안 돼! 어떻게 저 절기를……. 거짓말이야. 나랑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데 어떻게…….?

관중석에서 아미신녀 진소령의 옆에 앉아 구경하고 있던 유란의 두 눈이 불신, 경악, 회의로 인해 부릅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기술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차기 장문인 후보가 된다는 것과 거의 동일한 의미였다.

“설마 저 기술까지 꺼내들 줄이야……. 내가 저 아이의 상처를 얕본 것인가?”

진소령의 입에서 작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조언해 줄 수 있는 것은 검술에 관한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남녀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 숙맥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아미신녀라 칭송받는 자라 해도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설득력있게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진 여협께서 가르치셨습니까, 저 엄청난 검공을?”

함께 구경하며 투기장의 대결보다 옆에 앉아 있는 진소령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던 점창제일검 유은성이 감탄을 감추지 않으며 물었다.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저것은.”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로 익히기 불가능한 기술을 진령은 단시간에 습득해 보였던 것이다. 남궁상의 비상련화 대응책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 빙검은 이기어검술에 대한 강의를 남궁상 혼자에게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기왕 하는 거 다 모아놓고 한 번만에 해치우는 게 좋지 않으냐는 비류연의 지나가는 한마디 때문에 다들 모아놓고 한꺼번에 강의했던 것이다.

‘배울 수 있으면 배워봐라.’

그때 빙검의 모습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진령은 연인인 남궁상과 자신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그 강의를 들었다. 그때 배움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 그 자신 역시 남궁상 못지않게 어검술을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진소령과 남궁상의 대결이 끝난 다음에는 고모인 진소령 에게 비상련화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검객으로서의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진령은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며칠간의 집중 특별 훈련을 통해 거의 완벽한 ‘비상련화’를 허공중에 꽃피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군요, 지금 저 아이의 내공으로 어느 단계까지 펼칠 수 있을지…….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마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이기어검술은 그 특성상 막대한 내공을 소모한다. 때문에 과도하게 기술을 펼치다 보면 몸에서 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자칫 잘못하면 탈진하거나 심하면 기혈이 뒤엉켜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특히 지금의 진령은 아직 이기어검술에 숙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의 조절에 미숙했다. 진소령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그건 바, 반칙 아니오?”

남궁상은 깜짝 놀라 외쳤다. 공포 때문인지 그의 이빨이 상하로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왜요? 당신을 이기려면 이 정도는 준비해야죠.”

진령이 얼어붙은 목소리로 말했다.

삼 년 전만 해도 두 사람은 같은 구룡칠봉으로서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기만 했다. 특히 아미 신녀 진소령과의 대결을 본 후,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남궁상을 이길 수 없다고 확신했다. 자랑스러우면서도 분했다. 비록 한정된 조건이지만 천하오검수의 일좌 이 아미신녀 진소령을 꺾은 사람이었다. 그를 이기려면 그에 걸맞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때 그렇게 특훈을 했으니 막을 수 있겠죠?”

이를 뿌드득 갈며 진령이 외쳤다.

“어째, 막을 수 없을 듯한, 아니, 막아서는 안 될 듯한, 그런 기분이 드는구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지금 그의 목숨이 위험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단 말이오?”

진소령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기고 싶은 게 아니에요, 벌을 주고 싶은 거지!”

활활 타오르는 살기에 질겁한 남궁상은 오늘 자신의 묘비명에 들어갈 문구를 오언절구로 할지 칠언절구로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령은 비명의 완성 을 기다리지 않았다. 진령이 떠오른 검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피어라, 천상의 꽃이여!”

세상엔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얼간이가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건 크나큰 착각이다. 땅을 치고 후회하기 전에 미리미리 고치는 게 좋다.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기에.

사람은 지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를 대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일수록 서로를 더 크게 상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서 서로를 가장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사람은 부부다. 친구 관계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 관계보다 연인 관계보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연인 관계 역시 예비 부부라는 의미에서 상당히 친밀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지금 진령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가장 크게 상처 입을 수 있을지 궁리한 결과를 선보이고 있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확실히 보는 것만으로도 남궁상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니…… 저… 그건 너무 심한 게. 모, 모든 일에는.. 저, 정도란 게……”

저도 모르게 턱이 덜덜거리며 이빨이 딱딱 부딪쳤다. 진령은 문답무용이라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미파峨嵋독문검법(獨門劍法).

난화검亂花). 비기(秘技).

이기어검술식(以氣御劍術式).

비상련화(飛翔蓮花).

이분(分) 쌍화(花).

지난 오십 년간 장문인과 아미신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익히지 못했다는 절기 중의 절기. 그 절기가 지금 아직 이십대인 진령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또 한 명의 천재가 나왔다고 본산에서 기뻐서 팔딱팔딱 날뛸 일이었다.

창공으로 두둥실 떠올라 있던 진령의 검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남궁상을 향해 매섭게 쏘아졌다.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남궁상은 일단 몸을 피하기로 했다.

남궁세가(南宮世家) 독문보법(獨門步法).

전영보(비기(秘技).

뇌광산란(亂).

남궁상을 뇌전보를 시전해 재빨리 몸을 피했다. 비상련화의 네 잎짜리 사련화도 피한 남궁상이었다. 두 잎 정도 피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남궁상의 몸이 전광석 화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자, 그럼 어떻게 한다..

헉!’

그러나 다음을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날아온 검끝은 어느새 그의 미간 앞에 도달해 있었다. 남궁상은 기함을 토하며 다시 전영보를 시전했다. 다시 그의 신형 이 검끝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남궁상의 흐릿한 신형이 다시 나타난 곳에 어느새 또다시 검끝이 쫓아와 있었다. 진령의 검은 유령처럼 집요했다. 마치 그가 피하는 곳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전영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상은 피하는 것을 포기하고 검을 휘둘러 위협적인 검끝을 쳐냈다. 이기어검술에 조종받는 검은 다시 진령에게도 돌아갔다.

“진심이었구려?”

남궁상은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붉은 액체를 손으로 만지며 물었다.

“물론이죠.”

진령이 대답했다.

남궁상은 갑자기 화가 났다. 왜 자기가 이런 꼴까지 당해야 되는지 이제는 알 수가 없었다.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인 거지? 그걸 여태껏 눈치 못 챘다는 것은 분명 그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체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란 말인가? 남궁상은 이해할 수 없었고, 너무 화가 나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이제 참지 않겠소!”

남궁상이 버럭 소리쳤다.

“참지 마시던지!”

진령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어라, 이건 정말 위험한데? 쟤네들 왜 저러지?”

두 사람이 하는 꼬락서니를 잠자코 지켜보던 연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때 연인이던 두 사람이 지금은 원수처럼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이었다. 지켜보던 연비로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 다 똑같군.”

이제는 어느 쪽의 잘잘못을 가릴 시기는 아니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여전히 걱정스러운 나예린이 물었다.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연비가 말했다.

“이젠 안 괜찮을지도……..”

처음으로 남궁상의 검끝이 진령을 향했다. 그의 검날에서 푸른 검기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뇌광을 연상케 하는 푸른 검기, 이제 남궁상도 진심이었다.

진령은 남궁상의 검끝이 다시 자신을 향하자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이 남자가 아직도 자기 잘못을 모르고 감히 자신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자신이 거의 죽일 듯이 검을 휘두른 것은 현재 진령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원래 연인 간의 싸움은 이성과 논리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사태가 눈사태처럼 커지는 것 은 언제나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막무가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어디 해봐요!”

“좋소, 끝을 봅시다.”

진령의 검이 또다시 하늘 위로 떠오르면 꽃봉오리를 맺었다. 남궁상의 검에서 파직파직 푸른 불꽃이 튀었다. 마치 뒤에 낭떠러지라도 있는 사람처럼 어느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분노로 막힌 시야는 너무 좁아 어디가 어딘지 앞뒤 구분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지거라, 사련화여!”

아미파 독문검법.

난화검亂花劍).

비기.

이기어검술식(以氣御劍術式).

비상련화(飛翔蓮花).

사련화(花影).

남궁상도 뒤질새라 동시에 외치며 벽력같은 푸른 ‘검강’이 휘감긴 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뇌전검법(雷電劍法) 오의(奧義).

뇌광단천斷天).

일신상 지닌 능력의 바닥까지 쥐어짜낸 궁극의 오의가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비기와 비기, 검기와 검기가 한가운데서 부딪치자 번천지복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리에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무수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이 엄청난 충격의 여파만으로도 이 충돌이 얼마나 대단했는 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순간 관중들의 마음속에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동귀어진(同歸於盡)!

“저들은 지금 동귀어진한 것이다!”

라고.

그만큼 그것은 두 사람의 저력을 한계까지 짜낸 무시무시한 위력의 격돌이었다.

“서로 절대 양보할 마음이 없다니……. 세상은 서로서로 조율하며 살아가야 하는 법인 것을.”

나예린의 말에서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죠. 이번 건 그냥 둘 다 멍청했던 거고.”

연비의 말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는 거죠?”

윤미 소저는 그 부분이 무척 고민스러운 모양이었다. 사실 그건 판정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글쎄?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한 것 같네요.”

“그게 뭐죠?”

“어느 쪽이 이기든 위로 올라올 수는 없을 거라는 거요.”

“확실히 조금 전의 격돌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군요. 그럼…….”

나예린은 하던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그들이 부전승으로 한 단계 올라간다면 지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맞아요. 우리의 다음 상대는 ‘몽환삼영’조예요.”

나예린의 눈빛이 진중하게 바뀌며 조용히 그 조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몽환삼영…….?”

가장 만나길 바라면서도 가장 만나지 않길 바랐던 조, 바로 영령이 이끄는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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