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6권 12화 – 알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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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6권 12화 – 알까기

알까기

-읽다

사실 현운은 좀 전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남해왕 전혼의 탄기는 지금까지 현운이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기술이었다. 백도에서 동전을 무기로 삼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천당가가 암기의 명가이 기는 하나 이만한 쏘기 기술은 보지 못했다. 게다가 사천당가의 암기술은 그들이 독자적으로 제작한 암기를 사용할 때 진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전혼이 쓰고 있는 것은 실생활에서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진짜 동전이었다. 그의 성격상 가짜 돈은 사용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의 몸은 그 쏘기 기술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이미 여러 번 겪어보았다는 듯이. 그렇지 않으면 첫 한 냥째에 혼이 팔려 나갔을지도 모 른다.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머리 한구석으로 고민했었다. 그리고 뇌리 저편에 묻어두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다! 알까기!’

왜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했을까? 대사형 비류연이랑 했던 그 흉흉한 ‘알까기’를.

왜 그것을 알까기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사형이 하는 알까기는 기존의 알까기랑은 차원이 달라도 아주 달랐다. 보통의 알까기는 흰 돌과 검은 돌을 손가락으로 튕겨 먼저 바둑판 밖으로 돌이 튕겨 나가는 쪽이 지게 된다. 그러나 대사형이 하는 알까기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십 보 밖에 주작단을 일렬로 세워놓는다.

그리고 바둑판 위에 그와 같은 개수의 바둑알을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콧노래를 부르며 바둑알을 튕긴다.

그럼 그 바둑알은 마치 뇌전이라도 된 것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온다. 그걸 요령껏 검으로 막아내야 한다.

그 바둑알의 위력이 어느 정도냐 하면, 언젠가 한번 그 알까기 공격을 피했을 때 그 바둑알은 그의 뒤에 있던 바위를 그대로 파고들어 갔던 것이다. 그런 걸 정면으 로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사형은 걱정 마, 죽지 않을 정도로 힘 조절했으니까’라는 간단한 한마디로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일축했다.

대사형과의 알까기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런 걸 왜 하는 겁니까, 대사형? 꼭 해야 합니까?”

“이런 게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결코 내가 지금 한가해서 시간 때우기로 이런 걸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하품을 거나하게 하면서 그렇게 대답했었다.

‘시, 시간 때우기였냐!”

불쌍한 주작단들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심심하면 바둑을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시간 때우기에 아주 그만입니다.”

“아니, 난 바둑은 별로라서.”

“모르시면 제가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무당산에서 사부님과 맞대국을 할 만큼 그의 바둑 실력은 꽤 높았다.

“현운아, 넌 내가 바둑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 그럴 리가요.”

“내가 바둑을 못 둬서 알까기를 하는 게 아니라니까. 다 너희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라고 하는 거라니까.”

다시 한 번 피와 살을 강조했다.

“그전에 피를 뿜고 죽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렇습니다.”

그 걱정이 기우가 아닐 만큼 날아오는 알까기 바둑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그러자 비류연은 손사래를 치며,

“에이, 겁도 많긴. 안 죽는다니까, 절대. 나중에 다 암기 공격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이런 게 다 수련이야, 수련. 다 너희들을 위해서라고. 난 뭐 안 힘든 줄 아 냐? 아주 삭신이 쑤신다고, 삭신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하암’ 하고 하품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대사형의 깊은 마음을 몰라주다니, 안 되겠다. 피해야 하는 바둑알 양을 세 배로 늘려야겠다.”

주작단 전원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다. 그 후로는 누구도 불평불만을 입 밖으로 내는 이가 없었다. 과연 대사형의 말대로 날아온 바둑알에 몸을 관통당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맞아도 죽지는 않았지만, 조그만 바둑알을 맞았는데도 그 충격은 고수가 전력으로 휘두른 권격을 얻어맞는 것과 같았다. 멍도 조그만 점처럼 드는 게 아니라 주먹에 맞은 것처럼 크게 번지는 멍이 들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 그 멍은 바로 알까기에서 졌다는 증거로, 그들은 ‘죽음의 알반점’이

라 불렀다. 특히 여자들은 그 알반점이 한 달 동안 사라지지 않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 남자들보다 더 필사적으로 피했던 기억이 났다.

그 죽음의 알까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십 보에서 시작해서 날아오는 바둑알을 튕겨내고 살아남으면, 그 뒤로 한 발씩 한 발씩 전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후에 남은 한 사람만이 다음 알까기 판에서 빠질 수 있었다. 그러니 다들 눈에 불을 켤 만큼 필사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운의 알까기 성적은..

“보인다!”

땅땅땅땅땅땅땅!

현운은 검을 바람처럼 휘둘러 날아오는 칠연비성격을 정확하게 쳐냈다. 게다가 이번에는 쏘기의 위력에 밀리지도 않았다. 정확한 호흡, 정확한 각도로 쳐낸 덕분 이었다. 알까기 최고난이도는 오보 앞에서 날아오는 열 개의 바둑알을 쳐내고 피해내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곱 개 이상 쳐낼 수 있게 되기는 했다.

“대사형의 심심풀이 괴롭힘이 이런 데서 도움이 되다니……. 설마 이걸 노리고??”

그러나 곧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연이야. 암, 우연이고말고. 대사형이 이런 상황을 상정해서 그런 걸 했을 리가 없잖아? 그건 어디까지나 심심풀이였던 게 분명해. 틀림없어.’

혹시나 하는 생각을 극구 부정하며 우연이라고 치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럴 수가! 나의 매혼전을, 그것도 칠연비성격을 이렇게 정확하게 쳐내다니……. 이런 신묘한 기술을 보인 건 자네가 처음이야. 그 점은 인정하지.”

남해왕 전혼의 안색은 무척 좋지 않았다.

“아쉽구려. 천무학관에 온다면 많이 보게 될 텐데…….”

주작단원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그 무지막지하고 비정하고 잔인하고 막무가내인 대사형 밑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대사형의 괴롭힘에서 살아남기 위 해 그들은 단 하루도 연마를 게을리하면 안 되었던 것이다.

“확실히 내가 자네의 가격을 잘못 매겼던 모양이군. 가격이 맞지 않으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없지.”

그러더니 허리춤에 치고 있던 다른 주머니를 열었다.

“그건 또 뭡니까?”

그는 그 주머니에서 다시 돈을 꺼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전이 아니라 은전(銀錢)이었다.

“아, 보다시피 이 주머니 안에는 은화가 들어 있다네. 왜냐하면 자네의 목숨은 동전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싼 것 같거든. 그렇다면 지불 수단을 바꿔야겠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지불해야 되자 남해왕은 마음이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전에서 은전으로 바꾼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기라도 한단 말이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글쎄, 과연 어떨까? 비싼 만큼 값을 하는지 그 몸으로 직접 시험해 보면 되지 않겠나!” 쉐애애애액! 쉐애애애애액!

사전 동작도 없이 남해왕 전혼은 망설임없이 두 개의 은전을 현운을 향해 쏘아 보냈다.

“이런 것쯤!”

이미 매혼전의 속도는 눈에 익어서 두려울 게 없어진 현운은 자신만만하게 검을 휘둘렀다.

깡! 깡!

두 개의 매혼전을 분명히 검으로 쳐냈다. 그러나 그것은 튕겨 나가지 않았다.

“컥.”

현운은 검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충격에 내장이 진탕되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 이럴 수가…….”

자신의 청송고검을 들어 올린 현운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애지중지해 오며 쓰던 사문에서 받았던 검신에 두 개의 동전이 보란 듯이 박혀 있었다. “이게 대체……”

좀 전에 동전을 쓸 때까지만 해도 확실히 튕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튕겨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속도는 같았지만 그 안에 실린 힘은 전적으로 달랐다. 검기가 주입된 검을 이렇게도 깔끔하게 꿰뚫다니……. 어지간히 압축된 기가 주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 적어도…….

“설마…… 검강?”

현운은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간단히 쇠를 두부처럼 뚫을 수 없었다.

“정답이네. 보다 정확히는 ‘전강’이라 해야겠지.”

돈에 실리는 강기라는 의미였다.

“이것이 바로 나의 궁극 기술인 ‘탈명매혼강기전’이라네. 그 누구의 목숨도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비장의 지불 수단이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모든 것을 꿰 뚫는 섬광의 창(槍)!”

좀 전에 남궁산산의 검을 부순 것도 바로 이 강기전이었던 것이다.

“강기를 동전에 실어서 쏘아 보내다니…….”

강기라는 것은 보통 검이나 도, 혹은 드물게 창 등에만 실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현운으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강기전 앞에서 거의 모든 방어는 무용지물이지. 자, 과연 이 강기전의 세례를 견딜 수 있겠나?”

“크윽…….”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곧 자네의 목숨 값이 정해질 것 같군! 안 그런가?”

다시 전혼의 손에서 강기전의 세례가 쏟아졌다. 막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현운은 방어보다는 회피를 선택했다. 현운은 제운종을 펼쳐 날아오는 강기전을 어찌 저찌 피해냈다. 세 배 빨라지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계속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현운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쪽에서 강기라면 이쪽도 같은 강기로 맞대응할 수밖에!”

현운의 청송고검에 맺혔던 검기가 더욱 선명한 빛을 내더니 푸르스름한 강기를 형성했다.

“그 나이에 벌써 검강을 사용할 수 있다니, 과연 천무구룡의 명성은 거짓이 아니었군. 그러나 아무리 같은 강기라 해도 집중력이 달라!”

피융!

막아볼 테면 막아보라는 투로 전혼의 탈명매혼강기전이 현운의 정면을 향해 날았다.

“이미 간파했소!”

현운은 검강이 실린 검으로 날아오는 강기전을 쳐내기 위해 공간을 갈랐다. 그러나 그 강기전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졌다. 가슴을 노리고 날아오던 강기전이 돌 연 꺾여져 단전 부위를 공격해 오자 현운은 급히 검의 궤도를 틀어 그 공격을 막아냈다.

카앙!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현운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내장을 진탕시켰던 것이다. 급격하게 검의 궤도를 튼 것이 안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갑자기 빨라졌다?”

뚝 떨어지면서 날아오는 속도는 지금까지의 속도와 다르게 훨씬 더 가속해 있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것이다.

게다가 검날도 상해 있었다.

·위력에서 밀렸다는 건가…….’

아무래도 강기가 한 점에 집중된 강기전의 강도가 그의 검강의 강도를 뛰어넘은 것이다. 같은 수준의 내공을 가졌다면, 검날 전체에 강기로 덮는 것보다 동전 하나 에 압축하는 게 강도 면에서는 훨씬 더 강한 것이다. 한 점에 집중된 강기가 바늘 끝처럼 날카롭게 현운의 강기를 관통한 것이다.

‘쾌(快)를 뛰어넘는 극쾌(極快)!’

극쾌를 그 근본으로 삼는 남해왕 전혼의 탈명매혼전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능유제강을 그 요결로 삼는 무당검에 가장 상성이 나쁜 상대라 할 수 있었 다. 이른바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변초까지…….’

위기를 타개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상황은 현운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이대로라면 현운의 필패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태극혜검의 극의, 이제 그것밖에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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