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6권 14화 – 해외 유학과 현지(地)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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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6권 14화 – 해외 유학과 현지(地)의 상관관계

해외 유학과 현지(地)의 상관관계

-장홍, 궁지에 몰리다

“정말 괜찮겠소?”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 장홍의 얼굴은 평소의 헤벌레한 표정이 아니라 무척이나 진중했다.

“뭐가요?”

옥유경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장홍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마천각을 배신하는 것 말이오.”

“흥, 듣기 안 좋은 소리군요. 배신이라니. 난 마천각을 배신하려는 게 아니에요.”

“아니라니……?”

대체 뭐가 아니란 말인가? 지금 그녀의 행위가 마천각을 향해 칼끝을 겨누는 배신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이 배신 행위이겠는가? 그러나 옥유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건 마천각의 기강을 책임지는 마천십삼대의 대장 중 한 사람으로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뿐이에요. 아녀자를 납치하는 비겁한 짓이야 말로 마천각에 대한 배신 행위죠. 안 그런가요?”

날카로운 옥유경의 반문에 장홍은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 개인의 사고에 근거한 판단일 뿐이고, 주위에서는 절대 그렇게 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주위에서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니까. 전 마천각의 배신자를 찾으려는 것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거친 수단 을 사용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여기서 말하는 거친 행동이란, 같은 마천십삼대의 대장 이하 대원들을 차례차례로 쓰러뜨려 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고맙소, 유경.”

장홍은 자신을 도와주는 옥유경이 너무나 고마워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아뇨, 고마워할 것 없어요. 대신 그냥 내 질문에 대답해 주기만 하면 돼요. 궁금한 게 있거든요.”

기분 탓인지 목소리가 약간 날카롭다.

“뭐든지 물어보시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대답하리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부상국(扶桑國:일본)에 가서 수업을 쌓았다고요?”

“그렇소. 이른바 해외 유학이라고 할 수 있지. 특히 그곳은 오랜 전쟁으로 닌자술이라는 고유의 은신잠행술이 발달한 곳이오. 요즘은 중원에서도 부상국의 닌자들 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그들의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었소.”

“그 인자(忍者)들의 이야기라면 들은 적이 있어요. 특히 거기 여닌자들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사내를 홀리는 특수한 비법을 연마한다더군요.”

“그렇소. 그녀들은 정말 대단하오.”

장홍은 어디까지나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옥유경의 눈빛이 비수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당신은 어땠나요?”

“어, 어땠냐니? 뭐가 말이오?”

날카로운 비수처럼 급작스럽게 찔러 들어오는 질문에 장홍은 당황하고 말았다.

“젊은 여닌자에게 유혹받으니 좋던가요?”

옥유경이 한 발을 앞으로 움직이며 압박해 들어왔다.

“무, 무슨 말인지……..

그러면서도 장홍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남자들은 주에서 다른 주(州)로 일하러 가기만 해도 그곳에 ‘현지처(現地妻)’라는 걸 만든다고 하더군요. 바다 건너 해외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그것 도 수년씩이나 그곳에 있었는데?”

현지처라는 부분에서 장홍은 세 걸음이나 더 물러나고 말았다. 지금 이런 분위기는 상당히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글쎄… 난 모, 모르는 일이오. 오해요, 오해.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소.”

손사래를 치며 장홍이 극구 부인했다.

“난 다른 남자들 얘길 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죠?”

“아니, 누가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거요? 겨, 결코 그런 일 없었소.”

그다지 설득력있는 태도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 여닌자들과 만난 적이 없단 말인가요?”

장홍은 목뼈가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닌자술을 배우기 위한 유학 길이었으니, 물론 여닌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닌자든 여닌자든 닌자는 닌자였다. 닌자술을 배우러 갔는데 안 만난다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옥유경에게는 자연이든 부자연이든 비자연이든 전 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들이랑 같이 수련도 하고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럼 여닌자들의 수련 상대도 되어주기도 했겠군요.”

“그거야… 그렇소. 하지만 배우는 체계가 달라서 그다지 많지는…….”

“것 봐요. 역시 그렇잖아요. 특히 매혹술은 상대가 있어야 연마할 것 아닌가요? 흑도의 어느 문파에도 그런 비슷한 기술이 있기 때문에 잘 알아요, 그런 수법들을 어떻게 연마하는지.”

이미 그녀의 눈빛은 범인을 취조하는 냉철한 포두의 눈빛이었다.

장홍의 등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그, 그… 그건…오해요. 그런 일은 정말….”

“정말정말정말 아무 일도 없었나요?”

“아니, 그 일은 그런 게…….?”

장홍은 입을 ‘헙!’ 하고 다물었다.

“오호, 그 일이라니요? 꼭 듣고 싶군요. 자, 말해보세요. 방금 전 그러셨잖아요.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모두 대답해 주겠다고.”

장홍은 거의 벼랑 끝까지 몰리고 말았다. 옥유경은 전방위적으로 그를 찬찬히 압박하며 진실을 실토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장홍은 울고 싶었지만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북해도의 관문을 향해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을 발견해 달라고 외치고 있기라 도 한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북해도로 향하는 관문을 지키고 있던 마천각도 두 명이 관문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장홍을 발견하고 무기를 들어 그를 제지하려 했다. 장홍으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컥…….?”

그러나 북해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제팔 기숙사 소속 대원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옥유경의 단 일 초에 정신을 잃고 풀썩 그 자리에 무너지고 말았 다. 과연 마천십삼대의 대장답게 군더더기 하나 없는 솜씨였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소리치며 수상한 자의 뒤를 맹렬한 기세로 추격해 오던 제칠번대 대장 옥유경을 보고 잔뜩 긴장한 채 예를 취했던 두 명은 그렇게 눈 깜짝할 사 이에 쓰러졌던 것이다.

“자,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아, 아니, 지금은 이 사람들을 먼저 처리해야 하지 않겠소?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합시다, 나중에.”

사실 장홍으로서는 그 나중이 평생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는 대답을 듣기 전에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질질.

쓰러진 두 명의 보초를 한쪽으로 끌어내 숨기는 장홍의 모습은 명백하게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 나랑의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건가요?”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소. 이런 식의 화제를 꺼내기에는 적절한 시기가 아닌 듯하오.”

장홍은 명분을 이용한 정면 공격을 택했다. 그 말에 옥유경은 잠시 주춤했다.

“좋아요. 일단 이번 납치 사건을 해결한 다음, 그리고 나서 정정당당하게 천무학관을 이겨 보이겠어요. 그동안 내가 정성 들여 키운 아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당신 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주죠.”

“그, 그건 정말 사양하고 싶구려.”

아무래도 그런 일을 당했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머, 사양할 것 없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젊은 영계들이 상대인걸요. 미모도 빼어나고. 그러니 틀림없이 마음에 들 거예요. 암, 그렇고말고요.”

말속에 스며 있는 날카로운 가시를 감지한 장홍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여, 영계를 좋아하다니. 난 아직 덜 익은 애들보다는 가슴이 큰 농익은 사모님 취향으로…….?

장홍은 횡설수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당황해 있었다. 해명이랍시고 내뱉은 말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한테 가슴하고 엉덩이밖에 없는 줄 알죠?”

“아니오. 본능적으로 그런 데 눈길이 먼저 가긴 하지만 얼굴도 제대로 보고 허리의 굴곡이랑 다리의 각선미도…….”

“시끄러워요! 본능대로 사는 건 짐승들도 할 수 있어요. 본능을 정신으로 제어할 줄 알기에 비로소 인간인 것이지요. 그래서 남자들이 짐승이라 불리는 거예요. 제

가 우리 애들한테 남자는 짐승이라고 가르치는 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극단적인 교육은 좋지 않다고 반박해 보려다가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장홍은 백기를 들어 올렸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인.”

그제야 사나워졌던 옥유경의 눈꼬리가 부드러워졌다.

“뭐, 좋아요. 하지만 앞으로 두고 보도록 하겠어요. 당신이 짐승의 길을 택하는지, 아니면 사람의 길을 택하는지. 만일 한눈을 팔았다가는…….”

그녀가 오른쪽 검지와 중지를 갈고리처럼 구부려 들어 올리며 장홍을 겨냥하자 장홍은 저도 모르게 찔끔하며 시선을 피해 버렸다. 저 갈고리가 마치 자신의 눈을 확 찔러 버릴 것 같은 공포심이 들었던 것이다. 젊은 처자에게 함부로 눈길 주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리곤 옥유경은 북해도로 향하는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장홍은 부랴부랴 그 뒤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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