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6권 16화 – 발동(動)! 석괴압살관(石塊壓殺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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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6권 16화 – 발동(動)! 석괴압살관(石塊壓殺關)!

발동(動)! 석괴압살관(石塊壓殺關)!

-짓눌러 부숴주겠다!

수십 명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인 대청 한가운데서 비류연과 서해왕 락비오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직이다. 아직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

눈에 힘을 가득 준 채 락비오가 비류연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눈빛 싸움 정도에 덜덜 떨 만큼 예민한 신경은 가지고 있었다.

“어라어라, 그럼 방금 진 건 대체 뭘까나?”

비류연이 피식거리며 좀 전의 패배를 상기시켜 준다.

“헹, 조금 전 건 그저 장난에 불과해. 애들 놀이 같은 거지.”

“호오, 요즘 애들은 놀이에 목숨을 거나 보군요?”

“요즘 애들은 목숨이 아까운 줄 잘 모르거든.”

그러자 비류연이 살짝 고개를 들어 락비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네요, 확실히.”

비류연의 몸짓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네가 바로 그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꼬맹이라는 뜻이었다. 락비오의 각진 얼굴이 다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조금 있다가도 그렇게 이죽거릴 수 있는지, 두.고. 보.지.”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죠.”

“그래?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를걸? 이 ‘석괴압살관(石塊壓殺關)’에서는!”

“이쪽도 바쁘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죠.”

“좋아. 저기 바닥에 그려져 있는 작은 네모 칸이 보이나?”

“누구처럼 장식품이 아니라서요. 모두 팔십일 칸이네. 바둑이라도 둘 건가요?”

그러면서 바둑보다는 알까기가 특기인데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락비오의 귀에까지는 가 닿지 않았다.

“바둑? 흥, 그런 쪼잔한 두뇌 노동으로 진정한 힘을 겨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럼?”

락비오가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삼십일.”

그러자 양쪽 벽면에 서 있던 무사 중 한 명이 줄을 하나 끊었다.

구구구궁!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액!

그 순간 비류연의 머리 위쪽 천장에 매달려 있던 석추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저 무거운 석추에 깔리면 그 누구도 무사할 수 없었다. 쾅!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청 안이 진동했다.

“류연!”

효룡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단한 배짱이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다니.”

락비오의 표정이 약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방금 전의 석추는 비류연이 서 있는 칸 바로 옆 칸에 떨어져 내려 있었다. 사슬의 길이로 조절을 한 탓인지 부서지거 나 하지 않은 채 기둥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이런이런. 왜요? 당황해서 도망치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나 보죠?”

“큭.”

의외로 정곡이었던 모양이다.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인간이었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방금 보다시피 이곳의 칸은 모두 팔십일 개. 각각의 칸마다 그에 상응하는 석추가 준비되어 있지. 규칙은 간단해. 각각 한 번씩 일에서 팔십일까지의 숫자 중 하나를 말하면 그에 해당하는 추가 떨어지지. 단 한 차례에 한 번만이야. 이미 석추를 떨어뜨린 사람은 상대방이 석추를 떨어뜨릴 때 까지는 석추를 떨어뜨릴 수 없네. 어때, 간단하지?”

간단하지만 매우 위험한 규칙이었다.

이번이야말로 진짜 목숨을 건 놀이인 것이다.

“무서우면 언제든지 항복하도록.”

“어라라라, 요즘은 왠지 환청이 자주 들리는군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파며 비류연이 대답했다.

“좋아, 그런 상태면 죽어도 원망하지는 않겠군.”

“애석하게도 난 병약미소년 불사신이라서요. 안타깝지만 평생 원망할 일이 없어요. 그쪽이나 원망하지 마시죠?”

약간 비아냥거림을 담아 비류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다. 그 잘난 혀, 얼마나 오랫동안 놀릴 수 있을지 두고 보지. 그리고 규칙 하나 더.”

그러면서 품 속에서 조그마한 모래시계 하나를 꺼내놓았다. 그리고는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숫자’를 불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겁쟁이로 인정되어 그 즉시 패배다.”

어디서 떨어질지 모를 석추가 무서워 떨어뜨리는 것을 망설이면 그 즉시 패배라는 뜻이었다.

“기다려라. 금방 네놈이 겁쟁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정의가 나한테 있다는 것 역시 명백해지겠지.” 그 말을 들은 비류연이 히죽 웃었다.

“글쎄요, 그건 신의 존재 증명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은데? 하긴 불가능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죠.”

그 말에 굵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락비오가 외쳤다.

“그럼 이회전을 시작한다! 선공은 양보하지.”

태연한 척하고 있긴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비류연에게 있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비류연은 저 석추들이 일, 이, 삼, 사 순서대로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다. 아마 불규칙적으로 숫자가 배분되어 있을 것이다. 즉, 지금 그는 어느 칸에 어느 석추가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락비오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 다. 몇 번의 석추가 어느 칸에 떨어질지. 괜히 락비오가 선심 쓰듯 선공을 양보한 게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반증이었다. 비류연은 락비오의 공격을 빼고도, 머리 위의 또 다른 공격에 대해 항상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일(-)!”

선공을 양보받은 비류연이 외쳤다.

그러자 저 팔십일 칸의 맨 첫 번째가 아니라 바로 머리 위에서 석추가 떨어져 내렸다.

‘역시!’

비류연은 석추를 피하기 위해 얼른 몸을 뒤로 뺐다. 역시 숫자는 무작위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락비오가 외쳤다.

“이십삼!”

그러자 뒤로 피하는 비류연의 진로상에 석추 하나가 ‘쉐애애액!’ 무서운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칫.”

비류연은 혀를 차며 오른쪽으로 몸을 뺐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갑옷을 두른 락비오가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 왔다.

금강반탄신공(金剛反彈神功)

돌격擊) 비기(秘技)

폭렬질주(爆裂疾走)

쉐에에에엑!

달려오는 상태 그대로 락비오의 몸이 또 한 번 가속했다. 그 기세는 마치 전쟁터를 가로지르는 강철의 전차 같았다.

“이크.”

비류연은 봉황무의 신법을 발휘해 다시 한 번 방향을 급속도로 바꾸었다.

콰쾅!

달려온 락비오의 몸통과 석추가 그대로 충돌했다.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헤헹. 저런저런, 수발이 자유롭지 않은 기술은 자기 몸을 상하게 할 뿐이죠. 이럴 걸 자업자득이라고 한다던가요?”

그러나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은 락비오의 몸이 아니라 석추 쪽이었다. 사람 키보다 더 큰 돌기둥이 락비오의 몸통박치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져 나간 것 이다. 반면 강순천갑을 두른 락비오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락비오는 검이나 창 같은 무기는 일체 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 금강처럼 무식하게 단단한 몸뚱이 그 자체가 바로 최강의 무기였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락비오가 몸을 돌려 비류연 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동자를 연상시켰다.

“흐흐흐, 누가 자업자득이라고?”

“…..”

저런 무식한 공격법은 비류연으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저 몸뚱이는 단단한 모양이었다.

“이거이거, 아무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군요.”

현재의 몸 상태로 저 공격을 받으면 제아무리 비류연이라 해도 무사하기 힘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저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거추장스런 갑옷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상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모래시계가 몇 번씩이나 아래위로 뒤집어졌다. 그러나 승부는 나지 않았다. 그 대가로 대청 여기저기에 돌기둥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사실 떨어진 거였 지만. 그러나 비류연과 락비오 어느 쪽도 아직 큰 손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락비오는 모든 석추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비류연은 재빠른 반사신 경으로 무거운 석추와 그것보다 더 단단하고 위협적인 락비오의 저돌적인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몇 번 락비오의 몸에 타격을 먹이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갑옷의 그 부위가 튕겨져 나오는 바람에 오히려 비류연 자신이 당할 뻔했다. 다행히 무지막지한 반사신경과 봉황무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그것을 피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피해 다니기만 할 거냐?”

비실비실 쓰러질 것처럼 보이던 비류연이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자 락비오도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넌 정면승부도 제대로 못하는 겁쟁이냐?”

덩치도 큰 주제에 도발을 시도한다. 그러나 상대는 비류연이었다. 도발 십단의 비류연에게 그런 어설픈 도발이 통할 리가 없었다.

“어라, 그럼 당신은 정면승부밖에는 할 줄 모르는 단순무식쟁이인가 보죠?”

비류연은 어떻게 하면 상대의 속을 긁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뭐라고! 날 모욕할 셈이냐.”

반응은 금방 나타났다. 비류연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 어떻게 알았어요? 우와, 꽤 둔탱이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눈치도 있네요. 완전 바보는 아니었군요.”

감탄성을 내뱉는 것이다.

“이…..이……”

그 말에 너무 열이 받은 락비오는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되로 주려다 말로 받은 격이었다.

“그 입 다물게 해주마!”

분통을 참지 못한 락비오가 다시 저돌적인 몸통박치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비류연은 또다시 옆으로 그 공격을 피하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지금까지 그 말을 한 수백 번 들은 것 같은데, 이를 어쩌죠?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거든요.”

이제는 들어도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좀 더 독창성있는 말을 해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었다.

“사십사!”

락비오가 다시 숫자를 외치자 비류연의 머리 위로 석추 하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비류연의 이동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그 석추는 공교롭 게도 락비오와 비류연 사이에 떨어졌다. 일순 그 석추에 가려 비류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콰쾅!

락비오는 바위 같은 어깨를 정면으로 돌려 그대로 석추를 파괴했다. 여전히 그의 돌진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아니!”

그러나 부서진 석추 뒤에 있어야만 하는 비류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체 어디로…….”

락비오는 그 말을 끝낼 수 없었다. 비류연의 신형은 어느새 그의 정좌측에 신기루처럼 나타나 있었다.

비뢰문(門) 독문신법(獨門身法) 

봉황무(鳳凰舞) 오의(奧義)

그림자 숨기隱의 장(章)

낙뢰영落

이것은 어떤 사물 뒤로 숨는 것처럼 보여 상대의 의식을 빼앗은 다음 그 의식의 사각으로 파고드는 신법이었다. 봉황무의 신속이 있기에 가능한 기술이기도 했다. 원래 저돌적이고 공격 궤도가 일방향이던 락비오는 완전히 비류연에게 의식의 사각을 찔리고 말았다. 그래서 반격을 하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 었다. 그러나 락비오는 그의 절대적인 방어를 자랑하는 강순천갑과 금강반탄강기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자, 쳐봐라. 아무리 타격을 맞춘다 해도 그 타격은 모두 너에게로 돌아갈 테니!’

비뢰도(飛刀) 오의(義)

일점집중(一點集中)의 장(章)

뇌섬일시(閃-矢)

퓨욱!

진각을 밟은 비류연의 주먹이 정확하게 락비오의 중심을 향해 뻗어나갔다. 마치 한줄기 뇌전 같은 일격이 락비오의 몸을 꿰뚫었다. 락비오의 돌진이 그대로 멈추 었다. 비류연의 주먹은 쭉 뻗은 채 락비오의 갑옷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콰쾅!

요란스런 폭발이 일어났다.

“……”

그 폭발 속에서도 비류연은 멀쩡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폭발한 것은 비류연의 주먹이 닿아 있는 앞의 갑옷판이 아니라 등 뒤의 갑옷판들이었던 것이다. “컥!”

예기치 못한 충격에 락비오는 신음을 터뜨렸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강철의 거탑이 일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무릎까지 꿇지는 않았다.

“어, 어떻게?!”

“그 갑옷, 대충 어떤 구조인지 알 것 같아요. 꽤 무식하고 위험한 걸 몸에 걸치고 다니네요. 잘도 그런 걸 걸치고 무사할 수 있네요. 이거 감탄감탄.”

“이 강순천갑의 비밀을 알았다고?”

“아까 룡룡이 당하는 것을 보고 약간 의문을 품었거든요. 떨어져 나간 그 갑판을 붙인 하얀 덩어리가 뭘까, 하고 말이죠.”

“…….!”

락비오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바로 화약이었죠. 아닌가요?”

“화, 화약이라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효룡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러자 스스로 친절한 류연 씨라고 자처하고 있는 비류연이 친절하게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 그것도 꽤 특수하게 조합한 화약덩어리였지,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도록 되어 있는. 그 폭발의 힘으로 적의 타격을 상쇄하는 그런 구조지.” 석추를 부술 때 폭발하지 않은 것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두툼한 어깨 부위를 이용해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 부분만은 충격을 받아도 폭발하지 않는 부위였던 것이 다.

“하지만 그런 게 바로 옆에서 터진다면 아무리 튼튼한 갑옷을 입었다 해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저 강순천갑이 만련정강으로 만든 물건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안에 들어있는 몸뚱이는 폭발의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그건 맨몸의 인간이 견뎌낼 수 없는 충 격이었다.

“나도 그 부분이 좀 의문스러웠는데, 아마도 그 충격을 별 타격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특수한 외가기공을 익혀 육체를 단련한 것 같아. 어때, 내 말이 틀렸나요?”

어디 반박할 것이 있으면 해보라는 그런 투였다.

“놀랍군. 이 강순천갑의 비밀을 이렇게 빨리 눈치 챈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을 텐데?”

무언가 더 있다는 뜻이었다. 이 강순천갑의 속성을 꿰뚫은 기술이.

“오의 일점 찌르기, 뇌섬일시(閃一矢).”

방금 전 비류연이 선보였던 무공, 강순천갑의 방어를 뚫고 그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데 성공한 무공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무공이었다.

“바늘구멍 같은 한 점에 타격력을 집중시키는 타격법이죠. 이렇게 말이에요.”

퓨!

그러면서 발로 툭 차올린 돌멩이에 섬전 같은 빠르기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빠르고 무서운 일격을 맞고도 돌멩이는 전혀 손상이 없었다. 66 .?”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락비오에게 던져 주었다.

“이건 뭐냐?”

“눈깔이 제대로 박혀 있으면 잘 볼 수 있어요. 그것도 못 보면 까막눈인 거고.”

마지못해 이리저리 돌을 살펴보던 락비오는 깜짝 놀랐다. 돌 한가운데 바늘구멍처럼 작은 구멍 하나가 돌멩이를 관통해 있었던 것이다.

“이건……!”

락비오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특기는 강력한 힘으로 적을 분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정교한 수법은 흉내조차 불가능했다. 락비오는 한편으로 감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없어했다.

“자신의 무공의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다니, 배짱이 좋은 건지 멍청한 건지.”

“흥, 보고 흉내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흉내 내봐도 상관없어요. 할 수 있어요? 어차피 알아도 막지 못하고, 알아도 흉내 내지 못하는데 보여주는 데 거리낄 게 없 죠. 사실 그걸 보고 당장 패배를 인정하라는 뜻이에요. 이해했어요?”

“……”

락비오는 이해는 했지만 납득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날카로운 집중 타격이라면 강순천갑도 반응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면 한 번으로 부족한가요?”

그 사이에는 ‘머리가 나빠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크윽!”

확실히 그가 특별히 조합해 만든 ‘반응폭약’은 돌로 치는 것 같은 충격에는 반응하지만 바늘로 찌르는 것으로는 폭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단단한 갑옷에 바늘 로 찔러 들어오는 멍청이는 없었다. 어지간한 검의 찌르기는 모두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갑옷은 단단했다. 설마 이런 기술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죠. 자, 그럼 패배 인정?”

비류연으로서는 앞으로도 많은 싸움이 남아 있었다. 적게 싸우면 적게 싸울수록 그로서는 유리했다. 그러나 락비오는 그렇게 요령 좋은 사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 사전에 패배는 없다. 난 절대 항복하지 않아!”

대청이 쩌렁쩌렁 울리는 어마어마하게 큰 고함을 지르며 락비오가 달려들었다.

금강반탄신공(金剛反彈神功)

철갑전술(鐵甲戰術)

비기(秘技)

철구진천지(球震天地)

쿠르르르르르릉!

철갑을 두른 락비오의 몸이 거대한 철공이 되어 비류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거기에 회전의 힘을 더해 파괴력을 높인 것이다.

“이크. 인간 공 굴리기는 취미가 아니거든요.”

시전자가 멀미를 피해갈 수 없는 듯한 굉장히 특이한 기술이기는 했지만 피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멀미 조심하세요~!”

장난스런 말 한마디와 함께 비류연은 그 공격을 쉽게 피해냈다.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할 정도로 일직선인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

기 때문에 비류연으로서도 타점을 잡기가 힘들었다. 권격의 타격력을 한 점에 모으기 위해서는 대상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상태로 뇌전일시를 먹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큰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락비오의 노림수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폭렬(爆裂殘)!”

락비오의 외침과 함께 ‘콰콰쾅!’ 하는 엄청난 폭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락비오가 두르고 있던 강순천갑 전체가 폭발하면서, 그 갑옷 파편들이 마치 폭우처럼 사 방을 향해 쏘아졌다.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그 파편의 폭우는 제아무리 비류연이라도 피하기 힘든 것이었다.

비뢰도(飛刀독문운신보법(獨門運身步法)

봉황무鳳凰舞) 비전극상오의(秘傳極上奧義)

우중거(雨中去) 불점의(不)

비류연은 봉황무의 극의 중의 극의를 긴급히 펼쳤다. 온몸의 신경을 타고 무시무시한 통증이 뻗어나갔다. 마치 온몸이 여덟 갈래로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었 다. 사실 이 우중거 불점의는 봉황무 중에서도 특상급의 기술이라 양발에 묵룡환을 달고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묵룡환이 하나 풀려 있는 비류연 으로서는 또 다른 묵룡환을 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비류연은 극상오의를 시전했다. 어차피 펼치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오의를 펼치다가 죽는 게 더 나았다. “죽을까 보냐아아아아아아아!”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비류연의 몸이 투명해지더니 주욱 늘어나는 것처럼 날아오는 파편의 폭우 사이를 흐르듯이 피해 나갔다. 이제는 어느 쪽이 먼저 기력을 소모 하느냐의 경쟁이었다.

콰콰콰콰콰쾅! 퍽퍽퍽퍽퍽!

강철의 폭우가 곳곳에 떨어져 있던 돌기둥들을 인정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잠시 후, 무자비한 강철의 폭우가 주변을 휩쓸고 간 후 정적이 흘렀다.

스르륵!

그 정적 한가운데 비류연의 신형이 나타났다. 마치 흩어져 있던 잔상들이 한곳에 모이는 듯한 그런 형상이었다. 엄청난 고속 이동 때문에 그의 신형이 늘어나거나 흩어져 있거나 때로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비류연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는 지금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는 않았다. 하지만 단 몇 걸음도 떨어져 있지 않은 락비오에게 한 방 먹일 만큼의 상태가 못 되는 것만은 확실했다. 지금은 자신의 몸을 먼저 추스를 때였다.

락비오는 비류연으로부터 일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몸을 둥글게 만 채 그대로 멈추어서 있었다. 처음에는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서는 아무런 기척이 느 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두르고 있는 폭약을 일제히 폭발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폭렬잔이라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기술을 쓴 다음이니 죽지 않은 게 오히려 이 상할 정도였다.

잠시 후, 그 동그란 철구가 움찔거리더니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철탑을 연상시키는 거구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안색이 약간 시커멓게 죽어 있긴 했지만 의외로 그는 별로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비류연은 씨익 하고 웃었다.

“되도록이면 그냥 그대로 기절해 있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되지 않았나 보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공처럼 몸을 말고 정지해 있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한 방 먹여줄걸 하는 후회가 살짝쿵 들었다. 비류연은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락비오도 당장 움직일 만한 상황은 되지 못했는지,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합!”

잠시 후, 락비오의 기합과 함께 그가 걸치고 있던 나머지 갑옷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이제 그의 구릿빛 상반신은 완전히 맨살이었다. 밑에도 천으로 된 바지 하나 만을 걸쳤을 뿐이다.

“흐흠, 스스로 갑옷을 벗었다는 것은 항복하겠다는 뜻?”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류연이 그렇게 물었다. 락비오에게 있어서 갑옷은 방패이자 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락비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제부터가 본편이다. 금강반탄신공의 무서움, 똑똑히 가르쳐 주마!”

락비오의 선언과 함께 그의 구릿빛 피부가 서서히 쇠를 연상시키는 청동색으로 변해갔다. 강철 쇳덩이처럼 단단한 근육이 야수 같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울퉁불퉁! 꿀럭불럭! 불끈불끈!

단단한 구릿빛 근육의 약동적인 움직임을 본 비류연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아니, 잠깐! 난 남자 벗은 몸에는 별로 관심없거든요.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못 볼 걸 봤다는 듯 비류연은 고개를 돌렸다. 왜 자꾸 이렇게 진짜 싸나이를 자처하는 이들은 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어 젖히는가. 주변에 끼치는 민폐를 조금도 감 안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들은 자신의 단단하고 불끈불끈한 근육들에 스스로 매료되어 있는 모양인데ᅳ속어로는 자뻑이라고도 한다―그건 어디까지 는 본인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불끈불끈하고 핏줄이 툭툭 튀어나온 우락부락한 근육은 보고 있는 이에게 있어 그저 오염일 뿐이다. 사내의 터질 것 같 은 근육과 너무나 삐쩍 말라 뼈밖에 안 느껴지는 깡마른 여자의 몸은 세계의 조화와 균형을 파괴할 뿐이었다.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락비오의 저런 근육의 떨림은 비류연에게 있어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다.

“뭐 하는 짓이냐니? 난 단지..

비류연의 호들갑스런 반응에 망연자실해진 것은 오히려 락비오 쪽이었다. 별거 아닌 걸 가지고 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옷 좀 입고 하는 게 어때요? 비겁하게 이런 치사한 공격을 하다니…….”

“무, 무, 무슨 소리냐! 치사하다니? 게다가 난 공격한 적 없다. 자, 빨리 덤벼라. 장난치지 말고.”

락비오가 버럭 소리쳤다.

장난, 물론 비류연은 장난이 아니었다. 한시바삐 저 흉한 것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었다. 게다가 강순천갑도 없으니 이제 타격 부위를 고려치 않고 마음대로 두들겨도 된다는 뜻 아닌가.

삼복구타권법(三伏狗打拳法) 중복(中伏)

비류연의 신형이 락비오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락비오는 기습을 당한 탓인지 꿈쩍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바밧!

비류연의 주먹이 무방비 상태인 락비오의 상체를 두들겼다. 그리고…..

텅텅텅!

삼복구타권법을 시전하던 비류연은 깜짝 놀랐다. 락비오의 상체를 가격한 주먹이 그 속도 그대로 튕겨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 반동으로 비류연은 기술을 완전히 시전하지도 못하고 일장 밖으로 급히 물러났다. 그것은 반탄력을 감소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이건…….”

비류연은 자신의 주먹과 락비오의 상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감각을 어찌 설명해야 될까?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근육을 쳤는데, 마치 탄력성이 지나치게 강한 고무를 후려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탄력이 너무나 강해 오히려 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그런 고무 말이다. 락비오의 얼굴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맺혔다.

“보았느냐? 이것이야말로 금강반탄강기의 본모습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피나는 수련을 통해 얻어낸 그의 정의, 즉 그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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