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어 있는 검
―가공할 색마
길 한복판에 박혀 있는 검은 모두 세 자루였다.
그러나 그 검들이 평범한 검이었다면 세 자루가 아니라 삼백 자루라 해도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자루의 검은 강호에서도 좀처럼 보 기 힘든 명검이었다. 이런 검을 쓰는 자는 보통 고수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세 자루의 명검 모두 중간부터 부러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앞으로 나가 그 부러진 검들을 들여다본 장이하는 쇠로 만든 심장이라는 그의 별호가 무색하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허허, 이런 괴이한 일이…….”
장이하는 해가 쨍쨍 떠 있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다가, 시야를 내려 울창하게 우거진 푸른 숲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다시 부러진 세 자루의 검을 바라보았 다.
여전히 그 검신에는 새하얀 서리가 짱짱하게 얼어붙어 있었고, 손잡이는 투명한 얼음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해가 저렇게 따스하게 지상을 비추고 있는데도 그 얼 음은 여전히 녹지를 않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얼어붙은 검이라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경황이 없던 빙검의 눈이 그 순간 날카로워지더니 부러진 검 앞으로 다가갔다. 얼어붙은 검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서 얼음창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신광이 쏟아 져 나왔다.
“이건 빙한계(寒界) 무공의 흔적이로군.”
그 역시 빙한계의 무공을 익히고 있기에 같은 한빙지공에 자연 눈길이 쏠린 것이다. 정오의 태양 아래서도 쉽사리 녹지 않을 한빙지기를 발출하는 무공은 극히 한 정되어 있었다. 빙검은 그제야 찬찬히 세 자루의 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검의 주인은 장공(掌功)에 당한 것 같군. 그것도 극음의 장공일세.”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 검의 검신을 살펴보면 알 수 있네. 최근에 생긴 상흔 중에 날카로운 검기에 당한 상처는 보이지 않는군.”
즉, 검공 이외의 다른 무공에 당했다는 반증이었다.
“이 정도 명검을 육장(肉掌) 하나만으로 부러뜨리다니…… 상당한 고수로군. 대체 무슨 장법이지?”
게다가 그 장법의 이름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대체 이 한기 속에 깃든 음험한 사기(邪氣)는 뭐란 말인가?”
검신에 얼어붙은 서리로부터 특이하고 사이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런 기분 나쁜 음기(淫氣)라니… 강호에 이런 음험사이한 장법이 있었던가?”
왠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는 음한지기에 빙검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고 불길한 냉기는 그도 처음이었다. “혹시…….”
“혹시 짐작 가시는 장법이라도 있으십니까, 관 표두님?”
장이하가 빙검에게 공손히 질문하려 하자, 급히 장홍이 개입하며 그의 말을 가로챘다. 여기는 보는 눈도 많은데, 표두에게 존댓말을 하는 지국주라는 모양새는 아 무리 봐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때, 표사 중 한 청년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와 말했다. 다름 아닌 구정회의 지혜주머니 형산일기 백무영이었다. 준수하고 박식해 보이는 그의 얼굴도 지금 은 죽립에 의해 가려져 잘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지금 격정에 떨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 잠깐 그 검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기 제어에 능숙한 그가 지금은 어쩐지 좀 다급해 보였다. 즉시 검을 살펴본 백무영의 목소리가 심하게 요동쳤다.
“역시…!”
“…역시? 너는 이 검에 대해 알고 있느냐?”
빙검이 물었다. 백무영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들은 듣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물론입니다. 왜냐하면 이 검은 저희 형산파의 검이니까요.”
검끝에 달린 붉은 수실, 푸른 손잡이, 그리고 검막이 가운데 새겨진 ‘형’이라는 문자. 분명 형산파 제자들이 지니고 다니는 검이 틀림없었다.
“수실이 세 개인 것으로 보아, 일대제자, 그것도 형산십이검(形山十二劍)의 검들이 틀림없습니다.”
전음을 사용해 백무영이 말했다. 마음이 심란할 텐데도 주위의 이목을 생각에 전음을 사용하다니, 그는 확실히 영리한 인물이었다.
“형산십이검?! 그게 정말이냐?”
백무영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산십이검이라면 빙검도 들은 바가 있었다. 형산파 일대제자 중 가장 자질이 뛰어난 열두 명의 검도고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형산파의 방어인지라 좀처럼 산문 밖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검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는 형산검파 일대제자의 검이 이런 데서 얼어붙은 채 나뒹굴고 있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대체 이런 이름없는 고개에서 무슨 변고가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 검의 주인들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 보셨으면 이제 우리 차례인 것 같군요.”
빙검은 바로 지척에서 들려온 젊은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속으로 아차 했다. 이 여인은 검은 흉복의 부인들을 따르던 여덟 명의 여인 중 세 번째에 서 있던 여인이 었다. 한빙지공의 흔적에 놀라 잠시 지체하는 바람에, 빙검과 염도는 진짜 중요한 다른 존재와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그녀들의 발걸음이 멈추었을 때 뒤도 돌아보 지 말고 앞질러가야 했던 것을. 그러나 이미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봐도 될까요?”
여인이 다시 한 번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가까이서 보니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눈빛이 깊은 것으로 보아 매우 영리하고 현명한 여인인 것 같았다. “보시오.”
한 발짝 물러나며 빙검은 자신의 또 다른 실책을 깨달았다. 검들을 살펴보느라 일행으로부터 너무 돌출되어 있었다. 어느샌가 검은 흉복 차림 여인들의 시선이 일 제히 그를 향해 꽂혀 있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설마 들키지는 않았겠지?”
죽립과 피풍의에 청은색 머리카락과 몸은 숨겨져 있었지만 불안을 가시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대처였다. 빙검과 염도의 신체 특징은 너무나 독특해서, 조금이 라도 특징이 드러나면 대부분의 강호인들이 쉽게 알아볼 정도였던 것이다.
특히 선두에서 용두장을 쥐고 선 검은 옷의 여인과는 절대로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빙백심결로 단련된 빙검이 강호에 출도한 이래 이처럼 긴장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지금은 과연 그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함부로 이곳을 벗어날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종전에 홀로 앞으로 나선 여인은 언제 검들을 모두 훑어보았는지,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빤히 쳐다보는 여인 의 시선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은 맑고 지혜로 가득 차 있어서, 매우 두뇌 회전이 빠르고 명석한 인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젊은 외모와 다르게 어딘지 노 련한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빙검의 이목을 끈 것은, 한쪽으로 머리칼을 틀어 올려 길게 땋아 내린 그녀의 머리색이 검푸른빛을 띠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저쪽에 서 있는 세 명의 부인 중 은청색 머리칼의 여인보다는 못하지만, 그와 같은 빙한계 무공을 상승(上乘)의 경지까지 익혔다는 뜻이었다. 물론 아직 그 의 성취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빙검도 그녀의 섬섬옥수에 끼워져 있는 얼음 결정을 뿌려놓은 듯한 은빛 장갑을 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것은?!’
그녀는 손에 은사로 엮어 만든 듯한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손가락 마디가 드러나는 형태의 특이한 장갑이었다. 장갑 주위가 안개 낀 듯 뿌연 것이, 장갑과 접 촉한 수증기가 얼어붙어 생기는 현상임이 틀림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한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곧 저 한 쌍의 하얀 장갑이 극음의 성질을 지닌 기보 라는 뜻이었다.
‘빙륜갑(氷輪)!’
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빙한계 무공의 화후나 위력이 두 배나 높아진다는 기보 중의 기보, 빙륜갑이 틀림없었다.
빙한계 무공을 익힌 이들에게는 천고의 보물과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칼날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사양이고, 빙륜갑은 그것 자체가 극음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서 저 정도 기보라면 실력 차의 상당 부분을 메울 수 있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끼고 있기만 해도 손에 동상을 입고, 계속 버티다가는 얼어서 부서져 버리는 흉기이기도 했다. 한빙공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않으면 결코 낄 수 없는 주인을 심하게 가리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빙검은 빙륜갑에 꽂혔던 시선을 재빨리 거둬들여 못 본 척했다. 이 범상치 않은 여인이 그를 탐색하듯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빙검은 자신의 기운 을 감추는 은신기술의 일종인 ‘절식(切息)’으로 본연의 기세를 죽이고는 있었지만, 예리한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법이었다. 그 정도 되는 최절정고수가 어찌 어찌 힘들게 기세를 숨긴다 해도, 직접 대면했을 때의 분위기나 인상마저 숨긴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감각이 예민한 여인들 앞에서는. 그리고 평소 빙검은 자신을 숨기는 데 익숙한 사람도 아니었다.
빙검을 바라보고 있는 남빛 머리칼의 이 여인은 기실 신마팔선자 중 셋째인 갈효혜로, 신마가의 여제갈 혹은 십지선녀(智仙女)라 불릴 정도로 지모가 뛰어난 여 인이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지 않나요?”
갑자기 여인이 빙검을 향해 대뜸 질문해 왔다.
“없소.”
약간 허를 찔린 빙검이었으나, 이내 침착을 되찾고 차분하게 답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정말 없나요?”
반문하는 여인의 목소리에는 듣는 이를 미묘하게 압박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압박 정도에 꿈쩍할 빙검이 아니었다.
“정말이오.”
빙검은 태연하게 답하려고 노력했지만 여덟 여인 중 몇몇은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야 평소 그대로였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지나치게 차가운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고작 신흥 표국의 표두 한 명이 그녀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다. 그녀들로선 길거리에서 누군가에게 초월을 당하거나 무시당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백 년 동안 신마가를 지켜온 그녀들의 긍지에 도전하는 애송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
갈효혜 역시 눈빛이 잠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불쾌해하기보단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녀는 빙검이 긴장하자 언제 인상을 굳혔냐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런, 제 착각이었나 보군요. 사과드리겠어요.”
그녀의 신분을 생각하면 일개 표두에게 쓰기에는 지나치게 공손한 어조였다. 그래서 빙검뿐만 아니라 그녀의 자매들도 다소 의아함을 느끼는 듯했다. 다만 선두에 선 세 부인은 그저 그녀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첫 대면인데 무척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랬답니다. 같은 한빙지기를 익힌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그랬나 봐요.”
“아마 그랬던가 보오.”
그 순간 부드럽게 그를 주시하던 갈효혜의 눈동자 속에서 화사한 웃음이 번져 갔다.
“역시 그렇군요. 혹시나 했는데.”
갈효혜는 별거 아닌 일이라는 듯 싱긋 웃었다.
“……!”
갈효혜의 미소를 보자마자 빙검은 자신이 교묘한 심리적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처음 보는 생면부지의 관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한빙지기를 익혔다는 것을 긍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그가 한빙지기를 익히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일부러 도망칠 길을 만들어 그를 그쪽으로 유도한 것이다.
그러나 갈효혜는 살짝 웃기만 할 뿐, 방금 그녀가 확인한 사실에 대해 가타부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빙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혹시 저 검을 부러뜨린 게 누군지 짐작 가시는 데가 있나요?”
“없소. 소저도 아시다시피 우리 표행과 소저의 일행은 고개의 중턱에 오르기 전에 처음 만나지 않았소? 우리 표행도 방금 본 것이라 아무것도 모르오.”
그러자 갈효혜가 배시시 웃었다.
“확실히 귀표행과 저희는 저 아래에서부터 함께 올라왔으니 당연히 경황이 없으셨겠지요. 제가 또 괜한 질문을 했네요.”
“괜찮소.”
그는 다만 한시라도 빨리 이 불편한 자리를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갈효혜는 이상하게도 좀처럼 그를 놔주지 않고 있었다. 처음엔 장이하 쪽으로 시선을 준 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너무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사실 그녀는 표행의 인솔자이자 장(長)인 그가 언제 일개 표두와 그녀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이하는 그저 묵묵히 이야기가 끝나기 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그의 어디에도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그녀가 ‘일개 표두 하고만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듯이. 실제로 그는 빨리 가겠다고 재촉하기는커녕 자기소개조차 해오고 있지 않았다. 그 점이 무척이나 그녀를 흥미롭게 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깃발을 보니 요즘 강호에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중양표국의 표행인가 보죠?”
그녀는 강호의 정세나 최근의 세력 변화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박식한 듯했다.
“그렇소.”
“사천 본국(本)에서 오셨나요?”
“아니오. 호북 지국에서 왔소.”
그러자 갈효혜는 짐짓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놀랍군요. 그리고 부러워요.”
그 말에는 빙검도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놀랍고, 뭐가 부럽다는 것이오?”
“본국의 정예도 아닌 일개 지국에 이처럼 우수한 표사 분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니…… 어떻게 놀랍지 않겠어요?”
빙검은 그녀의 말에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당신 같은 절정의 고수도 표두로 머물 뿐이라니, 중양표국은 실로 대단하군요.”
“절정고수라니, 감당하기 어렵소이다. 필부는 그저 우연한 기회에 몇 가지 무공을 조금 익혔을 뿐이오. 나 같은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절정고수가 될 수 있겠소?” 그는 자신을 필부라고까지 칭해대며 말을 돌렸다.
설마 자신이 시전하고 있던 ‘절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단 말인가? 아니면 그저 떠보는 것일 뿐인 것인가? 이 여인의 속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었 다.
“나중에 귀가하고 나면 어머님들께 말씀드려야겠어요. 이 중양표국에 투자하자고요. 그 표국의 잠재력은 예측할 수 없으니 분명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요.”
“감히 감당하기 힘드오. 하지만 분명 후회하지는 않으실 거요.”
말로라도 표국에 투자를 한다는데, 표두 신분으로 분장한 그로서는 일단 홍보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죽립을 너무 푹 눌러쓰고 계셔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드네요. 이래서는 제가 나중에 투자를 상담하러 호북 지국에 찾아갔을 때 누굴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지 않겠어요?”
갈효혜는 마치 빙도의 초립 너머를 관통해 보기라도 할 듯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본인은 그저 일개 표두일 뿐이오. 그런 대사(大事)는 저기 계신 장 지국주님과 상의하는 게 올바른 수순인 것 같소이다, 소저.”
갈효혜는 말 위에 앉아 있는 장이하를 한 번 힐끔 본 다음 관심없다는 듯 다시 빙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상담을 드리고 싶은 건 당신이에요. 왜냐하면 전 당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고 그 표국에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갈효혜는 난감해하는 빙검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실례지만… 미래의 투자자를 위해 죽립을 잠시만 벗어주실 수 있을까요? 무척 잘생기신 분 같은데… 그래야 제가 나중에 투자를 하러 갈 때 어느 분을 찾아가야 할지 알지 않겠어요? 저희 집안의 투자금이 중양표국에 들어간다면 당신에게도 무척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자, 그럼 어서…….”
“이거 참…….?
빙검은 참으로 난처해졌다. 설마 이런 식으로 그를 압박해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여기서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낭떠러지뿐이었다.
“본인은…….”
막 빙검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이었다.
“도망쳐! 도망치시오!”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곳은 관도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샛길이었다. 그 샛길은 숲으로 통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부터 한 명의 사내가 뛰쳐나오더 니 미친 듯이 외치며 그들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다급한 사내였는데,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의 손에는 붉은 수실 세 개가 달린 검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아직 부러지기 전이었다.
그들을 향해 달려오던 사내는 비류연 일행을 보고 발을 구르며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다시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도망치라니까! 지금 당장!”
그러나 움직이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