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진 선택
-혼란스런 자유
비류연은 평소 제자 겸 사제 녀석들인 주작단 녀석들은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해 왔었다.
자신이 가르치고 계속해서 단련시켰다. 보다 단단한 명검을 만들기 위해, 보다 단단한 쇠로 만들기 위해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래서 상당히 강하게 키웠다는 자 부심이 있었다. 어떤 곳에 던져 놓더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강인한 생존력을 길러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는 그중 하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충분히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의 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절대’라는 것은 없었다. 첫 결원으로 끝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남 아 있는 녀석들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영영 사라질 수 있었다.
자신이 옆에서 지켜준다면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한 개였다. 그리고 그의 다리도 여전히 두 개뿐이었다. 물론 삼두육비 같은 것이 되면 그 것도 그것 나름 문제긴 하겠지만, 어쨌든 그가 모든 곳에 편재(遍在)해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나 그들의 보모 노릇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 해서도 안 된다. 이제 스스로 설 때가 아닌가.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고, 자신의 목표는 자신이 발견하고, 자기 스스로 단련하고, 자기 스스로 걸어가야 할 때 인 것이다. 그리고 ‘절대’라는 가정이 산산조각 난 이상, 위험한 길에 무조건 동행시킬 수도 없었다.
염도랑 빙검은 달랐다.
그들은 아직 어떤 경우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솔직히 그의 도움 따윈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체면이 있을 테니까. 게다가 그들에게는 이루어야 할 목 표가 있다. 또 다른 사부의ᅳ그들의 본래 사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본심으로 진짜 사부라고 인정하는 것은 이쪽만일 것이다ᅳ유지를 이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서 그들은 아직 멈춰 있을 수 없었다. 숨어 있을 수도 없었다. 강호를 돌면서 그들은 아직 더 많은 자기 단련을 거쳐야 했다.
주작단은 아직 멀었다. 이런 말을 하기엔 미안하지도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데 미안할 게 뭐 있겠는가. 주작단의 각자는 스스로를 한 사람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비류연이 보기에는 아직 다들 반숙(半熟)에 불과했다. 한 사람분이라고 하기도 반 사람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정말 애매한 그런 상태였다.
이번 일은 확실히 그들에게 있어 커다란 좌절이었다. 그들은 이제 그와 마찬가지로 당문혜의 죽음을 평생 그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했다.
그 무게에 짓눌려 좌절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일어설 것인가. 이제부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앞길에 대해 자신들이 선택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기에.
하지만 물론 그들에게 이런 시시콜콜한 속사정까지 다 얘기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이렇게만 말하기로 했다.
“너희들이 결정해라.”
잔뜩 풀이 죽어 있는 주작단 앞에 선 비류연이 대뜸 입을 열어 말했다.
“예? 저희들이요? 뭘요?”
당황한 주작단을 대표해서 남궁상이 반문했다.
“뭘 그리 놀라?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비류연의 반문에 남궁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요. 놀랄 일이죠. 충분히 놀랍습니다. 얼마나 놀랍냐면 내일 해가 서북쪽에서 떠오르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요. 저희들에게 뭔가를 결정하라고 하신 적이 거의 없으셨잖아요?”
그래서 ‘뭘요?’라고밖에 반문할 수 없었다. 나머지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해서 지금부터도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내 맘이다. 너희들이 결정해라. 난 너희들이 무슨 선택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정말로 아무 말씀 하시지 않을 겁니까? 화를 낸다거나, 잡아다가 족친다거나, 기둥에 묶어놓고 비도를 던진다거나, 절벽에서 민다거나…….”
“안해.”
비류연이 딱 잘라서 말했다.
“언제까지 내가 결정해 줄 수도 없는 일 아냐?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해야지. 그리고 그 책임도 자기가 지고.”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쩐지 오늘 따라 더 진지해 보였다. 진지한 대사형이라니, 어쩐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웅성웅성웅성.
주작단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대사형의 저 말 사실일까? 그냥 우리 속을 떠보려는 속임수 아냐?]
[진짜인지도 몰라. 자기 인생을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게 대사형의 평소 지론이었잖아? 물론 우리들은 계속 대사형한테 끌려 다니기만 했지만.]
[우리들이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지. 잘 못한다고 언제까지 대사형의 지시만 기다릴 수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결론은 의외로 쉽사리 나지 않았다. 점점 더 격론이 심화될 뿐이었다.
“뭘 그렇게 두려워해? 스스로 결정하라니까 갑자기 두렵냐?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자신이 책임져야 하니까 두려운 건 아니겠지?”
“그, 그건.
“궁상아, 넌 여전히 표정을 숨기는 데 서투르구나. 다 보인다, 보여.”
“아니, 그러니까…….”
남궁상은 당황했지만 제대로 된 변명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정곡이었던 것이다.
대사형과 만난 이후로는 거의 대사형의 의사에 따라 움직여 왔다.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신들은 대사형의 팔이나 다리와 마찬 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팔과 다리 각각에게 뇌를 만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 더 이상 중앙에서 지령은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부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라니, 어 쩐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간단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역량을 재봐. 그리고 자신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거지. 즉, 자신이 무림맹주 나백천을 구출하러 갈 것 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 그것만 결정하면 돼. 어때, 참 쉽지?”
마치 점심 식사를 뭐로 할지 생각해 보라는 듯한 느긋한 말투였다.
“그러니까 그게 어려운 거라니까요!”
남궁상이 기가 막혀하고 있는 주작단을 대표해서 항의했다.
“원래 마음이란 건 쉽다고 생각하면 쉬워지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거야. 요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지.”
“말은 쉽지만…….”
그러자 비류연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목숨을 내걸고 이 무림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할지, 아니면 안전을 택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모두 맡겨 버릴지. 무엇을 선택하든 너희 몫이야. 그러나 이것만은 확 실히 말해두겠다. 이번 길은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잘 숙지하고 결정하기 바란다. 이 길을 선택하면 편안함을 없을 거라 는 것을. 그 고난을 택하든 피하든 그 선택은 너희들의 몫이라는 것을.”
하지만 아직도 이들은 완전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설마 대사형이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런 것 하나는 잘했다.
“구출대에 낄지 안 낄지 결정하는 건 너희들이고 그 판단이 어떻든 불이익은 없을 거다. 단, 낄 녀석들은 배에 타라. 출발은 앞으로 세 시진 후. 그 이상 기다리진 않는다. 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녀석들은 여기 남아 부상자들을 돌봐라. 이 자리 없는 두 녀석한테는 내가 직접 말할 테니, 따로 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난 가마, 기 다리고 있겠다.”
그 말을 끝으로 비류연은 몸을 돌리며 미묘한 투덜거림을 덧붙였다.
“읏차, 이제 망가진 두 녀석만 남았군. 정말이지 대사형 노릇도 귀찮다니까.”
그 말을 끝으로 비류연은 사라졌다.
서로서로를 쳐다보는 주작단원들의 얼굴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는 듯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라는 비류연의 말을 벌써 잊어먹기라도 한 듯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그들이었다.
강요가 사라지자 그들은 오히려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강요받았을 때는 그렇게도 자유가 그리웠는데,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니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정천맹주의 구출은 그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 학생의 신분이었고, 그들의 본분은 공부였다. 하지만 공부만 해서 될 까? 공부도 세상이 먼저 안정되고 나서나 느긋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나부터 열까지 혼란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당삼의 두 눈은 허무로 향한 듯 텅 비어 있었다.
지금 당삼의 상태는 살아 있는 시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마음은 완전히 닫혀 있고,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이 상태로 관에 넣어 땅에 묻는 게 더 나을 성싶은 정도였다.
그날 이후 당삼은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딱 한마디만 했다. 어쩌다 입을 열 때마다 나오는 말은, 그 말 한마디뿐이었다.
―혜 저(姐)……. 혜 매……. 혜 저…….
그 이외에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을 한다고 할 만한 상태는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쪼그려 앉아 있는 당삼 위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얼씨구! 눈이 완전히 썩은 동태눈깔이구나.”
죽어 있던 당삼의 눈동자가 순간 살짝 흔들렸다.
당삼은 퀭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그림자의 주인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다.
“대사형….”
며칠 만에 처음으로 당삼의 입에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 대사형이시다!”
그의 앞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대사형 비류연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당삼은 이쯤에서 바로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뭔가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 해서. 하지만 지금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쯧.”
다시 쪼그려 앉아 초점을 흐려 버리는 당삼을 내려다보며 비류연은 혀를 찼다.
사실상 당삼의 현 상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에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원래 이해심 많고 아량 넓은 대사형이 아니던가. 지금은 따스한 대사 형의 마음으로 보듬어주고 북돋워주고 위로해 줄 때였다.
그래서 비류연은 말했다.
“재밌냐? 살아있는 시체 놀이 하고 있으니까?”
그 차가운 말에, 멍하던 당삼이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흠칫 몸을 굳혔다.
“대사형은…… 이해 못합니다, 지금 제 기분.”
당삼은 시선을 들어 비류연을 노려보았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원망스럽냐? 내가?”
당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주먹이 날아오지는 않았다.
분신이나 다름없던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실감. 쌍둥이란 그런 것이었다. 항상 티격태격했지만, 어딘가 깊은 곳에 그들은 하나에서 나왔다 는 의식이 있었다. 지금도 어딘가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무의식적인 자각, 그렇기에 더 반발하고 싸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싸움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절반이 사라졌기에.
당삼은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죽음을 불러온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구하려다 문혜가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자 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이 현실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망스러운 것도 당연하겠지. 풀이 죽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모두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니까. 아직 상처를 수습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 다 이해할 수 있 다. 네놈의 동료들도, 그리고… 나도. 그러나 딱 한 사람만은 예외야!”
잠시 말을 멈춘 비류연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네게 이렇게 해줬을,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지.”
철썩.
당삼의 얼굴이 오른쪽으로 홱 하고 돌아갔다. 순간, 당삼의 눈동자 속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시뻘겋게 변한 뺨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대며 당삼은 다시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대사형….”
다시 한 번 같은 말이 흘러나왔지만, 좀 전보다는 조금 더 인식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냐?”
비류연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방금 건 그 녀석 대신이다. 내 몫이 아니었어.”
“……?”
“네 녀석이 그런 형편없는 낯짝을 하고 있으면 열받을 사람이 한 명 있어서 말이야. 내가 대신 한 대 쳐준 거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비류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도 뺨이 화끈거리는 당삼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게 누구죠?”
얼떨떨한 당삼의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누구긴 누구냐? 당연히 네 누나인 당문혜지.”
그 이름에 당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위로와 격려를 받고 또 받아도 모자랄 자신에게 뺨을 후려쳤단 말인가? 그때, 한마디가 그 의 귓가를 강타했다.
“꽃은 어떡할 거냐?”
‘꽃’이라는 말에 다시 당삼의 몸이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벌써 잊었냐? 그 녀석과의 약속을?”
“하늘을 가득 채우는 꽃을, 만천화우의 비를. 사천의 색으로 물든 하늘을.”
그것이 당문혜의 마지막 유언. 그가 이어야 할 의지.
“아닙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삼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지만, 처음으로 힘이 실려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대사형이라면 잊으실 수 있겠습니까? 저 대신 심장을 꿰뚫린 혈육이 남긴 마지막 부탁을…….”
아직도 품 안에서 식어가는 문혜의 온기가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흘린 피의 뜨거움과 함께.
“그런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엉? 이런 곳에서 쪼그려 앉아 있으면 꽃은커녕 벌레만 꼬이겠다. 이름 바꿀래? 궁상은 이미 있으니까, 청승 어때? 당청승!”
“……”
그런 건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약속은 너만 한 게 아냐, 이 멍청한 녀석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당삼은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그런 당삼을 보며 비류연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문혜랑은 나도 약속했단 말이다, 네가 어떻게든 꽃을 피울 수 있게 해주기로. 그것도 하늘을 가득 덮는 꽃으로.”
그러고 보니,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그랬던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걱정 마라, 어떻게든 저 녀석에게 꽃을 피우게 해줄 테니.”
“나도 그 약속 때문에, 널 이대로 둘 수는 없어. 난 너무 성실한 탓에 약속은 꼭 지켜야 되는 성미라서 말이지.”
당삼은 살짝 오한이 들었다.
너를 지옥에 굴러 떨어뜨려서라도 만천화우(滿天花雨)의 꽃을 피우게 해주겠다. 비류연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잘 봐라. 딱 한 번만 보여줄 테니까.”
비류연이 오른손에 뭔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문혜가 부탁하지 않았으면 보여주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비류연의 손에 들린 것, 그것은 한 무더기의 바늘이었다. 별로 특별하게 생긴 바늘은 아니었다. 바느질할 때나 쓰는,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바늘들이었다. 장점이라면 저렴함 정도였다.
당삼은 멍한 얼굴로 바늘을 보면서 눈을 껌뻑였다. 만천화우 얘기를 꺼내더니 저건 또 뭐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바느질 연습부터 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너네 집은, 암기술을 장기로 삼는다고 하는데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리고 비경제적이지.”
뜬금없는 발언이었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당삼이 쓰는 암기 하나하나에는 사천당가의 정성이 배어 들어가 있으니까. 그 말은 곧 그 암기의 제조 단가가 비싸 다는 뜻이었다.
“물론 적당한 무게와 적절한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을수록 좋은 암기이긴 해. 하지만 그러려면 그만큼 공이 많이 들고 비싸지지.”
당삼은 비류연이 이렇게 나름대로 암기에 대한 식견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그걸 말로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도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대사형의 방식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는 이론 설명으로 시작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무작정 무언가를 시켰을 뿐이다. 그 무언가에 무언가를 깨닫든 말 든 그건 그들의 몫이었다. 그 ‘무작정’을 통해 무심결에 강해지도록 만드는 게 바로 비류연의 방식이라면 방식이었다.
그런 대사형이 설명이라니…….
그러나 역시 비류연은 비류연이었다.
“알아듣겠어? 비싸진다고! 게다가 암기는 회수율도 좋지 않지. 소모성 무기란 말이야. 무공을 쓸 때마다 생돈을 뿌리는 거나 다름없어! 엄청 아깝다는 생각 들지 않냐, 당삼아?”
“그, 글쎄요…….”
당삼이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당문의 팔대금용암기쯤 되면 한번 써보기도 두려울 만큼 고가겠지.”
“확실히…… 비싸죠.”
팔대금용암기는 하나를 제작하는 데도 품이 많이 들어가고, 원재료 자체도 비쌌다.
“그래서 난 이런 생각에 도달했지. 당문의 암기는 비싸지면 비싸질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어째 상당히 찜찜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당삼은 그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럼 암기가 하늘을 가득 덮은 꽃비 같다는 만천화우를 한 번 펼치려면 얼마만큼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가겠지. 만천화우를 가장 익히기 어렵게 만든 것도 이해가 가. 너도 나도 만천화우를 펼치면 아무리 사천당가라도 금방 파산해 버릴 테니까 말이야.”
당삼은 대사형이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도. 당문에 돌아가면 얼른 단가절감 건의라도 하라는 것인가.
“그래서 난 결론을 내렸지. 만천화우를 펼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말이야.”
비류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바늘을 들고 있지 않은 주먹이었다.
“그건 말이야, 억수로 돈을 많이 버는 거야! 부자가 되는 거지!”
“……”
“…”
“그게 말이나 됩니까아아아아!”
당삼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씨익씨익씨익.
숨을 몰아쉴 정도로 흥분한 모양이었다.
“그래, 말이 안 되지. 이제 좀 살아 있는 것 같구나.”
비류연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제야 당삼은 자신이 당문혜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감정을 격렬하게 표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일부러??
하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사형에게 그런 세심함이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어쨌든, 너네 집 암기술은 한 번씩 펼칠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야. 돈만으로 무공을 펼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용을 무시할 수는 없어.” 비류연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비용 걱정을 하려면 먼저 그걸 익혀놔야겠지. 안 그러냐?”
“그, 그렇죠.”
“당삼이 너도 알다시피 만천화우는 연습할 때도 돈이 많이 들지. 하지만 그럴 때 이걸 사용하면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걸?”
“그래서 바늘을…….?”
왜 저 바늘뭉치를 내밀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좀 갔다.
“만천화우란 건 사천당문 독문의 무공이라기보단 사실 암기술의 최고 경지를 가리키는 말 아니겠어? 당문의 색으로 물든 만천화우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 본을 익히지 않고서 그걸 펼치기엔 불가능하겠지. 그러니까 잘 봐, 여러 번 보여주진 않을 거니까.”
비류연은 들고 있던 한 움큼의 바늘을 오 장 밖에 떨어진 나무를 향해 던졌다.
파바바바바박!
장마철 빗줄기처럼 날아간 바늘들이 나무에 가서 박혔다. 그러나 모두 나무에 가서 꽂힌 건 아니고 몇몇은 옆으로 비켜나서 박혔다. 그리고 비류연의 손에는 바늘 두 개가 남았다.
“…….!”
확실히 한꺼번에 백 개에 가까운 바늘을 던져 오장 밖의 목표를 맞힌다는 것은 상당한 실력이었다. 빗나간 몇몇도 함께 나무에 꽂혔으면 당삼은 경악했을지도 몰 랐다.
“가서 확인해 봐라.”
굳이 확인할 것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당삼은 걸어갔다.
“이건……!”
나무에 도착한 당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늘은 나무에 가서 박혀 있었지만, 목표는 나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비류연이 던진 바늘 끝에는 모두 개미가 한 마리씩 박혀 있었으니까. 빗나가서 땅에 박혔다고 생각한 몇 개의 바늘에도 모두 개미가 박혀 있었다. 그 개미들은 자신의 몸에 거대한 기둥이 박힌 줄도 모른 채 앞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젓고 있었다. 그 수는 모두 아흔여덟 마리. 바늘 두 개를 남긴 것은 개미가 백 마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 장 밖에 떨어진 곳에서 기어다니는 개미를 모두 맞히다니, 놀라운 기 예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본 가인 사천당문에서도 이 정도로 신기에 가까운 암기술을 가진 자는 가주를 제외하면 셋이 넘지 않았다.
바늘을 뽑아오라는 말에 당삼은 개미 위에 꽂혀 있던 작은 바늘들을 모두 수거해야만 했다. 그다지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지 않음에도 끝이 뭉툭해진 바늘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양손에 바늘을 수북이 쌓아 돌아온 당삼에게 비류연이 말했다.
“잘 봤어?”
당삼이 아직도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지금 그의 얼굴이 멍한 것은 방금 전 비류연이 보여준 환상적인 기예 탓이었다.
“이게 기본이야.”
비류연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기본…….”
“만천화우로 들어가는 첫 단계라 할 수 있지.”
“이것이 첫 단계…….”
그렇다면 진짜 만천화우의 위력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정확하게 보는 눈, 그리고 그것을 꿰뚫는 실력.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못하면 만천화우라는 작품은 완성되지 않아. 그러니까 잘 익혀둬,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어디…… 가십니까?”
“그래, 장인어른 될 분이 위급하다니 구해주러 가야지. 너는 이번 구출대에 안 껴도 되니까 내가 다녀올 때까지 여기서 수련이나 하고 있어라.”
“구출대……. 대사형, 저도…… 저도 데려가 주세요.”
막 자리를 떠나려던 비류연은 당삼의 말에 피식 웃었다.
“왜? 그 어설픈 상태로 따라가서 죽으려고? 당(唐) 자가 적힌 비석은 하나로 충분해.”
“그, 그런 게 아닙니다!”
항변하는 당삼에게 비류연은 혀를 차며 말했다.
“지금 네 꼴을 돌아봐라. 거울이나 한번 보고 떼를 써야지. 자기 자신 하나 추스르지도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남과 싸울 수 있겠냐? 그러니 지금은 여기서 하늘 가 득 꽃을 피우는 것, 그것만 궁리하도록 해. 그게 문혜의 희생에 네가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거다.”
당삼은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꽃을 피울 준비가 되기 전까진 넌 대기다. 어디에도 끼지 마라. 다음에 봤을 때는 씨 정도는 심어놓도록 갈고닦아. 그래야 싹이라도 나지 않겠냐?”
그 말을 남기고 비류연은 자리를 떠났다, 한 손을 흔들며.
당삼은 비류연이 넘겨준 바늘 뭉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멀어져 가는 대사형의 등을 향해 조용히 허리를 숙이며 배례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넓게 펼쳐져 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혜 저, 지켜봐 줘! 언제가 반드시 저 푸른 하늘을 사천의 꽃으로 가득 메워 그 앞에 바칠 테니까!”
죽어 있던 그의 눈동자에 다시 조금씩 생명의 불꽃이 번뜩이고 있었다.
당삼 다음에도 처리해야 될 녀석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바로 이번 싸움으로 한 팔을 잃은 노학이었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싫은지, 아니면 한 팔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외딴 곳에 홀로 앉아 출렁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쫓기는 몸이라 멀리 움직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비류연은 금세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좀 어떠냐?”
물끄러미 호수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노학을 향해 비류연이 말을 걸었다.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니 가볍고 좋습니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퉁명스런 어조로 노학이 대답했다.
퍽!
“으약!”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노학이 왼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때리세요, 전 환자라고요!”
꿀밤을 맞은 머리를 왼손으로 비비며 노학이 항변했다.
“너, 방금 ‘설마 환자를 때리겠어?”라고 생각했지?”
비류연의 날카로운 질문에 노학이 뜨끔했다. 독심술에 당하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때렸다, 방심하지 말라고.”
“아이씨, 전 환자라니까요…….”
“그게 뭐 어때서? 내가 그럼 네 녀석 기저귀라도 갈아줘야겠냐? 미음이라도 한 사발 갖다줄까? 팔 하나 떨어져 나간 걸로 호들갑 떨지 마라.”
한심하다는 투로 비류연이 말했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시는 거 아닙니다!”
노학이 발끈하며 항의했다.
팔도 하나 잃었겠다, 재기(再起)도 거의 불능(不能)이겠다, 자포자기 상태인 노학에게 지금 무서운 것은 거의 없었다.
비류연은 또다시 꿀밤을 먹이려는 듯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노학은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몸을 웅크렸다.
비류연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멍청한 놈! 잊었냐? 네 녀석의 두 팔 중 한 팔을 떼어간 녀석도 외팔이라는걸?”
“…...!”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자의 팔은 왼팔 하나뿐, 철갑마수는 의수에 불과했다.
“그놈은 할 수 있었는데 네 녀석은 못하겠다고 말하려는 거냐, 지금?”
아무리 천고의 마병이라 불리는 의수를 달고 있다지만, 그 정도 무공을 구사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는 말할 수 없지만. 어쩌란 말입니까, 대사형? 우쒸! 의지만 있으면 없어진 팔이 다시 돋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그놈에게는 팔을 대신해 줄 그 ‘마수 (魔手)’라도 있었죠. 저에게 그런 호사스런 의수 따윈 없다구요!”
“너 지금 개기냐?”
비류연의 싸늘한 반문에 노학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한번 폭발된 감정은 쉽사리 수습되지 않는지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대사형도 알다시피 개방의 무공은 장법과 봉법 위주라고요. 물론 타구봉법은 양손을 동시에 써야 하진 않지만, 장법의 경우 외팔이란 건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라 는 거 잘 아시잖습니까?”
“몰라.”
“이십여 년 동안 사용해 오던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전 오른손잡이였고요! 이대로는 더 이상 무공 수련이 불가능한 몸이라는 판정을 받고 천무학관에서도 제명당 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여기서 포기할 거냐?”
상냥한 위로 대신 차가운 반문이 돌아왔다.
노학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누군들 포기하고 싶어서 하는 건 줄 아십니까? 어떻게 온 길인데.. 하지만 전 이제 오른팔이 없다고요. 영원히! 침상에서 일어나서 이렇게 앉아 있는 것조차 기적인 몸이란 말입니다! 정말 거지 같아서! 아니, 이제 거지에다가 덤으로 병신까지 되어버렸네요, 하하하!”
노학이 힘없이 웃었다.
“그렇게 자기 비하하면 재미있냐? 요즘 새로 나온 놀이인가 보지?”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방법이!”
그가 구걸 이외에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장기인 무공이 거의 폐지되다시피 한 것이다. 그의 자존심을 뒷받침해 주던 유일한 힘, 무공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신이 먼 지보다 하찮게 느껴지는 걸 스스로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거 되게 성급하네. 네 녀석은 아직도 그 성급한 성격 못 고쳤냐? 왜 그렇게 포기마저 성급해? 만일 길이 있으면 어쩔 건데?”
“네? 뭐…… 뭐가 있다고요?”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노학은 비류연의 말에 흠칫 놀랐다.
“길이 있다면 어쩔 거냐고 물었다, 왜. 물론 길이 있다 해도 순탄할 거란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야겠지만. 뭐, 보아하니 네놈은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게 더 편한가 본데, 싫음 관둬야지.”
혀를 차는 비류연을 쳐다보는 노학의 얼굴에는 약간 얼이 빠져 있었다.
“이, 있긴 있는 겁니까? 길이?”
“아냐, 몰라도 돼. 환자한테 싫은 일 억지로 시킬 순 없지. 난 그냥 갈란다.”
“싫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아, 가긴 어딜 가세요!”
노학은 남은 손목마저 부러져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세차게 손사래를 치더니, 돌아서던 비류연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
“어서요, 어서! 이리 와서 말씀해 보세요, 대사형! 빨리빨리! 아, 저 현기증 난단 말입니다!”
현기증 난다는 환자치고는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방금 전까진 세상의 절망은 다 지고 있는 듯 힘 빠진 눈빛을 하고 있더니, 이젠 말 한마디 에 몸이 달아 절박한 표정으로 눈까지 부릅뜬다. 정말이지 감정의 변화도 성급한 녀석이었다. 옷자락을 탁 뿌리친 비류연은 못 이기는 척 팔짱을 끼고 섰다.
“그러고 보니 개방의 방주는 다른 말로 용두(龍頭) 방주라고 부른다며?”
“네, 그렇죠. 항상 그래 왔죠.”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건 안 가르쳐 주고 갑자기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는 건가, 노학은 의구심과 답답함과 초조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물론 비류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용의 머리라는 건, 몸통도 있고 꼬리도 있다는 말이네?”
“그뿐이겠습니까. 입도 있고 눈도 있고, 뿔도 있고 수염도 있지요.”
용목(龍目)은 정보 수집, 용구(龍口)는 소문 퍼뜨리기와 여론 조작, 용각(龍角)은 호법, 그리고 용염(龍髥)은 원로, 용조(龍爪)는 정예 공격 부대 등으로 나뉘어 있 었다. 그 모두를 통솔하는 것이 바로 용두(龍頭), 즉 개방의 방주인 것이다.
“그 말은, 즉 개방 전체가 커다란 한 마리의 용이라는 것이네?”
“그렇죠. 본디 용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조직체계니까요.”
왜 뜬금없는 얘기만 하느냐는 듯 입맛을 다시며 노학이 대답했다.
사실 이런 건 그다지 비밀스런 내용도 아니고, 이미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라 무림에 대해 빠삭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얘기였다.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긴 하지 만.
그런데 왜 팔이 날아간 자신을 붙잡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그럼 역린(逆鱗)도 있겠네? 용이니까?”
“그야 물론 있……!”
노학이 고개를 홱 들어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진 채였다. 그 눈동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 노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했다. 겉으로 드러난 개방의 조직도에는 들어 있지 않은, 개방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역린’이었다. 그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은 개방 내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비류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떤 오래오래 살아온 할아버지한테 물어봤지. 그랬더니 그런 게 있다더라고. 그 뭐라더라?”
비류연이 한참 생각하는 척하더니 말했다.
“아, 맞다. 역린좌(逆鱗座)!”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노학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혹여 누가 듣게 되지는 않을까 확인하는 눈치였다.
“그 할아버지가 그러던데? 개방을 다스리는 자는 용두방주이지만, 진짜로 무서워해야 하는 건 역린좌라고. 그 역린이야말로 개방의 분노를 증명하는 자라고.”
역린이란 원래 용에게 있어 건드려서는 안 될 거꾸로 선 비늘을 뜻한다. 그 비늘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용의 분노를 산다고 전설은 전한다. 그리고 개방이라는 거 대한 용도 그 역린을 가지고 있었다.
“그 표정 보니까 들어봤구나?”
“네, 들어봤습니다.”
대사형에게 이리 굴림당하고 저리 굴림당하는 노학이었지만, 이래 봬도 그는 차세대 개방방주 후보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게 그러니까 이름이 뭐랬더라? 그 검법 말이야?”
“역린검(逆鱗劍)입니다.”
알면서 묻는다는 의혹을 지우지 못한 채 노학이 대답했다.
“아, 맞다! 역린검! 그게 개방 유일무이의 검법이라며?”
거지란 원래 가장 천한 위치에 자리한 자들이다. 그들은 남들에게 구박받는 것이 일상이고, 당하는 게 당연했다. 누구든 거지는 거지라는 그 이유만으로 무시한다.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의 거대한 조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빌어먹는 걸인들의 동업 조합[幇].
개방.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지에 대한 핍박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가장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어디서 칼을 맞고 와도 신경 써주는 이 하나 없는 경우가 많 다.
그래도 그들은 참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지니까. 빌어먹는 자들이니까.
참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니까. 남의 정(情)에, 은(恩)에 기대어 사는 자들이니까. 아무리 그것이 값싼 동정이라 해도 그것은 그들에게 양식이 된다면 감사히 받는 게 바로 거지였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참을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릴 때, 그들의 생존이 위협당할 때, 그들은 분노한다.
그 분노를 대행하는 것이 바로 ‘역린좌’였다. 그는 개방의 유일무이한 ‘보검(寶劍)’을 맡고 있는 자였다.
“거지들이 괜히 맨손이나 대나무 죽봉을 무기로 쓰는 줄 아는가?”
“그거야 아니겠죠. 싸니깐 그걸 쓰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그쪽이 특히 발달한 건 그들에게 무기 살 돈조차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들은 비싼 쇠붙이 대신 육장과 죽봉을 무기로 써왔지. 그게 싸게 먹히니까. 대신 그들은 딱 한 자루의 ‘보검’만 가지기로 했지. 십시일반 강호의 전 거지들이 구걸해 모은 돈으로 제련한 한 자루의 보검. 그걸 한 사람에게 맡기기로 한 거야. 그들 대신 분노해 줄 사람, 모두가 모멸을 견딜 때 그들을 위해 대신 분노해 줄 사람에게.”
때문에 개방의 거지는 언제나, 함부로 분노하지 않는다. 어떤 모멸을 받아도 참아낸다. 그들은 거지이기에, 그리고 대신 그들을 위해 화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최하층민 중에서도 쓸모없는 이들이 득실득실 모인 것이 바로 거지들이다 보니 개방에는 고아도 많고 불구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역린검은 한 손으로도 익힐 수 있는 편수검(片手劍)’이었다. 그것도 좌수검이었다.
왜냐하면 ‘초대 역린’이 오른팔이 잘린 다음 억울함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몸을 불사르는 고려 끝에 완성한 것이 바로 ‘역린검법’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노학은 자신의 정수리 위로 벼락이 떨어져 내린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전율했다.
아직 모든 희망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 그렇게 캄캄해 보이던 미래에 한줄기 뇌광이 번뜩였던 것이다.
“노학아, 너, 용의 역린이 될 수 있겠냐?”
“…..”
“분노하는 개방을 위해 나설 수 있겠냐?”
“…..”
“사문의 분노를 상징하는 그 용을 깨울 수 있겠냐?”
“그건…..
비류연은 그 대답을 듣지 않았다. 대신 짧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되어라, 이건 명령이다.”
그리고 짧게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라면 용의 역린, ‘역린검’을 그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아직 남아 있는 그 한 손에!”
“대사형…….”
노학이 울먹거리는 눈으로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뭐냐, 그 눈은? 징그럽게.”
비류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사람에게는 팔이 원래 두 개야. 아직 네 녀석에게는 나머지 한 팔이 남아 있잖아? 그거면 충분해.”
그래, 이 남은 한 팔로 충분히 본때는 보여줄 수 있었다.
“그 자식에게 한 방 먹여주는데는 나머지 한 팔로도 충분하잖아? 네 생각도 그렇지? 마음까지 불구가 된 건 아닐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다시 일어나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지 중 하나가 못쓰게 되면 어떠냐? 네 마음만 불구가 아니라면 너는 아직 더 강해질 수 있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노학은 눈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꼭 이 손에 역린검을 쥐고, 더 강해져서 대사형과 친구들 곁으로 돌아오겠다고, 그는 굳게 결심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지와 희망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
그로부터 세 시진이 흘렀다.
시간이 되자 비류연은 배가 기다리는 장소로 걸어갔다.
배는 강호란도 동북 방향의 호숫가에 정박되어 있었다. 송곳처럼 뭍을 안쪽으로 파고들어 간 절벽 밑이라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그들이 마천각에서 탈출할 때 타고 온 배는 이미 동정호 밑에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장홍이 은밀히 암중의 영향력을 발휘해 어렵사리 구해온 배였다. 배를 움직일 이들도 입이 무거운 자들로 장홍이 이미 구성해 놓은 참이었다. 그들은 비류연 일행을 원하는 장소로 데려다 주리라.
배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류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웅을 나온 당삼과 노학까지 포함해, 걸을 수 있는 주작단원들 중 불참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비류연이 배를 향해 다가오자 주작단원들이 모두들 그를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뭐냐, 그 웃음은? 징그럽다, 이 녀석들아.”
비류연이 마주 웃으며 쏘아붙였다.
“주작단 총 열여섯 명, 단주 남궁상 포함 열세 명, 부상 둘, 열외 하나. 모두 모였습니다.”
남궁상이 대표로 보고했다.
“열여섯…… 이냐?”
“네, 열여섯입니다! 저희 주작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열여섯 명이니까요!”
남궁상이 힘주어 대답했다.
부상 둘은 현운과 남궁산산이었고, ‘열외 하나’는 물론 당문혜였다. 당문혜가 여전히 주작단의 일원이며,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많이도 왔네. 이러다 배 가라앉겠다.”
비류연의 너스레에 모두들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다들 웃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웃기는……. 주작단에선 궁상이와 진령이, 그리고 금영호, 이렇게 셋만 남고 나머지는 돌아가라.”
순간 주작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니, 왜요? 결정하라지 않았습니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대사형?”
정색을 하며 반문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비류연은 팔짱을 꼈다.
“위험하기 때문이지.”
“언제부터 대사형이 그런 거에 신경 썼다고 그러십니까?”
다들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비류연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부터다, 왜? 불만있냐?”
당연히 불만은 있었지만, 비류연이 한쪽 손으로 다른 쪽 손목을 주무르는 것을 보면서까지 그 불만을 입 밖으로 터뜨리는 이는 없었다.
“지금의 너희들은 발목을 잡을 뿐이야, 문혜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이면 충분해. 한 번 이상은 사양이다. 난 다시는 너희들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대사형……..”
주작단의 얼굴에 감동의 해일이 몰아쳤다. 비류연은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없으면 누가 나중에 내 노후를 책임져 주겠냐?”
―그럼 그렇지!
고조되던 감동은 그대로 급전직하하여 싸늘하게 식고 말았다. 아울러 불만도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증폭되었다.
“궁상단주랑 진령은 몰라도, 금영호는 왜 남는 거죠? 저희들 중에 특출나게 실력이 좋지도 않은데? 그건 역시…… 돈이 많기 때문입니까?” 일리있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비류연의 답은 조금 달랐다.
“비상금도 나쁘진 않지만, 진짜 이유는 이 녀석 가문이 그쪽 지역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지. 혹시 모르잖아? 쓸 데가 있을지?”
자신을 휴대용 지갑처럼 말하는 비류연의 말에 금영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참, 돌아간다고 해서 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마라. 남아 있는 녀석들에게도 할 일이 있으니까. 여기서 구출대로 전력을 빼게 되면 이곳은 누가 지키겠냐? 부 상당한 너희 친구들은 누가 지킬 건데?”
“그건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는 주작단원들의 말을 비류연이 잘랐다.
“기다려라, 친구들을 지키며, 그리고 수련, 게을리하지 마라. 더 강해져라.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알겠냐?”
“네, 대사형.”
“그럼 해산. 며칠 후에 다시 만나자.”
주작단은 남궁상을 비롯한 세 사람만 남기고 모두 돌아갔다. 주작단은 아니지만 류은경은 끝까지 남았다. 남궁상의 곁을 떠날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물 론 진령은 화를 냈고, 궁상이는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변함없는 모습이 어딘지 비류연을 안심시켰다.
주작단원들이 돌아가는 동안 배에는 어느새 여러 사람들이 올라 있었다.
모용휘와 장홍, 용천명과 마하령, 삼절검 청흔과 형산일기 백무영, 그리고 염도와 빙검이 그들이었다. 류은경이 추가된 것처럼 공손절휘도 꼭 모용 형이랑 같이 가 야겠다면서 박박 우기며 달라붙어서 어쩔 수 없이 배 위에 태운 채였다.
아쉽지만 아미신녀 진소령과 점창제일검 유은성은 빙월선자 예청을 맹까지 호위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이번 구출대에서는 빠지게 되었다. 함께 구출대에 참가 하고자 했던 청설옥검녀 관설지는 아버지 빙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비류연은 배에 마지막으로 합류하기 전에, 아까부터 묵묵히 그들을 전송하고 있던 효룡을 바라보았다.
효룡은 등 뒤에 검 대신 두 자루의 도를 매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엔 흰 띠를 두르고 하얀 상복을 입은 채였다. 누군가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물론 그는 슬 피 울며 한없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갈씨 가문의 사람이 취해야 할 마땅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선 슬픔의 눈물 대신 매서운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피에는 피를, 그것이야말로 갈씨 가문의 철혈의 규칙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효룡은 곧, 며 칠 내로 이들을 따라나설 터였다. 그에게는 직접 그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기에, 결코 빠질 수는 없었다.
“곧 쫓아가겠네. 먼저 가 있게.”
“괜찮겠어, 룡룡?”
효룡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남아 있는 것이니까. 곧 뒤따라가겠네.”
“혼란스럽다면 쫓아오지 않아도 돼.”
지금 효룡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비류연이 말했다.
효룡은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꼭 가겠네. 난 꼭 가지 않으면 안 되네.”
비류연은 효룡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효룡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탐색이라도 하듯이.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기다리겠어.”
“그래, 기다리게.”
효룡은 비류연이 배에 올라타고 배가 떠날 준비를 할 때까지도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류연의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상이 갑자기 아차 하는 얼굴로 외쳤다.
“엇, 나 소저! 나 소저가 보이지 않는데요, 대사형?”
이런 실수가 어디 있냐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비류연이 흘리듯 말했다.
“소란 떨긴. 그녀는 오지 않는다.”
“예? 아니, 왜요?”
“오늘 출발한다고 알리지 않았거든.”
그리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남궁상은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비류연은 서서히 멀어져 가는 뭍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예린.”
바로 그때였다.
“상, 이상한 게 보여요. 저게 뭐죠?”
남궁상에게 다가온 진령이 절벽 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음? 꼭 사람 그림자 같은데…….”
섬의 절벽 위에 한 사람이 역광 속에서 서 있었다. 인영의 형태로 봐서 여인이었다.
“저건…….”
길게 자란 앞머리 뒤에서 비류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뛰어내렸다!”
남궁상이 외쳤다.
“투신자살이다!”
금영호가 외쳤다.
빡!
그의 뒤통수에 꿀밤이 작렬했다.
“틀려! 이 멍청아!”
비류연의 말대로 투신자살은 아니었다.
눈처럼 새하얀 백의를 입은 여인은 한 마리 새처럼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배와 절벽 사이의 거리는 이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에 빠진다!”
금영호가 기겁하며 외쳤다.
“안 빠져!”
빡!
다시 한 번 금영호의 뒤통수에 꿀밤이 작렬했다.
하얀 여인의 인영은 아래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섬 주위를 날던 물새들의 머리를 발끝으로 가볍게 톡 찍으며 다시 위로 떠올랐다.
“멋진 비공답조(飛空踏鳥)구나!”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여인은 새들의 머리를 징검다리 삼아 밟더니 깃털처럼 가볍게 배의 갑판 위에 내려앉았다. 봉황처럼 우아하고 기품있는 자태에 사람들의 얼굴엔 경탄이 저절로 떠 올랐다.
“예린!”
내려선 여인을 향해 비류연이 외쳤다. 절벽에서 십여 장을 가로질러 배에 내려앉은 사람은 놀랍게도 다름 아닌 나예린이었다. 실로 빙백봉이라는 별호에 걸맞은 우아한 경공술이었다.
사람들은 이 갑작스런 상황에 입을 쩍 벌리고 나예린을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배 시간에 늦을 뻔했군요. 이 배에 제가 탈 자리 정도는 남아 있겠죠, 류연?”
나예린이 비류연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에는 어느 정도 책망의 빛이 담겨 있었다. 자신을 두고 아무 말도 없이 떠나려 했던 것에 대한.
또한 그녀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설마 내리라고는 하지 않겠죠??
그녀는 모든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상황을 다 고려해 보고 고심 끝에 결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허를 찔렸는지 처음엔 말을 잇지 못했던 비류연이 이내 졌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내 옆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는걸요. 왜냐하면 거긴 항상 예린의 자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