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21화
광부는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염왕채 사내에게 걸려들어 노름을 하기 전까지는 오직 땅밖에 모르던 농사꾼이었다.
아내와 자식이 질질 끌려가던 날 피눈물을 흘렸다.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미워졌고,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 자신에게 싸움꾼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안 건 한참 뒤의 일이다. 하더니 되더라. 싸우니까 이기더라. 물러서지 않고 악착같이 덤벼드니 살아남더라.
광부의 싸움 성향은 정해졌다. 두 번 맞더라도 한 번 때릴 각오로 덤빈다. 얼굴이 묵사발되고 오장육부가 끊어질 정도로 아파도 독기를 품고 덤벼든다. 한 가지는 분명히 알려준다. 이기려면 죽여야 한다는 것, 죽이지 않고는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아내와 자식의 생사조차 모르는 아비가 살아서 무엇하랴. 비웃는 자, 멸시하는 자… 모두 죽도록 흠씬 두들겨 팼다. 싸움 기술은 점점 늘었다.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흠뻑 빠져들었다. 그럴수록 그의 싸움은 치열해졌다. 사람을 병신으로도 만들어보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사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사람을 죽이니 병기를 찾게 되고, 검이나 도를 들었다가 종내에는 더욱 잔인한 도끼를 잡았다. 부법도 배웠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 싸움을 아주 잘한다고? 돌아가라, 우린 싸움꾼은 필요 없다.”
“거둬주십시오. 세상은 돌아다녀야 합니다. 아내와 자식을 찾아야 합니다.”
“우린 짐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싸움꾼은 도적이지. 도적에게 짐을 맡길 수야 없지.”
“거둬주신다면 싸움을 하지 않겠습니다.”
“결정적으로 네 싸움 실력 정도로는 아무 도움이 안 돼. 네 딴에는 표사가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넌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명도 당할 수 없다.”
“모두 이길 수 있습니다.”
“모자라는 놈이군.”
“주워들은 말인데 문답무용이라는 말이 있답디다. 붙여주십시오.”
“하하하! 몸 성할 때 돌아가.”
광부는 체격이 다부져 보이는 표사를 지목했다.
“저자와 붙어보겠습니다.”
광부는 똑똑히 보았다, 모두의 얼굴에 조소가 스쳐 가는 것을. 그가 지목한 표사는 전기라는 자였다. 정통으로 무공을 배웠고 표국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강한 무공 고수다. 광부가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다. 황가표국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우연이었다. 표사가 되면 세상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제일 먼저 눈에 띄어 들어왔을 뿐이다. 그가 강해 보였고, 그래서 지목했다.
전기를 상대로 광부는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부었다. 비호처럼 날랜 몸, 누구든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던 도끼. 하지만 전기는 달랐다. 여태껏 통용되던 그의 도끼질이 허공만 난자했다. 지금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어야 옳은 전기가 싱겁기 이를 데 없다는 듯 실실 웃음을 흘린다. 광부는 한 시진 동안 몰아세웠지만 날 듯하면서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전기의 몸뚱이를 잡지 못했다.
광부는 그제야 알았다. 전기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그가 작심했으면 자신은 벌써 큰대자로 뻗어버렸다는 것을.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도끼를 거두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광부는 도끼를 거뒀다. 그리곤 뒤도 안 돌아보고 표국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하하! 그놈 참… 막무가내 싸움이지만 볼 만하군. 꼭 미친놈처럼 날뛰었어. 미친 도끼, 광부… 좋아, 광부. 하하하! 돌아와라, 거둬주겠다. 조금만 다듬으면 아주 좋은 재목이 되겠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목숨을 생각지 않는 사람이지.”
무엇이 황가표국 국주 황완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광부는 황가표국 표사가 되었고 이 년 동안 부법을 전수받았다. 국주 황완에게.
황완의 안목은 정확했다. 이 년이 지난 후 광부는 황가표국 제일 고수가 되었다. 무공을 전수한 국주 황완조차도 광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무공을 배운 후 그는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광부는 무공을 막무가내로 배운 자신의 싸움 기술을 발전시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무인의 정신이라든가 협의 정신 같은 것은 개나 물어갈 일이다. 그의 무공을 익혔지만 자신을 무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자신은 개망나니 싸움꾼이지 무인이 아니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광부의 싸움 경향은 변하지 않았다. 황완에게 전수받은 부법은 그의 미친 도끼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 주었다. 그는 여전히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들었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의 공격은 늘 공포스러웠다.
표사로 전전할 때는 그런 성향 때문에 손도끼 두 자루를 들고 날뛰는 모습이 양 떼 무리 속에 뛰어든 호랑이와 같다고 해서 양중호라고도 불렸다. 싸움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던 싸움 경향. 기다리고 기다리다, 완벽한 기회가 생길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가능하다’도 아니고 ‘십 할 승산 있다’도 아니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서 일격을 가하는 이런 공격은 그와는 맞지 않다.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느끼면 마음부터 흥분하는 것이 문제다. 몸이 들뜨고 손이 근질거린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통쾌하게 싸우고 싶어진다. 광부는 참았다. 끈기 있게 기다렸다.
‘이것도 재미있는데.’
하루 종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그 또한 재미있다. 재미는 밖에서만 찾는 게 아니라 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개미가 지나갈 때까지만 참자. 개미가 지나갔네. 참을 수 없나? 조금 더 참아보자. 해가 중천에 떠 있으니 조금 기울어질 무렵까지만. 해가 기울어졌구나. 그만 참을까? 아냐,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참아야지. 오줌이 마렵구나. 그만 참을까? 목숨하고 맞바꿀 정도로 참을 수 없나? 조금만 더 참아보자…
마음속 자신과의 극기 싸움은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있다. 상당히 재미있다.
하지만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 때 최상의 공격을 펼칠 수 있도록 몸 상태를 가꿔놓아야 한다. 정작 기회가 왔는데 참는 데 주력하느라 손발이 마비되어 움직임에 지장을 준다면 끝장이다. 참은 보람이 무엇인가.
진기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진기를 끊임없이 유통시켜 혈맥이 막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시야가 넓으면 집중력이 약화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줄 알아야 한다. 많은 것을 들으면 사심이 생긴다. 듣고자 하는 것만 들어라.
눈은 반개하고 목표에 청각을 집중하고…
호흡은 가늘고 길수록 좋다. 가늘고 긴 호흡을 하라는 말은 무공에 갓 입문한 풋내기들이 제일 처음 듣는 말이지만 광부는 다시 그 말을 좇았다. 내공을 배울 때, 내공을 운용할 때보다 훨씬 더 길고 가는 호흡이 필요하다. 신체의 모든 기능을 죽일 정도가 되어야 한다. 살아 있으되 시신과 다름없어야 한다.
시마공. 종리추가 창안한 내공법이다. 도가의 도인법에 기초를 둔 내공법으로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사부 없이 익혀도 주화입마의 우려가 전무한 양생법이다. 시마공은 위험 부담이 없는 만큼 위력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무인이 시마공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귀식대법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이다. 종리추는 귀식대법을 노리고 시마공을 창안했다.
“도가에서는 약물, 식이법, 호흡법, 연금술 등을 이용하여 양형한다. 시마공의 제일 근본은 양형이다. 불사의 신체라고 할 만큼 단단하게 단련하지 않고는 시마공을 이룩했다고 할 수 없다.”
“양형은 육신을 오래 지탱할 뿐이다. 육신을 지배하는 신이나 정령은 끊임없이 육신을 벗어나려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 끝내 모두 벗어나고 나면 인간은 죽음을 맞이한다. 신이나 정령을 체내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양신이다.”
“도가 양신법은 내관에서 시작한다. 내관은 초보적인 단계이나 신과 연관을 맺는 근본이다.”
무림에 출도한 무인치고 양형이나 내관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제각기 나무랄 데 없을 만큼 단단하게 양형을 이룩했고 내관을 훌쩍 뛰어넘어 진기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삼류 무인이라 해도.
종리추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내관을 중시했다. 진기의 흐름에 힘을 얻을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몸속에 흐르는 진기도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약해져 갔다. 시간이 흐르고 진기의 흐름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강하고 빠른 진기의 흐름이 능사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진기를 보통보다 훨씬 늦게 돌리는 것도 가능했다. 신, 기, 정의 흐름이 늦어지니 육신의 기능은 그만큼 떨어진다. 호흡이 느려지고 오장육부의 기능이 마비되어 간다. 그럴수록 더욱 내관에 집중해야 한다. 마치 의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처럼 진기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면 믿을 수 없게도 미약하게나마 진기는 끊임없이 흐른다.
인체의 모든 기능을 죽이고 감각만 깨워놓는다. 그런 상태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역시 내력 정도에 따라 한 시진에서 서너 시진까지 소요된다. 살수들이 깨어나자고 마음먹은 즉시 깨어나야 한다. 사나흘씩 죽어 있을 필요가 없다. 기껏해야 반나절, 길게 잡으면 하루나 하루 반이 필요할 뿐이다. 깨어날 때도 즉시 깨어나야 효용 가치가 있지 서너 시진씩 걸린다면 목표는 이미 십 리 밖으로 벗어나 유유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게다.
귀식대법처럼 오래 지속시킬 수는 없지만 깨어나고 싶을 때 즉시 깨어날 수 있는 기공, 죽어 있을 때는 귀식대법처럼 완전히 죽어 시신이 되는 기공.
시마공을 수련하기는 쉽지 않다. 절정 기공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육신에 가해지는 고통을 이겨야 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조급함을 억눌러야 한다. 멀쩡한 육신을 빈사 상태에 이르게 하면서 정신만은 일깨워 놓아야 하니 쉬울 리가 없다.
시마공을 수련할 수 있느냐 없느냐, 어느 경지까지 이끌어 올리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의지에 좌우된다. 시마공은 극기의 내공법이다. 광부는 시마공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참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정신이 깨어 있으니 살아 있기는 한 것 같다. 극도의 쾌감이 밀려왔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여색을 탐하는 것보다 더 큰 쾌감을 안겨준다.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를 샌님이라고 부른다. 샌님들은 주색잡기도 멀리하고 오로지 서적 속에 파묻혀 산다. 오죽하면 몸에 책 냄새가 배일까? 샌님들에게 즐거움은 없어 보인다. 천만에!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자신이 즐겨하는 곳에 몰두하다 보면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쾌감이 전신을 에워싼다.
샌님에게는 새로운 진리를 깨우칠 때마다. 시마공에서는 자신을 이길 때마다.
광부의 싸움과는 전혀 다른 싸움이지만 광부는 색다른 쾌감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