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23화
소원진은 산서성과 하남성 경계에서 하남성 쪽으로 약 오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산서성과 하남성의 경계를 이루는 옥옥산 산자락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읍으로 특산물도 없고 지형도 척박해서 크게 번창하지 못한 도읍이다. 산서성과 하남성을 잇는 길목인지라 도읍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크게 주목받는 도읍은 아니었다.
소고는 마차를 타고, 배로 갈아타고, 또 마차로 갈아타고 소원진에 이르는 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빙옥. 그녀는 얼음으로 깎아놓은 조각상처럼 찬 서리를 풀풀 피워냈다. 묵월광 산수들에게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살혼부 살수들이 옛이야기를 나눠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청면살수가 말을 건넬 때는 대답할 법도 하건만 그때도 벙어리가 된 양 입을 열지 않았다.
소원진에 도착한 소고 일행은 한낮 같으면 도읍이 환히 내려다보일 도읍을 지척에 둔 야산으로 숨어들었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 삼경에 이를 무렵이었다. 비로소 소고의 입이 열렸다.
“여기서 헤어져. 한 사람씩 반 각 여유를 두고 떠나는 거야. 약도는 모두 외웠을 줄 알아. 만약 아직도 몸에 약도를 소지하고 있다면 지금 버려.”
묵월광 살수들이 침묵을 지켰다. 약도는 벌써 태워 버렸고 약도에 그려진 내용은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다.
“명심해. 아무도 만나서는 안 돼. 누구와도 말을 나눠서도 안 되고. 만약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성을 빠져나와 은신했다가 하루나 이틀 후에 다시 들어오도록 해.”
모두의 생사가 걸린 일이다. 소고가 굳이 다짐을 하지 않더라도 비밀만은 무덤 속까지 지니고 갈 요량이다. 무림인에게 그만큼 당했으면 됐다. 아직도 천음곡에서 죽어 가던 동료들의 비명이 귓전에 쟁쟁하다.
“나흘 동안 있을 거야. 나흘 안에 합류하지 못하겠거든… 합류할 생각은 하지 말고 제 갈 길을 찾아서 가도록 해.”
그동안의 침묵처럼 냉기가 풀풀 피어나는 음성이었다. 말의 내용도 삭막하기만 했다. 소고는 자기 할 말만 한 후 질문이나 기타 의견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비정상적인 몰골의 살혼부 살수들이 소고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충격이 크긴 컸던 모양이군.”
적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소고와 살혼부 살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조용히 달그락거리는 마차 소리만 한밤의 정적을 깼다. 야산을 내려가 마차를 타고 소원진으로 향하고 있는 소고 일행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러는 너는 괜찮아?”
소여은이 적사의 말을 받았다. 그녀의 음성에는 맥이 빠진 듯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
적사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검 한 자루, 도 한 자루에 목숨을 건 무인들이니 상대하기 벅찬 강자를 만난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등 아쉬울 것이 없다. 목숨에 연연하는 시기는 지났다.
소고 역시 묵월광이 와해되었다거나 살문이 예상외로 강하게 성장한 모습에 놀란 것은 아니다. 물론 놀랍기는 하다. 적으로 돌아선 무림 문파들을 상대할 것도 걱정되고 팔부령에 고립되어 있는 살문이 염려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을 좌절의 늪으로 밀어 넣을 만큼 강한 충격이 되지는 않는다. 문파를 이끌다 보면 존립 위기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인이 강한 상대를 만나 승부를 점칠 수 없을 때처럼, 문주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복병에 모든 것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고, 적사, 소여은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살수의 한계다. 살수들의 꿈은 사무령이다. 꿈이 아니라 전설이다. 묵월광 살수들은 이제야 왜 과거의 살수들이 그토록 말도 되지 않는 사무령이란 꿈에 연연했는지 절실히 피부로 느꼈다. 죽으라면 죽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싸우고 싶어도 눈짓 한 번 받으면 꾹 눌러 참아야 하고, 싸우기 싫어도 싸우라고 하면 목숨을 걸고 제 싸움이 아닌 곳에서도 싸워야 하고…… 모순되게도 죽음의 손을 가진 살수들은 중원무림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살수문은 사악한 악인들의 집단이다. 그런고로 중원무림문파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가 없다. 살수 문파와 중원무림문파는 경원지간처럼 만나면 싸운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속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청부가 들어오면 죽여도 좋은지 눈치를 살펴야 한다. 만약 잘못된 판단을 하면 십망이라는 처벌을 받는다. 죽일 사람들… 그들은 중원무림문파가 살수문을 존속시키는 이유보다 커서는 안 된다. 이것이 당금 살수 문파의 한계다.
“종리추가 부럽군.”
적사가 툴툴 웃었다.
과거 살혼부는 중원 곳곳에 여든한 곳의 비막을 두었다. 잠시 묵월광의 총단으로 활용했던 천의원도 여든한 곳 비막 중 하나로 살혼부 최후의 은신처다. 청면살수는 십망을 당하면서도 단 한 곳만 활용했다. 오채산 암동. 적사, 야이간, 적각녀, 종리추를 가둬놓은 암동. 소고는 여든한 곳 중 또 한 곳의 비막을 들춰냈다. 공지장은 이곳을 설명해 줄 때 단 하루 머물 수 있는 곳이니 절대 하루 이상 머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정말 이곳에서 나흘이나 머물 생각이냐?”
청면살수를 등에 업은 공지장이 힘들게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며 물었다. 사람 한 명이 걸으면 꽉 찰 만큼 좁은 길이다.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길이며 구불구불해서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용케도 집을 지어놓고 산다.
소고는 대답 대신 부지런히 걸음을 떼어 놓았다. 그녀는 거적때기로 이어 붙여 간신히 비바람이나 피할 초라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을 비막으로 정한 이유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효용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워낙 높은 고지대에 자리 잡은 집이니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의심받지 않는다.
하남성에서 소원진을 거쳐 산서성으로 넘어가려면 팔부령과 같은 대산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겨울에는 둘 다 쉽지 않다. 산에는 눈이 얼음처럼 단단히 얼어붙어 산짐승도 넘나들기 힘들고 강은 꽁꽁 얼어 배를 띄우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인 사람들은 객장에서 겨울을 보내거나 객장에 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소고 일행이 머문 곳 같은 움집을 찾아 한겨울을 지낸다.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니 집이라고 손볼 필요도 없고 집에 대한 애착도 없다.
공지장은 그중 한 곳을 구해놨다. 후일 쓸모가 있겠지 싶어서. 거적때기를 들추고 들어서자 안은 의외로 넓었다. 넓게 판 토굴처럼 방 하나로 이루어져 더 넓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예상했던 퀴퀴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향긋한 향 내음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훈훈한 온기도 느껴졌다. 방 한가운데에는 화로가 놓여 있고, 화로에서 솟구친 뜨거운 열기가 차가운 바람을 밀어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가 머물렀음 직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살혼부가 멸문한 지금에도 살혼부 고관자들은 꾸준히 비막을 관리하고 있다.
고관자는 엄밀히 말해서 살혼부 살수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무림인이 아니며, 또 살혼부에 빚을 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빚을 갚기 위해 비막을 지키지만 마음에서 우러난 자발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곳을 돌보겠습니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돌보겠습니다. 필요하실 때는 언제든지 기별만 넣어 주십시오.”
소원진 비막도 그들 중 한 명이 관리하는 곳이다. 미리 연락을 취해 두었으니. 변심만 하지 않았다면 작은 준비를 해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아니다. 이상한 점이 있다. 움집을 정갈하게 청소하고, 화로에 숯을 피워 놓고, 향긋한 냄새가 감도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그런데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살혼부 살수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불구덩이가 되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구파일방의 추적을 뿌리치고 십망을 벗어난 그들이다. 살혼부 살수들은 움집으로 들어서는 즉시 이상한 점을 느끼고 예전 감각을 되살렸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소천나찰은 검을 뽑아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미행자가 있는지 살펴보려는 게다. 오면서 충분히 조심을 했지만 그래도 이상이 생긴 이상 다시 한 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두 다리가 잘린 비원살수도 검을 뽑아 들고 입구를 경계했다. 그나마 얼굴을 상했을 뿐 사지가 멀쩡한 미안공자가 움집 구석구석을 뒤져 나갔다.
그는 조심했다. 발걸음 한 발자국 움직이는 데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러웠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옷자락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안공자는 옛 살혼부 시절로 돌아가 움집을 살펴 나갔다. 넓다고는 하지만 방 하나로 이루어진 집이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일목요연하니 방 안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굳이 살피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단 몇 명이라도 사람을 죽여본 살수라면 이런 곳에서도 얼마든지 숨을 공간을 찾을 수 있다.
투박한 돌이 깔려진 바닥, 허름한 거적으로 덮어놓은 지붕, 탁자가 있는 곳, 침상…… 미안공자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대하듯 방 안 집기들을 살펴 나갔다. 도저히 사람이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곳까지 꼼꼼히.
소고는 미안공자의 그런 행동을 잠시 지켜보다가 대담하게 뚜벅뚜벅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지, 지금 뭐하는……!”
공지장이 놀라 몇 마디 외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소고는 방 안을 가로질러 주방 대신으로 사용하는 듯한 곳까지 걸어간 후였다.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있고 그 위로 조잡한 선반이 삼층으로 걸려 있었다. 선반 위에는 이빨 빠진 그릇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어 없는 살림이지만 정갈한 주인의 마음이 드러났다. 소고는 식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식탁에는 아낙이 일 나간 서방을 기다리며 정성스럽게 준비해 놓은 듯 크고 작은 그릇들이 식탁보에 덮여 있었다.
“다행이 손을 탄 것 같지는 않은데……”
미안공자가 중얼거렸다. 소고의 행동이 마땅치는 않지만 그녀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소고는 식탁 앞에서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식탁보만 들춰내면 맛있는 음식들이 모습을 드러낼 터인데 식탁보를 걷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한 말이겠지만 음식 때문에 식탁으로 온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공지장이 등에 업고 있던 청면살수를 내려놓았다. 밖을 살피러 나갔던 소천나찰도 돌아왔다. 소고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식탁을 앞에 두고 멍하니 선 채로 안색만 파랗게 질려갔다. 미안공자는 이상한 예감을 받았다. 살수의 예감으로 미루어 집 안에는 죽음이 있다. 소천나찰도 공지장도, 두 다리와 한 팔이 잘린 비원살수도 눈빛을 번뜩였다.
미안공자가 식탁에 덮여 있는 식탁보를 확 걷어냈다.
“음……!”
공지장이 작은 신음을 흘렸다. 비원살수는 재빨리 검을 입에 물고 신형을 돌려세워 밖을 경계했다. 낯선 자는 단 한 걸음도 집 안으로 들여놓지 않겠다는 듯이. 미안공자는 식탁을 확인하는 순간 번개같이 신형을 날려 집 안 곳곳을 뒤졌다.
이미 살펴본 집 안이다. 모든 집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넓지 않은 집이다. 집이라고도 할 수도 없다. 바닥재가 깔려 있지 않아 그렇지 방이나 다름없다. 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만큼 식탁에 놓여 있는 물건은 놀라웠다. 허기를 달래줄 야채와 고기들이 하나 가득 차려져 있다. 국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있다. 음식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다. 식탁 한가운데에는 큰 그릇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사람 것으로 짐작되는 눈알들이 가득했다.
방 안을 돌아본 미안공자가 다시 식탁으로 다가왔다.
“소고, 이건……”
미안공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음이라면 실컷 보았다. 살수행을 전전하느라 풍습이 판이하게 다른 고장도 많이 가봤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처럼 눈알을 사발에 담아 경종을 울리는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 사발에 담긴 눈알의 의미도 짐작할 수 없었다. 사람의 것으로 짐작되기는 하지만 누구의 눈알인지도 모르겠고.
소고가 흙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았다. 묵월광 살수들은 소고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야산에서 각개로 흩어진 살수들은 반 각 이상의 여유를 두고 한 사람씩 재집결했다. 워낙 상세하게 숙지시켜 놓은 탓인지 비막을 찾는 일도 수월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사발에 담긴 눈알을 보는 순간 침묵 속으로 침잠했다. 흙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아 있는 소고와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살혼부 살수들의 묵직한 분위기가 웃고 떠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가오자 소고가 일어섰다.
“배고프네요, 뭐 좀 먹어야죠?”
조용한 일과가 시작되었다. 누구도 사발에 담긴 눈알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라진 고관자의 행방도 탐문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그런 일조차 없었던 듯 천연덕스럽게 하루 일과를 맞이했다.
“가파른 길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가파른 줄은 몰랐네요. 어멋! 이걸 어째? 옷에 흙탕물이 다 튀었네.”
화령 살수 한 명이 방금 도착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따스한 햇볕이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을 녹였다. 빙판이나 진배없던 눈길도 많이 녹아 본연의 흙 모습을 드러냈다.
삼 일째 되는 날 정오, 소여은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진이 경과했을 때 적사가 들어섰다. 적사는 얼음에 담긴 눈알들을 보고도 별반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먼저 갔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간단했다.
“마흔두 개야.”
소고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마흔둘…… 다행이군. 천운이거나.”
그렇다. 그들은 이미 눈알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다. 눈알을 보는 순간 그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둔해도 한참 둔한 사람이다. 자신들이 공격을 당했는데 뿌리라고 무사할까. 다행? 다행이다. 이십팔숙 중 일곱 명이나 살아 있다는 것은 다행을 넘어 천운이다, 적사의 말처럼. 이십팔숙이 한날한시에, 거의 동시에 급습을 받았을 텐데 일곱 명이나 액운을 피했다니.
“호호! 잘됐네. 이제는 숨어 다닐 필요 없잖아?”
소여은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
적사가 신음을 토했다. 소여은의 말이 놀랍다기보다 그녀의 말하는 모습에 심신이 진탕했기 때문이다.
소여은은 날이 갈수록 청순한 면모를 드러냈다. 가냘프고, 애처롭고, 속세의 더러운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시골 처녀의 모습, 그러면서도 부용보다 화사한 얼굴. 사내라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여인이 되어갔다. 여인의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변할 수 있을까? 변할 수 있다. 얼굴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얼굴 모습마저도 다르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미인계. 소여은은 자신이 가진 무기 중 가장 강한 무기를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의 무공이 아니라 얼굴이었으며 몸이었다.
‘사내가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가 되어야 해. 반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서는 안 돼. 날 보는 순간 반하게끔 만들어야 해.’
그런 그녀의 노력은 웃는 표정 하나,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도 요사한 마력이 깃들게 만들었다. 소여은은 지금도 요사한 요녀다. 그리고 그녀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
“그래, 이제는 더 이상 숨어 다닐 필요 없어.”
소고의 전신에서 얼음꽃이 풀풀 피어났다.
“우리는 종적을 발각당했어. 알아내야 할 것이 있어. 이십팔숙은 죽었으면서 왜 우리는 내버려 두고 있는지. 저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분명히 있어.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우릴 살려두는 거야. 그걸 얻으면 우린…… 죽은 목숨이겠지.”
“……”
“시험을 해봐야겠어. 우리에게 얻어낼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
모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소고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