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사신 – 135화


“크으! 술… 야! 술 여기 술 더 가져와!”

석심광검은 술에 만취되어 탁자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러면서도 계속 술을 찾았다.

주루 주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쩔쩔매기만 했다.

야시장에서 석심광검의 말 한마디는 법이다.

야왕이 있을 적에는 야왕의 말이 법이었지만, 죽거나 패배한 자는 과거의 영광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야왕은 모든 권한을 내놓고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져야 한다. 그래야 순리다.

사람들은 야왕을 잊지 않았다. 석심광검이 야왕의 수족이었다는 사실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야왕이 죽었을 때 싸움판에서 죽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던 석심광검이 검 한번 뽑아보지 못한 사실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야시장 상인들은 꼬박꼬박 자릿세를 낸다. 야왕이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바뀐 것이 있다면 눈빛이다.

석심광검을 보는 눈이 예전처럼 호의적이지 않다.

아니다. 자격지심인지도 모른다. 상인들은 야왕이 되었든 석심광검이 되었든 상관없을 게다. 누가 되었든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줄 사람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석심광검이 혼자서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리라.

그래도 괴로웠다.

‘같이 죽었어야 해, 같이…’

석심광검은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한다.

야왕을 죽인 묵월광의 소소, 그 아름다운 얼굴.

빙옥을 깎아 만든 듯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에 취한 것일까? 야왕은 예전처럼 날카롭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많이 흔들렸다.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못하고 검을 흘렸다.

그렇게 싸워서는 죽음뿐이다.

‘빌어먹을! 왜 그렇게 죽었소. 왜…’

탁자에 처박은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은 주정이라고 한다. 야왕이 있을 적에는 전형적인 싸움꾼이었지만 이제는 술주정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석심광검에게는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야왕의 당당하던 모습만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의 등 뒤로 낯선 사내가 다가섰다.

“석심광검.”

석심광검은 자신과 관계없다는 듯 고개도 쳐들지 않았다. 쳐들 수 없었다. 한 병만 마셔도 취한다는 독주를 두 독이나 들이켰으니. 그는 인사불성이 되어 곯아떨어졌다.

‘추워…’

석심광검은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

한여름인지라 후덥지근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이상하게도 얼음굴에 파묻힌 듯 추웠다.

‘너무 추워…’

몸을 움츠리려고 꿈지럭거리자 찰랑이는 물결이 만져졌다.

‘응?’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주루에서 곯아떨어지면 수하나 주루 주인들이 방으로 옮겨놓곤 했다. 머리맡에는 꿀물도 놓여져 있고.

‘물을 엎질렀나 보군.’

석심광검은 다시 몸을 뒤척였다.

찰랑거리는 감촉이 여전히 느껴진다. 그리고 보니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응?’

석심광검은 정신이 들었다.

지난밤에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지만 몸을 일으켜 잠자리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추워서라도 잠을 잘 수 없다.

“이제 정신이 든 모양이군.”

냉랭한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이, 이건! 당했다!’

야시장을 노리는 사람들은 많다.

야왕이 있었을 때는 놀라운 무공이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자들도 석심광검이 관리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검을 뽑아 들 게다.

그들은 정당하게 승부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암습을 가해온다.

야시장을 장악한 사람은 언제 있을지 모를 기습에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석심광검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제야 자신이 어디에 누워 있는지 알았다.

강물에 처박혀 있다. 야시장에서 발산해 내는 빛이 멀찌감치 보인다. 술을 마신 주루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날이 밝지도 않았다.

그는 주루에서 끌려 나와 곧바로 강물에 처박힌 것이다.

‘모두 당했다는 말이군.’

사태가 즉각적으로 판단되었다.

자신을 호위하던 파락호들은 모두 당했거나 손을 들었을 게다.

누군지 모르지만 전격적으로 기습했고, 성공했다.

“후루루…!”

석심광검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자신은 야시장의 주인이 아니다. 하수인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묵월광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석심광검, 긴말은 하지 않겠다.”

석심광검은 몸을 일으켰다.

취기가 전신을 돌았다. 중심을 잡을 수 없이 비틀거린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역시 두통이다.

‘이놈의 머리…’

자신을 강물에 처박은 사내가 말했다.

“묵월광이 어디에 있나?”

“무, 묵월광!”

석심광검은 술이 확 깼다. 두통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렸다.

묵월광을 찾는 사람이라면 무인이다.

‘그럼 이들이 요즘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비로소 사내를 자세히 보았다.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전신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강한 기운이 줄줄 흘러나온다.

‘내가 상대할 자가 아니다. 엄청난 고수야.’

싸움꾼은 싸움꾼을 알아본다. 싸움판에서 검을 휘둘렀던 석심광검은 사내의 모습만 보고도 얼마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해 냈다.

“무슨 말씀이신지…?”

“남경에 귀혈총이라는 쓰레기들이 있었지.”

사내가 풀잎을 뽑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놈들에게는 비장의 살수 다섯 명이 있었는데, 그놈들의 소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대살수뿐이었어.”

‘허, 허리가 잘리고 머리가 십자로 갈라졌다는 사람들… 이, 이자들이 확실해!’

“대살수는 그래도 좀 쓸 만한 무인이었지. 스스로 자진하려고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불고 말았어. 다섯 살수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 아주 소상히 말해 주더군. 힘줄 몇 개 뜯어내지 않았는데.”

‘맙소사!’

석심광검은 소름이 쫙 끼쳤다.

소문은 사실이다. 산 채로 힘줄을 뜯어냈다는 소문이.

그리고 그 일은 이제 자신에게 닥쳤다.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힘줄이 뜯겨 나가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무, 묵월광 살수… 여자가 이끕니다. 소소라고.”

석심광검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했다. 머리를 쥐어짜가며 혹시 빠진 것이 있는가 고민까지 했다.

“그, 그게 전부인데요?”

“그래, 전부인 것 같아. 모르던 부분이 많았어. 수고했어.”

“처, 천만… 컥!”

석심광검은 큰 충격을 받고 바들바들 떨었다.

꼿꼿이 서려고 했는데, 떨지 않고 서 있고 싶었는데 몸이 떨렸다.

사내가 가슴에 들어박힌 소검을 뽑아냈다.

스으윽…!

한 번에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최대한의 고통을 안기면서 뽑아냈다.

“큭! 크윽! 끄으으으…!”

입술을 악다물었는데도 신음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몸은 주책없이 중풍 맞은 노인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너희같이 상인들 등쳐 먹는 놈들은 죽어야 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다음 세상에서는 제발 올바르게 살아라. 아니면 또 내 손에 죽게 될 거야. 다음 세상에도 따라갈 거거든.”

“끄으으윽…!”

석심광검은 다른 생각을 했다.

‘다음 세상에서는 꼭 무인이 될 거야. 진정한 무인이. 겨우 야시장 따위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싸움꾼이 아니라 진정한 무공을 익혀 천하와 싸우는 무인이…’

야왕이 보였다.

석심광검을 마중 나온 사람은 야왕이었다.

“석심광검은 또 술 타령인가?”

“그, 그렇죠 뭐.”

공지장에게 돈을 건네는 파락호의 손길이 파르르 떨렸다.

공지장은 야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상인들은 그대로이나 간혹 흘끔흘끔 쳐다보는 눈길이 감지된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파락호와 대면하자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야시장에 돌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무슨 돌풍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파락호에게 물어보는 바보 짓은 하지 않았다. 올바른 대답도 들을 수 없을뿐더러 상대의 경각심만 일깨우게 된다.

‘석심광검을 제압했어. 그렇다면 배후에 묵월광이 있다는 것도 알 것이고… 혈풍! 혈풍이다!’

살수문파를 휩쓸고 지나가는 혈풍.

돌풍의 진실은 혈풍이다.

“석심광검에게 숨 좀 그만 쉬라고 해. 쯧쯧! 젊은 사람이 몸을 아껴야지.”

‘알려야 해. 빨리.’

공지장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국수집으로 들어섰다.

야시장 사람들에게 공지장은 석심광검보다 더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야왕을 단숨에 죽인 여인의 수하이니 석심광검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공지장은 국수 한 그릇을 훌훌 먹고 값을 치렀다.

이런 면에서는 야왕이 있었을 때보다 낫다.

파락호들은 셈을 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은 마음껏 집어 먹으면서 동전 한 닢 내지 않았다.

공지장은 그런 관습을 뜯어고쳤다.

누가 되었든 상인들의 음식을 집어 먹은 후에는 반드시 셈을 하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부터 돈을 냈다.

물론 상인들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공지장의 뜻이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돈을 받았다. 그러니 자연히 파락호들에게도 돈을 요구하게 되었고, 지금은 함부로 집어 먹는 사람이 없다.

묵월광에게 야시장은 눈에 차지도 않는 작은 먹이다. 하지만 숨어사는 동안에는 충분한 자금을 제공해 준다. 살수문파이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상인들의 마음을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

야왕에 쏠려 있던 인심은 급속하게 변했다.

묵월광은 야시장을 성공적으로 움켜쥐었다.

이제 야시장 사람들은 묵월광 대신 다른 누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공지장은 국수집을 나와 어슬렁거리며 야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노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했다.

야시장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은 반 시진이다. 그는 늘 반 시진 동안 야시장을 돌곤 했다.

다음은 대기하고 있는 마차로 갔다.

공지장이 마차를 타는 순간부터 야시장 상인은 물론 파락호들까지 공지장의 종적을 놓치게 된다. 그는 마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공지장은 태연하게 마차에 올랐다.

“끼럇!”

어좌석에 앉아 있던 마부가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 문을 짚었어!’

야시장에 변괴가 발생했다는 무언의 밀명이다.

미안 공자는 연신 채찍질을 하면서도 진기를 끌어올려 사방을 살피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행동으로 적에게 의심을 사게 해서는 안 된다.

마차는 힘있게 질주해서 야시장으로부터 십 리를 벗어났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물체가 보였다.

히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도 들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말 네 마리가 이끄는 사두마차의 형상이 또렷이 보였다.

“워워!”

미안 공자는 고삐를 잡아당겼다.

공지장이 내렸다.

“수고했네.”

공지장은 미안 공자에게 동전 네 닢을 건네주었다.

‘어서 가시오.’

‘꼭… 살아야 되네.’

아주 짧은 눈빛이 오갔다.

“저희 마방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시고, 편히 가십시오.”

공지장은 대꾸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두두두두두…!

사두마차는 힘차게 지축을 뒤흔들었다.

과거 살혼부 살수들은 살수 다섯 명과 무공이 변변치 않은 사람 한 명, 단 여섯 명으로 하남 살수계에서 당당히 버텼다. 살천문도 있었고, 혈배를 들고 싶어 하는 무리들이 상당수였지만 누구도 그들을 어쩌지 못했다.

살혼부 살수들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살수행에 나서지 않은 공지장까지도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으로 여겼다.

“워워!”

마차가 급히 멈춰 섰다.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었다. 검은 강물이 앞을 막고 있다. 그렇다고 강을 건널 배가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좌석에서 소천나찰이 내렸다.

공지장도 마차에서 나왔다.

“한밤인데도 날이 푹푹 찌는구만.”

“형님, 난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죠. 세상에는 내 짝이 있을 텐데 누굴까? 나는 몇 살에 혼인을 할 것인가? 먼 훗날 내 아내가 될 여자는 지금 몇 살일까? 뭐 하고 있을까? 이제 막 태어났을까? 아니면 아직도 태어나지 않았을까?”

“허허! 몇 살 때 말인가?”

“아마 열 서너 살쯤 되었을 겁니다. 여자에게 호기심이 생길 무렵이었죠. 나중에 혼인을 하면 꼭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죠. 그때 뭐 하고 있었냐고.”

“허허허!”

소천나찰은 절룩거리며 강변을 걸었다.

의족을 달아서인지 걸음걸이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좀 더 나이를 먹으니 다른 생각이 듭니다.”

“어떤 생각인가?”

“난 언제 죽을까? 죽는 장소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죽게 될까? 날씨는 어떨까? 봄일까, 여름일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게 사람이지.”

“궁금증 하나는 풀었습니다. 계절은 여름이고, 장소는 강변이고, 내 곁에는 형님이 계시는군요.”

“허허허!”

“대형의 꿈은 이루어질까요?”

“힘들지 않을까 싶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소소는… 살수문파를 이끌 재질은 되어도 사마령은 힘든 것 같습니다. 너무 큰 짐이에요. 그 짐이 소소를 더 힘들게 하는가 봅니다.”

“그래, 그냥 살수로 키웠으면 한결 부담이 덜었을 텐데.”

“종리추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네. 지금은 성하지만 조만간…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네.”

“그때부터가 잘못이었어요. 구지심검을 죽일 때부터. 그 후에도… 중원에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면… 소소도, 종리추, 야이간, 적사, 적각녀… 모두 자리 잡고 잘 살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림에 이런 혼란도 없었을 테고 말이지. 허허허! 꼭 십망이 존재했을 때가 더 낫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야이간을 자식처럼 아끼셨는데…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젊은 사람들의 인과는 젊은 사람들끼리 풀어야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최선을 다 했네. 사마령으로 키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그만하면 됐네.”

소천나찰, 살혼부의 머리다. 청면살수가 가장 아끼는 의제이기도 하다.

공지장은 살문 살수들이 최대한 활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제일 밑 동생이다.

두 사람은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지폈다.

모닥불이 활활 타올라 주변을 밝혔다.

스스스슥…!

검은 그림자들이 뱀처럼 기어와 공지장과 소천나찰을 에워쌌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준비가 철저한 놈들이군.”

소천나찰이 응대했다.

“허허허! 살수문파를 이끌어가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소? 벌써 여러 문파를 몰살시켰으니 이만한 준비 정도는 겪어봤을 것이오.”

“겪어봤지. 그중에서도 네놈들이 가장 영악했어.”

공지장은 웃었다.

소천나찰은 석심광검에게조차 숨긴 것이 있다.

마부다.

공지장이 야시장에서 타고 가는 마차는 늘 석심광검이 마방에 연락해 준비한 마차다.

마방에서는 마차와 마부를 보내온다.

마부가 미안 공자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마부는 늘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 마차를 대기시켰고, 공지장은 마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무런 일이 없으면 중간에서 마차를 갈아타지 않고 그냥 간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되면 마차를 갈아탄다.

소천나찰은 곧장 자신이 죽을 장소로 마차를 몬다.

추적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방책이다.

여기에는 두 사람 목숨이 걸려 있다. 소천나찰과 공지장… 그들이 죽음으로써 추적자들을 따돌릴 수 있다.

추적자들은 다시 돌아가 마방부터 뒤질 터이지만 이미 늦었다. 묵월광에 대한 단서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리라.

소천나찰은 말했었다.

“세상을 속일 수는 없지. 야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면 당장 개방과 하오문의 귀에 들어갈 거야. 그들이 묵월광을 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해. 준비할 필요가 있어.”

소천나찰은 살혼부 시절부터 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유명했다.

소천나찰이 말했다.

“자 이만 보내주시겠나? 아니면 우리 입을 열게 할 작정인가?”

“…”

그림자들, 천외천 죽음의 칠인은 무심히 지켜봤다.

그들은 판단했다. 이 두 노인은 힘줄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살점을 조각조각 썰어 내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백천의가 한 명을 쳐다봤다.

검곡의 소곡주 우경삼, 그의 검이 검집에서 풀려 나왔다.

쉬익!

검은 여지없이 공지장의 허리를 베어냈다.

공지장은 맥없이 풀썩 쓰러졌다.

우경삼의 검은 쓰러지는 상체에서 머리만 따로 떼어내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매서운 칼바람이 일고, 공지장의 머리는 네 조각으로 갈라져 떨어졌다.

“노… 놀라운 쾌검!”

소천나찰은 진정으로 놀랐다.

세상에 가장 빠른 무공을 지닌 사람은 적사라고 생각해 왔다. 적사의 축혼팔도는 상상을 불허한다. 눈앞에 도광이 흐르는 순간 목숨이 날아간다.

이들의 무공은 적사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빠른 검이니 누가 더 빠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쾌검은 직접 검을 섞어 봐야 판가름이 난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기에는 훨씬 빠른 것 같다. 이들이.

소천나찰이 겁에 질린 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투툭!

물러서던 발길이 모닥불을 흩뜨렸다.

불길이 바지에 옮겨 붙어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소천나찰은 의식하지 못했다. 어차피 의족으로 만든 다리이니. 순간,

“안 돼!”

백천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강자로서 풍기던 여유를 찾아볼 수 없는 다급한 행동이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검곡 소곡주 우경삼은 소천나찰의 허리를 베어냈다.

소천나찰의 상체가 굴러떨어졌다.

우경삼의 검은 목을 잘랐고, 허공에 띄워진 머리를 네 조각으로 베어냈다. 그 순간,

꽈꽝! 꽈꽈꽝…!

의족이 터지며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냈다.

잠시 후, 분분히 날리던 먼지와 강변의 모래가 가라앉았다.

강변에는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소천나찰의 시신도 공지장의 시신도, 그리고 또 한 사람… 검곡 소곡주 우경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런!”

백천의가 이 앓는 소리를 냈다.

지옥을 다녀온 사람들인데… 구진법을 통과하여 반응이 민첩하기로 세상에 둘째라면 서러운 사람들인데…

우경삼은 너무 가까이 다가섰다.

그가 사태를 깨닫고 물러서기는 했지만 화약이 너무 강했다.

한여름에 모닥불이라니!

그렇게 특이한 현상을 보고도 방심했다니!

“좋은… 경험이야. 앞으로는 그 누구도 방심하지 마.”

백천의가 말했다.

실은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소리였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