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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36화


‘실수야. 숙부님들께 맡기는 게 아니었어.’

소고는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왔다.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을 숱하게 들어온 숙부님들이다. 십망을 피해 중원 밖으로 밀려났고, 또 큰 기반을 가지고 돌아오셨다.

소고가 불패의 살수들이라고 생각한 이십팔숙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스물한 명이나 죽었다.

그들은 소고가 양성한 살수들은 아니다.

공지장 숙부가 양성했다.

소고 자신은 숙부님들이 양성한 살수들을 가지고 버텨온 것에 불과하다. 버티기라도 잘했으면… 대부분이 죽고 남은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중원에 나설 때만 해도 무림을 단번에 휩쓸어 버릴 줄 알았던 강대한 힘이 무력하기만 하다.

‘내가 숙부님들까지 죽인 거야.’

소고는 또 한 번 좌절을 느꼈다.

살수문파들이 쓰러지고 있다.

이제 명확해졌다. 어떤 자들이 살수들을 모두 도륙해 버리려고 작정한 게다.

그 살검이 묵월광을 향해 겨눠졌다.

이제는 더 버티고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청면살수를 생각해서 악착같이 버티고는 있지만 중원무림이 압박해 오는 데는 견딜 재간이 없다.

지금은 잠시 몸을 피하고 있지만 숨을 곳이 없다.

무림에 나서기만 하면 당장 개방과 하오문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

다행히 천 노인과 그의 기반은 무사하다.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측해서 야시장을 움켜쥔 것은 아니다. 놈들은 이십팔숙의 눈으로 경고를 보냈고,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숨은 것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지내야 할지.

하남성 살수들은 모두 도륙해 버리면 결국 묵월광만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타 성에 있는 살수들까지 모두 도륙해 버리고 있다면… 묵월광에 검을 들이댔다면…

‘모두 죽이려는 거야. 무림은 사라졌어. 중원무림은 살수가 필요하지 않아. 그래서 모두 죽이는 거지.’

삭! 사악…!

신경을 곤두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적사는 살행에 나서지 않을 때면 도를 갈았다.

너무 갈아서 살갗만 스쳐 가도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섬뜩하다.

“허허! 허허허…!”

청면살수가 웃었다.

청면살수의 배에 글씨를 쓰던 미안공자가 붓을 던지고 물었다.

비원살수도 숨죽인 채 말이 없다.

속으로 통곡하고 있다. 울음소리가 들린다. 피부를 통해 빠져나온 울음소리를 대성통곡으로 바뀌어 사람들 마음속으로 젖어든다.

“적사! 소여은! 이리 와! 아냐, 모두 와! 다들 와서 주목해!”

여간해서는 흥분하지 않는 소고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묵월광을 포기하겠어.”

소고의 선언은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소천나찰, 공지장이 죽은 것만큼이나 큰 충격이다.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청면살수뿐이다. 청각을 잃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난 사마령이 될 수 없어.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이쯤에서 끝냈으면 좋겠어.”

“…”

한마디쯤 반대 의견이 나올 법도 한데 조용하기만 했다.

모두들 알고 있다. 현재 무림에서는 사마령이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을. 그나마 종리추가 버티고 있지만 그 역시 다른 살수문파들처럼 당할 것이 자명하다.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빨리 당하느냐, 늦게 당하느냐.

“모두들… 제 갈 길을 알아서 가도록 해.”

지금까지 목숨을 바쳐 살행을 했던 살수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다.

묵월광 살수들은 돈을 바라고 모여들지 않았다.

화령 살수들은 사내들에게 한을 풀려고 모여 있다. 그녀들은 세상에 남긴 것이 없다. 돌아갈 곳도 없다. 오로지 사내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모인 여인들이다.

화령 살수들은 소여은을 따른다. 소고에게도 진심으로 충성한다. 자신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다독여 준 사람은 그녀들밖에 없다.

사령 살수들은 조건부로 왔다.

적사에게 축혼팔도를 전수받는 대신 십 년 동안 충심을 다해 복종하기로.

그들은 몽고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적사에게 배운 축혼팔도를 부족민에게 전수해야 한다. 그런 유혹이 없었다면 중원에 들어와 살행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사령 살수들은 묵월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한다.

십팔도객이 십이도객으로 줄어드는 순간, 중원인에 대한 복수심이 생겼다. 살행을 하다가 죽었거나 무공으로 겨뤄 죽었다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화살에 맞아 죽다니… 비겁하게.

그들의 한을 풀어줄 문파는 묵월광뿐이다.

이십팔숙은 큰 은혜를 입었다.

공지장은 이십팔숙을 구하면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게끔 값을 치러주었다. 원한 있는 자는 원한을 풀어주고, 노예로 팔려가는 자는 노예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그러나 그들도 목숨이 귀중한 것은 안다.

아무리 큰 은혜를 입었어도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되었으면 벌써 물러났을 게다.

충심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다.

소고는 이들이 모든 염원, 희망, 바람을 일순간에 꺾는 말을 했다. 모두들 제 갈 길을 알아서 가라니.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소고는 그들이 기다리는 말을 반드시 할 게다.

소고가 말했다.

“난 지금 죽으러 갈 거야. 같이 죽을 사람만 따라와.”

묵월광 살수들은 이 말이 나올 줄 예감했다.

소고는 여자치고는 강단 있는 성격이다. 부러질지언정 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제일의 무공을 익혔다는 자부심도 있다.

살수문파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자들, 그들을 만나러 간다.

소천나찰과 공지장이 죽었기 때문에 복수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간단히 생각한 게다.

고양이가 쥐를 쫓을 적에도 활로를 터놓고 쫓는다고 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리면 오히려 고양이에게 덤벼들기 때문에.

적들은 묵월광을 너무 궁지로 몰아세웠다.

소고로 하여금 검을 들게끔 강요했다.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라는 선택을 하도록 요구해 왔다. 살수문파를 일으켜 세울 수도 없고, 숨어 지낼 수도 없고. 소고로 하여금 묵월광을 포기하고 생사결전을 각오하게끔 만들었다.

소고가 걸어나갔다.

이십팔숙 중 살아남은 일곱 명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무공을 전수한 공지장이 죽었고, 소고도 죽으러 간다. 그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사람은 없다. 고향으로, 혹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사람은 가도 좋다고 말했으니…

소여은이 뒤따랐다. 화령 살수에게는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숨어서 살고 싶으면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사느니 죽겠다는 사람은 죽는 게다.

죽으러 가는 길은 본인의 의사로 결정할 문제다.

적사가 뒤따랐다. 그도 사령 살수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자유를 준 것이다. 십 년지약을 맺고 축혼팔도를 전수해 주었지만 몽고로 돌아갈 자들은 돌아가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이다. 이제 십 년지약은 깨졌다.

그들 뒤를 제일 먼저 따른 사람은 화령 살수 중 한 명이다. 그 뒤를 이십팔숙, 아니, 이제는 칠 살수라 불리는 자들이 따랐다.

한 명, 두 명… 소고를 따랐다.

소고가 사람들 눈을 피해 숨어 있는 동굴은 휑뎅그렁했다.

모두들 빠져나가고 청면살수와 비원살수, 미안공자만 남았다.

비원살수와 미안공자는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사마령이 꿈이었건만… 살혼부가 와해되는 순간 사마령이라는 존재가 남아 있어 그런대로 버텨왔건만… 이제는 삶을 이어갈 목적이 없어졌다.

청면살수가 입을 열었다.

“소고야.”

대답이 있을 리 없다.

청면살수는 한참 동안 기다렸다.

소고가 다가오는데 늦을 수도 있고, 붓이 제자리에 없는 경우에는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붓을 찍을 물이 없을 수도 있다.

비원살수와 미안공자는 가만히 있었다.

붓으로 말해 주느니 청면살수가 직접 느끼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다.

“갔군.”

청면살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비원살수?”

비원살수가 재빨리 다가가 붓으로 물을 찍어 배에 썼다.

‘네 여기 있습니다.’

“뭐 하고 있는 것인가? 빨리 가서 도와야지.”

‘뭘 도우라는 말씀입니까? 도와줄 일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오히려 짐만 됩니다.’

“허허! 사마령을 보지 않을 텐가?”

‘대형… 사마령은 꿈입니다.’

“소고에게는 무리였지. 역시 사마령은 무공만 높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지. 안 그런가?”

‘그럼 대형 말씀은…?’

“종리추. 종리추에게 기대를 걸어보세.”

비원살수는 아무 글도 쓰지 못했다.

“종리추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네. 소고는 지금 갈 곳이 없네. 그러니 죽으러 간 게지. 나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보게, 그게 최선인가. 종리추라면 다른 방도를 강구했을 거네. 무엇인지 모르지만 영민한 정도를 벗어나서 귀기스러운 아이 아닌가.”

‘무엇을 어찌해야 되는지요?’

“묵월광의 힘은 거력이네. 무공으로 부딪친다면 그만한 힘도 없지. 그 힘을 종리추에게 실어줘야 하네.”

‘소고를 종리추에게 말입니까?’

“그렇지, 애당초 팔부령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었어. 다시 한 번 기회를 엿보자는 심산에서 떠났지만… 모두 우리 형의 욕심이었지. 종리추가 묵월광의 힘을 얻으면 살문은 배나 강해질 걸세. 자네도 봤잖은가. 살문에는 살수가 몇 명 없어. 사마령이 되려면 밑이 든든해야 하는데… 그 정도로는 오래 버티지 못해.”

‘늦었습니다. 소고는 죽으러 갔습니다. 이 형과 육 제를 죽인 자를 찾아간 것 같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네. 우리에게는 폭멸공이 있지 않은가.”

‘포, 폭멸공!’

“그걸 쓰세나. 이번 일에는 나도 데려가 주게. 이런 몸으로 오래 살았지.”

‘죽어서나 사마령을 보게 되겠군요.’

“틀림없이. 허허허! 적지인살이 보물을 구해왔어. 그때 말일세. 허허! 믿게, 우린 구천에서나마 틀림없이 사마령을 보게 될 거야.”

‘믿죠, 대형.’

“어서 준비하세나.”

비원살수와 미안공자가 갑자기 바빠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허함이 사라지고 생기가 되살아났다.

묵월광 살수들은 소고까지 모두 스물아홉 명이다.

그들 스물아홉 명이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죽음의 결전에 합류했다.

소고는 야시장을 거닐었다.

밤에는 들썩거리는 야시장이지만 낮에는 썰렁하기만 했다. 간혹 노점을 펼쳐 놓은 곳도 있지만 파리만 날릴 뿐 장사는 되지 않았다.

야시장은 밤이 되어서야 활기를 되찾았다.

소고가 걸어가고… 스물여덟 명의 살수들이 뒤를 쫓았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는가 하면 섬뜩한 느낌을 주는 사내도 있다.

기괴한 이들 일행의 행보는 벌써 여러 사람의 귀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개방에, 하오문에… 그리고 숙부들, 소천나찰과 공지장을 죽인 자들에게.

소고는 야왕을 죽였던 공터에서 걸음을 멈췄다.

간밤에도 파락호들이 술자리를 벌인 듯 닭 뼈와 빈 술독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적사, 자리 잡아.”

적사가 사방을 둘러봤다.

적이 얼마나 강한지는 직접 부딪쳐 봐야 알겠지만 소문에 의하면 무척 빠른 자들인 것 같다.

빠름이라면… 축혼팔도도 못지않다.

‘가장 넓은 곳에서 단번에 끝낸다.’

적사와 십이도객은 야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일렬로 늘어선다. 축혼팔도는 단번에 승부를 낸다. 잊지 마라. 최선을 다해라.”

십이도객이 일렬로 늘어섰다.

“칠 살수, 준비해.”

명을 받은 칠 살수가 각기 은신처를 찾기 시작했다. 칠 살수의 무공은 살혼부에서 물려받았으니 단연 암습이 강하다.

화령 살수들은 소고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편하게 앉은 여인도 있고,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여인… 그녀들은 그저 편한 대로 앉았거나 섰다.

‘과연 이 길만이 최선인가.’

문득 번민이 생겼지만 이미 늦었다.

야시장 저편에 일곱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지축이 뒤흔들렸다. 아니, 땅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곱 사내가 지축을 뒤흔들며 걸어오는 듯 느껴졌다.

‘엄… 청난 기운이다!’

대도를 어깨에 걸치고 있던 적사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일곱 사내는 서서히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준다.

소고와 소여은도 바짝 긴장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강하게 느껴진다.

기운과 무공은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강한 기운을 흘려내면서도 약한 사람이 있고, 기운은 미미한데 실제로 싸움을 벌이면 뜻밖에도 강한 사람도 있다.

기운을 볼 때는 안으로 갈무리된 기운까지 봐야지 겉으로 드러난 기운만 봐서는 안 된다.

소고나 소여은 정도 되는 무인들은 겉 기운은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너무 강한 기운이 흘러나와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겉으로 흘러나온 기운이 저 정도라면… 대단하다!’

과연 살수문파를 몰살시킬 수 있는 무인이다.

일렬로 늘어서 있던 십이도객 중 여섯 명이 도를 뽑았다.

스르릉! 스릉!…

소리가 일정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도를 완전히 뽑아 들었을 때 다른 사람은 절반쯤, 혹은 이제 뽑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눈앞의 적 한 명만을 노려본 채 도를 뽑았기 때문이다.

적사가 옆에 선 도객의 어깨를 붙잡았다.

도객이 적사를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먼저 맡은 적이니 자신이 먼저 상대해야 한다는 고집이다.

적사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저벅! 저벅!…

십이도객 중 여섯 명이 도를 뽑아 든 채 걸어 나갔다. 야시장에 나타난 고수들도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다가왔다.

열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신의 적이 누군지 확실히 정했다. 대부분 도객이 강한 눈길을 쏘아내면 눈길을 받은 사람이 마주 쏘아왔다. 그러면 상대가 정해진 게다.

저벅! 저벅!…

속도도 보폭도 변함없는 걸음… 일순,

쒜에엑!

여섯 도객이 거의 동시에 축혼팔도를 펼쳤다.

섬광처럼 빨라서 도광이 허공에 머물렀다 싶은 순간 사라져 버렸다.

상대도 빨랐다.

검을 사용한 자도, 장법을 사용한 자도, 각법을 사용한 자도… 도객들이 도법을 구사한 데 비해 적들은 각기 다른 무공을 사용했지만 빠르기는 추측을 불허했다.

모두 언제 무슨 초식을 펼쳤는지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다.

스륵! 스으윽!…

여섯 도객이 힘없이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일부는 허리가 반으로 갈렸고, 일부는 온몸에서 피를 흘렸다.

“엇!”

적사는 깜짝 놀랐다.

축혼팔도는 정확히 일곱 명 중 여섯 고수를 베어갔다. 한 명이 남지만 어쩔 수 없다.

상대의 반격도 빨랐다.

적사가 보기에는… 어느 쪽도 쉽게 기선을 잡지 못할 만큼 빨랐다. 거리도 무척 가깝다. 일도는 전개하지만 이도는 전개할 수 없을 만큼 가깝다.

여섯 도객이 동귀어진까지 생각하며 펼친 공격이다.

쓰러진 사람은 여섯 도객뿐이다.

적들은 태연하게 걸어오고 있다. 손에 든 검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도객의 몸을 갈라낼 때 묻은 피다.

일렬로 늘어서 있던 나머지 여섯 도객이 도를 뽑았다.

그들은 마중 나가지 않았다.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까지 다가오도록 기다렸다.

공격에 실패하더라도, 먼저 간 여섯 도객처럼 단 일격에 쓰러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칠 살수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저벅! 저벅!…

적은 서둘지 않고 다가왔다.

천외천 무인들은 걸음을 멈췄다.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노점상을 비집고 나와 여섯 무인의 길목을 가로막은 사람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다.

얼굴이 이리저리 뒤틀려 있는 사람이 장님에다가 사지마저 없는 사람을 업고 있다. 그 옆에는 역시 다리가 없는 앉은뱅이가 한 손으로만 바닥을 짚으며 기어 나왔다.

‘이 자들은…?’

백천의는 기인들이 뭘 하려는지 유심히 살폈다.

강변에서 뜻하지 않게 한 명을 잃은 터라 낯선 행동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높았다.

얼굴이 찌그러진 자는 사지가 없는 자를 반대쪽 노점상이 있는 곳에 앉혔다.

천외천 고수들이 지나가는 길목 양쪽에 각기 한 명씩 앉은뱅이가 앉아 있다.

미안공자는 길 한가운데 앉았다.

베고 가든 스쳐 가든 마음대로 하라는 배짱이다.

‘이게 뭐 하는 수작…?’

백천의는 세 기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살혼부! 살혼부를 잊고 있었군. 살혼부 살수들이라… 후후! 십망을 피하기는 했지만 대가를 톡톡히 치른 모양이군. 그러고 보면 십망도 괜찮았는데… 가만! 저것은!’

살혼부 살수들의 몸이 흥건히 젖어 있다.

강물에라도 뛰어들어 갔다 나온 듯 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약간 이상한 냄새도 난다.

백천의는 맞은편에 있는 묵월광 살수들을 봤다.

그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있다.

여섯 도객이 도를 빼 들고 덤벼들 때만 해도 모두 이곳에서 죽겠다는 의지가 강했었는데…

“피해!”

백천의는 고함을 버럭 질렀다.

미안공자는 소여은을 봤다.

세상에 딸 자식이나 다름없는 제자를 사랑하는 사부도 다 있다니.

그런 마음만 들키지 않았어도 사랑하는 제자의 응석을 마음껏 받을 수 있었는데, 제자와의 거리가 이렇게 멀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뒤돌아 있는 소여은은 여전히 아름답다.

굴곡 있는 몸매, 가늘고 부드러운 목….

미안공자는 텅 빈 가슴을 채우지 못한 채 비원살수를 봤다.

비원살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청면살수를 봤을 때, 청면살수도 자기를 볼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살혼부 폭멸공!

소고, 소여은, 적사는 폭멸공에 대해서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살혼부 살수이자 사부… 사숙, 백부인 그들은 세 방위를 차지하고 앉았다. 기름에 흠뻑 젖은 채.

세 사람은 분신할 것이다.

몸이 활활 타올라 도저히 뜨거워서 견딜 수 없을 때 살이 이글이글 녹아 들어갈 때 응축시켰던 진기를 쏘아낼 것이다.

목표도 없고 방위도 없다.

살점이, 불덩이가 사방으로 비산할 것이고, 야시장은 거대한 폭발에 휘감긴다.

폭멸공을 본 적은 없지만 일시에 천여 군데에 달하는 곳을 폭파시킬 수 있다고 하니 완전히 인간 도화선이다.

소고는 물러서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폭멸공 앞에 산 자는 없다.

적과 싸우다 죽는다면 몰라도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다.

은신 중이던 칠 살수가 물러섰고, 화령 살수들이 물러섰다. 적사와 여섯 도객은 가장 나중에 물러섰다.

소여은은 몸을 돌렸다.

사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사부는 분명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았으리라. 그 눈짓을 보게 되면… 평생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마주 볼 수가 없다.

“복마삼사!”

미안공자가 알지 못할 고함을 쩌렁 내질렀다.

동시에 그의 몸에 화악! 하고 불길이 일었다. 그의 몸에 붙은 불길은 비원살수, 청면살수의 몸으로 번졌고… 세 사람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점점 오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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