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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38화


소고는 야시장을 숙부에게 맡기기만 했을 뿐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야시장 하나 보고 평생 살 것도 아닌데.

이중, 삼중으로 방어막을 쳐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는 것은 일이 터진 후에야 알았다.

-북삼사.

그 말속에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공지장이 탈 마차는 석심광검이 불렀다. 그러나 마차를 몰고 온 사람은 늘 미안공자다. 사람들은 항상 미안공자가 오는 줄 몰랐다. 마차의 모양이 달랐고, 색깔이 달랐고, 말이 달랐다.

많은 것이 다르니 사람은 같더라도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장사하기도 바쁜 판에 마부석에서 내려오지도 않는 사람을 눈여겨볼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어느 마방에서 일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청미연은 마방 앞에까지 왔으면서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중원 마방 거의가 하오문과 밀접하다.

그들 대부분은 하오문도이고, 직접적으로 하오문과 연관이 없어도 한 길 넘어 두 길 정도로 인연을 맺고 있다.

미안공자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그런 마부가 있냐고 물어보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미안공자가 마차로 신비의 고수들을 속여 넘겼으니 마방이란 마방에는 모두 감시의 손길이 뻗쳐 있을 게다.

미안공자는 자신이 일한 마방을 일러두지 않았다. 어디 적어놓은 것도 없다. 그러면서 마차로 탈출하라고 했다. 당시 상황으로는 많은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답답하기만 하다.

‘이것 참 답답하네. 여기까지 왔는데 물어볼 수도 없다니.’

청미연이 아는 것은 미인계뿐이다.

한 가지, 아는 게 더 있기는 하다. 사내가 몸을 탐할 때 감쪽같이 죽이는 방법. 그것만은 옆에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도 발각되지 않을 만큼 교묘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미인계나 살인 기술 같은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말이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다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내뱉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지.

청미연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부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청미연은 아름답다. 요염하다. 기녀가 아니라서 더욱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원래 손이 닿지 않은 높은 곳에 열린 열매가 더욱 탐스러워 보이는 법이니까.

“마차를 사실려고 그러십니까?”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진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네.”

“어디까지 가시려구요?”

청미연은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위험천만한 방법이지만 그 방법이 아니면 미안공자가 일했던 마방을 찾아낼 수 없다.

청미연이 말했다.

“여기 야시장이 유명하다면서요?”

“북.”

사내가 난데없는 말을 해왔다. 청미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

‘북삼사.’

사내는 북삼사를 말하는 것 같다.

‘함정이야!’

청미연은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했다.

“북, 삼이요? 그게 뭔데요?”

“소저, 야시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모르시오?”

“네. 왜요?”

“소저는 어디 사는 뉘신지…?”

“어멋! 정말 별걸 다 묻네요? 이상한 사람이야.”

청미연은 태연하게 마방을 물러나왔다. 마부는 의심 없이 등을 돌렸다.

사내를 품에 안은 상태에서 죽이려면 살갗의 경련은 물론이고, 눈빛조차도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열락에 들뜬 몸과 눈… 그 상태 그대로 죽음을 펼쳐야 한다.

한낱 마부가 청미연의 몸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낼 수는 없다.

아니, 의심을 하고 뒤를 쫓을 수도 있다. 그것 역시 필요 없는 짓거리가 되겠지만.

청미연은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는 찾을 수 없어.’

소여은은 일곱 화령 살수들을 모두 풀었지만 그녀들이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은 짐작했다. 하오문과 연관이 있고, 신비의 고수들과도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미안공자의 종적을 물어보는 것은 ‘나 죽여라’고 소리 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미안공자는 어떤 식으로 마차를 움직였을까…?

마방에는 어떻게 잠입했을까? 미안공자의 얼굴은 밝은 대낮에 드러내 놓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징그러운데…

그런 얼굴을 받아줄 마방이 있을까? 있다. 말을 아주 잘 다루면 고용한다. 특별한 일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고, 그런 일은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재주가 뛰어난 마부를 필요로 하니까.

그리고 그런 일은 대부분 마방주가 직접 관리한다.

‘하오문 마문 문주!’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소여은은 하남 마방을 총괄하는 하오문 마문 문주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공자는 여러 사람에게 떠드는 것보다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는 성격이다.

마방 마부들은 ‘문주’라고 부르고, 하오문에서의 정식 명칭도 ‘마문’이니 등원훤의 직위는 문주가 틀림없다. 하지만 그 위에는 망주가 있고, 그 위에는 모지가 있고, 모지 위에는 진짜 문주가 있다.

소여은은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말 울음소리가 기운차게 들리고, 곳곳에서 투전을 벌이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마부들이 횃불을 밝히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투전을 하기도 한다.

소여은은 안으로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무림은 ‘하오문 무리들’이라며 하오문을 멸시하지만 소여은은 이들에게도 숨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힘은 단결력이다.

무공은 뛰어나지 못하다 해도 하오문도가 일치단결하면 무서운 힘이 된다.

스스스슥!…

마문 문주 등원훤의 처소에 다다를 때까지 소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소여은은 수월하게 잠입했다. 하오문도는 마문을 제외하고는 활동을 중지해서인지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았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봉창에 구멍을 냈다.

등원훤은 탁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쉽게 풀리지 않는 골칫거리를 만난 듯 잔뜩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았다.

소여은은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여차하면 등원훤의 목을 벨 심산이다.

등원훤은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했다.

“늦게 왔군요.”

등원훤이 내민 한 장의 미인도를 보자 할 말을 잃었다.

미인도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져 있고, 옆에는 유일 제자 소여은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소여은… 그 이름도 미안공자가 지어주었다. 그전에 그녀는 단지 적각녀일 뿐이다.

“낮에 한 여인이 들러서 야시장을 묻고 갔다던데… 화령 살수 맞습니까?”

등원훤은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네.”

“위험해요. 당장 화령 살수를 빼고 내일부터 매일 이 시간에 다섯 명씩 보내세요. 모두 몇 명이나 가는 겁니까?”

“스물세 명요.”

“음!… 닷새 걸리겠군요.”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

“하오문이 왜 묵월광을 도와주는 거죠?”

“문주님께서는 살문주 덕분에 복위하셨죠.”

“그건 알아요. 그런데도 살문과 인연을 끊은 것까지.”

“묵월광도 그랬죠. 살문은 묵월광을 위해서 헌신했지만 묵월광은 살문을 치려고 했죠.”

“…”

“구파일방은 살문 관계를 끊으라고 했지 살수문파와 끊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죠. 후후후! 우린 살문주의 아버지가 적지인살이란 걸 알고 있고 적지인살이 살혼부 살수라는 것도 파악해 놨죠.”

갑자기 종리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묵월광 살수들이 마방으로 잠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등원훤은 다섯 명을 하루에 걸쳐 길게 내보냈다.

팔부령 쪽으로 가는 짐마차에 한 명 실어 보냈고, 마부로 마부석에 얹혀 한 명도 내보냈다. 한 명은 유람객 틈에 실어서 내보냈다.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기회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시시때때로 틈이 생길 때마다 한 명씩 실어 보냈다.

기회는 많았다. 마방에는 마차가 마흔 대가 넘고, 관리하는 말도 백여 필이 넘는다. 마방은 장터에 버금갈 만큼 소란스러웠고, 복잡하다. 마방에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인마차보다 물건을 나르는 짐마차가 더 많다.

한두 명쯤 슬쩍 하남성 밖으로 빼돌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수고를 해야 한다.

하남성 밖으로 빼돌리는 것 정도로는 안 된다. 팔부령까지 날라야 하고, 팔부령에서도 소림백팔무인이 있지 않은 곳에 내려줘야 한다.

무림에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은 소문만 나도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러잖아도 살수들에 이어 하오문도까지 치도곤을 치르고 있는 판인데.

나흘이 지나고 닷새가 돌아왔다.

제일 마지막으로 적사가 짐칸 사이에 끼어 탔다.

적사에게는 십여 일 분의 건포가 주어졌다.

‘대소변도 이 안에서 해결하고… 말 안 해도 잘 알겠지만 절대 바깥으로 나와선 안 되네. 우리가 도와준다는 점을 잊지 말고, 하오문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게.’

절대 하오문에 누를 끼치지 말라는 소리다.

설혹 검문에 걸려 창에 찔리는 한이 있더라도 비명을 지르지 말고 곱게 죽어달라는 말이다.

적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뚜껑이 닫혔다. 그리고 그 위에 물건들이 차곡차곡 쟁여지기 시작했다.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손가락만 한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또 밖을 볼 수 있으니까.

다각, 다각!…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리추의 배려로 힘들게 하남성에 들어왔지만 짐칸에 실려 쫓기듯 하남성을 떠나고 있다.

‘다시 돌아온다. 그때는 반드시 축혼팔도의 매서운 맛을 보여줄 터… 그동안 잘 있거라.’

적사는 죽은 육도객에게 마음을 전했다.

그들은 중원에 들어와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갔다. 청면살수가 펼친 폭멸공은 육도객의 육신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다각다각!…

마차가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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