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55화
이인일조로 구성된 살문 살수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들이 일으킨 살인은 작았지만, 만인 앞에 공표한 방문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명망 있는 사람이거나 평소 후덕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인지라 경악은 더욱 컸다. 죽은 사람의 죄상을 낱낱이 적어놓아 만인 앞에 공고한 것도 치명적이다. 손속이 끔찍해서 눈을 뜨고 쳐다볼 수 없는데, 평소의 죄상까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사람의 목숨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평생 쌓아 올린 공적마저 죽여버렸다. 두 번, 세 번 죽은 격이다. 살수들은 과연 악인인가, 협의지사인가? 도무지 정의를 구분할 수 없는 사건이 중원 각지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졌다. 무인들은 경악했지만 검을 뽑지 못했다. 검을 뽑기에는 죽은 자들이 너무 후안무치하다. 죽은 사람들과 연관 있는 친인척도 공식적으로는 보복을 맹세하지 못했다.
살문 살수들이 벌인 살인은 복수극이다. 힘없는 사람이 힘있는 사람에게 억눌려 당하던 끝에 마지막 발악을 한 것이다. 협의지사, 대인이라고 칭송받던 사람들이 사전에 알았다면 그들 역시 검을 뽑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사건들이다.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간의 안면을 생각해서 사소한,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사소한 행각 정도는 묻어두고 있었을 수도 있다.
살문 살수들의 살인에 무림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암중으로는 부지런히 흉수를 찾아다녔다. 이때야말로 전부터 준비해 놨던 비객이 움직일 때이며 천외천이 진가를 발휘할 때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죽은 자도 나쁘지만 죽인 자도 나쁘다. 살수들은 분명 아무 조건 없이 의로움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죽인 것은 아닐 게다. 한 명 죽이는 데 얼마를 받았을까? 열 냥? 백 냥? 천 냥? 청부한 사람들이 짓눌림을 당하면서도 돈이 없어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돈은 받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래도 대가 없이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게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들, 살수. 그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죽여야 한다. 사람 목숨을 돈으로 바꿨다는 자체가 죽일 놈들이다.
그들은 살문 살수들의 행적을 손쉽게 찾아낸다. 이목을 한군데로 집중시킨 무림의 눈은 살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앞으로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살인이 일어날 것인지 간단하게 예측해냈다. 비객과 천객은 움직였다. 살문 살수들… 단 두 명만이 전부인 살문 살수들…… 일부는 접전을 벌였고, 일부는 도주하기에 급급했다.
끼익! 끼이익……!
고요한 강변을 노 젓는 소리가 일깨웠다. 무척 단조로운 음향이다. 낚시라도 하는 듯 여유롭기 이를 데 없다.
소여은은 뱃전에 앉아 흐르는 강물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찰랑이는 물결이 손을 간질이는지, 손이 물결을 흐트러뜨리는지 강물에 조그만 파문이 일었다. 강물을 쳐다보며 지나가듯 물었다.
“다른 곳도 위험할 텐데… 우리가 가장 불안해 보였어?”
모두들 급박한 위기에 처해 있다. 천객과 비객은 살문 살수들의 종적을 잡아냈고 단 두 명만으로 그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무공이라면 절대적으로 자신 있던 소여은과 소고가 직접 몸으로 겪어봤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다른 지방에서 살행을 저지르고 있는 살수들도 위험천만하다.
종리추는 뱃전에 앉아 무를 깎아 먹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럼?”
“오곡동을 떠날 때 말했던 것처럼 모두 미끼야.”
“미끼라는 건 알아. 하지만 너무 우연하게 만나서 말야. 마치 잘 짜인 각본 같았어.”
“맞아.”
“……?”
“잘 짜인 각본이라는 말, 맞는다고.”
“……?”
“배고픈 호랑이가 사냥하려고 일어섰는데 많은 먹이가 난무하고 있어. 어떤 것을 잡아먹어야 좋을지 모를 만큼 전부 구미가 당기는 먹이들이지. 호랑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
“가장 가까운 것?”
“그렇지. 그렇게 되어 있어. 모자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첫 사냥감이지. 바로 소고와 너.”
“그렇군.”
“……”
“그럼 소고가 천객과 부딪칠 줄도 알고 있었겠네? 천음에서 말야. 천음까지만 끌어들이면 된다고 했잖아?”
“반반.”
“……?”
“똑똑하면 도주할 것이고 미련하면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지.”
눈을 감고 있는 소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소여은은 소고의 그런 모습을 스치듯 흘겨봤다.
소고는 위기를 넘겼다. 앞으로도 한 달 정도는 요양을 해야 할 깊은 상처이지만 죽지도 않을뿐더러 무공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그녀는 진작부터 깨어 있었다. 깨어나는 순간 앞가슴에 와 닿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고, 소여은 외에 낯선 타인도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냈다. 그리고 타인들이 사내이며,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의 가슴을 더듬고 있다는 것도.
상처를 치료하는 사심 없는 손길이지만 소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창피함이 느껴지고… 눈을 뜨지 못하겠다.
“우리가 미련했다는 거야?”
“……”
종리추는 작은 비수로 무 하나를 거의 다 깎아 먹었다. 아무 맛도 없는 무지만 종리추가 먹고 있으니 무척 맛있어 보인다. 특히 달밤에 강 위에서 먹는 무의 맛은 달짝지근할 것 같다.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돼?”
“……”
“노리는 호랑이가 누구야? 천객은 아닌 것 같은데……”
삼절수사 정군유는 소고를 절명 직전까지 몰아넣을 만큼 강한 자이다. 천객의 무공은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이 ‘최강자’라는 한마디로 간단히 압축된다. 하지만… 어쩐지 느낌이 다르다. 종리추가 모진아와 유구까지 데려왔으니 노리는 자가 따로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
종리추는 무만 깎아 먹을 뿐 정작 궁금한 점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여은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무… 맛있어?”
소고가 일어나 앉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지만 배 안에는 몸을 가릴 그늘조차 없다. 덥다. 무척 덥다. 하지만 더운 것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갈증이다. 피를 흘려서인지 목이 탄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입술이 바짝 마르고 가슴이 갑갑해 터질 것만 같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아직도 혼절해 있을 상처다. 인내와 끈기라면 습관처럼 몸에 붙은 무인도 십여 일은 움직일 수 없는 상처다. 소고는 아픔을 무릅쓰고 일어나 앉았다. 예상했던 대로 상의가 활짝 열려 있다. 가슴이 붕대로 둘둘 말려 있지만 어깨 살이며 배 부분이 환히 드러나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알몸이 백일하에 드러나 있다니.
종리추가 더욱 얄밉다. 소여은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상처를 왜 사내자식이 끼어들어 치료했단 말인가. 가슴을 보고 만지고… 그래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게 뱃전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고 있으니.
세상이 두 겹, 세 겹으로 겹쳐 보였다. 고열에 들끓는 육신은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소고는 이를 악물고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몸 상태가 워낙 안 좋고 정신도 가다듬을 수 없는 처지인지라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걸린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기를 운용하면 열 중 일고여덟은 주화입마를 피하지 못한다.
위험천만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살수에게는 친구가 없다. 지인도 없다. 살수가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묵월광이나 살문 살수들은 여타의 살수 문파들과는 다르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일반 무림 문파에 비해서 하등 빠질 것이 없다.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면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소고는 차분히 몸조리를 해도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해도 누구 한 사람 욕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짐이 될 수는 없어. 그래도 사무령이 되려고 했던 몸인데……’
소고가 억지로 일어나 앉는 것을 보면서도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 말을 걸지도 않았고 달려와 부축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소고의 자존심이다.
모진아는 뱃전 한구석에 앉아 소도로 손톱을 다듬었다. 유구는 끊임없이 노를 저었다. 소여은은 뜨거운 햇볕에 얼굴을 태우기 싫다는 듯 푹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고, 종리추는 무심히 강물만 바라볼 뿐 소고에게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그들 모두 정상에 섰던, 혹은 정상 부근에 섰던 사람들이기에 소고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어떤 관심이든 부담이 된다. 무관심하게, 무덤덤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소고를 도와주는 지름길이다. 육신은 더욱 고달프겠지만 마음은 한결 평온을 찾게 되리라. 그런데,
‘응?’
‘저런!’
무덤덤하게 있는다고 관심조차 없을 수는 없다. 애써 외면을 하고 있지만 곁눈질로는 연신 소고를 살피고 있다. 이목이 영민한 소고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곁눈질까지 파악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 눈길에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들어왔다. 소고의 신형이 심하게 떨렸다. 간질에 걸린 사람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사지를 뒤틀 듯이… 육신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지배당했다. 육신을 지배하는 머리와 머리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육신의 연결 고리가 끊긴 것과 다름없다.
쉬익!
종리추가 신법을 펼쳐 달려왔다. 좁은 뱃전에서 신법을 펼친 만큼 다급한 상황이다. 소고가 보인 증상은 영락없이 주화입마의 징조다.
탁탁! 타타탁……!
양손이 번갈아 움직이며 전신 혈도를 타통시켜 나갔다. 백회혈에서 시작한 지법은 손가락 끝, 발가락 끝까지 머물지 않는 곳이 없었다. 혈도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손가락이 머물렀다가 떠났다.
탁!
이마에 굵은 땀을 흘려대는 종리추가 마지막으로 장심을 갖다 붙인 곳은 명문혈이다.
“너무 서둘지 마.”
종리추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말했다. 검상도 중한 상태에서 기혈까지 뒤틀렸으니 한동안 운기를 할 수 없는데도, 언제 어디서 천외천 무인들이 나타날지 모를 판국인데도, 소고의 상태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데도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소고는 등을 종리추의 가슴에 기대고 은빛으로 찰랑거리는 강물을 바라봤다. 하염없이…… 머릿속이 텅 빈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은빛으로 찰랑이는 것은 강물이고 푸른 녹음을 드러낸 것은 나무다. 노를 젓는 사람은 유구고… 그리고 또 배, 나뭇조각, 하늘…… 세상은 있는 그대로일 뿐 아무 느낌도, 감흥도 들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지? 중원 전 무림이 적인데, 겨우 몇 사람 가지고……”
“……”
“말해 봐.”
“서 있지 않으면 쓰러져야 하니까.”
“훗! 간단하네.”
“간단하지.”
종리추는 소고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리고 소고의 귓가에 입을 대고 배에 동승한 모진아, 유구, 소여은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로 몇 마디 중얼거렸다.
소고의 봉목이 부릅떠졌다. 하늘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큼이나 놀란 듯 멍한 표정으로 종리추를 쳐다봤다.
“미, 미쳤어!”
한참 만에야 의지와 상관없는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그럴지도 모르지.”
“무, 무슨 짓이 그런……”
“방금 전에 말했잖아, 서 있지 않으면 쓰러져야 한다고.”
소고는 경악을 풀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몇 마디 말이라도 더 건네볼 텐데 너무 놀라서인지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휴우!”
소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밖에 내쉴 것이 없었다.
부엉! 부우엉……!
부엉이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부우엉……!”
종리추의 입에서도 영락없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부엉! 부엉……!
날이 저물어 사위가 캄캄한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부엉이 울음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지속되었다. 마치 배가 접안할 곳을 안내라도 하는 듯.
배가 부엉이 울음소리를 쫓아 강가에 접안했지만 예상외로 마중 나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종리추는 소고를 안아 들고 일어섰다. 소여은은 묘한 질투감을 느꼈다. 종리추와 소고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소고가 어지간히 놀란 것으로 보아 대단히 충격적인 말인 것 같은데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소고와 많은 세월을 붙어 있었다. 중원에서 소고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소고는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여자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질투가 날 만큼 냉정하다. 그런데 놀랐다. 너무 놀라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 왜 소고에게만 말해 주고 자신에게는 말해 주지 않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소여은은 어린을 떠올랐다.
‘풋! 자칫하다간 어린에게 모두 당하고 말지.’
종리추의 제일 부인. 오곡동에 여인들이 많아지자 어린의 신경이 제일 예민해졌다.
“쓸데없이 실실 웃고 다니지 마! 하나는 괜찮아도 둘은 안 돼! 죽을 줄 알아!”
종리추가 소고나 소여은에게 할 말이 있을 때는 꼭 어린이나 벽리군을 대동해야 했다.
“뭐 하는 거야! 상공에게 눈웃음치는 것들이 하나둘인 줄 알아! 눈 똑바로 뜨지 않으면 혼날 줄 알아!”
덕분에 벽리군까지도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린의 모습이 떠오르다니 우습기도 하다. 나이는 가장 어리면서 가장 어른 행세를 하는 여자.
아마도 종리추와 소고의 모습이 다정해 보여서일 게다. 종리추의 품에 안겨 배에서 내리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여서. 아니면 어떤 말을 소고에게만 말해 준 데 대한 소외감이 질투를 유발했고, 종리추를 사내로 보았는지도.
그동안 모진아와 유구는 배를 가라앉히고 들것을 챙겨왔다. 분명히 배에서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니 누군가가 강변에 놓아둔 것이리라. 누굴까? 누가 부엉이 울음소리로 화답하고 배 안의 사정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들것을 준비해 놓았을까.
‘살문 외장?’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개방도는 무인이다. 그들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싸움이 벌어질 때는 기꺼이 싸움한다. 하오문은 절반쯤 무인이다. 무공을 익힌 자도 있고 전혀 익히지 않은 자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살문 외장은 무림과는 거리가 멀다. 무공을 익힌 자라고 해봐야 하오문에서 온 자들이 대부분이며, 나머지는 무공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위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전해줄 뿐이다. 살문 외장 문도들은 말이 문도이지 무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정보를 전해주는 그들 스스로도 자신이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으리라.
그런 사람들이 싸움에 가담할 리는 없다. 설혹 그들이 싸움에 가담할 뜻을 비쳐도 죽음이 산재한 곳에 무지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종리추가 아니다.
살문 살수들이 왔다고 믿기도 어렵다. 현재 오곡동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있다. 소림승과 천객, 비객의 눈을 간신히 가릴 정도에 불과하다. 전국 각지로 흩어진 살문 살수들은 제 앞가림하기에도 급급하다. 누군가 있기는 한데 살문은 아닌 것 같고.
‘그렇군! 하오문이야! 하오문도가 끼어들었어!’
두 여인은 종리추와 밀담을 주고받는 일단의 무리가 어느 쪽에서 온 사람들인지 짐작해냈다. 하오문은 살문에 간여하지 않았다. 살문이 아무리 어려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오문주를 복위까지 시켜주었는데.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은 안다. 만약 하오문이 살문의 일에 간여했다면 지금쯤 하오문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게다. 살문에 협조하는 것은 구파일방에 반기를 드는 것, 도박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끼어들었다. 하오문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번에는 끼어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가? 모두 아닐 것이다. 하오문주의 냉철함은 이미 소문난 터이니.
하오문주는 하오문을 도박판에 올려놓기 위해서 나름대로 판단했을 것이고, 그가 판단하기에 이번이야말로 커다란 도박을 하기에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한 게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오문주가 그런 판단을 했을까? 살문이 중원을 휘젓고 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천외천 무인들의 압박이 코앞에 들이닥친 이상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지경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이면 모두 아는 사실인데.
‘하오문주는 도박할 사람이 아냐. 구 할의 승산으로도 움직일 사람이 아니지. 십 할. 십 할의 승산이 있어야만 움직일 사람이야. 하오문 전부가 움직였다면 십 할 승산이 있다 본 것이고, 일부만 움직였다면 목숨을 건 결사대겠지. 하오문과는 상관없는 사람들……’
어느 쪽일까? 그것 또한 궁금하기 이를 데 없지만 현재로써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소고를 들것에 뉘이자 모진아와 유구가 양쪽을 들었다. 앞은 종리추가 맡았다.
“이야옹! 이야아아옹!”
종리추의 입에서 느닷없이 고양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여은은 문득 풀숲에서 만난 고양이가 떠올랐다. 도둑고양이였다. 들판을 휘젓고 다니며 들쥐나 잡아먹는 도둑고양이가 분명했다. 집고양이보다 훨씬 사납고 날렵했다. 경황 중에 얼핏 본 것에 불과하지만 길들이지 않은 들고양이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소여은의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소고를 등에 업고 필사적으로 뛸 때, 강가에서 배를 찾을 때 보았던 바로 그런 종류의 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옹……! 야아옹……!
고양이들은 산책이라도 하는 듯 여유 있어 보였다. 어떤 놈은 오다 말고 풀숲에 드러누워 땅에 몸을 비벼댔다.
‘맙소사!’
종리추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모여든 고양이는 무려 백여 마리나 넘는다.
“야아옹……!”
종리추는 묘왕이다. 지금 이 순간만은 분명히 묘왕이다. 고양이들은 종리추의 음성을 알아들은 듯 민첩하게 움직였다.
사삭! 사사삭……!
고양이들이 앞을 맡았다. 소여은은 이제야 그때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양이와 우연히 만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고양이가 앞을 경계해 주고 있다.
부엉! 부엉……!
야옹! 야아옹……!
부엉이 소리와 고양이 소리는 신경을 거스르지 않을 만큼 간간이 들렸다. 모진아와 유구는 습관이 된 듯 태연하게 걸었다. 그들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듯했다.
그러던 중,
야아옹!
전면 십여 장 앞에서 날카로운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서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여은도 그 소리가 지닌 의미를 깨달았다. 자신이 고양이와 마주쳤을 때 깜짝 놀란 고양이가 저런 울음을 토해 내었다. 그렇다면 앞서 나가던 고양이가 누군가를 발견했다는 뜻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