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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64화


천애유룡은 극히 짧은 순간에 당했다. 그에게는 온갖 생각이 스쳐 갔겠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게 짧은 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허공으로 솟구치자마자 피보라가 일었다. 전형적인 살수 비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살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 살수들이라는 점이다.

비망사 살수들에게 은신술을 배우면서 한편으로는 실소를, 다른 한편으로는 감탄을 자아냈다. 무림에도 은신술이 존재한다. 은신술이라는 특이한 공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림의 은신술이란 신법과 보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척을 죽이는 데 불과하다. 그렇기에 특별히 은신술만 수련하는 경우는 드물다. 살수들은 이 부분만 집중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분명히 정통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부분인 것은 확실하다.

처음 무공이란 것을 접하면서 암습이나 기습에 사용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있었다. 살수들은 ‘무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기습을 생각한다. 무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부류다.

제오비주는 쉽게 경동하지 않았다. 천애유룡이 죽었지만 비객들 중 섣불리 나서는 무인은 없다. 바로 이것이었다, 은신술을 펼쳐 접근하는 순간부터 어깨를 짓누르던 불안감의 실체가. 종리추에게 방자가 있다. 살문 살수인지 누구인지 알 길은 없지만 뛰어난 살수인 것만은 틀림없다.

제오비주는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

‘사형은 어느 정도나 진전 있는지……’

사형을 생각하자 사매도 떠올랐다. 여화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빼어난 미녀다. 그런 여인을 사매로 두었다는 것이 못내 즐겁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단란한 가정을 꾸미며 오순도순 즐겁게 사는 꿈을 꾸곤 했다. 사매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지만…… 자신의 차지는 아닌 것 같다.

공동파에서 그녀를 사랑할 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육천군, 육천군만이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있다. 그들 중 네 명이 살문과의 싸움에서 죽었고, 대사형 일군과 자신만이 남았다. 살문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폐관 수련을 명받았다. 능공십팔응으로 천하무림을 오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은 갈고닦을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답답하다. 사형들이 죽었는데 가만히 앉아 무공이나 수련하려니 울분이 솟구쳐 견딜 수 없었다. 장문인이 찾아와 비객을 제의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비객에는 하나같이 뛰어난 고수들만 운집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마치 장난감처럼 부서져 나가고 있지 않은가. 천애유룡이 단지 먼저 신형을 솟구쳤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정도이니 말해 무엇 하랴.

‘사매… 대사형이 폐관 수련을 끝내면… 끝내면 천외천에서 빠져나가. 천외천은 안 돼. 천외천은 혈귀들이 모인 곳이야. 사매같이 여린 여자가 있을 곳이 못 돼.’

비영파파가 야속하기도 했다. 사매만은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한다. 무공도 위태롭기 짝이 없고, 무엇보다 무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나 그리고 수나 놓으면 딱 적합한 여자를 무엇 때문에 천외천에 끌어들였단 말인가.

제오비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모두 산 자들의 몫이다. 걱정이나 근심, 고민, 행복…… 모두 산 사람들의 몫이다. 죽은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만 가지의 번뇌도 죽는 순간 끝난다.

제오비주, 공동파 육천군 중 육군이기도 했던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아름답게 펼쳐진 완만한 구릉이 무덤이다. 비망사 살수들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뼈를 묻었던 것처럼 자신들은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된다. 종리추를 완벽하게 제거해야만 끝나는 싸움인데, 종리추에게 검을 들이대기는커녕 숨어 있는 방자조차도 상대하기가 꺼려진다.

제오비주는 손을 들어 비객 두 명을 지목했다. 주목받은 비객들은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막상 죽음 앞에 직면하면 공포로 사지가 굳어진다. 그런 점은 무인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늘 죽음을 옆에 끼고 사는 사람들이라 더욱 생에 대한 갈망이 클지 모른다.

지목받은 무인 두 명은 천애유룡이 그랬던 것처럼 신속하게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비주들도 제오비주와 같은 생각인지 한 명, 혹은 두 명의 무인들이 풀숲을 헤쳐 나갔다. 도합 다섯 명. 기습은 틀렸다. 천애유룡이 죽는 순간 모든 기습 계획은 깨졌다. 이제는 서로가 대치하고 있다는 것을 종리추도 안다.

얄미운 놈이다. 비객이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다. 그것도 반쯤 드러누운 편안한 모습으로. 병기를 꺼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남은 자들은 그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살기를 바라지만 적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니 기습에 대항할 수가 없다. 비망사의 살수 비기를 배우며 뼈저리게 절감했다. 살수들이란 완벽한 기회가 포착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고, 공격이 시작되면 생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하물며 비망사 살수들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는 듯한데.

사사사사삭……!

각 조에서 차출된 다섯 무인은 나름대로 최대한 은신하며, 소리를 죽이며 이동했다. 종리추가 알고 있고, 숨어 있는 방자도 알고 있지만 최대한 몸을 숨기는 것은 기본이다. 그들은 곧 천애유룡이 죽은 지점까지 이르렀다. 기껏해야 칠팔 장 정도 움직인 거리에 불과하다. 신법을 펼쳤다면, 아니, 신법을 펼치지 않고 단순히 뛰기만 했어도 촌각 만에 다다를 수 있는 거리라.

다섯 무인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들은 준비하고 있다. 이심전심이랄까? 모두 종리추를 노리고 있다. 죽을 바에는 종리추를 향해 일검이라도 내지르고 싶을 게다. 순간,

“안 돼!”

제오비주는 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 종리추를 노릴 때가 아니다. 그들을 향해 다가서는 방자들의 병기부터 막아내야 한다. 종리추는 이차 싸움 대상이고, 일차는 자신들과 같은 모습으로 숨어 있는 방자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의 고함 소리는 한발 뒤늦었다.

쒜에엑! 쒜엑……!

다섯 무인은 일제히 신형을 솟구쳐 종리추에게 짓쳐갔다.

쒜엑! 파라라락……!

다섯 무인은 꼬리를 달았다. 어디선가 불쑥 솟구친 인영들이 허공에 솟구친 다섯 무인을 뒤따라 솟구쳤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한 움직임이다. 상대의 병기는 다양하다. 검도 있고 도도 있다. 천애유룡을 죽였던 방절편은 보이지 않는다.

파악! 뻐억! 싸아악……!

기묘한 소리… 듣기 싫은 소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다섯 무인을 급습한 무인들이 어디쯤에 떨어져 내리는가 살펴야 한다. 떨어진 후에는 어디로 이동하는지도. 다섯 무인을 손쉽게 처리한 다섯 그림자는 여느 살수들이 그렇듯 풀숲에 은신했다.

‘뒤로 물러서고 있어!’

제오비주는 몸을 일으켜 서 있는 관계로 납작 엎드려 있는 비객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암습자들은 뒤로 물러서고 있다. 살수들이 사용하는 평범한 은신술을 사용하여 전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종리추에게서 이 장 거리까지 물러선 후 살며시 옆으로 산개했다.

제오비주는 거기까지 보았다. 산개한 적들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다. 대충 짐작하기로는 이 장 거리 어디엔가 숨어 있다는 것뿐.

‘한두 명이 아냐. 적어도 십여 명은 더 있어.’

비객은 종리추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정작 사지에 빠진 것은 비객들이다. 약육강식의 세계, 절대 강자만이 존재하는 세계. 반쯤 비스듬히 누워 있던 종리추가 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차디찬 눈길이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눈빛까지는 읽을 수 없지만 느낌만으로도 소름이 오싹 돋는다.

스르릉……!

제오비주는 검을 뽑아 들었다. 제오비주라는 말, 비객들을 지휘해야 한다는 의무…… 모든 생각이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사형들이 이자의 손에 죽었다. 직접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이자가 이끌고 있는 살수들의 손에 죽었다. 그것은 단지 육천군 중 사천군의 죽음이 아니라 공동파 미래의 죽음이다.

저벅! 저벅……!

제오비주는 검을 축 늘어뜨리고 곧장 종리추를 향해 걸었다. 암습자가 있어도 상관없다. 관계치 않는다. 암습을 가해와 죽는다면 그것뿐인 인생인 게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종리추란 자와 직접 검을 겨루고 싶다. 무공 대 무공으로. 하후가주를 죽인 무공과 능공십팔응을 깨우친 자신의 무공으로.

제오비주는 유구의 손이 까딱거리는 것까지 보았다.

사사사삭!

살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공! 저자가 지휘하고 있었어!’

까무잡잡한 살결의 남만인 유구. 그는 망부석처럼 서 있기만 했다. 하나 사실은 그가 지휘하고 있다. 비객들의 움직임을 샅샅이 훑어보았고 상황에 따라 살수들을 조율하고 있다. 단순한 암습이 아니라 계획적인 암습이 진행되고 있다.

“제오비객은 물러서라! 지금 즉시 여기서 빠져나가!”

제오비주는 마지막으로 일갈을 내질렀다. 그것으로 제오비객들과의 인연은 끝났다. 제오비주가 되어 한 일은 별로 없지만, 무림 영재들의 죽음을 간과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제오비주의 역할은 충실히 한 셈이다.

다른 비객들은 그들 스스로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모두 비주가 있으니. 살문 살수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자신은 호랑이들에게 둘러싸인 닭이나 마찬가지 신세다.

천애유룡이 그랬듯, 다섯 무인들이 맥없이 죽었듯 살문 살수들이 병기를 휘둘러 왔을 때 피할 수 있을까? 피하면… 초원에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는 살문 살수들의 손아귀를 모두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저벅! 저벅……!

제오비주는 마음이 급했다. 살문 살수들에게 급습을 받기 전에 종리추에게 다가가 일검을 내지르고 싶다.

저벅, 저벅! 쒜에엑……!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기어이 신법을 펼쳤다. 공동파 제일의 절학이라고 할 수도 있는 능공십팔응이다.

‘구름 속에 노니는 용이여, 구름 밖으로 나오지 마라. 향기를 뿜어내는 귀신이여, 사천을 벗어나지 마라. 부동은 석상이니, 부처님이 기뻐하네. 세상에 가장 자유로운 것은 허공을 노니는 열여덟 마리 매라.’

실상을 구분하기 힘든 빠른 변화, 쾌검을 흘려 버릴 수 있는 유연성. 정의 대표적인 신법이 소림의 금강부동신법이라면 동의 절정 신법은 단연 능공십팔응이다.

살문 살수들은 제오비주를 막지 않았다. 그들은 제오비주가 염려했던 대로 비객들을 향해 움직였다. 제오비주가 종리추 면전에 이르렀을 때, 초원 한가운데서 첫 비명이 울려 나왔다.

“헉! 끄으윽……”

비명은 이어지고 있다. 비객들이 전멸하든, 살수들이 전멸하든 어느 한쪽이 완전히 몰살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비명.

“종리추?”

“……”

종리추는 팔짱을 낀 채 쳐다보기만 했다. 모두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는 것 같다. 모진아란 자도, 유구란 자도, 소고와 소여은까지도 제오비주의 등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과연 그런 것 같다. 자존심이 처참하게 짓이겨지고 있으니. 적에게 환영받을 리는 없지만, 이토록 무시당하다니.

제오비주는 검을 추슬렀다.

“기회를 줘서 고맙다.”

“어차피 똑같아.”

“……”

“상황을 빨리 분석하는군. 좋아. 덕분에 비객들 중 절반은 목숨을 건질 것 같은데?”

종리추의 말에 제오비주는 고개를 돌려 구릉을 바라봤다. 썰물처럼 빠지고 있는 비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 수는 현격하게 줄어들어 올 때의 절반도 못 되는 것 같다.

완벽한 패배다. 검도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다가서지도 못한 채 패배를 당했다. 제오비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중원 곳곳에 산재한 살수들이 언제 집합했던가. 이렇게 모이려면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상의 신법을 펼쳐 달려왔어야 하는데……

“음……!”

제오비주는 무엇인가 생각나 신음을 토해냈다. 모두들 잘못 알고 있다. 오기가 하오문과 살문을 연결하는 점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까지는 모두의 생각이 맞았다.

오기는 단순히 하오문의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하오문의 연락망은 살문 살수들의 동정을 뒤쫓았고, 이렇게 필요한 때에 한곳에 모일 수 있도록 귀와 눈과 입 역할을 했다. 아마도 이들은 백석강 싸움이 일어나기 전부터 달려오고 있었을 게다. 백석강이 아닌 바로 이곳으로. 오기가 죽음으로써 하오문과 살문의 연계는 끝났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곳이 있다. 후계와 종리추의 연계. 그것 역시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선에서 끝나지는 않으리라. 종리추를 꺾기 위해서는 후계부터 제거해야 한다. 개방을 흑봉광괴의 손에 안전하게 놓은 다음 시작해야 한다. 살문을 고립시키고, 살문의 현 상황을 냉철히 판단한 다음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또 맞게 될 게다.

또 한 가지 치미는 의혹. 살문은 이렇게 강한 문파가 아니다. 종리추가 이끄는 살수들도 구류검수나 혈영신마와 같은 몇몇 무인을 제외하고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무지렁이들이다. 그들만으로 이렇게 강할 수는 없다. 비객 한 명이 죽으면 살문 살수도 한 명쯤은 죽어야 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두 명에 한 명은 죽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렇지 않다. 비객들만 몰살하고 있다.

‘사, 살수 비기!’

제오비주는 원인을 쉽게 찾아냈다.

“크으윽……!”

비객 한 명이 죽었다. 도끼로 정수리를 내리찍혀 죽었다. 그 비객은 뛰어난 무인이었으나 도끼가 내려올 때까지 상대의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다. 모든 게 확연해졌다. 무공으로 싸우면 제오비주의 생각이 맞겠지만, 살수 비기로 싸워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살문은 비망사가 지니지 못한 또 다른 비기가 있다.

‘생각을 잘못했어. 비망사의 살수 비기를 익힌 것이 오히려 독이 됐어. 이자들은 무공으로 제압해야 돼. 하하! 자신의 무공이 최고인 거야. 남의 손에 든 떡은 아무리 커 보여도 남의 떡인 것을.’

제오비주는 진기를 끌어올려 능공십팔응을 펼쳤다. 비객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지겹다. 종리추와 대화를 지속할 필요도 없다. 싸우다가 죽일 수 있으면 죽이는 것이고 죽이지 못하면 죽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이렇게 검을 들고 맞설 수 있으니.

‘변화환심.’

능공십팔응의 구결이 머리 속을 휘저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마음이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 세상이 변했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고 보면 변하지 않은 것이요, 변하지 않았어도 변했다고 보면 변한 것이다.’

모든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일어난다.

쒜에엑……!

검은 복마검법을 택했다. 다른 검법도 많지만 공동파에 처음 입문했을 때 접했던 검법이 복마검법이다. 무인은 자신의 검을 믿어야 한다.

단순한 진리인데도 믿지 못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구십여 명에 이르는 후기지수들이 믿지 못했다. 그래서 비망사의 살수 비기까지 습득한 것이 아닌가.

금강부동신법, 능공십팔응이 뛰어난 신법이지만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다. 자신이 익히고 있는 신법을 극성으로 익히면 그것이 최강의 신법이다.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삼류 무공이라 해도. 신법과 마찬가지로 검도 같은 길을 간다.

복마검법, 음양검법…… 중원 무인들이 수련하는 검법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 어느 검법이 가장 뛰어난가?

우문이다.

가장 뛰어난 검법은 없다. 누가 얼마만큼 검을 몸에 붙였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라진다. 제오비주는 복마검법을 가장 잘 안다. 너무 잘 알아 무시하기까지 한다. 복마검법보다 더 뛰어난 검법을 찾아 무고에서 산 적도 있다. 이제야 알았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검법은 오직 복마검법뿐이라는 것을.

쒜에엑……!

두 발은 양극을 번갈아 밟아 변화를 추구하며, 검은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종리추의 목젖을 노리고 쏘아갔다. 종리추가 신형을 비틀었다. 어깨만 살짝 움직여 피해낸다. 제오비주의 검이 찌르는 검에서 베는 검으로 변했다. 능공십팔응의 난해한 신법이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지고한 절학, 복마검법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종리추의 신형이 뒤로 꺾였다. 오른쪽 무릎에 몸의 중심을 담고 상반신에서 힘을 뺐다. 이런 신법은 상반신을 되튕기는 데 유리하다.

파파팟!

제오비주는 종리추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베는 검은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찍는 검으로 변모했다. 그때,

쉬익!

종리추의 신형이 뒤로 눕혀진 상태 그대로 빙글 돌았다. 제오비주를 피해 멀리 도망간 것이 아니라 제오비주의 몸 쪽으로 바짝 다가붙었다. 옆구리에 붙으려고 이 보를 옮긴 제오비주, 제오비주를 향해 신형을 돌린 종리추.

두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근접했다.

슈우욱……!

종리추의 손에서 은빛 광채가 번쩍였다.

‘위험!’

상대의 손속이 더 빠르다. 제오비주는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고 종리추는 예측했다. 다시 말하면 제오비주는 종리추의 신법 변화를 짐작하지 못했지만, 종리추는 능공십팔응의 변화를 계산했다.

제오비주는 신형을 물리려고 했다. 일단은 몸을 뒤로 빼야 한다. 상대의 공격 범위 내에서 물러서야 한다. 기선을 제압당한 상태에서 맞겨루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푸욱!

종리추는 물러서는 것을 용납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은빛 광채가 요혈 중의 요혈인 단전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검의 반격을 피해낼 자신이 있을 때만 펼칠 수 있는 오만방자한 공격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제오비주는 그런 공격에 당했다.

파아앗!

제오비주는 마지막 진기를 모두 쏟아 부어 일검을 펼쳤다. 종리추와는 몸이 맞붙어 있다. 종리추는 아직도 오른 무릎에 신체의 중심을 싣고 있다. 상반신이 뒤로 눕혀져 있고 오른손은 단전에 닿아 있다. 제오비주의 왼손은 종리추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오른손은 종리추의 배를 향해 그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행동을 잘못 판단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종리추가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움직였다. 상반신을 튕기듯 일으킨 종리추는 일어나는 기세를 빌려 단전에 닿아 있는 오른손에 힘을 가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던졌다.

제오비주의 몸은 허공을 날아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빌어먹을……!’

제오비주는 난생처음 상소리를 했다. 어둠 저편으로 침잠하는 의식 속에 여화의 아름다운 자태가 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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