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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9화


“뭐얏!”

수천 호법의 눈꼬리가 거칠게 솟구쳤다. 신장은 육 척에 가깝고 체격이 바위처럼 단단한 사람은 흔치 않다. 거기에 코까지 주독에 걸려 빨갛게 부어오른 사람은 더더욱 흔치 않다.

“네놈들은 눈깔이 없구나. 눈뜬장님이야. 눈뜬장님!”

수천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생각 같아서는 눈을 뽑아버리고 머리를 으스러뜨리고 싶었다.

“요, 용서를! 놈은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걸개는 이미 시험해 본 사람이라 그냥 보냈다는 말까지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사결인 수천 호법 역시 시험에 동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결제자를 불러 뒤를 밟게 하고 시험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걸개가 하고 싶은 말은 호법을 욕되게 하는 말이었다.

‘너무 늦게 알았어. 늦게…’

수천은 분기를 삭혔다.

“비조선을 준비해라. 비조선이란 비조선은 모두 끌어 모아. 지금 당장!”

비조선은 소형선으로 좌우에 두 단의 노가 있다. 버들잎처럼 가늘어 물살을 헤쳐 나가기 좋으며, 빠르기는 전투선인 안택선보다도 빠르다. 승선 인원은 열 명. 수천 호법은 급히 끌어 모은 비조선 스무 척에 사 개 분타 문도를 승선시켰다.

“백하를 철통같이 지켜라. 아이를 데리고 있는 중년 남자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승선시키지 마. 가자!”

비조선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건 뭐지?”

“비조선인데… 무슨 일이지? 이 배에 현상범이라도 탔나?”

“아니야. 개방도 같은데? 봐,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거지잖아.”

“정말이네. 요즘 하남성이 시끌벅적하던데 그 일 때문인가?”

“적지인살이라고 아주 흉악한 놈이 설친다던데, 그럼 설마 이 배에… 에이, 아니겠지.”

아름다운 풍광에 흠뻑 젖어 있던 손님들은 한결같이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비조선을 타고 달려오는 개방도보다 혹시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 적지인살이 더 두려웠다. 살수. 이것보다 더 두려운 말은 없었다. 더군다나 적지인살은 산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긴다는 흉악한 놈이지 않은가.

“반 돛을 달아라!”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원들이 밧줄을 움켜잡고 돛 폭을 절반쯤 끌어내렸다. 범선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반면에 비조선은 쏜살같이 접근해 왔다. 비조선 두 척이 범선을 앞질러 앞으로 나갔다. 나머지 비조선은 겹겹이 에워싼 좌우로 늘어섰다. 비조선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검문선을 다루는 수군이다. 검문선은 비조선을 키운 것으로 이십여 명의 수군과 십여 명의 노수가 타는데, 빠르기는 먹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독수리 같았다. 걸개들의 노 젓는 솜씨는 수군의 노수 못지않았다. 좌우로 늘어선 비조선들 중에 다섯 척이 빠져나오더니 접현을 시도했다.

“돛을 내려라!”

걸개들의 의사를 파악한 선장은 순순히 응했다. 검문선처럼 화포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개방을 무시할 만한 선장은 아무도 없었다. 선원들이 반 돛마저 내리자 범선은 강심 한가운데 멈췄다.

“밧줄을 내려!”

선원들이 밧줄 한 무더기를 들고 와 바다에 던졌다.

‘침착해야 돼, 침착. 놈은 여우야. 침착하지 않으면 당해.’

수천 호법은 시원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켰다.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수천 호법에 이어 범선에 승선한 걸개들은 미리 약조라도 한 듯이 일정한 방위를 점했다. 타구봉을 든 걸개들. 그들이 우르르 몰려 있을 때는 빈대, 벼룩이 득실거리는 거지 떼에 불과했는데, 일정한 방위를 점하고 서자 바위처럼 단단한 막이 느껴졌다.

‘저게 타구진이군.’

손님들은 불안해하면서도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진풍경에 관심을 보였다.

“선실에 있는 사람을 모두 불러내시오. 나오지 않고 있다가 당하는 봉변에 대해서는 뭐라고 원망하지 마시오.”

수천 호법의 말은 곧 명령이었다. 수하들은 개방도가 아니라 선원이었다. 선원들은 수천 호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실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을 끌어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수천 호법은 한 사람, 한 사람씩 점검해 나갔다. 점검한 사람은 고물 쪽으로 가게 해서 점검하기 쉽게 했다. 점검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들, 그 사이에는 수천 호법과 타구진이 존재했다. 수천 호법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여자 두 명이 고물로 총총히 자리를 옮겼다. 범선에는 중년인이 유난히 많았다. 대부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라 혈색도 좋았다. 수천은 중년인의 앞에 서서 뚫어지게 얼굴을 노려보았다. 중년인의 얼굴에 불안한 표정이 떠올랐다.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찌나 하는 심정이 그대로 읽혔다. 중년 사내는 키가 육 척에 체격이 단단한 사내와는 거리가 멀었다. 키는 겨우 오 척을 넘었을까 싶을 만큼 작았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했는지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그는 무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천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수염을 당겨보기도 하고 눈꺼풀도 뒤집어보았다.

‘상대는 여우야. 미련할지 모르지만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아.’

중년인은 난데없는 봉변을 고스란히 당했다. 수천 뒤에 늘어서 있는 걸개들도 무서웠지만 수천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사내는 독사를 만난 개구리였다. 적지인살은 암담했다. 수천 호법은 무인이든 아니든 확실히 아니다 싶은 사람까지도 세세하게 확인한 다음에나 통과시켰다. 적지인살은 걸리는 게 많았다. 얼굴 가죽은 소청제를 쓰지 않는 한 벗겨질 리 없지만 뚫어지게 관찰하면 이음매가 드러난다. 아무리 뛰어난 변장술을 지녔다 해도 사람이 만든 얼굴은 티가 나게 되어 있다. 특히 걱정되는 부분은 눈썹이었다. 아교로 붙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말릴 시간이 없어 수천 호법처럼 점검한다면 아교 자국을 단번에 발견하리라.

‘빠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오다니.’

강심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은 역시 강이었다. 하나 지금은 그것도 용이치 않았다. 수천 호법은 도망갈 길을 모두 차단하겠다는 듯 비조선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래도 강행한다면 자신의 몸뚱이는 강심에 뛰어들기도 전에 고슴도치가 되고 말 게다. 개방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기가 있다. 유엽도 열 자루로 전개하는 비도술, 십화토예가 그것이다. 꽃송이 열 개가 무지개를 토해낸다는 말처럼 십화토예는 환상적인 비도술이다. 강심으로 뛰어드는 순간 절정에 이른 십화토예를 펼칠 자가 적어도 대여섯 명은 되리라. 적지인살은 자신도 모르게 종리추를 쳐다보았다. 이 곤궁을 헤쳐 나갈 묘수는 없는 것인가. 쥐들을 부르는 능력처럼 배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묘기는 없는 것인가. 종리추는 예쁜 얼굴로 활짝 웃고 있다. 수천 호법의 점검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어린아이에게 무얼 기대하겠다고… 훗! 나중에 형님들을 만난다면 정말 할 말이 많군.’

적지인살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수천 호법은 시간과는 상관없다는 듯 차분히, 끈기 있게 점검했다. 유람을 즐기러 범선에 오른 손님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가시오.”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삼십 대 장한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이며 고물로 갔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타구진을 형성하고 있는 개방도는 석상이라도 된 양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딱 굳어버린 듯했다. 그런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죽을 수도 있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걸리지 말아야 하는데…’

남은 사람들은 죄가 없는데도 불안했다.

“가시오.”

중년 부인이 급히 고물 쪽으로 움직이려 했다.

“잠깐!”

중년 부인은 무슨 일인가 싶어 수천 호법을 쳐다보았다.

“당신 혼자 가시오. 아이는 놔두고.”

“아, 안 돼요. 이 아이는 아무 죄도 없어요. 오대독자란 말예요. 제발,

제발 용서해 주세요.”

부유해 보이는 중년 부인은 이유없이 빌었다.

수천은 중년 부인을 버려두고 아이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그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잊겠는가. 쥐 떼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그것도 이제 갓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중년 부인이 데리고 있는 아이는 사내아이였다.

“놈은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천의 뇌리 속에 용서를 빌던 걸개의 음성이 뚜렷하게 들렸다.

‘놈이 아이를 데리고 타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데리고 탔다는 말.

동조자가 있어.’

“아얏!”

볼을 너무 세게 꼬집었는지 사내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중년 부인은 옆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휴우! 데리고 가시오.”

그제야 중년 부인은 아이를 감싸 안다시피 껴안고 고물로 갔다.

다음으로 수천 앞에 선 사람은 꼬마 아이였다.

“혼자 탔니?”

“아뇨. 엄마, 아버지하고요.”

계집아이는 수천도 보듬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깜찍했다.

약간 겁에 질리고, 약간은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이 미래의 절세미녀를

예고했다.

“엄마,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수천의 음성은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

“엄마는 저기 계시고, 아버지는 저기요.”

계집아이는 고물과 아직 점검받지 못한 사람들 쪽을 가리켰다.

“가거라.”

계집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쪼르르 달려갔다. 무서운 맹수를

만났다가 간신히 도망친다는 듯이.

적지인살은 자신의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기습을 가해? 어차피 살아남지 못할 것.’

살수로 살아온 몸이다. 기습이라면 자신있었고 수천 호봅은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습도 틀렸어.’

수천 호법은 점검을 하는 가운데도 가끔씩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눈길은 자신을 쳐다보았다.

나루터에서 보였던 눈빛이다.

눈빛은 ‘너지?’ 하고 물어오는 듯했다.

‘하하하! 적지인살이 결국은 십망을 벗어나지 못하는군. 개방… 대방파로

군림할 자격이 있어. 저자는 겨우 사결에 불과한데 이렇게 치밀하다니…

인재가 구름처럼 모여 있구나.’

적지인살은 살혼부와 개방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뼈저리게

절감했다.

개방이 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면 살혼부는 작은 반딧불에 불과했다.

그때, 적지인살은 팔짱을 껴오는 부드러운 손을 의식했다.

눈길을 돌렸다.

‘아!’

탄성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억지로 되삼켰다.

“이제는 네가 당할 차례야. 알지?”

여자는 깊게 패인 보조개를 드러내며 방긋 웃었다.

수천 호법의 눈길은 한곳에 머물렀다.

‘아니란 말인가?’

당황스러웠다. 적지인살일 것이라고 십 할 확신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며 다른 사람을 꼼꼼히 점검하면서도 사내의 동정을 살피는 데

주력했는데.

수천은 여자를 알고 있다.

백하 경계를 맡으면서 근처에 있는 무인들의 동향까지 세세하게

보고받고, 만났으며, 협조를 구했다.

하오문 기문 향주 배금향.

하오문은 삶의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 만든 집단이라는 점에서는

개방과 다를 바 없다. 하나 개방은 비럭질을 할망정 의에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하오문은 배수(소매치기), 소투(도둑), 기녀 등등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배척당하기 딱 알맞은 사람들이다.

무림인이 나름대로 탄탄한 조직과 무공을 지니고 있는 하오문을

인정하지 않고 교류를 꺼리는 이유는 의협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하오문은 정도 사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결성되었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처절한 면에 있어서는 중원 최강

문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오문 역시 십망은 두려워한다.

십망에 동조하지도 않지만 십망을 거역하지도 않는다.

향주쯤 되는 여인이 십망을 모를 리 없고, 십망에 의해 사자로 낙인찍힌

자를 가까이 할 리도 없다.

십망은 모든 인간관계를 종식시킨다. 십망은 모든 혈연, 지연을 끊는다.

십망은 쫓기는 자로 하여금 세상 인심을 저주하게끔 만든다.

배금향을 만났을 때, 여인은 협조를 약속했다. 십망에 걸린 무인을 도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면서.

수천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장한을 세 번이나 점검했다.

점검이 끝났다는 생각에 보내려 하다가 엉성하게 점검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점검했기 때문이다.

점검 중에도 배금향 향주와 병색이 짙은 중년 사내에게 자꾸 눈길이 간

탓이다.

‘안 되겠어.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어. 저자부터…’

털보장한을 보낸 수천은 병색이 짙은 중년 사내를 가리켰다.

“당신! 당신부터!”

수천은 배금향 향주가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어 정신을 집중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오?”

“원수죠.”

“…?”

“못 믿겠어요?”

배금향은 품속에서 날이 시퍼런 비수를 꺼냈다.

“이 인간이 바로 내 정조를 빼앗았어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배금향은 비수를 적지인살의 옆구리에 틀어박았다.

“크윽!”

적지인살은 작살 맞은 고래처럼 허리를 비틀었다.

“잘 살펴봐요. 난 이 인간이 십망에 걸렸으면 좋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게 죽을 수 있게.”

“…”

‘뭔가 있어. 냉정해야 돼.’

수천은 돌연한 사태에 눈빛을 차갑게 굳혔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건 사랑한다면서 기루에 팔아먹은 거죠.”

비수가 다시 어깨죽지를 찔렀다.

“크윽!”

적지인살은 왼손으로 어깻죽지를 움켜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죽일 놈이 제 발로 찾아왔네요. 호호!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다 이런가

보죠?”

배금향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일부러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억지로 참는 눈물이었다.

“십망은 제게도 좋은 걸 가르쳐 줬어요. 살펴보세요. 어차피 이 인간은

오늘을 넘기지 못할 테니.”

배금향은 미련없이 등을 돌려 고물로 걸어갔다.

병색이 완연한 중년 사내는 몹시 괴로운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신장, 체격… 모두 적지인살과 흡사한 사내였지만 얼굴 모습이 너무

달랐다.

손을 쳐다보았지만 얼굴색과 같이 누렇게 떴다. 주먹질이나 하는 파락호

인생을 살았는지 손등에는 칼 맞은 자국도 깊게 패여 있었다.

“괜찮소?”

수천은 일으켜 주는 척하며 사내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손에는 팔꿈치로 이어지는 살색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사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눈썹을 타고 흘렸다.

다른 곳에 비해 눈썹 부근이 반짝였지만 수천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하오문 향주와 원한을 맺었소?”

질문을 던진 수천은 사내의 음색에 주의했다.

“다, 당시는… 어린 계집이었는데… 휴우! 내가 죽일 놈이지. 오늘 죽는다

해도 여한은… 쿨룩쿨룩!”

사내는 말을 하다 말고 거센 기침을 토해냈다.

기침 속에 붉은 피가 섞여 나왔다.

‘폐병…’

의심할 수가 없었다. 폐병은 하루아침에 걸리는 것이 아니고, 오늘아침에

걸렸다고 하기에는 병세가 너무 깊었다.

“가시오.”

수천은 마음이 답답했다.

남은 자들을 둘러보았지만 적지인살과 비슷한 체격을 지닌 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탔는데… 그럼 타는 척하고 내렸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

아이를 데리고 타지 않았으니.’

배에서 어린아이를 네 명 보았다.

그중 한 명은 볼 것도 없는 갓난아기였고, 한 명은 꼼꼼이 살펴보았지만

천음산에서 보았던 아이는 아니다. 한 명은 돼지처럼 뚱뚱해 앞날이

걱정되는 여자 아이, 다른 한 명은 상반되게 너무 예뻐 안아주고 싶은

아이였다.

‘빨리 돌아가야겠어. 창기들에게 배를 빌리게 하고, 배를 타는 척하고…

창기야! 창기가 빌린 배는 아직도 그곳에 있어!’

수천은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남은 사람들은 슬쩍 지나쳐 보는 것으로 점검을 끝냈다.

“돌아가자! 즐거운 여행들 되시오.”

석상처럼 굳어져 있던 개방도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웬만하면 독수는…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죄도 뉘우치는 것

같고. 향주, 덕을 베푸시오.”

수천은 멍하니 강심을 바라보고 있는 배금향에게 한마디 충고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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