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93화
“백천의가 하촌에 머물고 있어요.”
“……”
종리추는 지도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백천의가 혈배를 들고자 온다는 것은 전부터 알았다. 살문 외장의 정보망은 백천의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관찰해 왔다. 백천의뿐만이 아니라 살문에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은 알게 모르게 감시되고 있다. 그 속에는 하오문이나 개방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하오문과 개방은 혜선 대사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혜선 대사의 천령은 천외천과 성격은 비슷하지만 행동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정파 무림인이 원했던 것처럼 철저하게 숨었다.
어둠 속에 숨어서 움직이는 그림자라고나 할까?
무림인의 주목을 사지도 않았고, 소문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마의 준동을 뿌리부터 근절시켰다.
개방이 동조하지 않을 리 없다.
하오문 역시 협조하는 길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럴수록 살문 외장은 철저히 고립되었지만 더욱 은밀히 숨어 암류처럼 흘렀기에 발각되지 않고 있다.
벽리군이 말을 이었다.
“내일은 중촌이 열리는 날이에요. 날짜를 잘 맞춰서 온 까닭에 팔 일 후면 만나게 될 거예요.”
살문은 오채산에 사촌을 만들었다.
‘죽음의 마을’이란 뜻이 아니라 마을 밖을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산 밑자락에 있는 하촌에는 아무나 들를 수 있다. 객잔도 있고, 주루도 있으며, 작은 시장까지 형성되어 있다. 살문의 허락 없이 아무나 발길이 들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기도 하다.
살문에 청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중촌으로 들어서야 한다.
중촌으로 들어서는 길은 칠 주야에 한 번씩 개방된다.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살문이 열어주는 길 외에 다른 길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돌아가는 것은 죽음뿐이다. 하촌에서 중촌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온갖 독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어서 아무나 쉽게 근접하지 못한다. 중촌에 들어선 사람들은 또 그곳에서 칠 주야를 머문다. 청부를 넣을 수 있는 상촌으로 가는 길이 하촌에서와 같이 칠 주야 만에 열리는 까닭이다. 백천의가 하촌에 들어섰고, 내일 중촌으로 들어온다면 벽리군 말마따나 팔 일 후에는 상촌에서 만날 수 있다.
종리추는 다른 말을 했다.
“오늘 싸움은 이곳에서 하지. 첨봉.”
첨봉은 일명 칼산이라고 한다.
산봉우리가 칼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처럼 뾰족뾰족 솟아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막상 칼산에 올라가 보면 의외로 넓은 공지가 있다.
조그만 절 한 채는 지어도 될 성싶다.
첨봉에 의자가 가지런하게 놓였다.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열 개씩.
종리추가 첨봉에 올랐을 때는 의자의 임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종리추요.”
상대편을 향해 포권지례를 취했다. 상대편은 노승들이다.
“아미타불! 혜명이라 하오. 백팔나한과 육십칠 단승을 이끌고 있소이다.”
팔부령에 남아 있던 소림 무승들이다. 그들 중 딱 열 명이 첨봉에 올랐다.
각자 항렬은 없고 모두 혜자 항렬인 노승들.
혜명 대사가 말을 이었다.
“배첩에 적힌 것과 같이 살문은 과거 십망 사건에 연루된 자들의 무공을 이었소이다. 오독마군의 구연진해, 혈암검귀의 혈뢰삼벽, 혈영신공 무공을 가늠해 보고 싶소이다.”
“받아들이겠소.”
종리추의 입에서 승낙이 떨어졌다.
소림승들 중에서 제일 오른쪽에 앉아 있던 무승이 일어섰다.
얼굴이 붉은 대춧빛으로 빛나고 있어 내력이 정순함을 읽을 수 있는 노승이다.
“아미타불! 소승은 철심수를 사용하겠소이다. 허허! 손속에 사정을 남겨주시기를.”
소고가 의자에서 일어나 마주 섰다.
“그 말씀은 제가 부탁드리고 싶군요. 철심수는 소림칠십이절예 중 하나. 손속에 사정을 남겨주세요.”
차앙!
맑은 소성과 함께 시리디시린 장검이 뽑혔다. 그것과 동시에 소림 노승들의 안광이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노승들은 싸움을 보고 있지 않았다. 소고와 마주 선 노승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소고의 검법만을 살핀다.
쒜에엑!
노승이 선제공격을 가했다.
금강부동신법을 전개하여 움직이되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고 있으나 끊임없이 움직인다. 승포를 펄럭였다.
철심수는 승포 자락을 이용한 무공이다. 한낱 옷이라고 해서 무시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한다. 철심수는 승포 자락을 쇠처럼 강하게, 검처럼 날카롭게 만든다.
파라락!
소매는 당장이라도 소고를 덮어씌울 듯이 펄럭였다.
소고가 당장이라도 검을 쳐내지 않으면 당하고 말 것 같은 급박한 상황이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물러서던가 반격하던가 양단간 결정을 내려야 할 위기.
순간 공격을 하던 노승은 무엇에 놀란 듯 경악을 띠더니 물러섰다.
소고는 검을 치켜들고 있다. 처음 검을 뽑아 겨뤘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검끝이 흔들리지도 않았고 안광이 더욱 예리해진 것도 아니다.
노승은 신법을 바꿨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아련하게 보인다는 불영선하보를. 불영선하보는 소림신법 중 가장 빠르기도 하지만 노승이 익힌 철심수와는 같은 무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궁합이 잘 맞는다.
파파팟! 파아악!
좌우로 민첩하게 움직이던 노승이 확 달려들며 소맷자락을 펼쳤다.
철심수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보통보다 넓은 소맷자락이 필요하다. 때문에 노승의 승포는 어느 승려들 것보다 넓고 컸다.
승포가 깃발처럼 펄럭였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 노승은 처음처럼 다시 물러섰다. 눈동자에는 경악이 스며 있고 입가는 일그러졌다.
“이, 이건 사공!”
노승은 음성에 분노를 담았다.
소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보세요?”
“어찌 이런 악독한 사공을!”
노승의 분노에는 살심이 담겨 있다. 그러나 소고는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유를 갖고 노승을 대했다.
“그러니까 혈암검귀가 십망을 받은 것 아니겠어요? 흔히들 혈뢰삼벽은 패력의 무공이라고 하죠. 제 검에 패력이 깃들어 있나요?”
“간특한 것! 요사한 무공으로.”
“혈뢰삼벽을 익히면 심성이 변하다더군요. 살심이 일어난다고. 본인조차 주체할 수 없는 살심 말에요. 제게 그런 살심이 읽히나요?”
” “
노승은 말문이 막혔다. 분명히 요사한 무공이기는 하지만 혈암검귀의 무공과는 완전히 다른 검공이다. 혈암검귀가 살인에 미친 망나니라면 소고는 잠들어 있는 요녀다.
“아미타불! 좋소이다. 다시 한 번.”
“혜정, 그만 하시게. 여시주의 무공은 도가 일맥에서 파생된 무공이라네.”
노승이 말을 이어가는 도중 혜명 대사가 일어서서 제지했다.
노승은 소고를 물끄러미 쳐다본 후 물러섰다.
소림승 중 두 번째 노승이 나섰다.
살문 살수들 중에서는 비망신사가 나섰다. 비망신사의 절기는 검이다.
비망사라는 살수 문파를 창건하기 전부터 검 한 자루에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노승과 마주 선 비망신사에게는 검이 없다.
“아미타불!”
노승은 합장을 하자 비망신사는 포권지례로 예의를 갖췄다.
첨봉 싸움은 무척 중요하다. 종리추는 이번 첨봉에서의 싸움을 일 년 전 모도의 싸움에 비교했다. ‘우리가 목숨을 이어가느냐 아니냐는 이 한 번의 싸움에 달렸지’라는 말이 무수한 말을 대변한다.
비망신사는 학이 날개 짓을 하듯 양손을 활짝 벌렸다.
파파팟! 우우웅!
두 번째 나선 노승은 첫 번째 노승처럼 불영선하보를 펼쳤으나 무공은 대력금강장이다. 진기를 완전히 발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도 장이 웅후하게 울었다.
비망신사도 경력을 모았다. 경력을 최대한 모을 수 있도록 익을 대로 익은 초식을 펼쳐 냈다. 이상한 싸움이다. 노승도 그렇고 비망신사도 그렇고 모두 적이 앞에 있는데 적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공 수련하듯이 초식을 펼쳐 댄다. 아무도 없는 빈 허공에다가.
“타앗!”
노승이 거센 고함을 발출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허공을 맴돌던 그림자가 비망신사를 향해 짓쳐갔다.
“타아앗!”
비망신사도 전력을 쏟아냈다. 대력금강장은 소림칠십이절예 중 하나, 파괴력으로는 천하제일이라는 장공이다.
퍼엉! 퍼어엉!
비망신사의 손바닥과 노승의 손바닥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첫 번째 일격이 부딪치자마자 손을 뗀 두 사람은 연달아 십여 장이나 격돌했다.
신법은 필요 없다. 신법은 경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장과 장이 격돌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끌어올린 경력을 발출하면 그만이다.
펑펑펑!
두 사람은 어린아이들이 손뼉 치기를 하는 것처럼 마주 선 상태에서 장과 장을 부딪쳤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크윽!”
단말마가 흘러나왔다.
비망신사의 허리가 풀썩 꺾이는가 싶더니 입에서 피 화살을 쏟아내며 물러섰다.
비망신사는 쉽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연신 비틀거렸다.
광부가 일어서서 등을 받쳐 준 다음에야 간신히 버티고 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음! 대단하군, 대력금강장을 십이 장이나 맞받다니, 이것이 혈영신공인가!”
노승의 혼잣말을 소여은이 맞받았다.
“비망신사는 이제 오성에 접어들었어요, 십성에 이르렀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거예요. 혈영신마의 혈영신공은 시신에 붉은 장인이 찍힐 만큼 강했어요.”
은근히 노승의 대력금강장을 비웃는 말이다.
노승은 의외로 선선히 인정했다. 입에 엷은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허허허! 노승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소이다. 혈영신공을 보기 위해 오성의 진력만 사용했으니 시주,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한 번 겨뤄봅시다. 그럼 요양하시오. 아미타불!”
노승은 비망신사의 생명을 끝내지 않고 물러섰다. 죽이기 위해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소림승들은 과거 십망을 받았던 자들이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우연찮게도 살문에는 십망과 연관 있는 사람들이 대거 모여 있다.
살문 살수들 중에서 유구가 나섰다.
오독마군의 구연진해라면 종리추가 제일이라 할 수 있지만 유구의 구연진해도 나름대로 특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소림승들 중 노승 한 명이 나섰다.
소림에도 뛰어난 각법이 있다. 항마연환신퇴와 관음십팔타는 뛰어난 각법이다. 두 무공이 칠십이종절예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지고한 무공인지 알 수 있다.
유구를 상대하기 위해 나선 노승은 키도 크지만 신장에 비해 유난히 다리가 길다. 각법을 위해 태어난 신체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파팟! 파파파파팟!
유구와 노승은 각법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싸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역동적인 싸움이다.
현란하고, 빠르고, 강하다.
소림승들은 꼼짝하지 않고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구의 각법에 주목해서, 싸움은 꼬박 하루 동안 지속되었다.
“아미타불! 이제야 방장께서 소림을 봉문시킨 이유를 알겠소이다. 팔부령을 에워싸기만 할 뿐 불도에 전념하라시던 말씀도.”
혜명 대사가 합장을 하며 말했다.
종리추는 눈을 반짝였다.
방금 혜명 대사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소림 방장이 불도에 전념하라고 했다니. 무공 수련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불도에 전념하라고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애당초 십망을 선포하고 팔부령을 에워쌌을 때부터 살문을 공격할 의사는 없었다는 뜻이다.
소림 방장은 다른 장문인들과는 뜻이 달랐는지도 모른다.
십망이라는 가혹한 벌이 못마땅했을까? 아닐 것이다. 사마외도가 준동한다면 소림승들이 나서서 진압했다. 사로잡아 구금을 시키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죽이기도 했다.
소림 방장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혜명 대사가 말했다.
“소승들은 이만 하산하겠소이다. 과거 십망은 잘못 선포되지 않았으나 살문의 무공은 그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았소이다. 살문의 무공은 정공이오.”
혈영신마가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오독마군이, 혈암검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감회가 어땠을까.
소림 노승들의 입에서 정공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사파 무공으로 매도되었고, 십망까지 받아 끝없이 쫓기던 사람들의 무공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살문 살수들의 무공은 정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혈암검귀가 살심을 돋워 무림인을 죽인 끝에 십망을 받았듯이, 살문 살수들이 그들의 무공을 살행에 사용하는 한은.
혜명 대사를 따라 노승들이 몸을 일으켰다.
첨봉에 찬 바람이 흩어졌다. 가을로 접어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닌데 첨봉의 칼바람은 매서웠다.
문득 혜명 대사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방장께서는 늘 이 말씀을 하시곤 했소이다. 도고일척이면 마고일장이라. 하지만 근심하지 마라. 일 척이 일 장을 능가할 수 있으니. 아미타불!”
‘도고일척에 마고일장.’
종리추는 소림 방장이 했다는 말을 끝없이 되뇌었다.
엄청난 충격이 뒤통수를 때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패배를 당했다.
소림 오선사의 죽음.
그것은 소림사가 진 것이 아니라 이긴 것이다.
물론 소림 오선사는 전력을 다했다. 종리추와 혈영신마도 전력을 다해 싸웠다. 마지막 한 올 남은 진기까지 모두 짜내어가며 격렬하게 부딪쳤다.
그 결과 소림 오선사는 죽었다.
당시에는 보지 못했지만 소림 오선사는 만족하게 웃으면서 죽어 갔으리라. 해탈하는 심정으로.
무림 군웅들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소림 방장이 아니라 구파일방 장문인이 나섰어도 무림 군웅들을 다독거리지 못할 만큼 살문에 대한 증오가 깊었다. 특히 혈영신마에게 죽은 가족들이나 자식의 인피를 빼앗긴 하후가의 증오는 저주에 가까웠다.
그들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그들이 끝까지 팔부령에 집착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산혈해다.
살문 살수들도 성치 않았겠지만 무림 군웅들의 죽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을 게다.
소림 방장은 오선사의 죽음으로 일단락시켰다.
소림 봉문으로 무림 군웅들의 충격을 다독거렸다. 육십칠 단승과 백팔나한을 팔부령에 배치함으로써 군웅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었다.
십망 선포에 회의를 갖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살문에 죽은 자들이 인면수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 하지 못할 행동이다.
‘도고일척에 마고일장.’
종리추는 똑같은 소리를 또 되뇌었다.
소림 방장은 살문을 신경 쓰지 않는다. 살문의 위세가 드높을지라도 악행을 저지른다면 언젠가는 검을 거꾸로 들어 검신을 잡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충고다.
그런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혜선 대사의 천령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무림인들의 뜻이 모아지면 천령과 같은 조직은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난다.
무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천벌은 꼭 무인만이 내리는 게 아니다. 인륜을 거역하고 천리에 어긋나면 믿고 믿었던 처자식 손에 죽을 수도 있다.
소림 방장은 방장실에서 한 약속을 지켰다.
“살문은 개파를 했습니다. 명분이 없는 자는 손을 쓰지 않겠습니다. 십망이 선포될 때는 받겠습니다.”
“자신 있나?”
“후일 뵙게 될 겁니다. 그때 다시 방장님과 이 차를 마시겠습니다.”
눈매도 날카롭고 광대뼈도 툭 튀어나와 고승과는 거리가 먼 얼굴.
“졌어. 내가 졌던 거야. 그 싸움은.”
종리추는 모두가 떠난 첨봉에서 깡마른 얼굴을 그렸다.
소림 방장 혜공 선사는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정신없을 때, 혜공 선사는 인간사의 이치를 꿰뚫어 보았다.
‘내가 졌어, 내가.’
종리추는 졌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