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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24화


적지인살은 종리추를 혹독하게 몰아쳤다.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것이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돌 주머니를 내놓았다. 어깨에서 팔꿈치, 팔꿈치에서 팔목까지, 허리에 둘러매는 돌 주머니가 따로 있었고, 허벅지에, 발목에 매는 돌 주머니도 각기 다른 무게로 따로 있었다.

“투박해서 뛸 수가 없어요.”

“익숙해질 게다.”

“너무 무거운데요.”

“걷든 뛰든 네 마음이다. 무공이란 것을 빨리 배우고 싶거든 뛰고, 천천히 배워도 좋다면 걸어라.”

“신법이란 걸 배우면 이런 건 안 달아도 된다고 들었는데…”

“그럼 배우던가.”

“가르쳐 줘야 배우죠!”

“가르치고 있다.”

“아휴! 못살아.”

“아예 죽여주랴?”

“무슨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을 사랑할 줄 몰라요! 아빠를 바꾸던가 해야지.”

“그건 힘들 게다. 너도 알다시피 네 엄마는 아빠 없이는 못살거든.”

“아이한테 할 말이 그렇게 없어요!”

옆에서 배금향이 핀잔을 주었지만 적지인살과 종리추는 못 들은 척 느물거기만 했다.

“봐라. 내 엄마가 다른 아빠를 맞을 것 같으냐?”

“아휴! 정말 못살아. 해요, 하죠. 내가 하고 마는 게 낫지.”

종리추가 투덜거리며 나갔다. 너무 무거운 돌덩이를 많이 달아서인지 걷는 모습조차 뒤뚱거리는 게 여간 우습지 않았다. 종리추는 천천히 걸으며 양팔과 발에서 전해오는 무게를 가늠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계산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양팔을 휘젓는 각도, 보폭, 내딛는 발에 가중되는 힘, 속도… 무작정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항상 계산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돌 주머니를 매고 무작정 달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먼저 돌의 무게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몸의 중심이 어떻게 변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팔은 어떻게 휘저을 것이며 보폭은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지. 달리는 것은 모든 계산이 끝난 후에도 늦지 않다. 아니, 계산을 끝낸 다음에 달리는 것이 훨씬 빠르다.

‘무게가 맞지 않아. 왼팔보다 오른팔이 빨라.’

종리추는 적당한 돌멩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양부는 양쪽 무게를 똑같이 했다. 양쪽을 고르게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종리추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렸다. 그는 탁월한 오른손잡이다. 변검을 배울 때 오른손을 집중적으로 훈련해서인지 왼손보다 오른손의 힘이 훨씬 강하다. 이번에 그런 단점을 고칠 생각이었다. 양손을 똑같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오른쪽보다 약한 왼쪽에 모래를 더 넣자는 것이었다. 양팔을 휘저으면 걷는다고 가정할 때, 사람들은 한결같이 양팔을 똑같이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왼팔이든 오른팔이든 좀 더 강한 쪽이 주도권을 잡아 앞으로 이끌고, 모자란 쪽은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팔을 휘젓는다면 오른손잡이는 왼팔보다 오른팔을 더 멀리, 더 힘차게 휘젓는다. 적당한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무게가 다섯 근 정도 되니 이 정도 무게를 더하면 되겠군.’

종리추는 돌멩이를 잘게 부순 다음 왼팔 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왼쪽 허벅지와 발목에도 돌을 추가했다.

‘한결 낫네. 그럼 좀 더 걸어본 다음에…’

초원을 산책하듯이 걸었다. 오늘은 소낙비 대신 은근히 귀찮게 하는 부슬비가 내린다.

‘보폭을 조금 넓혀볼까?’

자연스러운 걸음에서 보폭을 조금 넓혔다. 뛸 때 보폭을 어느 간격으로 유지하느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좁게 유지하는 것과 넓게 유지하는 것. 둘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종리추는 넓게 유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흠! 좋아.’

초원을 한 바퀴 돌자 무게 감각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무게를 안다고 해서 몸을 짓누르는 고통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리추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발을 떼어놓기도 힘들고 팔을 들어 올리기도 힘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신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돌멩이들의 무게는 종리추의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웠다. 힘센 장정 한 명을 업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 두 바퀴째는 미처 다 돌지도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종류의 고통은 적당한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 너무 무리를 하면 오히려 근골이 상하는 수가 있다. 몸이 이겨내는 수준에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종리추는 어린 나이지만 몸에 대한 이해는 어른 뺨치게 깊었다.

“정말 빠르네요. 벌써 익숙해지고 있어요.”

배금향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종리추는 서서히 달리고 있었다. 걷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성취다.

“생각이 맞았어. 무서운 집중력이야.”

“집중력이요? 의지가 아니고요?”

“아니, 집중이야. 추아는 한발 앞서 나가고 있어. 현재 몸 상태를 알고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무리하는 거야. 거기까지는 의지지. 정작 놀라운 것은… 봐. 추아가 무리하는 것처럼 보이나?”

“아뇨, 아주 자연스러워요. 정말 체력이 놀라워요.”

“그게 놀라운 점이야. 체력이 아니고 집중이야. 추아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모두 조율하고 있어. 일종의 최면이지. 강한 집중력에서 탄생한 자아최면.”

“그럼…?”

“그래, 추아의 현재 몸 상태는 달릴 정도가 아냐.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걸어야 돌멩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 몸에 부딪치는 고통을 죽이고, 의지마저 죽이고… 강한 상상력으로 자기가 바라는 몸 상태를 그려놓는 거지. 거기에 맞춰 달리다 보면 몸이 뒤늦게 끌어올려지는 거야.”

“휴우! 한발 앞서 나간다는 의미가 그거였군요.”

“나는… 추아가 점점 부담스러워져.”

“당신… 설마!”

“아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지닌 무공은 모두 가르칠 테니까. 단지…”

“소고에게 검을 들이댈까 봐 걱정되는군요.”

“그래.”

“그러지 않을 거예요.”

“…?”

“아직도 추아를 몰라요?”

“…”

“추아에게 죽으라고 해보세요. 사자를 잡아오라고 해보세요. 추아는 거역하지 않아요. 당신이 추아에게 소고의 수족이 되라고 하면 추아는 세상에 다시없는 충복이 될 거예요. 그게 당신과 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전… 제 바람은… 당신이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하겠지만…”

“…”

적지인살은 천천히 달리고 있는 종리추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 역시 알고 있다. 추아를 왜 모르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양자 들이기를 꺼려하지만 추아를 본다면 분명히 생각이 달라질 게다. 아마 장사진을 이루며 양자로 들이려 할 게다. 모자라는 자식을 낳아 속을 썩느니 아예 자식을 낳지 말고 양자를 들이자는 말을 할 게다. 변검을 가르쳤던 양부는 살천문 살수들 손에 죽었다고 한다. 어떻게 죽었을까? 묻지 않고 말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다. 변검 양부는 종리추를 위해 기꺼이 방패막이가 되었을 게다. 종리추가 위급한 지경에 처했고 종리추를 피신시키기 위해 대신 살검을 맞았을 게다. 종리추가 영민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종리추는 사랑을 안다. 부모를 어떻게 섬기는 줄 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란 사람들은 부모를 그리워하더라도,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말을 할지언정 진정한 효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양자들이 속을 썩이는 경우는 성품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양부모를 친부모처럼 살갑게 대하지 못해서다. 배금향의 말처럼 종리추는 적지인살이 소고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말을 하면 충성을 다할 아이다. 적지인살과 배금향을 친부모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효를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적지인살이 고민하는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요즈음 적지인살은 번민에 시달렸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같은 번민에 시달려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소고의 사부다. 또한 소고를 사랑한다. 배금향이 종리추를 사랑하듯이, 적지인살은 오래전에 소고라는 아이에게 정을 주었다. 죽은 아이 소소를 대신해서. 처음 종리추를 봤을 적에는 측은지심은 일었을망정 사랑은 느끼지 않았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거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배금향이 끼어들었다. 끼어든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그녀가 종리추를 소소처럼 사랑한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다. 배금향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녀가 끼어들지 않았어도… 적지인살은 종리추에게서도 이제 소고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사랑. 둘 중 어느 하나가 조금이라도 모자란다면 번민이 없을 터인데… 소고와 종리추는 무공에 탁월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다. 소고가 사무령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만한 자질을 지녔고, 절대무쌍의 무공이 있고, 사무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살수가 사무령이 된다는 것은 정종무공을 익힌 사람이 천하제일 고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만약 안 된다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사무령이 되지 못한다면 구지신검을 죽이기 전의 살혼부나 현재 살천문처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 가며 살수문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소고 밑에 종리추 같은 고수가 있다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두 기재가 모여 머리를 맞댄다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기가 십상이다. 청면살수는 십망을 선택했지만 소고와 종리추가 같은 경우라면 결전을 택할 것이 자명하다. 적지인살은 그것이 두려웠다.

“나는… 추아가 점점 부담스러워져.”

그런 의미였다.

“추아가 아무리 귀여워도… 추아의 무공은 적정한 선에서 그치는 게 좋아. 소고에게 적당히 도움이 될 정도만.”

그런 의미였다. 대형의 무공인 무형필살 삼십육초천풍선법을 전수하지 않으려던 것도 종리추를 너무 강한 무인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소고의 장애가 될까 봐 무공을 가르치지 않으려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마음은 그랬다. 소고를 대신해 죽어줄 아이. 만일 살아난다면 소고가 단시일에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어줄 아이. 그 정도로 족했지 더 이상은 곤란했다. 종리추는 바라는 이상으로 성장할 아이 같았으니까. 지금도 절정무공을 전수하지 않으려는 생각은 같지만 이유가 달랐다.

‘휴우! 대형, 대형이 둔 한 수는 도박이었구려.’

적지인살은 요즘에 들어서야 청면살수가 왜 웃으며 십망을 받을 수 있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형은 도박을 시도했다. 육제 공지장이 선택해 온 아이들… 야이간, 적사, 적각녀. 공지장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선발한 아이들이니 소고를 위협할 만한 능력은 충분할 게다. 하나같이 종리추와 버금가는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소고에게는 두 갈래 길밖에 남지 않았다. 사무령이 되든가, 아니면 죽든가. 대형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쯤 의형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살아 있다면… 후후후!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군. 추아를 최강의 무인으로 만드는 수밖에. 소고가 최강의 아이들을 잘 이끌 수 있을지…’

적지인살은 소고의 또렷한 눈망울을 떠올렸다. 너무도 귀여웠다. 종리추는 연녹색 뱀들이 모여 있는 구덩이에 와서 발을 멈췄다. 그가 쉬어가는 곳이다.

“헉헉…!”

거친 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뱀들이 모여 사는 구덩이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쉬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생겨났지만 그럴 때마다 뱀들을 생각하며 아직 쉴 때가 아니라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래서 늘 연녹색 뱀들이 있는 곳에만 오면 세상이 샛노랗게 보일 만큼 현기증이 치밀었다.

“안녕! 잘 있었어.”

종리추는 뱀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느 조직이나 서넛만 모여도 우두머리가 생기기 마련인데 뱀들은 우두머리가 없다. 연녹색 뱀들도 모여 살기는 해도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뱀은 없었다. 뱀들은 모두 각개다. 배가 고프면 옆에 있는 뱀도 잡아먹고 고프지 않으면 아무리 작은 놈이 지나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런 놈들이 모여 사는 게 희한하지만, 종리추에게는 뱀들을 지켜보는 게 즐거운 취미거리였다.

쉬익!

구덩이 가까이에 있던 뱀이 머리를 치켜세우더니 확 달려들었다.

“얌마! 넌 아직도 날 모르냐! 이게 건방지게 틈만 나면 달려든단 말이야.”

종리추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살짝 눌러 버렸다. 달려드는 뱀의 머리를 누르기 위해서는 굉장히 정확한 지법이 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빗나간다면 뱀은 손가락을 대신 팔목을 물어뜯을 것이다. 종리추의 손가락은 정확히 뱀의 머리를 눌렀다. 전에 구덩이에 빠졌을 때처럼 퉁겨낸 것도 아니다. 죽지 않을 만큼 힘을 조절해서 살짝 눌렀다. 수십 번 실패했고 팔목이 물릴 뻔한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능수능란하게 머리를 짚게 되었다. 뱀이 구덩이 안으로 날아가 떨어지더니 스르륵 제 구멍을 찾아 들어갔다.

“그것 참 희한하단 말이야. 구멍이 이렇게 많은데 제 구멍을 찾을 수 있다니. 휴우! 이제 숨도 돌렸으니 또 뛰어볼까. 야! 좀 있다 올 테니까 잘들 있어.”

종리추는 눈을 찡긋 감아 보인 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초원은 넓디넓어서 완전히 한 바퀴를 다 돌려면 며칠을 뛰어도 모자랐다. 녹요평은 토착민들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거대한 평원이었다. 종리추는 평원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 뛰는 곳을 늘 바꿨다. 녹요평은 겉에서 보기에는 평화롭기 이를 데 없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개미들은 개미핥기에게는 그야말로 밥이었다. 개미핥기가 긴 혀로 핥아대면 한 무더기씩 사라지곤 했다. 개미핥기는 개미에게는 죽음의 사자였다. 그런데 이곳만은 그렇지 않았다. 개미핥기가 개미에게 잡혀먹혔다. 보통 개미들보다 훨씬 작아서 깨알처럼 보이는 개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개미핥기를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쥐는 종리추에게는 가장 친근한 친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차릴 정도이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녹요평의 쥐는 결코 친구가 아니었다. 녹요평에 있는 쥐들은 천적이라는 뱀도 잡아먹었다. 우르르 달려들어 잡아먹은 것이 아니라 일 대 일로 싸워서 뱀의 머리를 물어뜯어 잡아먹었다. 등에 흰 반점이 있는 쥐는 종리추에게도 달려들었다. 종리추뿐만이 아니라 눈에 무엇이 씌었는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녹요평은 한순간만 방심하면 뼈조차 찾을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또한 아늑하고 평화로운 땅이기도 했다.

“헉헉! 안녕! 또 왔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제는 늦어서 그만 들어가…?”

연녹색 뱀들에게 인사를 하던 종리추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구덩이에는 먹이가 빠져 있었다. 연녹색 뱀이 잡아먹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들개였다.

쉬익!

깨깽…!

한 놈이 달려들어 들개의 다리를 물었다. 들개는 공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부르르 몸을 떠는 정도에 그쳤을 뿐 풀썩 쓰러진 후에는 떨지조차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치명적인 독이었다. 중원에서 가장 독성이 강하다는, 물리면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죽는다는 칠보사조차도 연녹색 뱀에게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뱀의 이빨은 안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어 물리기만 하면 도망칠 수 없다. 뱀의 아래턱 중앙에는 탄력적인 인대가 있어서 훨씬 큰 놈도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다. 뱀은 그렇다. 인대가 늘어나는 한도까지 입을 벌려 통째로 잡아먹는다. 왕뱀처럼 몸으로 친친 감아서 질식시켜 죽이든, 독사처럼 독을 풀어 죽인 다음 잡아먹든 통째로 집어삼킨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연녹색 뱀은 들개의 살을 파고들어 가 피를 빨아먹고, 내장을 뜯어먹고, 살을 갉아 먹었다.

“이, 이게 뱀이야?”

종리추는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 또 하나 배웠다. 뱀도 뜯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니면 뱀처럼 생긴 알지 못할 생물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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