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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26화


적지인살 가족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홍리족 부족민은 마을 밖에까지 나와 마중을 했다. 화왕이라고 무서워하며 멀리서만 빙빙 돌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시원한 파라밀액을 가져오는 이도 있었다. 제일 신난 사람은 종리추였다. 종리추는 아는 얼굴이 많았다. 금종수를 배울 적에 마을을 들락거렸고 시비도 적잖이 벌였으니 많을 수밖에 없다. 종리추는 아는 얼굴을 만날 때마다 잊지 않고 한마디씩 했다.

“우리 또 한 번 싸워볼래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죠? 그땐 정말 너무 맞았어요. 미안하죠?”

“그때 너무 약 올라서 나도 세게 때렸는데 아프지 않았어요?”

초막에 살면서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마치 이 년 동안이나 입을 닫고 살던 사람이 억눌렸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했다.

“거봐요. 역시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되죠?”

적지인살은 배금향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새롭게 생긴 화두, ‘살수의 길을 걸어야 할 아이가 협의 길을 생각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만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했다.

둥둥둥둥둥…!

수환봉에서 들리는 북소리는 급격하게 빨라졌다가 뚝 그쳤다.

“왜 북소리가 그치죠?”

종리추는 옆에 있는 권투왕에게 물었다. 그는 홍리족의 무예인 권투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사내였다. 중원 무예 권법과는 기수식부터가 다른 묘한 무예이지만 주먹의 강도는 파라밀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했다.

“전사가 다 모여서 이동하는 거야. 다시 북소리가 울릴 때는 평원에 도달할 거고, 또 북소리가 울리면 싸움이 시작되는 거야. 넌 화자가 되어가지고 그것도 모르니?”

거칠게 대답을 해준 사람은 권투왕이 아니라 자그마한 여자애였다. 누가 소개하지 않아도 족장의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족장 구맥과 용모가 너무 비슷했다.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검은 눈, 오뚝 솟은 콧날, 붉고 도톰한 입술…

“야아…! 너, 정말 예쁘구나!”

“뭐?”

“너, 예쁘다고.”

“흥! 그런다고 네가 우리 부족 묘에서 한 짓을 용서할 줄 알아?”

“내가 뭘 했는데?”

“너, 넌…”

샛별처럼 상큼한 여자애는 화가 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너, 이름이 뭐니?”

종리추는 눈까지 게슴츠레해졌다. 종리추가 변검 공연을 하고 동전 몇 푼을 얻는 동안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돈을 줄 사람과 주지 않을 사람을 구분하는 법이었다. 또한 돈을 줄 사람은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많이 내놓는다는 것도 배웠다. 작은 몸짓, 속삭이는 말 한마디에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런 것을 잘 관찰하면 속에 숨은 말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악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내 자신을 숨기고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사람은 입으로 말하기 전에 몸으로 먼저 말을 한다. 눈이 먼저 말하고, 코가 먼저 말하고, 몸이 먼저 말하고… 최종적으로 입이 말한다. 종리추는 소녀의 행동에서 높은 콧대를 보았다.

‘내 앞에서 콧대를 세우겠다 이건데… 풋! 너, 잘 걸렸다.’

정말 오랜만에 발동한 장난기였다. 배금향의 주요 전략은 화공이었지만 그건 남만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생각이었다. 건기에는 풀뿐만 아니라 나무도 바싹 말라 있다. 녹요평에 불을 놓으면 불길은 녹요평을 태우고 산으로 번져 수환봉까지 홀랑 태울 판이었다. 그것으로 그치면 다행이다. 화마는 계속 기승을 부리며 백일 밤낮 동안 타오를 것이다. 호전적이든 그렇지 않든 건기 동안 남만인들은 불이 나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럼… 무지막지하게 싸우는 수밖에 없네…”

배금향은 바람 한 점 없는 마른 공기에서 진한 피비린내를 맡았다.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적지인살이 오랜만에 기형월도에 기름을 먹이며 말했다. 암연족 전사는 한 사람이 능히 열 명을 상대할 수 있다. 숱한 싸움에서 살아남은 싸움 귀신들이고, 아부타라는 전신이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아부타는 싸우다 죽은 자를 원한다. 전장에서 죽은 자는 아부타의 보호를 받지만 늙어서 죽거나 병들어 죽으면 아부타로부터 내침을 당해 지옥에 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곧 죽을 것 같은 노인이나 병든 환자들이 제일 선두에 선다. 그들은 죽는다. 하나 그들이 흘린 피는 남은 암연족 전사들에게 뜨거운 열기를 전해준다. 시신은 거두지 않는다. 아부타의 뜻이 ‘죽은 곳에 머물라’이니, 시신을 수습하는 것 자체가 신의 뜻을 거역하는 행동이 된다. 싸우다 죽어야 신의 곁에 머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익 때문에 싸우는 사람은 약한 면이 있지만, 신의 뜻에 따라 싸우는 사람들은 약한 면이 없다. 암연족 전사들이 보여주는 용맹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람을 죽여본 적 있소?”

적지인살이 걱정되는 듯 배금향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뇨.”

배금향은 역시 생각했던 대답을 했다. 배금향의 성격으로는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고 무공을 배웠다 해도 사람을 죽이진 못한다. 사람을 죽여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과 같은 난전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군인의 경우에도 싸움에 처음 투입되면 십중칠팔은 전사한다. 반면에 사람을 죽여본 군인은 십중칠팔 살아남는다. 넋이 빠져나가며 풀썩 무너지는 시신을 보고도 다음 상대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한순간 얼이 빠져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면 바로 죽음과 직결된다.

“당신은 족장과 같이 있어. 이 싸움은 내가 이끌지.”

“아뇨, 저도…”

“당신은 추아를 가르쳐야 돼. 만일 내게 변괴가 생기면…”

적지인살은 품에서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비급을 꺼냈다.

“대형의 무공이오. 무형필살 삼십육초천풍선법이라고 하지. 대형은 사부를 두 분 모셨는데, 한 분은 살흔부를 물려준 분이고, 다른 한 분은 무형초자라는 분이지. 무형초자라는 분은 말 그대로 나무꾼이야. 평생을 산에서 살며 나무나 벳지. 그냥 나무를 벤 것은 아냐. 나무를 베면서 도끼가 들어가는 각도와 힘을 연구했어. 그래서 나온 것이 삼십육초천풍부법인데… 말년에 부법보다는 선법이 낫다는 걸 알았지. 이 무공은 이름없는 초자가 창안했지만 대형께서는 이 무공 하나로 우리 모두를 꺾었어.”

적지인살은 비급을 건네주었다.

“그건 가가께서 지니고 계셨다가…”

“다른 때 같으면 그러겠지.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내 몸 상태가… 세상일이란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넣어둬요. 비급만 보고 무공을 깨우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당신도 잘 알 테니, 고생 좀 해야 될 거야.”

적지인살은 내친김에 자신의 독문절학인 혈염도법과 뇌인일지공도 꺼내 건네주었다. 종리추가 금종수를 익히고 있을 때, 적지인살은 자신의 절학을 비급으로 적어놓았다. 혼자서도 익힐 수 있을 만큼 자세히.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것, 만일을 대비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가가께서는… 휴우! 그래요. 제가 보관하고 있을게요. 마음 편히 홍리족을 이끌고 싸우세요.”

배금향은 담담히 비급을 받아 들었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고작이었다. 그때, 밖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홍리족 말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종리추가 연관되었다는 것은 단번에 알았다.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가 틀림없이 종리추였으니.

“야! 사내자식이 비겁하게 도망만 다닐 거야!”

“하하! 잡는 것도 실력이야. 그런 실력 가지고 감히 화자에게 도전 했단 말이야? 쯧! 너, 아직도 엄마 젖 빨고 있지?”

소녀의 얼굴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소녀뿐만이 아니라 홍리족 부족인들의 얼굴빛은 모두 딱딱하게 굳었다. 종리추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엄청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홍리족 여인들은 중원의 사내들이 그렇듯 가문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중대한 책임과 의무를 항시도 잊지 않는다. 홍리족 사내들은 그런 점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여인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사내는 복종한다. 중원과는 완전히 뒤바뀐 생활상이다. 소녀는 소년이 홍리족 용사들을 물리친 화자이지만 역시 사내인 이상 자신의 말에는 복종할 줄 알았다. 그런데 복종은커녕 조롱까지 하고 있으니…

더군다나 소녀는 여느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 앞으로 홍리족을 이끌어갈 차기 족장이다. 종리추의 말은 소녀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홍리족 부락인 전체를 조롱하는 격이 되었다.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한눈에 상황을 읽었다. 연유가 어찌 되었든 종리추는 장난기가 발동해 소녀를 놀려댔고, 소녀는 약이 올라 덤벼들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홍리족 부락민들이 적의를 나타내고 있다.

‘전과 같은 상황이야. 부락 묘를 침범했을 때와. 추아가 홍리족의 신경을 건드렸군.’

“추아야, 이리 오너라!”

적지인살은 이번 일을 중재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종리추는 홍리족 용사들까지 굴복시킨 화자가 아니던가. 종리추가 장난을 그만두고 적지인살에게 다가왔다. 순간,

쫘악!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적지인살의 큼직한 손이 종리추의 뺨을 후려갈겼다.

“아, 아버지…”

“아무리 철이 없기로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장난을 치는 게냐. 네 눈에는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장난이나 하자고 이 난리 법석을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느냐!”

“죄송합니다.”

종리추는 순순히 잘못을 시인했다.

“무슨 일인지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이 된다. 어서 가서 사과하지 못해!”

종리추는 천지가 쩌렁 울리는 호통에 주눅이 든 듯 고개를 푹 수그리고 소녀에게 갔다.

“미안해. 사과할게. 난 네가 예뻐서…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

“흥!”

“사과를 받아줘. 안 그러면 난 화왕에게 맞아 죽어.”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종리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종리추의 얼굴에서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기색밖에 읽지 못했다. 설마 사과를 하는 마당에서도 장난을 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소녀가 적지인살을 힐끔 쳐다보았다. 적지인살은 무섭다. 부족 묘에서 선보인 신위도 무섭고 화자의 얼굴이 돌아가도록 뺨을 후려갈긴 것도 무섭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질러댔으니… 아마, 사과를 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바, 받아줄게.”

소녀는 종리추가 얄미웠지만 죽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말로는 안 돼. 말만 해서는 사과를 안 받은 것으로 알아.”

“그럼?”

“안아줘야 돼.”

“그, 그건…”

“장난친 건 미안해. 나중에 더 사과할게. 나 좀 살려줘.”

종리추는 눈물까지 그렁거렸다.

“알았어, 이, 이렇게…?”

소녀는 어설프게 종리추를 보듬어 안았다. 지켜보던 홍리족 부락민은 허허 웃어넘기고 말았다. 악의가 있어서 한 짓이 아니란 걸 알았고, 두 소년 소녀가 보듬어 안을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홍리족 여자들은 참 대단하군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서슴없이 껴안다니.”

“아직 어린애들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예의에 벗어나요.”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잠시 싸움을 잊었다. 종리추를 때려야 했던 상황도 잊었다. 종리추와 홍리족 소녀는 어른들의 마음을 일시에 가라앉혔다. 종리추가 소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살려줘서 고마워. 그런데… 더 꼭 껴안아야 돼. 그래,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안아줄 수 있어?”

“…?”

“화왕은 의심이 무척 많아. 앞으로도 이렇게 안아주지 않으면 또 무슨 실수를 했다 생각하고 때려죽이려 들 거야. 살려줄 거지?”

홍리족 여인들은 집안에서 싸울 수 있을 만한 사내들을 지목했다. 그들이 싸운다. 지목받은 사내들은 이유를 달지 않았다.

“당신이 나가요.”

남편은 말을 들은 즉시 손때가 묻은 창과 풀잎으로 엮은 방패를 들었다.

“넌 싸울 수 있겠구나.”

지목받은 아이는 엄살을 부리지 않고 창과 방패를 집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한다. 녹요평 한구석에 차디찬 시신이 되어 드러눕는다. 어쩌면 아내에게서, 어머니에게서, 할머니에게서 듣는 마지막 소리가 될 게다. 싸울 사람이 정해졌다. 하나씩 둘씩 창과 방패를 들고 집에서 나와 큰 집이 있는 부락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얼굴에 물감을 칠해 귀신같은 형상을 하고 서 있는 용사들의 눈에서는 비장한 결의가 줄줄 뿜어져 나왔다. 홍리족 용사들은 뙤약볕 아래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드디어 정오가 가까워지자 큰 집에서 팔십 노파 무당이 짐승 뼈로 만든 목걸이를 손에 들고 걸어 나왔다.

쿵! 쿵! 쿵…!

홍리족 용사들은 들고 있던 창으로 땅을 찍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한 행동이다. 이백여 명에 이르는 용사들이 창을 찍어대고 있건만 소리는 항상 일정했다.

“태양신이 지켜보신다. 목신이 그대들의 곁에 있을 것이다. 풍신이 그대들의 숨결을 가다듬고, 지신이 그대들의 피를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무당이 읊조리는 신은 무려 이십여 가지에 달했다. 용사들은 하나하나 신을 부를 때마다 함성을 질렀다.

“와아! 와아아…!”

무당의 음성이 고조되었다. 용사들의 함성도 드높아졌다.

“가라! 가서 신의 피를 마셔라!”

“와아아…!”

용사들은 질서 정연하게 대오를 갖추고 녹요평을 향해 걸음을 떼어 놓았다. 여인들은 부락 외곽에 쭉 늘어서서 전장을 향해 떠나는 용사들에게 술을 권했다. 용사들은 사양하지 않았다. 한 잔, 두 잔… 걸어가면서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이제 갓 소년 티를 벗은 용사도, 권투왕도… 보폭을 반으로 줄여 천천히 걸어가면서 여인들이 내민 술을 받아 마셨다. 술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주고 마지막 한 올의 전력까지 모두 끌어낸다. 될 수 있는 한 취하는 것이 좋다. 취기에 몸을 맡기고 무작정 돌진해 적을 죽여야 한다. 술에 취하면 나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라도 풋내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는 신이 알아서 하실 문제, 최선을 다해 싸우면 된다. 적지인살은 용사들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그는 여인들이 내미는 술을 받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냉철한 이성을.’

살수의 기본은 냉철함에 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이성을 차디차게 식혀놓아야 한다. 흥분은 곧 죽음이다. 그런 점에서 적지인살과 홍리족 용사들은 달랐다. 용사들이 부락을 나서자 남은 사내들이 울타리를 닫아걸었다. 그리고 손에 창과 방패를 들고 울타리 안에서 밖을 경계했다. 여인들도 간편한 차림으로 칼과 창을 집어 들었다. 여인들은 싸우러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울타리 안으로 침범하는 적은 과감히 맞서 싸운다. 배금향은 큰 집 지붕에 올라가 녹요평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무공은 중원무림인들에게는 천대받을지 몰라도 남만에서는 부락 제일 용사라 할지라도 가볍게 처치할 수 있을 정도다. 그녀도 이번 싸움에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대거혈을 다쳐 의욕을 상실한 적지인살을 보호하고 의욕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암연족이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쌔다 해도 적지인살을 상하게 할 수는 없다. 다만 귀찮을 뿐이다. 앞으로는 암연족이 보내는 암살자와 맞서야 할 판이니까. 자신과 적지인살은 걱정하지 않지만 종리추가 문제다. 신법을 배우려면 앞으로도 계속 초원을 뛰어다녀야 하는데, 암연족 암살자와 만나게 되면…

‘추아도 보는 게 좋겠어. 잔혹하지만 싸움이 무엇이라는 걸 알아둘 필요가 있지.’

배금향은 종리추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제 나갔을까? 홍리족 용사들이 포진을 한 곳에서 좌측으로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작은 그림자 두 개가 꾸물거렸다. 종리추와 족장의 딸이 분명하다.

“쟤들이!”

배금향은 화급히 신법을 펼치려다가 멈칫했다.

‘추아는 가가의 비호무영보를 오 성이나 익혔어. 도주할 마음만 먹으면 암연족이라 해도 잡지 못해. 수투도 지녔고… 어차피 무림에서 죽음과 맞서야 할 처지라면… 스스로 일을 해결할 줄 알아야겠지. 추아, 너… 아무래도 몇 대 맞아야겠어.’

배금향은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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