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29화
암연족 노인들도 젊었을 적에는 피가 튀는 싸움을 즐겼을 전사였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창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무력한 사람에 불과했다. 홍리족 용사들은 노인을 죽이지 못했다. 거의 죽기 직전인 노인을 죽인다는 게 여간 께름칙하지 않았다. 노인을 죽이기만 하면 꼭 창에 부정이 붙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놈들! 어서 내 창을 받아라!”
노인은 창을 휘두르려 했지만 허우적거리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내버려 두었다가는 전의가 상실된다. 죽여야 돼. 죽일 바에는 빨리.’
적지인살은 기형월도를 뽑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네 이놈! 창을… 컥!”
노인은 말도 끝내지 못했다. 어느새 살도를 전개했는지 목 잘린 노인의 머리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적지인살은 허공에 떠오른 머리를 향해 다시 한 번 월도를 날렸다.
‘잔인해야 해. 그래야 암연족은 사기가 죽을 것이고 홍리족은 용기 백배할 거야.’
쩌억!
노인의 머리는 정확히 허공에서 반으로 갈라졌다. 적지인살은 다른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노인은 끔찍하면서도 정교한 솜씨에 놀랐는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전장에서 죽어야 아부타의 품속에 안길 수 있다지만 삶에 대한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노인이라고 죽고 싶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앞으로도 사오 년은 더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에 자신을 전장으로 내몬 모진아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지인살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표정을 굳혔다. 홍리족은 자신을 두려워한다. 홍리족 제일 용사였던 무신타를 가볍게 죽인 그 순간부터 절대적인 마왕이 되어버렸다. 그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전장에서 패배는 병가의 상사라 해서 중히 여기지 않는다. 이번에 졌어도 다음에 이기면 된다. 그러나 계속 지기만 하면 곤란하다. 패배에 길들여지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지게 된다. 홍리족은 이미 길들여졌다. 암연족과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락에 장정이 이백여 명이나 있으면서도 겁부터 집어먹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였다. 반면에 암연족은 승리에 길들여져 있었다.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승부는 뻔하다. 암연족이 부근 일대에서 절대적인 횡포를 부리는 게 그들이 싸움을 잘해서만은 아니다. 당하는 부족들이 그들의 횡포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적지인살은 곧바로 노인을 죽이지 않고 월도를 겨눈 채 노려보기만 했다.
“빠, 빨리… 빠, 빨리…”
노인은 창을 들고 있을 힘도 없는 듯 털썩 무너져 버렸다.
“아아아아…!”
적지인살은 초원이 쩌렁 울리도록 창룡음을 토해냈다. 암연족에게 아부타가 있다면 홍리족에게는 마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홍리족이 믿는 신들은 이미 기력을 잃었다. 홍리족 누구도 그들의 신이 싸움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리족 용사들의 눈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는 게다. 죽음의 사자가 곁에 있으니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게다.
‘노인… 극락왕생하시오.’
적지인살은 월도를 휘둘러 노인의 머리를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그리고 조금 전에 죽은 노인처럼 허공에서 반으로 갈라 버렸다. 내리긋는 월도에 목이 잘리고, 다시 휘돌려 올려치는 월도에 반으로 갈라지는 깨끗한 솜씨였다.
쿵! 쿵! 쿵…!
누군가 창대로 땅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전달되는 속도는 돌림병보다도 빠르다. 굳어 있던 생각에 물꼬가 터지면 급속하게 제방을 무너뜨리고 굽이쳐 흐른다.
쿵! 쿵! 쿵!
홍리족 용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창대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종리추는 암연족 전사를 쓰러뜨리자마자 신형을 날렸다. 조금도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발걸음 소리가 무척 급박했다.
‘들키는 것은 문제가 안 돼. 내가 방향을 잡았으니… 이제는 속도 문제야. 따라와 봐.’
초원을 달리는 것은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다. 근 일 년여 동안 달렸던 초원이지 않은가. 암연족 용사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해도 종리추처럼 녹요평을 알지는 못하리라. 종리추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쳐 뛰었다.
‘됐어! 다 왔어! 칫! 구경이나 하려고 나왔다가 하루 종일 뜀박질이나 하고 있으니.’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평온하기는 했지만 변화가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긴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목적한 곳이 나타났다. 옛날에는 아름드리 거목이었으나 번개에 맞은 듯 반으로 쫙 갈라져 누워 있는 죽은 나무. 종리추는 걸음을 늦췄다.
쒸익! 후두둑…!
암연족 전사도 더 이상 숨으려고 하지 않았다. 종리추가 뛰는 방향을 어림잡아 득달같이 달려왔다.
‘나를 쫓아온 것부터가 잘못이야. 동료가 죽었어도 제 갈 길을 갔어야지. 바보들. 너흰 아마 모진아에게 죽도록 얻어맞을 거다.’
“어멋!”
손으로 입을 꼭 막고 있던 어린은 참지 못하고 경악성을 토해냈다. 죽은 나무를 빙글 돌자 야트막한 구덩이가 나왔다. 거기까지는 초원 어느 곳이나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연녹색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
“배, 뱀이야!”
“쉿! 조용히 해!”
종리추는 재빨리 연녹색 뱀들을 잡기 시작했다.
쒜에엑! 쒜엑…!
뱀들은 신경질적으로 물어왔다. 그러나 종리추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이는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
“괘, 괜찮아? 물렸잖아! 독뱀 같은데…”
“너, 조용히 안 할래!”
“아, 알았어. 조용히 할게.”
“지금 당장!”
“…”
어린은 입을 꼭 다물었다. 잠깐 동안만. 잠깐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종리추가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 바지는 왜 벗는 거야?”
“너, 정말 조용히 하지 않으면 확 이 뱀 굴에 던져 버린다.”
“그, 그러지 마. 무서워.”
“부탁이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해라.”
종리추는 부지런히 바지를 벗었다. 바지를 벗자 맨살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나, 나… 풀어줘.”
어린은 말을 더듬었다. 어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자다. 사내와 여자를 구분할 줄은 안다. 사내의 몸과 여자의 몸이 다르다는 것도 안다. 홍리족 여자는 열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에 혼인을 한다. 어린 역시 결혼할 시기에 접어들었고, 어머니 구맥에게서 혼인하면 겪어야 할 일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종리추보다 조숙했다. 종리추의 맨살 엉덩이가 몸에 닿아 있으니, 업혀 있다고는 하지만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랐다.
“풀어줘? 뱀에 물려 죽고 싶어? 신경 쓰이니까 제발 입 좀 다물어.”
종리추는 어린의 불편해하는 점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실제로 그는 무척 다급했다. 처음에는 기습으로 암연족 전사를 죽였다. 두 번째 전사도 기습의 효과를 보았다. 세 번째 전사는 기습이 아니었다. 서로 싸웠다. 그 결과 종리추가 내린 결론은 암연족 전사 대여섯 명과 부딪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한 명이었으니 망정이지 두 명만 더 있었어도 그처럼 마음대로 공격을 하지는 못했으리라. 지금 사방에서 달려오는 암연족 전사는 무려 이십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그들은 숨 몇 번 들이킬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리라. 종리추는 바짓가랑이를 꽁꽁 묶고, 잡은 뱀들을 바지 안에 쑤셔 넣었다.
‘이게 통하지 않으면 다시 도망가야 돼.’
연녹색 뱀을 잡아넣는 틈틈이 도주로도 살폈다. 폭우가 쏟아지는 우기에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렸던 곳이니 주변 지리에 대해서는 소상히 안다. 순식간에 바지 속으로 잡혀 들어온 뱀들은 삼십여 마리나 되었다. 암연족 전사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기껏 쫓아온 상대가 겨우 어린아이에 불과해서 맥이 빠진 듯했지만 전사 세 명이 아이의 손에 죽었으니 방심할 수도 없었다.
“흐흐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만 자식이 아랫도리를 홀랑 까고 뭔 짓을 하는 거야. 보아하니 아직 물건도 여물지 않은 것 같은데… 흐흐! 네놈 불알은 내가 구워 먹어야겠다!”
암연족 전사는 하나같이 단단해 보였다.
군살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풍습대로 웃옷을 입지 않은 상
체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가만… 저놈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계집이 홍리족 족장 딸내미 아냐?”
“흐흐흐! 그렇군. 오늘 횡재했어. 금년 들어 열 살이 되었다더니 서방질
부터 배운 건가? 흐흐흐!”
암연족 전사들은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이 종리추를 희롱했다.
“아뇨, 오늘은 당신들에게 상당히 불행한 날이에요.”
“흐흐! 꼬마 새끼야. 찢어진 주둥이라고 함부로 놀리는 게 아냐. 네 놈은
천천히 죽여주지. 살점을 조금씩 발라내서 빨리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만들어주겠어. 흐흐흐! 빨리 죽고 싶으면 말해. 아까 그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었지?”
“먼저 제 말부터 해야겠어요. 아저씨들은 홍리족을 측면이나 배후에서
치도록 되어 있지 않나요? 그런데 절 따라왔으니 어쩌죠? 아이구! 지금쯤
죽지 못해 안달난 노인네도 죽었을 텐데.”
종리추의 말에 암연족 전사들은 낯빛이 변했다.
동료 전사가 불의의 기습을 받아 부리나케 쫓아오기만 했지, 모진아의
명령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둥둥둥둥…!
그리고 보니 초원에서는 마지막 전고 소리가 울리고 있지 않은가. 기습
자를 쫓는 중에도 전고 소리를 듣기는 들었다. 하지만 모진아의 명령은 떠
오르지 않았다. 동료 전사를 죽인 놈인데 가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
에.
상대가 꼬마인 줄 알았다면… 한 명이 죽었을 때 무시하고 지나쳤을 게
다.
“뭐 해! 빨리 죽여 버리고 가자!”
‘저자야! 기습을 지휘하는 자.’
종리추는 들고 있던 바지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연녹색 뱀이 신경질난다는 듯 꽉 물었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독이
스며들지도 않았다.
종리추는 손가락에 잡힌 뱀을 꺼내 명령을 내린 자에게 홱 던졌다.
“큭! 큭…! 끄윽!”
명령을 내린 자는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풀썩 쓰러졌다.
독성이 지독했다. 명령을 내렸던 암연족 전사는 뱀에 물린 지 촌각도 지
나기 전에 쓰러졌다.
그는 뱀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바지 속에서 뱀이 나왔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쉽게 당할 생각은 없었다.
날아오는 뱀을 침착하게 창으로 후려쳤다.
뱀들은 땅을 기어 다닌다. 그러나 허공을 나는 뱀도 있다.
비사가 그렇다.
비사도 여느 뱀처럼 기어 다니는데, 기어 다니는 곳이 나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비사는 보통 뱀들처럼 기어서 나무를 타지만, 몸에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있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기도 한다.
독을 지니기는 했지만 독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비사는 마취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특이한 독을 가지고 있다.
비사가 날아올 때 대처하는 방법이 바로 암연족 전사처럼 창대나 막대기
로 후려치는 것이다. 그러면 비사는 혼비백산하여 도망간다.
동물은 자존심이라는 게 없다. 위협적인 것을 만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간다. 뱀도 그렇다. 뱀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달려들 경우는 도망갈
시간조차도 없다고 보았을 때다.
종리추는 바쁘게 손을 놀렸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 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뱀을 집어 던졌다.
전사들을 맞힐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있는 부근으로만 집어 던지면 나
머지는 모순되게도 전사들이 알아서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연녹색 뱀의 성
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놈들은 도망가지 않아. 건들면 공격하는 놈들이지.’
“컥!”
“커억…!”
전사들 중 십여 명이 순식간에 꺼꾸러지자, 나머지는 슬금슬금 물러났
다. 하지만 그들이 물러설 곳은 없었다. 구덩이를 벗어난 뱀은 풀숲으로
숨어들었고, 물러서는 전사들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전사들은 좀처럼 걸음을 떼어놓지 못했다.
풀숲과 연녹색 뱀의 색깔이 너무도 똑같아 풀슾 전체가 뱀으로 우글거리
는 착각이 들었다.
종리추는 바지에서 뱀 한 마리를 끄집어내 꼬리는 잡고 돌팔매처럼 빙빙
휘둘렀다. 빠르지 않게 천천히… 뱀이 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리지 못할 정
도만.
‘이놈들은 집을 떠나지 않아. 풀숲으로 기어든 놈들도 곧 구덩이로 돌아
올 거야. 저들은 위험하지 않아. 위험한 것은 오히려 나지.’
연녹색 뱀들은 서로에 대해서도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구덩이에 뱀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지만 각기 자기 영역이 있어 좀처럼 벗
어나지 않는다. 혹여 다른 뱀이 영역을 침범이라도 하는 날에는 서슴없이
공격한다.
구덩이에 모인 뱀들이 세월이 흘러도 일정한 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런 잔혹함 때문이다. 구덩이는 한정되어 있고, 각기 영역을 지키고 있는
뱀들이 있으니.
죽는 것은 주로 새끼 뱀들이다. 그중에 운이 좋은 놈은 죽은 놈의 영역
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다른 뱀의 먹이가 되어
버린다.
이 순간 이후로 새끼들은 조금 활기를 띨 것이다.
암연족 전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졌지만, 그들의 창에 찔려 죽은 뱀들도
이십여 마리가 넘으니까.
쉬이익….!
빙빙 돌리고 있던 뱀이 강한 독액을 뿜어냈다.
누군가 있다. 그렇기에 독액을 뿜어내는 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연녹색 뱀의 후각은 누군가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돌리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역시 뱀은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 꼬리를 잡고 흔드는 자보다 낯선 누군
가가 더 강한 위협으로 느껴지는 게다.
돌리는 속도를 더욱 늦추면서 서서히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무릎이 땅
에 거의 닿을 무렵 손에 들고 있던 뱀을 놓아버렸다
쒸이익! 쉬익!
연녹색 뱀은 부리나케 풀숲으로 도망가는 듯 했다. 그러나 곧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뻣뻣이 곧추세웠다.
맞은편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연녹색 뱀을 잘 아는 종리추의 눈에도 보
이지 않던 뱀이 고개를 쳐들었다. 아마 구덩이로 돌아오던 뱀이었던 것 같
다.
두 뱀은 서로 견제만 할 뿐 어울려 싸우지는 않았다.
그것이면 족하다. 종리추는 뱀이 있는 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
겼다. 천천히… 위험이 되지 않을 만큼 천천히… 멋모르고 구덩이에 발길
을 옮겨놓았다가 빠져 나온 경험이 있지 않은가.
바지에서 또 다른 뱀을 꺼내 돌리기 시작했다.
암연족 전사는 죽음이 사신들이었다.
그들이 모습을 보이는 곳에는 반드시 피가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암연족 전사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고,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어린 꼬마였다.
그들은 종리추의 얼굴에 떠오르는 냉기가 두려웠다. 종리추의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고, 살짝만 물려도 즉사를 면치 못하는 독사
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뱀이 자신을 향해
노려볼 때는 사정이라도 하고 싶었다.
독사를 만난 개구리.
암연족 전사는 개구리에 불과했다. 풀숲을 헤치고 도망갈 수도 없고, 유
유히 자신에게 뱀을 던지는 어린 꼬마를 어찌할 수도 없었다. 일부는 꼬마
를 향해 창을 던졌지만, 죽음을 더 앞당길 뿐 눈 깜짝할 사이에 풀숲으로
숨어버리는 꼬마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앗! 물렸… 컥!”
종리추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던 암연족 전사 한 명이 흙빛이 돈 얼굴로
종리추를 쳐다봤다. 물린 지 총각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오공에서 피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종리추를 따라왔던 마지막 전사는 그렇게 죽었다.
“오, 오빠… 정말 대단해! 손 괜찮아? 희한하게 오빠는 안 무네. 그 뱀
나도 만져 봐도 돼?”
“안 돼.”
“예쁘게 생겼는데…”
종리추는 남은 뱀을 모두 풀어주었다. 구덩이 쪽으로.
“부락 사람들이 알면 놀라 자빠질 거야. 오빠가 암연족 전사를 스무 명
이나 죽였잖아.”
“말하지 마.”
“왜?”
“좋아하기보다는 두려워할 거야.”
“아냐. 모두 좋아할 거야.”
“야, 꼬마야.”
“꼬마가 아니고 어린이야! 어린!”
“사람들은… 죽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모두 두려워해. 알았어? 그러
니까 말하지 마.”
‘위협이 되지 않는 능력은 반대로 경멸하고.’
변검은 뛰어난 능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즐거워할망정 존경하지는 않
는다. 오히려 잡기로 생각하고 경멸한다.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은 학문이 뛰어난 선비다. 용맹이 뛰어난 장군이
다. 재산이 많은 부호다.
무인은 두려워하는 쪽에 속한다.
그들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에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이날 어린에게 한 말,
‘죽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모두 두려워해.’
이 말을 훗날 ‘살수는 가장 평범해야 한다. 무공을 익힌 흔적은 절대 드
러내지 말 것이며, 살인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무공을 사용해서는 안 된
다. 무인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좋다’라는 말로 바뀌었고, 종리추의 좌우명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