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31화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바짝 긴장했다.
‘이 자는 무공을 익혔어. 일류야… 몸이 성했어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해.’
그들은 모진아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무인이 내뿜는 기도를 느꼈다. 모진아는 강하다. 그러면서도 빈틈이 한 군데도 없다. 평상시에도 긴장을 풀지 않는 무인으로, 비응회선으로 죽인 전사보다도 훨씬 강하다. 모진아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거목이다. 웬만한 바람 정도에는 꺾이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강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강을 추구하는 무인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모진아… 얼마나 강해요?”
“…”
적지인살은 쉽게 대답해 주지 못했다. 얼마나 강하냐?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지만 그것처럼 어리석은 질문도 없다. 강하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나를 죽일 수 있으면 강한 것이고, 나를 죽일 수 없으면 약한 것이다. 천 명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세인들에게 강자라는 칭송을 받는 자라도 나를 죽일 수 없으면 약자다.
“나보다… 강하다.”
적지인살은 현실을 정확하게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싸우면요. 저도 싸우고요.”
“모두 죽는다.”
적지인살은 모진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혈해가 된 초원을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걸어오는 암연족 족장. 근육이 단단한 사내들 틈을 조그맣고 볼품없는 사내가 걸어오고 있지만,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듯 그의 존재는 크게만 보였다.
“피잇! 그럼 할 수 없네요. 싸우지 말아야죠.”
종리추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꼬마… 네 활약은 잘 봤다.”
“감사.”
종리추는 바보처럼 입가에 실웃음을 매달았다.
“네게 죽은 전사가 삼십 명은 족히 되지.”
“헤! 두 명 빼먹었다. 히히!”
“그래, 서른두 명.”
“뭐, 할 수 없잖아요.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판인데.”
“죽이려고 싸우는 판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럼 내가 너를 죽여야겠군. 어쩔 수 없지.”
“잠, 잠깐!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되지? 그런가? 아이구! 그러면 안 되는데…”
“살 방도를 알려줄까?”
“헤…! 그러면 좋죠.”
“내 발을 닦아라.”
“히히,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뭐.”
모진아의 눈빛이 이의라는 듯 반짝였다. 종리추에게서 조금 전까지 맹렬하게 싸우던 모습이 전혀 풍겨 나오지 않았다. 장난기 많은 여느 아이들처럼 짓궂었고 조금은 겁먹은 표정도 비쳤다.
‘맹랑한 놈이군.’
“날 위해 세숫물도 떠오고 청소도 해라.”
“한마디로 시종이 되라는 거군요?”
“시종? 아니다. 노예가 되는 거야.”
“그게 그거죠 뭐. 그건 싫은데… 다른 방법은 없어요?”
“없다.”
“있는 것 같은데…”
“…?”
“간단하잖아요? 당신을 죽이면 되죠 뭐.”
모진아의 눈빛이 또 한 번 반짝였다. 그는 종리추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단단하게 다져 놓은 땅이다. 아직은 황량하지만 삼층 거각을 세워도 될 만큼 단단하게 다져져 있다. 하지만 땅은 땅이다. 황량한 땅이 거각의 위용과 맞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맞서겠다? 우리 전사들보다 낫군. 겁이 없어. 만용에 불과할지라도.’
모진아는 홍리족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예상에 없던 자들이 불쑥 튀어나와 홍리족을 돕고 있지만 홍리족이 무너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죽이라는 명령 한마디만 내리면 반 각 안에 깨끗이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모두들 겁을 집어먹고 움츠려 있는 꼴이라니…! 이 싸움에서 오른팔과 다름없던 목탄이 죽은 것은 뜻밖이지만 싸움에는 으레 죽음이 따르니 딱히 애석할 것도 없다. 그는 나서지 않으려다가 암연족의 희생을 줄여보겠다는 생각에서 나섰다. 한인들의 무공은 암연족 전사가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다. 설혹 한인들을 죽여도 득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무공을 익힌 한인을 죽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서른 명 정도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모진아는 쓸데없는 희생이라고 보았다. 다 이긴 싸움에서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히히, 암연족 족장에게 죽는 것도 영광이긴 해요. 그렇죠? 하지만 내가 두 살만 더 먹었어도 족장님은 결코 날 죽일 수 없어요. 히유! 아깝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이삼 년 정도 일찍 태어나는 건데.”
‘이, 이런…!’
모진아의 눈빛이 세 번째로 반짝거렸다. 첫 번째는 꼬마 아이가 호기심을 끌어서 반짝였고, 두 번째는 의외로 대담하고 맹랑해서 놀랐다. 세 번째는… 위험하다. 종리추는 맹랑할 뿐 아니라 위험한 놈이다. 어떤 면에서는 놀라운 무공을 선보인 한인보다도 더 위험하다. 모진아는 그렇게 판단했다.
‘이놈은… 자기를 죽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
종리추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서른두 명을 죽이면 뭐 해요. 그죠? 지금 당장은 족장님 상대가 되지 않을 거고, 족장님은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거에요. 뭐 하러 그러겠어요? 이 년쯤 기다리면 상황이 바뀌어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죽여서 다리 쭉 펴고 자는 게 낫죠. 죽여요. 죽이겠다면 어쩔 수 없죠 뭐.”
모진아는 종리추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눈에서 불길이 튀어나와 살을 태우는 듯 살기로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종리추는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맞받았다.
‘이놈… 억지를 부리고 있어.’
모진아는 종리추의 마음이 흐르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종리추는 두려워하고 있다.
‘눈길을 피하고 싶은데 억지로 피하지 않고 있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지. 이 년 후에는 분명히 죽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그래, 네 뜻대로 인상 하나는 강하게 받았다.’
문제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둘러선 자들도 강한 인상을 받고 있다는 거였다. 어처구니없게도 꼬마가 사납기로 유명한 암연족 족장에게 도전을 하고 있는 게다.
“네 나이가 몇이냐?”
모진아는 눈길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열셋요.”
“죽여도 상관없는 나이군. 열셋이면 싸움터에 나가도 되지.”
“누가 뭐래요? 저두 서른두 명이나 죽였는걸요.”
“지금 당장 죽여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게다.”
“후환을 없애려는 거죠.”
“한 가지 잊은 사실이 있는데… 지금은 싸움 중이다. 네가 갓난아기라도 이 싸움판에 끼어들었으니 누구에게 죽든 상관없어. 이렇게 할 생각이다. 우선 네 팔을 잘라주겠다. 다리도 하나쯤 잘라 버리고… 그렇게 해서 네가 우리 전사를 죽인 뱀 굴에 처넣을 생각이다. 네 생각은 어떠니?”
“…”
“대답이 없는 것은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부탁 하나 해도 돼요?”
“…?”
“족장님도 남자라면 이 년을 기다려 줘요.”
종리추는 되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도 당당했다. 종리추와 모진아가 무슨 말을 나누는지 모르는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고, 등에 업혀 있는 어린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덜덜 떨기만 했다.
“좋다.”
모진아는 뜻밖에도 선선히 승낙했다.
“이 년 후에 바로 이곳에서 네 목을 베겠다. 무공이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것. 열다섯 살짜리가 얼마나 높은 무공을 익혔는지 보겠다. 이 년 후에 네가 오 초만 막아낸다면 살려주지.”
“히유!”
종리추는 손으로 목을 움켜잡으며 엄살을 부렸다. 모진아가 암연족 전사들을 이끌고 밀림 속으로 사라지자 종리추는 허리띠를 풀고 어린을 내려놓았다. 종리추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었다. 손뿐이 아니라 몸도 떨었다. 사시나무 떨 듯이 떤다는 말은 종리추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오빠! 괘, 괜찮아? 어디 다친 거야?”
어린은 놀라서 물었지만 종리추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덜덜 떨기만 했다.
“우욱! 우웨엑!”
급기야는 토악질까지 했다.
조금 전 모진아와 당당히 이야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열병에 걸려 곧 죽을 사람처럼 덜덜 떨며 토악질을 했다.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측은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홍리족 사내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우욱! 웩!”
종리추는 위장에 든 것을 모두 토해냈다. 그래도 계속 토악질을 했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계속 토악질을 했다. 낯빛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고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몸은 불풍한설을 알몸으로 맞이하는 사람처럼 떨었다.
“오, 오빠! 왜 그래? 응? 말을 해야 알지.”
어린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헉헉! 헉헉헉…!”
한참을 토해낸 종리추는 풀숲에 머리를 처박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으냐?”
적지인살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예.”
종리추는 언제 떨었냐 싶게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휴우! 네가 걸어가야 할 길이 이 길이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종리추는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피, 피, 피… 사방이 온통 죽은 사람 천지였다. 내장이 흘러나오고 머리가 부서지고… 그들이 흘린 피는 작은 개울을 만들어 졸졸 흘렀다. 열 살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형의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죽는 것도 보았다. 적지인살은 개방도의 머리를 떼어내 버렸다. 개방도의 머리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었다. 부덤을 파고 인피를 벗기는 광경도 보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암연족 전사를 기습해 죽이고, 연녹색 독사를 이용해 암연족 전사를 줄일 때도 이런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가고 난 폐허에는 처참한 광경만이 남았다.
“벌써 후회하고 있어요.”
종리추는 가는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이라도 돌아설 수 있다.”
“아뇨.”
종리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돌아설 수 있었는데… 이제는 돌아설 수 없어요.”
“…?”
“모진아와 약속했거든요. 이 년 후에 싸움을 하기로요. 모진아와 저와.”
“뭐, 뭣?!”
“뭐야! 왜 그런 터무니없는 약속을!”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깜짝 놀랐다. 종리추와 모진아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무언가 약속이 오가는 듯한 말투가 있었던 것은 알겠는데, 설마 그런 약속일 줄은 몰랐다. 말이 되는가! 이 년 동안 배우면 얼마나 배운다고 초강자와 싸움 약속을 하다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아버지와 어머니, 제가 합쳐도 죽는다고, 전 살길을 택한 것뿐이에요.”
어찌 들으면 당연한 말. 하나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소름이 오싹 돋았다. 종리추는 사지에서 살길을 찾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살수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완벽한 방어막에 둘러싸인 자라도 죽일 수 있다는 말과 상통하니까. 종리추는 이 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 적지인살과 배금향의 눈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졌다. 종리추가 피땀을 흘리며 치열하게 수련하는 모습이.
모진아는 밀림에 들어서자 뒤를 돌아보았다. 종리추가 풀밭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어떤 상태인지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정신이 공동처럼 텅 비어 있을 테지.
‘맹랑하고 위험한 놈…’
모진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흘렀다. 그가 말도 안 되는 종리추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암연족 전사들은 선천적으로 사납고 용맹스럽다. 태어날 때부터 사나운 기질을 물려받아 어린아이들도 싸움을 즐긴다. 이기고 지는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싸우는 것 자체가 좋아서 싸운다. 운 좋게 한인을 만나 무공이란 것을 배우고 중원의 학문도 배운 모진아에게는 사납고 강한 부족에서 태어난 것이 세상에 다시없는 행운이었다. 그는 부족의 힘을 이용하여 지역 패권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일개 족장에서 나라를 가진 왕이 되는 것이다. 그의 학문과 무공은 암연족 내에서도 독보적인 것이었고, 그는 어렵지 않게 족장이 되었다. 주변 부족들을 공격하여 종속화시키는 작업도 착착 진행되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장애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모진아는 암연족 전사들 중에서도 특히 몸이 민첩하고 영리한 아이들을 모아 따로 수련시켰다. 무공을 전수하여 강자 중의 강자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것이 요즘 와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암연족 전사는 싸우는 것이 좋을 뿐이다. 타 부족을 공격하고 죽이고 약탈하면 만족한다. 암연족에게는 거친 성정만 있을 뿐 나라를 건국하는 데 필요한 지혜는 없었다. 모진아는 지혜를 중원에서 구하기로 했다. 중원에서 뛰어난 현자를 데려와 건국의 디딤돌이 되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불행한 점은 암연족에게 포용력마저 없다는 것이다. 암연족은 타 부족이라면 공격 대상으로만 여길 뿐 받아들일 마음도 없었다. 더군다나 한인이 자신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싸웁시다!”
“저놈들 눈앞에서 깔짝거리는데 싹 쓸어버립시다!”
하는 말이라고는 노상 공격, 공격, 공격… 모진아는 싸우는 것보다 지혜로운 자를 양성하고, 일당백의 전사를 양성하고, 내부를 착실히 다지고 싶었지만 암연족 전사들은 아침거리도 되지 않는 연약한 부족들을 공격하는 데 급급해했다.
“저들은 마음만 먹으면 쓸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까 쓸어버립시다.”
“우리가 차지한 영역은 좁지 않다. 종속된 부족만도 십여 부족이나 된다. 이제는 부릴 게 아니라 다스려야 해.”
“골치 아픈 이야기 아닙니까. 말 안 들으면 죽여 버리면 되지. 다스리긴 뭘 다스립니까?”
모진아는 회의를 느꼈다. 암연족은 싸움은 잘하지만 남을 다스릴 부족은 되지 못했다. 사람은 잘 죽이지만 그들을 포용하지는 못했다. 한 사람이 열 명만 거느려도 백 명이면 천 명이라는 대군이 모이게 된다. 한 명이 백 명을 거느리면 만 명이 모인다. 한 명이 천 명을… 모진아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암연족이 사람을 거느린다면 노예로서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고, 심심하면 죽이기도 하는 그런 종류밖에 없다.
‘그래… 이래서 암연족은 성난 기개를 지녔으면서도 일개 부족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설득이 안 되자 힘으로도 억눌러 봤다.
“노예를 전사로 만들어라! 말 잘 듣는 개로 만들어라!”
엄청난 모험이었다. 암연족이 거느린 노예는 암연족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을 전사로 만들 경우 창끝이 거꾸로 돌려지지는 않을까? 불행한 예측은 피해가지도 않는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힘이 생긴 노예들은 탈출을 시도했고, 지난 일 년 간 그들을 잡아 죽이느라 무진 힘을 쏟아 부었다. 평소에 조금만 인정을 베풀었어도… 모진아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원대한 희망을 포기했고, 그러자 싸운다는 자체가 싫증났다.
“코앞에서 깔짝대는 놈들을 언제까지 보고 있을 참입니까?”
“홍리족 계집은 죽여주는데, 기분 전환 좀 할 겸…”
“마음대로… 가서 마음대로 실컷 죽여. 빼앗아올 계집이 있으면 빼앗아오고. 이번 싸움은 목탄이 책임지도록.”
그렇게 시작된 싸움… 종리추는 세상에 염증이 난 모진아에게 새로운 흥미를 안겨주었다. 재미있었다. 몸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놈이 ‘이 년 후’를 운운하다니. 한낱 어린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단숨에 목뼈를 부러뜨리고 말았겠지만 꼬마는 암연족 전사를 서른두 명이나 죽였다. 스무 명은 독사를 이용해 죽였다지만 그것도 지혜가 없으면 하지 못한다. 전쟁터에 뛰어들어서 죽인 전사들은 순전히 어설프게 익힌 무공으로 죽였다. 무공 자체는 어설프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권형을 찾아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전성이란 무공을 얼마나 오랫동안 익혔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고정 표적을 놓고 수련했느냐, 이동 표적을 상대로 수련했느냐의 차이다. 무공이란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 살상이 목적이다. 화려한 초식을 전개하더라도 죽일 수 없으면 죽은 무공이고, 종리추가 전사들을 죽였던 것처럼 단순한 발길질이라도 정확한 시기와 위치와 각도와 힘을 겸비하여 즉사시키면 산 무공이다. 죽은 무공은 산 무공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종리추는 산 무공을 익히고 있다.
‘이 년 후에는 크게 성장했을 수도…’
모진아는 흥미를 느꼈고 순순히 승낙했다. 원대한 꿈을 잃고 삶의 의욕이 사그라지던 참에 적당한 흥미거리를 발견했으니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이 년 후라… 이 년 후… 이 년 후에 보지.’
모진아는 다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