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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40화


종리추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빴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천폭으로 달려가서 한 시진 동안 내공 수련을 한다. 내공 수련은 처음과 같이 제일 먼저 금종수를 연마하고, 변검 양부가 일러준 내공법을 수련한 다음 하단전 수련으로 마무리한다. 얼굴도 보지 못한 백부의 무형필살 삼십육초천풍선법에도 신공이 있었다. 신공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무공의 이름을 따 천풍신공이라 부르는 이 내공법은 혈염무극신공과 마찬가지로 하단전을 수련하는 신공이었다. 오독마군의 구연진해에도 신공이 있다. 대연신공 역시 하단전에서 일어나 하단전으로 축기된다.

“무공이란 하나를 통하면 만류에 통하게 되어 있다. 천풍신공이나 대연신공 역시 뛰어난 내공법이나 자칫 기혈의 흐름에 영향을 줄지 모르니 욕심을 버려라. 내공법은 혈염무극신공으로도 충분하다. 성취도는 무공의 우열에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고의 노력으로 수련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버지는 그렇게 배우셨지만 종리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현재만 해도 세 가지 내공법을 고루 운용하고 있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각기 쌓이는 곳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다. 그럼 세 진기는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가? 아니다. 인체란 균형을 이루려는 자연적인 현상이 있어서 상단전을 열면 중단전과 하단전도 동시에 열린다. 하나의 내공을 연마하면 다른 두 곳의 단전에도 영향이 미친다. 종리추는 욕심을 부렸다.

‘응? 이거 이상한데?’

종리추는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다. 혈염무극신공만 연마했을 때는 진기가 하단전에 고루 쌓였다. 한데 천풍신공으로 대주천을 하자 전신을 한 바퀴 휘돈 진기는 하단전에서도 상부에 집중적으로 쌓였다. 화기를 지닌 곳이다. 혈염무극신공을 다시 한 번 운기해 보았다. 이상한 점은 거기서 생겼다. 천풍신공을 전개하기 전만 해도 하단전에 고루 쌓이던 진기가 하부로 밀려 들어갔다. 수기를 지닌 곳이다. 종리추는 잠시 운기를 멈추고 생각에 젖었다. 혈염무극신공… 아버지의 무공이다. 혈염무극신공의 진기는 혈염도법으로 이어진다.

일절, 천지양단.

이절, 풍운변환.

삼절, 비응회선.

종리추는 잠시 혈염도법을 되짚어 나갔다. 혈염무극신공이 수기가 있는 곳으로 스며 들어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는 물. 물은 오행 중 가장 변화가 많다.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랗게,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나게. 또 물은 강과 유를 겸비하고 있다. 조용히 흐르다가도 천폭같이 급하게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생각이 미치자 종리추는 몸을 일으켰다. 아직은 몸에 익지 않은 혈염도법을 전개해 보았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나중에는 수의 기운대로 변화난측하게… 일직선으로 내뻗는 도결에도 변화를 주고… 내리찍거나 베어가는 곳에는 급하게, 축기를 해야 하는 곳에서는 유유히… 한결 도법이 부드러웠다.

‘이거야! 쳇! 이거야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지. 그냥 한번 홱 내지르면 될 것을 매미 날갯짓하듯 부르르 떨어야 하나… 문제는 속도인데 쉽게 익히기는 틀렸군.’

종리추는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천풍신공은 화의 자리로 들어갔어. 불이야. 불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동시에 사방을 비춘다. 무방지지.’

손에 든 나뭇가지를 부채라 생각했다. 그리고 천풍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무공에서 사용하는 접선은 살이 쇠로 만들어져 있다. 한데 오므리면 쇠몽둥이도 될 수 있고 활짝 펴면 넓은 방위를 점할 수 있다. 공격용으로도 방어용으로도 유용하다.

‘불을 피우면 바람이 인다. 바람이 일면 구름이 이동하고, 구름이 이동하면 비가 온다.’

삼십육 초를 천천히 펼쳐 나갔다. 초식에 필살의 기운을 담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무형필살이라는 말에 연연했다. 앞 초식은 순전히 뒤 초식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데 만족했다. 어떻게든 앞 초식을 전개하면서 축기가 많이 되도록 노력했다. 밖으로 쏘아져 나가는 것보다 안으로 갈무리되는 것이 많도록. 몸이 팽창하는 느낌이 들었다. 몸속의 진기가 터질 곳을 찾는 듯했다.

‘불의 기운은 맹렬하다. 너무 강한 성질이기 때문에 집을 태우고 산을 태운다. 너무 강하면 좋지 않아.’

터질 곳을 찾는다 싶을 때는 살살 진기를 풀어주었다. 손에 든 나뭇가지가 흘러나온 진기의 영향으로 부르르 떨렸다.

‘이, 이거야! 이거였군!’

종리추는 이제야 초식 앞에 ‘무형’이 들어가는 이유를 알았다. 무형필살 삼십육초천풍선법은 암경을 사용하는 무공이었다. 강력한 내력으로 경기를 쏘아내 기혈을 상하게 만드는 무공.

‘무형초자는 원래 부법으로 창안했다가 나중에야 도법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그래, 무형초자는 말년에서야 화의 기운을 느낀 거야. 아무리 뛰어난 초식이라도 상대가 알아차리면 소용없지. 화려한 선법으로 시야를 가리면서 암경으로 승부를 보는 거야. 필살. 이거야말로 필살이야. 익히기는 쉽지 않겠지만.’

종리추는 내친김에 모진아가 일러준 대연신공도 운기했다. 일주천은 순조로웠다. 전신을 휘돌며 몸 곳곳을 어루만진 진기는 상단전을 지나고 중단전을 지나면서 부드럽고 유순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하단전 중부로 파고들었다. 종리추는 진기들이 제자리를 찾아드는 이유를 알았다. 상단전과 중단전이 열린 덕이다. 마음이 신체의 균형을 조율한 것이다. 탁한 진기는 빠지고 양질의 진기가 하단전으로 모이니 자기 자리를 서슴없이 차지한다.

‘토군.’

무공의 성질이 파악되는 순간이었다.

‘토는 성질상 정중앙에 위치한다. 대지는 어머니. 풍요롭고 아늑할 뿐 성내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을 감싸고 생명력을 키운다.’

구연진해에는 아홉 가지 각법이 있다. 단철각, 환영각, 자오각, 원음각, 수라각, 흑살각, 천둔각, 난화각, 금강각. 각각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각법들이다. 이 중 하나만 사용해도 비급 한 권을 만들 수 있으며 다른 각법과 연결시키지 않아도 된다. 구연진해는 각법 아홉 가지가 모인 것이다. 종리추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모진아가 그렇게 지도를 했으니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더 있는가. 아홉 가지의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닌 각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내공법이 필요했으리라. 강맹한 단철각과 화려한 환영각은 종류가 완전히 다르다. 완전히 다른 각법을 내공심법 하나로 펼쳐 내려면… 흙과 같은 포용력이 필요하다.

‘흙은 움직이지 않아.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여. 만물이 흙에서 소생하잖아. 움직이지 않는데 움직이는 것.’

뭔가가 잡힐 듯 말 듯 가물거렸다.

‘구연진해… 구 연 진 해야. 아홉 가지가 넘쳐 바다로 간다. 바다에서 합치는 거야. 구연진해의 진짜 위용은… 각법. 언제 어디서든, 어느 각도로든 뻗어낼 수 있는 각법. 아홉 가지 속에 그게 숨어 있어. 아홉 가지 각법은 기본공에 불과해. 청성파의 현도 도인은 틀림없이 완성된 각법에 당했을 거야.’

놀랍지 않은가. 기본공에 불과한 각법이 하나같이 절기들이니 모진아도 마지막까지는 알고 있지 못했다.

‘이것도 익히기가 쉽지 않겠군.’

전부 다 어려웠다. 종리추는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병기 좀 자유자재로 사용한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덤볐으니, 만약 모진아가 진심으로 일격을 가했다면 어쩔 뻔했는가. 그는 상승무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공 수련이 끝날 무렵이면 동녘에서 해가 밝아온다. 종리추는 아침 해를 맞으며 초원을 달렸다. 경공법 비호무영보를 수련하는 시간이다. 아침에 초원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쏜살같이 치달리는 신형은 스스로 바람을 일으켰다. 초원은 많은 동물들에게 삶의 터전이다. 그만큼 위험한 구석도 많다. 종리추는 위험한 곳만 골라서 치달렸다. 연녹색 뱀이 모인 구덩이.

“안녕!”

인사를 한 종리추는 구덩이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쉬익!

놀란 뱀이 머리를 쳐들기가 무섭게 발목을 물어왔다.

“하하! 약 올라서 어쩌냐?”

종리추는 뱀 구덩이 속에서 연신 발을 옮겼다. 이것이야말로 실전이지 않은가. 개미핥기까지 먹어치운 개미들은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서는 종리추도 긴장했다. ‘앗차!’ 하는 순간이면 뼈밖에 남지 않을 무서운 곳이었다. 종리추는 황색 개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아니, 뛰어듦과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경신법으로 가장 빠른 것은 점창파의 유운신법이다. 하지만 당금 무림에 들어와서는 사정이 바뀌었다. 개방의 분운추월이 가장 빠른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얼마나 빠른데요?”

“직접 겪어봐라. 반드시 한 번은 부딪힐 때가 있을 테니. 말보다 빠르다는 것만 알면 된다.”

“후와!”

“가장 은밀한 신법은 뭐니 뭐니 해도 청성파의 암향표가 단연 압권이다. ‘공기의 흐름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대는 내 목을 가져갔구나’. 암향표를 일컫는 말이다.”

“와아! 대단하네.”

“허공에서는 곤륜파의 운룡대구식을 따를 신법이 없다. 한숨 진기로 허공에 머물며 아홉 번의 신형 변화를 보인다.”

“사람의 무공이 아니군.”

“너, 계속 입방아 찧을래?”

“아뇨.”

“입 다물어.”

“예.”

“말해 주지 말까 보다. 신경질나면.”

“아버님이 자식에게 그러면 안 되죠.”

쿵!

종리추는 기어이 알밤을 얻어먹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신법은 무당파의 이형환위와 소림사의 금강부동신법이다. 이형환위는 동, 금강부동신법은 정이다. 때리고 싶으나 때릴 수 없는 신법이 이 두 신법이다.”

“갈수록 태산… 뚝!”

“비호무영보는 빠르기에 치중한 신법이다. 다른 신법들을 상대하려면…”

“상대하려면요?”

“내가 창안해라.”

“무슨 말이 그래요!”

“모르는 걸 어떡해!”

적지인살은 점점 종리추를 닮아갔다. 옛날의 근엄하고 묵직하던 모습은 간데없었다. 배금향과 더불어 한 가족이 되어 산다는 것이 그들을 변화시켰다. 종리추는 연녹색 뱀이 있는 곳에서 이형환위와 금강부동신법을 따라잡는 수련을 했다. 그리고 개미가 있는 곳에서는 허공에 최대한 머물러 운룡대구식을 대비했다. 자연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종리추는 쥐들이 있는 곳도 찾았다. 등에 흰 점이 있는 놈들은 뱀도 잡아먹는 흉포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어떻게 모여 사는지 집단 생활을 한다. 종리추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그의 목표는 쥐들의 서식지를 빠져나갈 때까지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였다. 은밀하기로 정평이 난 암향표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초원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아침때가 훨씬 지난 후였다. 종리추는 벽곡단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도가 무공을 익히고 있는 한 가급적이면 화식을 줄여 나갈 생각이었다. 불가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도가에서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다. 불가에서는 살생을 금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지만, 도가에서는 탁한 기가 들어오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먹지 않는다. 상단전이 열리면 탁한 기운과 적체된 기운의 차이를 금방 깨닫게 된다. 벽곡단으로 촌각 만에 아침을 해결한 후에는 다시 천폭을 찾는다. 이번에는 하오문주의 무공인 한성천류비결을 제일 먼저 연마한다.

제일공 비류흔에는 비수를 손에 잡고 펼칠 수 있는 모든 초식이 망라되어 있다. 모진아와 지척 간에 팽팽한 접전을 벌인 것도 비류흔 덕분이다. 제이공 양수이분은 비수로 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른다. 검이나 도로 목을 베어내기는 쉽다. 하지만 비수로 베어내기는 힘들다. 양수이분은 살의 결을 찾아 잘라내는 방법이다. 제삼공부터는 비도술이라고 해야 한다.

일비일표, 비수를 던지니 자루까지 박힌다.

제사공, 십비십향, 열 개의 비수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다.

제오공 일비살광, 비수를 던지면 반드시 혼이 승천한다.

제육공 일수비백비, 일수에 비수 백 개가 하늘을 덮는다.

한 번에 비수 백 개를 던질 수는 없었다. 보통은 비수를 던질 때 엄지와 검지 사이에 비수를 놓는다. 한성천류비결에서도 제삼공과 제오공에서는 엄지와 중지를 사용한다. 하지만 제사공과 제육공은 비수를 놓는 곳이 다르다. 새끼와 약지 사이에 두 개, 약지와 중지 사이에 네 개, 중지와 검지 사이에 네 개를 놓는다. 그래서는 힘도 들어가지 않고 방향도 조절할 수 없다. 한성천류비결은 비수를 쏘아내는 것이 아니라 탄기를 쏘아내는 무공이다. 한 손에 열 개씩 양손에 이십 개. 비수를 집어 들고 쏘아내는 것이 일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쪽에서 비수를 들고 있으면 상대가 방비를 하기 때문에 효과가 적다. 적도 모르는 사이에 비수를 뽑아 던져야 한다. 그렇게 다섯 번을 연속으로 던지면 하늘에 비수 백 개가 드리워진다. 처음 날아간 것과 가장 나중에 날아간 것의 차이는 눈에 띄지 않게 미미해야 함은 당연하고. 제육공을 일수비백비에 그친 것은 인간의 몸에 감출 수 있는 비수의 양이 백 개가 절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백 개의 비수를 몸에 지니려면 웬만한 갑옷을 입는 것과 같다. 한성천류비결에는 지극히 얇고, 작고, 가느다란 비수를 제조하는 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지만 남만에서는 적당한 쇠붙이도 구할 수 없고 그만한 장인도 없었다. 결국 비수는 중원에 들어가서 만들어야 한다. 한성천류비결은 변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비결이 일맥상통했다. 십보십변이나 일수비백비나 같은 맥락이었다. 손 놀림이 빨라야 한다는 점에서는. 하오문주의 한성천류비결을 수련하고 나면 점심때가 거의 다 된다. 점심 역시 간단히 벽곡단으로 해결하고, 폭포에 들어가 내공 수련을 다시 한다. 오후는 뇌인일지공, 천풍선법, 구연진해, 혈염도법을 수련한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후에는 또다시 내공 수련을 하고 초막으로 돌아온다. 하루 중 제일 편안한 시간이다. 다 같이 둘러앉아 밥도 먹고, 잡담도 나눴다. 어떤 때는 무리를 토론하다 서로 다투는 경우도 있었다. 결과는 늘 종리추의 이마에 혹이 나는 것으로 끝났지만.

“나도 무공 배우기로 했어.”

“뭐?”

“가가가 무공을 배우니 나도 배워야지.”

“그 가가란 소리 좀 하지 않으면 안 되니?”

“왜?”

“그냥. 어쩐지 근지러워서.”

“어머님이 그러는데…”

“뭐야? 답답하게 굴지 말고 빨리 말해 봐.”

“가가 같은 사람은 바람둥이가 많대. 그래서 처음부터 단속을 철저히 해야 된다고 그랬거든. 내가 왜 무공을 배우는지 알아?”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모른다면 말이 되는가.

“모르겠는데?”

“계속 몰라도 돼. 가가는 용서해 줄게. 가가가 뭐 잘못이겠어? 꼬리친 년들이 죽일 년들이지.”

“…”

종리추는 말문이 막혔다. 어린은 초막에 같이 머물면서 중원 풍습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한어도 배웠고, 한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배웠다. 배금향은 하오문 기문의 향주였다. 가무, 악기… 그녀는 모든 것을 어린에게 가르쳤다. 적지인살도 한몫 거들었다. 학문을 가르치고, 서화를 가르치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연분을 맺은 것도 괜찮지.”

“에에? 그 무슨 끔찍한…”

“중원에서도 어린이만큼 예쁜 여자는 찾기 힘들어. 넌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놈이 무슨 눈이 그렇게 높냐?”

“눈이 높아서 그러나요.”

“그럼?”

“예쁘긴 한데 성질이 암팡져요. 어디 바람이나 피겠어요?”

“뭐야!”

“저는요… 바람을 피워도 피는갑다. 살림을 차려도 차렸는갑다.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이렇게 참는 여자를 아내로 맞을 거예요.”

“추아야.”

“왜 그렇게 징그럽게 부르세요?”

“안쓰러워서.”

“뭐가요?”

“몽달귀신 될 놈이니 불쌍하지. 아니다, 몽달귀신 되기 전에 맞아죽겠구나. 어린아! 어린아! 여기 재미있는 말 있는데 안 들을래?”

“아고!”

초막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나 농담을 즐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농담의 강도도 세졌다. 아마도 마음 편히 농담을 즐길 시간도 지금밖에 없을지 모른다. 모두들 불안한 거다. 중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한 게다. 구파일방… 그들은 십망을 풀었을까? 버젓이 살아 있는 오독마군을 죽었다고 소문 낸 것처럼, 살흔부 고수들도 죽었다고 소문 냈을까?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리추는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다. 적지인살, 모진아, 유구, 유희! 이들은 종리추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경신법을 수련하는 도중에, 도법을 수련하는 도중에, 비도술을 수련하는 도중에도 끊임없는 암살이 지속되었다. 그들의 공격은 살의가 담긴 듯 매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담이 짙어질수록… 암살 수법도 치명적이고 잔인하게 바꿨다. 어떤 때는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제는 봐주는 것 없이 모두들 최선을 다해 병기를 날려오기 때문에.

‘나는 쫓겨봤어. 이제 다시 중원으로 돌아가면 절대 쫓겨 다니지 않을 거야. 절대.’

종리추는 촌각도 아껴가며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우기에도, 불볕이 내리쬐는 건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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