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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52화


하남성은 여덟 개 부로 나눠져 있다. 종리추는 개봉부 양성으로 갔다. 하남성 정중앙에 해당하는 성이다. 소고는 살수 집단을 세우라는 말만 했지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세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한은 정했다. 사월 초파일 이전에 살인 청부를 받을 것이며, 늦어도 초파일까지는 살천문의 이목을 잡아끌어야 한다는 명령이다.

‘살수로 이름이 나야 하는데..’

종리추는 저잣거리를 돌아다녔다. 유구, 유회, 역석은 험한 인상을 지으며 뒤에 붙어 다녔다.

“유구는 원래 인상이 험악하니 신경 쓸 것 없고… 모두 인상이란 인상은 잔뜩 찌푸려. 망나니도 천하에 다시없는 망나니처럼. 만약 시비를 거는 자가 있으면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해도 좋아. 죽이지만 말고. 명심해. 죽여서는 안 돼.”

유구는 정말 당부할 필요도 없었다. 이마 정중앙에서 오른쪽 눈을 지나 턱 밑까지 그어진 상처는 유구를 세상에서 가장 못된 망나니로 보이게 만들었다.

‘큰 고래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강을 타야 하지. 강을 타려면 물길을 찾아야 하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야.’

“비켜! 콱 창자를 뽑아내 버릴까 보다. 어디서 길을 막는 거얏!”

유구와 유회, 역석은 혼잡한 저잣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시비를 걸었다. 상인들은 슬금슬금 눈치 보기에 바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타 지역에서 굴러 들어온 파락호들이 어떻게 돈푼깨나 뜯어 낼 수 있을까 싶어서 어깨에 힘을 주고 행패를 부린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다. 이런 자들은 관아에 고변해 봤자 곤장 몇 대 맞고 풀려나기 일쑤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지막지한 보복이 이어지고. 그래서 상인들은 돈을 주고 무인을 사거나 지역 패자에게 일정한 금액을 상납한다. 그것이 속 편하다.

“이봐, 어디서 굴러왔어? 꼴을 보니 아래쪽에서 굴러온 것 같은데, 남쪽 섬에서 온 촌놈들인가?”

눈이 위로 쭉 째져 독기가 풀풀 날리는 청년이 다가와 위협적인 말투로 말을 걸었다.

“하! 정말 어이가 없어서. 야, 이 쥐방울 같은 새끼야! 너, 몇 살이나 처먹었는데 혓바닥이 반 토막이냐!”

“응? 기분 나빠? 우리 조용한 곳으로 갈까?”

청년은 말을 걸고 있는 상대가 홍리족 용사 가운데서도 가장 권투를 잘하는 역석이란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역석은 종리추를 쳐다보았다. 종리추는 이미 저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퍽!

“큭!”

번개처럼 날아간 주먹이 청년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청년은 답답한 신음을 토해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퍽퍽퍽…!

맷돌처럼 단단한 주먹이 연거푸 터지며 청년의 전신을 난타했다. 옆구리를 막으면 얼굴을,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막으면 복부를… 역석의 연타에 청년은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기만 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청년은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역석은 주먹 관절을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꺾었다.

“저, 저!”

“저런 때려죽일 놈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한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지만 청년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후였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이… 억!”

장한 한 명이 말을 하다 말고 답답한 신음을 토해냈다. 장한은 허리를 부둥켜안은 유회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장한의 발버둥은 점차 사그라졌고, 이내 고개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린 후에.

“흐흐흐! 다음은 어떤 놈의 허리를 꺾어주랴.”

유회는 뚱뚱한 체격답지 않게 힘이 장사였다. 그가 뚱뚱함에도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름드리 나무를 단숨에 뽑아 올리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컥!”

다른 쪽에서도 비명 소리가 터졌다. 유회가 장한의 허리를 부둥켜안을 때, 유구는 손에 들고 있던 짤막한 몽둥이로 제법 몸이 날래 보이는 장한을 두들겨 팼다.

퍽! 퍽퍽퍽…!

짧게 끊어치는 솜씨는 종리추가 가르쳐 주었다. 모진아에게 무공을 배워 각법이나 암연족의 창법에는 능숙하지만 수법에는 부족한 면을 보였기 때문에 전수한 무공이다. 유구의 깨끗한 솜씨에 싸움깨나 했었을 것 같은 장한은 맥도 못 추고 나뒹굴었다.

“다음!”

나서는 자들이 없었다. 우르르 달려들어 주위를 에워싼 장한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삶의 맨 밑바닥에서부터의 시작이었다. 종리추는 주루로 향했다.

싸움과 술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먼저 술은 용기를 북돋워준다. 이성을 마비시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준다. 홍리족이 그렇고, 암연족이 그렇고… 싸움을 벌이기 전에는 반드시 술을 마신다. 싸움이 끝난 후에도 술은 뗄 수 없는 관계로 다가온다. 싸움을 벌이는 동안 짓눌렸던 공포가 슬금슬금 피어날 때 술처럼 좋은 약은 없다. 술은 자신이 죽인 사람을 잊게 만들어주고 살아 있다는 감각마저도 없애준다. 싸움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사람들… 군인, 무인, 골목길에서 푼돈이나 뜯어내는 불량배들까지도 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죽엽청”

주루 주인의 눈이 둥그래졌다. 죽엽청은 명주다. 산서의 죽엽청을 제일로 치며, 모태주, 오량액, 분주, 노주대곡, 고정, 소홍주, 청도 오성주 등과 함께 십팔대명주에 속한다. 저잣거리에서 점소이도 없이 혼자 운영하는 작은 주루에 그런 명주가 있을 리 없다.

“저… 손님, 죽엽청은…”

주인은 조심스러웠다. 종리추 일행이 저잣거리에서 벌인 일은 이미 입소문을 통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괜히 어물거리다가 된서리를 맞는다며 일찍 점포를 닫아버리기까지 했다.

“뭐가 있나?”

“저… 가장 좋은 술이 백주…”

“그걸로..”

꽝!

종리추의 말은 난데없이 나타난 일단의 무리 때문에 가로막혔다. 첫눈에도 녹록지 않아 보이는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 의자며 탁자며 닥치는 대로 부쉈다.

“아이구! 망했네. 아이구! 이걸 어째. 아아… 아이구!”

주루 주인은 한쪽 구석에 몸을 틀어박고 발만 동동거렸다.

“네놈들이냐?!”

거센 기세로 기물을 두들겨 부순 사내들이 종리추가 앉아 있는 탁자 앞으로 다가섰다. 종리추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유회를 눈짓으로 눌러앉혔다.

탁!

“이 새끼들이 귀머거린가!”

몸집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사내가 유구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유구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그의 눈은 더욱 차갑게 변했다. 암연족의 유일한 단점은 머리에 있다. 모욕은 참아내도 머리를 맞으면 참지 못한다. 장난 삼아 건드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머리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전신 아부타의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뭐? 이 새끼들이 아직도 앉아서 나불거리네. 너, 이 새끼! 냉큼 일어서지 못해!”

사내가 눈을 부릅뜨며 종리추에게 다가왔다.

“미련한 놈들, 눈이 있어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군. 그런 눈은 뭐 하러 달고 다니냐?”

종리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구가 양손으로 탁자를 누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의 손에는 언제 빼들었는지 허리춤에 꽂혀 있던 작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빠악!

둔탁한 소리가 터졌다.

사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몸이 굳어진 채 움직이지 못하는 것만 다를 뿐, 눈을 부릅뜨고 성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달라진 점이 있다.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와 얼굴을 뒤덮고 있는 것.

“유회, 문을 막아.”

“흐흐흐!”

유회가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안이 벙벙하던 다른 사내들이 일제히 살기를 띠었다.

쿵!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던 사내는 그제야 무너졌다. 커다란 고목이 쓰러지듯 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 뒤로 넘어갔다.

“역석, 창문을 막아.”

역석이 눈을 내리깔며 일어섰다. 역석은 성난 사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창문으로 가서 팔짱을 끼고 버텨 섰다. 유회가 징그러운 웃음을 흘려내며 사내들을 빙 돌아 입구를 봉쇄한 것과 거의 동시였다.

“유구, 모두 무릎 꿇려.”

유구의 눈에서 진득한 살기가 피어났다.

“꿇어라. 아니면 죽는다.”

성난 사내들은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그제야 이들 네 명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란 걸 알아차렸다. 이런 자들은 오직 한 부류뿐이다. 무인들.

“이, 이런 때려죽일 놈들… 커억!”

용기를 내서 한마디 하던 사내는 유구가 곧게 찌른 몽둥이에 목젖을 맞고 답답한 신음을 토해냈다.

“카악!”

사내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토해내는 자세 그대로 푹 고꾸라져 버렸다.

털썩!

사내 중 한 명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옥에서 온 듯한 유구의 눈길과 맞닥뜨리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해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사내의 행동은 다른 사내들에게도 전염되었다.

털썩! 털썩…!

십여 명에 이르던 사내들은 주먹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백주.”

“…”

“백주 안 가져오나?”

주루 주인은 그제야 종리추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급작스럽게 터진 일에 넋이 반쯤 빠져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 예, 예, 곧 가져오겠습니다.”

주루 주인은 행여나 유구의 몽둥이가 자신에게 향할까 두려워 꽁지가 빠지게 주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주루 밖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구경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하고 불 구경이다. 저잣거리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싸움 구경을 놓칠 리 없다. 어깨에 힘을 주고 저잣거리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사내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사람들의 초점은 한 사내에게 모아졌다. 사람의 허리를 갈대처럼 분질러 버리는 사내,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주먹을 뻗어내던 사내, 작은 몽둥이 하나로 소문난 불량배들을 눈썹 하나 깜빡이지 않고 때려눕힌 사내. 이런 사내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자.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해 계집이 아닌가 싶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다. 아름다움? 사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술을 마시고 있는 사내를 보면 그 말밖에 생각나는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머금으면 개구쟁이가 될 것같이 편안해 보인다. 싸움과는 인연이 없고 방 안에 틀어박혀 글이나 읽었을 것 같은 사내다. 술잔을 들어 올리는 손도 곱상하다. 병장기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 사내가 악귀보다 무서운 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눈만 마주쳐도 주먹을 휘두르던 사내들을 무릎 꿇려 놓고 태연히 술을 마시고 있다.

“무인인가?”

“아닌 것 같은데?”

“부잣집 공자인가? 그런 것 같지?”

“그래, 그런 것 같아. 돈으로 무인을 산 것 같아. 왜 부잣집에서는 그런다잖아. 무인을 사서 시종처럼 거느리고 다닌다고.”

“그런 공자가 이런 곳에는 웬일이지?”

“글쎄…”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누는 말이 혹시 화근이라도 될까 봐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종리추는 백주를 음미하듯이 천천히 마셨다. 사건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인들은 이런 곳에 손을 대지 않는다. 커다란 이권이 없고 번잡한 일만 많은 곳이니까. 이런 곳은 하류 잡배들이나 손을 대는 곳이지.’

또르륵…!

독하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울 백죽 계곡에서 흐르는 물처럼 맑은 색을 띤 채 술잔에 담겼다. 무인들은 상인들로부터 푼돈이나 뜯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무리 먹고 살기 어려워도 목돈을 받고 무공을 팔지언정 불량배가 되지는 않는다. 무공을 익히며 갈고닦은 그들의 정신이,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

구경하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갈라지는 것을 본 종리추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사람들을 헤치고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은 뜻밖에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노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노인을 두려워했다. 혹여 몸이라도 닿을까 봐 부산하게들 물러섰다. 노인은 주루 앞에까지 온 다음에야 유회에게 말을 했다.

“좀 물러서 주겠나? 그렇게 떡 버티고 서 있으니 들어갈 수가 없잖아. 쯧! 요즘 젊은 것들은 노인을 공경할 줄 몰라.”

유회의 얼굴에 징그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노인이든 천하제일의 미녀든 종리추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물러설 유회가 아니다. 그때,

“길을 터줘.”

말 한마디 없이 술잔만 기울이던 종리추의 입이 열렸다. 유회가 물러서자 노인은 거리낌없이 주루 안으로 들어섰다. 노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내들에게는 일별도 던지지 않은 채 곧바로 종리추에게 다가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종리추는 술잔을 들어 음미하듯 백주를 마셨다. 눈은 노인의 얼굴에 고정시킨 채.

“쯧!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 범절을 몰라. 존장 앞에서 버젓이 술이나 마셔대고.”

“…”

종리추는 대꾸하지 않았다. 감정 없는 얼굴로 노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기만 했다. 술을 홀짝거리면서.

“네놈들, 보아하니 무공을 익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사람을 개 패듯이 패고 다녀? 어느 문파에서 그 따위로 가르쳤어! 네놈 사부가 누구냐!”

“…”

“이놈이! 어른이 말을 하면…”

“유구.”

“옛!”

“죽여라.”

종리추는 노인의 얼굴을 빤히 응시한 채 명령을 내렸다. 노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설마 종리추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유구가 몽둥이를 들고 노인의 뒤에 가 섰다.

“자, 잠깐!”

노인은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내둘렀다.

휘익! 빠악!

유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몽둥이를 후려쳤다.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따라라. 망설이지도 말고. 우리는 두 가지 행동밖에 할 수 없어. 때리는 것과 죽이는 것. 동정은 버려라. 망설임도 버려라. 이유도 따지지 마라. 죽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말고 왜 죽여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살인을 하는 게 아냐. 일을 하는 거야. 이게.. 살수의 길이지.”

노인의 검은 눈동자가 위로 말려 올라가며 하얀 흰자위를 드러냈다. 머리가 거의 빠져 대머리나 다름없던 노인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살수로 들어선 길, 죽음에 익숙해져야겠지. 냉혹해져야 하고… 후후, 이러자고 무공을 배웠던가.’

종리추는 남아 있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백주가 뱃속으로 흘러들자 불길이 이는 듯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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