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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59화


하남성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남성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여저부는 피바람에 휘말려 술렁거렸다. 흉년에 찌든 사람들이야 어디서 무슨 일어나는지 알 까닭도 없고 알려고 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는 일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역시 무림인이다. 특히 개방이나 하오문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사람들은 단 한 사람만 죽어도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죽었는지 소상히 알게 된다. 그들이 정보에 의하면 여저부에서는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부가 제일 먼저 접수된 곳은 신양주 중산포에 자리 잡은 점술가였다. 하루가 거의 지나갈 무렵, 신양주에 위치한 현수산의 이름을 따서 ‘현수 점술가’로 간판을 내건 점술가에 덩치가 우람한 몽고인이 들어섰다.

“살이 꼈어.”

점쟁이는 손님이 들어서자마자 여느 때처럼 누구에게나 하는 똑같은 말을 했다.

“청부를 하러 왔소.”

몽고인은 한어가 유창했다.

“청부?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여기는 점을 치는 곳이지 청부 같은 것을 하는 곳이 아냐. 청부보다 자네 얼굴에 낀…”

“은자 일만 냥짜리 청부요.”

“…!”

점쟁이는 수작을 부리지 못했다.

살천문이 청부를 받는 곳은 세상에 환히 드러나 있다. 숨기려고 애를 쓰는 듯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려고 조금만 노력하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은 최말단에서 청부를 받느니만큼 위험에도 크게 노출된다. 살수들에게 원한을 가진 자, 살수들을 죽이려는 자, 살수들은 찾는 자들은 제일 먼저 이들과 얼굴을 맞대게 된다.

‘한자리에서 십 년을 버티면 오래 버틴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죽는 자도 많고, 갖은 고문에 병신이 되는 자도 많다.

“우리 몽고에서 도둑질을 해간 자요.”

몽고인은 얼굴이 자세하게 그려진 초상화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이자를 죽여달라?”

“오천 냥은 선금, 오천 냥은 후불로 하겠소.”

“서, 선금으로 오천 냥!”

몽고인은 어음을 내밀었다. 여저 전장의 어음이다.

‘틀림없어!’

점쟁이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이 돈이면 중원 어디를 가더라도 갑부 행세를 할 수 있다.

‘꿀걱해 버려?’

점쟁이는 생각을 돌려먹었다. 몽고인의 눈빛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후에라도 살천문에서 알게 되는 날에는 뼈도 못 추린다.

“쉽지 않을 거요, 그놈 주위에는 타고난 무인들이 하루 온종일 눈을 벌겋게 뜨고 있으니까.”

‘제깟 놈들이 그래 봤자 죽은 목숨이지.’

“한번 알아는 보겠지만…”

몽고인은 어느새 일어서고 있었다. 몽고인의 말대로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간단히 생각하고 이급 살수 다섯 명을 파견했지만 다섯 명 모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몽고인 이십여 명이 초상화에 그려진 자의 주변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폭풍 같았다. 검이든 창이든 부딪친 것은 모두 부숴 버렸다. 대도를 사용하는 이십여 명의 몽고인. 살천문 여저 지부는 발칵 뒤집혔다. 살수는 무공 대 무공으로 싸우지 않는다. 숨어서 암습을 가한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자라도 죽을 수 있다. 다섯 명이라면 이십 명이 아니라 서른 명이라 할지라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한 살수 능력을 지닌 자들인데…

“흑사도신을 불러!”

드디어 일급 살수가 동원되었다. 평생 열 건도 맡지 않는다는 일급 살수가. 흑사도신은 다섯 조각으로 나눠져 사방에 흩어졌다. 들짐승들이 뜯어 먹어 형제조차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그냥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살천문 살수들은 흑사도신이 죽은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만든 무덤 세 개를 발견했다. 무덤을 파보니 몽고인 세 명이 누워 있었다. 두 명은 심장이 베어지고, 한 명은 머리가 반쯤 갈라진 채 죽어 있었다. 흑사도신의 수법이다. 흑사도신은 지겹게 심장만 노렸다. 그의 초식을 막아내다 보면 어느새 심장이 비게 되고 마지막 일격에는 어김없이 붉은 핏물을 내어줘야 한다. 그런데 한 명은 심장이 베이지 않고 머리가 잘렸다. 얼마나 긴급한 상황이었으면 심장을 노리지 못하고 되는대로 도결을 흘려냈을까. 흑사도신은 몽고인의 머리를 베는 도중에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몽고인의 머리는 완전히 잘려 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보지는 않았지만 싸움하는 광경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흑사도신은 두 명을 죽였고 다급하게 몸을 돌려 세 명째를 베어갔다. 심장을 노릴 틈이 없었다. 거리가 그만큼 가까웠다. 되는대로 도결을 펼쳐 냈고, 상대는 머리에 일격을 맞았다. 도가 머리에 박혔으니 뽑아내야 한다. 완전히 잘라 버리든지 베는 속도를 이용해 잡아당겨야 한다. 순간 그의 팔이 잘렸다. 나머지는 참혹한 도살이다. 흑사도신이 몸을 드러냈다는 것은 완벽한 기회를 잡았다는 뜻. 완벽한 기회를 잡고 습격을 했는데 몽고인에게 가로막혔다. 몽고인의 은신술이 놀라울 만큼 뛰어나거나 경신술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는 것을 만회 wnse. 혹사도신의 찢겨진 육신은 많은 말을 해주었다.

“철수나한, 여의금창을 불러!”

여저 지부장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 부들부들 떨었다. 일급 살수가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겨우 호법이나 서는 몽고인 세 명만을 죽였다는 것은 지독한 치욕이었다.

“야! 화룡도인과 천음요녀도 불러! 다 불러!”

여저 지부장은 일급 살수 네 명을 동시에 불렀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여저 지부가 생긴 이래. 철수나한은 권법으로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 광도 문가 출신이다. 그가 건강을 위해 짬짬이 익히던 권법이 문가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십여 년 전이다. 문가의 가주와 무인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가주는 단 일 초식만을 사용해서 검음 달인이라 불리던 무인을 때려죽였다. 그 후 문가권을 배우고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가전지공이라는 이유로 일절 문하를 받지 않았다. 문가권은 문가의 몰락과 함께 대가 끊겼다. 이름난 자에게는 도전하는 자가 생기는 법, 끊임없는 도전을 견디지 못한 결과다. 한 명, 두 명…. 문가권을 익힌 친족이 죽어갔고, 마지막으로 문가의 가주마저 사일검법을 절정으로 익힌 점창파의 고수에게 당하고 말았다. 철수나한은 문가의 마지막 생존자다. 여의금창은 ‘양가 창법’으로 유명한 양가의 후손이다. 그는 철수나한과는 달리 자유 분방함이 좋아 살수가 된 예다. 그는 성격대로 살인을 하여 번 돈을 물 쓰듯 쓰는 통에 항상 빈털터리다. 가장 많은 청부를 맡고, 완벽하게 일을 끝내는 살귀다. 화룡도인과 천음요녀는 부부간이다. 화룡도인은 도문과는 상관이 없다. 그가 늘 입고 다니는 옷이 도복이라 도인이라고 불릴 뿐. 그들은 부부간이면서도 색광으로 유명하다. 화룡도인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면 천음요녀가 보는 앞이라도 간살을 일삼았고, 천음요녀 역시 마음에 드는 청년을 만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품속으로 끌어들였다. 생활은 난잡하지만 무공만은 따를 자가 없다. 그들은 한 건의 청부도 둘이 같이 움직였고 실패한 적이 없다. 여저 지부의 일급 살수들이다. 그들이 모두 죽었다. 흑사도신과 마찬가지로 사지가 찢겨 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찢겨 죽은 것이 아니라 토막토막 잘려져 죽었다. 그들이 죽인 몽고인은 모두 열두 명이다. 흑사도신처럼 한 명에 세 명 꼴로 죽이고 죽었다.

“이럴 수가!”

이제 와서는 은자 일만 냥이 결코 많지 않았다. 여저 지부는 자랑하던 일급 살수를 모두 잃었다. 그렇다고 청부를 완수한 것도 아니다. 초상화에 그려져 있던 젊은 놈을 죽이지 못하면 선금으로 받았던 은자 오천 냥 마저 돌려줘야 한다.

‘어디서 이따위 청부를 받아가지고는….’

여저 지부장은 홧김에 점쟁이를 죽여 버렸지만 그렇다고 사태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저 지부장은 자신 역시 살수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본문에서는 일급 살수를 모두 죽인 지부장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일급 살수 한 명을 영입하는 데 들어간 돈이 몇 년 동안 청부를 받은 금액 전부라 하니. 조만간 다른 지부장이 임명될 테고, 자신은 입급 살수 중 한 명이 되어 중원을 떠돌게 되리라.

“본문에 전서를 띄워라. 일단혈이 필요하다고 해.”

여저 지부장은 힘없이 명령을 내렸다. 일급 살수가 되어 떠도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남성 최북단인 창덕부 역시 살겁이 몰아쳤다. 살겁이 시작된 곳은 안양성의 한 장원이었다.

“어디서 굴러온 놈인지 내 딸년을 납치해 갔어. 평생 모은 돈이 이백 냥인데, 이걸로….”

“글세… 이백 냥 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제발 부탁하네. 우리 사이가 어디 나 몰라라 할 사이인가?”

‘그럼 몰라라 하지, 알라라 하냐?’

이십 년 동안 호박엿만 팔아온 엿장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살수를 고용하겠다고 말을 걸어온 사람치고는 액수가 너무 적었다.

“부탁하네.”

“어쨋든 알아는 보고…. 이 돈은 일단 가져갔다가 사람이 구해지면 그때 가져오쇼.”

“꼭 부탁하네. 꼭.”

닭집을 운영하는 자는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갔다.

‘세상에! 이백 냥으로 살수를 고용해 달라니…’

다음날, 엿장수는 또 인상을 찡그렸다.

“제 마누라가 사라졌어요.”

“자네 마누라라면 나도 잘 알지. 얼굴이 반반했잖아. 어느 놈팡이와 눈이 맞아 도망간 게지.”

“아니에요. 그럴 여지가 아니에요.”

‘세상에 계집 싫어하는 사내 없고, 사내 싫어하는 계집 없는 법이야, 이놈아!’

“분명 그놈이 납치해 갔을 거예요. 그놈이 얼씬거린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요.”

“그럼 그때 뭐하고 하지 그랬어?”

“…”

사내는 말이 없었다. 근처의 논이란 논은 거의 다 사들인 대지주에게 뭐하고 말을 할 것인가. 놈에게 빌붙어 소작이나 하는 주제에.

“마누랄 찾아달라고?”

“아뇨, 놈을 죽여주세요.”

“요즘 세상에 어떻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나? 돈은 얼마나 있는데?”

“오, 오백 냥…”

“그거면… 한번 알아보지.”

“저…”

“왜?”

“그게 저… 동전인데.”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놈은 닭장수보다 더한 놈이다. 청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왔다. 모두 같은 사람에 대한 청부다. 아내가, 딸이 사라졌다는 이유가 대부분이고, 원흉으로는 한결같이 대지주를 꼽았다. 관부에서 진상 조사를 나왔으나 소득없이 돌아갔다.

“그분이 그럴 리 없어! 앞으로 한 번만 더 무고하게 고변하면 치도곤 치를 줄 알아!”

관원은 오히려 대지주를 편들었다. 개방 안양 분타에 고변을 한 자도 있다. 여인 납치극. 개방은 문도를 총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결과는 역시 대지주였다. 취합된 정보를 분석해 보면 대지주밖에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없었다.

“들어가서 찾아봐.”

안양 분타주 옥로신개는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잡으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단단히 징계를 내릴 심산이었다.

“없어요. 아무 흔적도 없어 깨끗해요. 장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용한 사람들뿐이에요.”

‘그럴 리가 없어!’

옥로신계는 정보를 믿었다. 그렇지만 불문곡직, 대지주의 장원을 쳐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만한 자는 세금도 많이 낼 뿐 아니라 관부와도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으리라.

“지켜봐, 눈 크게 뜨고!”

사정이 이러니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살천문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모두 모으면… 가만있어 봐. 얼마나 되는 거야? 닭집이 은자 이백 냥, 바보 머저리가 동전 오백 냥, 최가촌 최삼 이백 냥…’

모두 합치니 열네 명에 은자로 삼천 냥에 다다랐다.

‘이거 큰 청부잖아?’

다음날부터 엿장수는 살수를 구했다며 돈을 걷으러 다녔다. 살수는 시작되었다. 목표가 분명하고 거주지가 확실한 사람처럼 죽이기 쉬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담장을 넘어 들어간 자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두 번 다시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이것 봐라? 만만한 놈이 아니네. 잔성검을 보내.”

살천문 창덕 지부장은 재미있어했다.

‘그렇지 않아도 따분했는데, 재미있군.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체마저 은닉시킨다는 말인데… 재미있는 놈이야.’

그게 악몽의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잔성검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잔성검이라면 충분히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예전의 그라면 벌써 죽이고 나와 술을 퍼마시고 있을 것이다.

‘일이 잘못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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