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65화
천의원은 이름만큼이나 거창한 의원이 아니다. 조그마한 읍내에 있는 의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접 몸에 침을 맞아보지 않으면 의원이라고 믿을 수도 없는 허름한 곳이다. 살혼부가 천의원에 눈독을 들인 것은 천의원이 살수들에게 딱 알맞은 몇 가지 요건을 구비했기 때문이다.
첫째, 의원이 마음에 든다. 의원은 고명 태생으로 한때는 명의로 소문이 난 자이다. 또한 등주에서 퇴직 관리를 잘못 치료, 죽이는 바람에 관원에게 쫓기는 신세이기도 하다. 서주로 총관까지 지낸 사람을 죽인 것은 작은 불행이다. 진짜 불행은 죽인 자의 두 아들이 관직에 올라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명의이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자. 이처럼 살수들에게 합당한 의원은 찾기 힘드리라.
둘째, 지리적인 여건이 좋다. 천의원은 마을에 있지 않고 산속에 있다. 생로병사가 인간의 인생에서 뗄 수 없는 까닭에 의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한 번씩은 닿는 곳이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의원은 당연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산속에 있다. 산도 보통 험하지 않다. 산을 잘 모르는 사람이 용력만 믿고 섣불리 발길을 들여놓았다가는 굶어 죽거나 산짐승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천의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불의의 변고를 당한 사냥꾼이나 약초꾼이 대부분이다. 간혹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몸이 아픈 환자를 데리고 험준한 산령을 타기가 쉽지 않아 소문을 들었어도 대부분은 포기해 버린다. 의원이면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 그곳처럼 상처 입은 살수들이 일신을 쉬기에 적당한 의원은 없으리라. 살혼부는 천의원을 접수했고, 비밀 거점으로 활용했다. 소고는 수십 군데에 달하는 비밀 거점 중에도 천의원처럼 일당백의 요새만을 골라 손질했다.
“우리는 총단을 두지 않아요.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총단이에요.”
지금은 천의원이 총단이다. 소고가 천의원에 있으니.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잖아요. 마음만 진실하면 시간이 해결해 주는데… 진심은 반드시 통해요. 이런다고 안 믿는 사람이 믿을 것 같아요?”
벽리군은 마른 헝겊으로 상처를 감싸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종리추 스스로 틀어박은 비수는 복부 깊숙이 파고들어 장기까지 손상을 입혔다.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상처다. 형식적으로 내지른 상처는 결코 아니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감명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꽁꽁 닫힌 사람이라면 의심이 더욱 깊어져 효웅으로 볼 수도 있다. 이만한 고육지계를 펼치려면 깊은 심계와 독심이 잘 어우러져야 되지 않겠는가.
“의원이라 다행이지, 의원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금창약도 지니지 않고…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 돼요.”
종리추는 벽리군의 말을 귓가로 흘려들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창밖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에게 집중되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딱! 따닥! 딱…!
어느새 손가락에서 가벼운 음률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손가락이 퉁겨내는 소리는 전혀 다르다.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야아옹…!
고양이가 슬슬 움직여 다가왔다. 대체로 짐승들은 시각, 청각, 후각에 의존해 움직인다. 움직이는 경우는 단 세 가지뿐이다. 먹이를 잡을 때,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을 때, 발정기가 되었을 때. 종리추는 짐승의 소리를 모방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짐승들은 똑같은 것 같지만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 짐승은 시각, 청각, 후각에 따라 움직이지만 본능적으로 약간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종리추가 손가락으로 퉁겨내는 소리는 그들의 본능을 자극한다. 한계는 있다. 지능이 낮은 동물은 소리로 자극을 줄 수 있지만 지능이 높은 놈들은 자극을 받지 않는다.
‘내력이 부족해.’
종리추는 문제점을 즉시 알아냈다. 지각이 발달한 동물일수록 진짜 소리와 가짜 소리를 분별해 내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지능이 낮으면 즉시 반응하지만 지능이 높으면 분석부터 한다. 분석력까지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높은 내력이 있어야 한다. 소리로 머리에 충격을 주어야 한다. 사고를 마비시켜 소리를 듣자마자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한다. 요원한 이야기다. 만물 중 가장 지능이 높은 동물, 인간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얼마만한 내력이 필요한지 추측할 수도 없다. 인간의 뇌는 복잡 미묘해서 어떤 소리를 퉁겨내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지, 소리의 영역조차 잡아낼 수 없다. 하지만 쥐나 고양이같이 지능은 낮으면서 본능에 예민한 놈들은 지금으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
딱딱딱…!
소리는 고양이에게 전달되어 뇌를 자극한다. 고양이는 음약을 복용한 것처럼 격정을 뿜어낼 것이고 발정을 일으킨다. 수컷이라면 암컷을 찾아, 암컷이라면 수컷을 찾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쫓아온다. 짐승들은 대부분 수컷이 암컷의 암내를 쫓아오는 게 일반적이지만 뇌에 엄청난 자극을 받으면 후각마저 마비되어 버린다. 소리로 유인해 내는 단계에서 자극을 가해 끌어내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종리추는 자신의 이런 능력이 살수로서 살아가는 데 아주 유용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무공이라고는 전혀 모르던 시절에도 개방의 절정 고수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살천문 문주의 침소로 접근하는 데도 한결 수월했다. 동물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은 어느 절정 무공에 못지않다. 아니, 어쩌면 살수가 몸을 지키는 데는 세상에서 가장 적합한 무공이 될 수도 있다.
딱딱딱…!
‘왜 그러지? 내 말이 심했나? 듣기 싫어서… 아냐, 그럴 리 없어. 듣기 싫어도 끝까지 들을 사람이야. 그런데 왜…?’
벽리군은 종리추의 시선을 쫓아 창밖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리고 보았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이 사람은!’
벽리군은 상처를 감싸는 것도 잊고 종리추와 들고양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딱딱딱…!
일정한 음률이 반복되자 들고양이가 창문까지 다가와 기웃거렸다. 바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동물 특유의 본능 때문이다. 아무리 뇌를 자극하여 끌어들였다고는 하지만 한쪽에서 치미는 또 다른 본능이 행동을 제어하고 있는 게다.
‘소리로 고양이를 끌어들이고 있어! 세상에, 이런 일이!’
벽리군은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소리로 고양이를…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소리라면 벽리군도 일가견이 있다. 가무음곡이야말로 기루에 몸담고 있는 기녀라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재주다. 얼마나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춤을 더 잘 추고, 악기를 더 잘 타느냐에 따라 명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기녀는 미모를 앞세워야 한다. 또 가무음곡을 앞세워야 한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모자란다면 반쪽 기녀로 전락하고 만다.
딱딱딱…!
종리추가 손가락을 퉁겨내는 소리는 일정한 음률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풀이를 해보려고 해도 풀어낼 수 없었다. 곡을 넘어선 자연 그대로의 울림이라고 해야 할까? 자연이라고 하기에는 인위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고, 곡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자유분방하고…
‘도대체 이게…’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공, 학문, 가무음곡… 그 어느 것에도 종리추가 퉁겨내는 소리는 섞여 있지 않았다.
‘휴우!’
결국 벽리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리 풀기를 포기했다.
딱! 따다닥…!
종리추는 더욱 강하게 손가락을 퉁겨냈다. 쥐들에게는 통한 방법이다. 소리의 모방에 이끌려 나온 쥐들은 고양이가 습격하는 듯한 위기를 느끼고 살천문 문주의 장원을 휩쓸었다. 쥐들은 고양이가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야옹…!
고양이가 창문을 넘어 들어섰다.
딱딱딱…! 야옹…!
드디어 고양이가 종리추의 침상까지 올라와 갈기를 곤두세웠다. 지금 고양이는 성난 상태다. 찾고 있는 암컷은 보이지 않고 위험을 자극하는 인간들만 있으니 겁도 나고 성질도 날 게다.
딱딱딱…!
종리추는 손가락을 계속 퉁겨내면서 한쪽 손으로 고양이의 갈기를 어루만졌다. 고양이는 가만히 있었다. 손이 갈기를 만지고, 목을 어루만지고, 몸뚱이를 들어 바짝 끌어안아도 길들여진 고양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번에 퉁겨낸 손가락 소리는 고양이를 유혹할 때와는 다른 소리다. 고양이의 신경을 나른하게 풀어주는 소리다.
‘됐어!’
종리추는 쥐에 이어 고양이의 세계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짐승들이 가지고 있는 소리의 영역은 각기 다르다. 소리의 울림도 다르다. 고양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소리의 영역을 넓혔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 사람은!’
벽리군은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고양이 한 마리를 잡은 것은 대수로울 게 없다. 하지만 먹이로 유혹하지도 않고 스스로 걸어오게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종리추의 또 다른 능력을 보고야 말았다. 얼마나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종리추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녀는 자신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주변에 뛰어난 미녀들이 모여들수록 질투라는 감정과 알지 못한 불안감이 물밀 듯이 몰아쳤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의 능력과 사내다운 면모를 보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휴우!’
벽리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욕심이었다. 나이도 거의 배나 많이 먹었으면서 어떻게 그를 연모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차가운 머리는 그렇게 그녀를 몰아세우지만 뜨거운 가슴은 연모로 불타오르는 것을. 들고양이와 장난을 치는 종리추의 모습에서는 살문을 일으킬 때의 매서운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이렇게 한평생 살 수 있으면… 그저 이렇게 옆에만 있을 수 있어도….’
벽리군은 종리추 옆에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마음을 꼭꼭 숨긴 채 하오문의 향주로서 도와주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라도 옆에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것 역시 차가운 머리는 냉정하게 생각하면서도 뜨거운 가슴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리추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 그것은 냉정한 머리로 짓누르려 하면 할수록 꺾이지 않는 잡초처럼 마음을 불살랐다. 문득문득 그를 껴안고 싶은 욕구가 치밀곤 했다. 사랑을 고백한다면… 계속 갈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종리추는 부담스러워 곁에 머물지도 못하게 할 게다. 틀림없다. 그는 젊은 사람이니까.
“환자가 이게 뭐예요? 들고양이가 얼마나 더럽다고요! 이리 내요. 목욕시켜 가지고 올 테니.”
벽리군은 빼앗다시피 고양이를 낚아챘다. 어쩌면… 그의 사랑을 이렇게 낚아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놈이 행복할지도…’
벽리군은 종리추의 손길이 닿은 고양이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고양이의 털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마치 그의 손길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