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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1권 – 10화


꽤 늦은 시각이었지만, 진을 옮기기로 결정을 내린 이상 마음 놓고병사들을 쉬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 다.

이미 숙영에 들어간 병사들도 군복을 꾸려 입고 군 막 밖으로 나왔다. 각 부장과 군관들은 자기 휘하에 있는 병사들 중에서 파수를 서고있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병사들을 동원하여 나무로 진채를 얽어 세우고 내일의 싸움에 필요한 병장기들을 손질 하게 했다. 그리고 개인 장비의 손질을 끝마친 병사 들은 막사를 뜯어내고 기타 기물들을 챙기느라 부산 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장수들은 교대로 짬짬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지루할 만큼 긴 시간 동안 이어졌던 작전 회의 탓에 몹시 지쳐 있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효식은 쉴 생각도 하지 않고 김여물의 막 사에 들러 병세를 살폈다.

놀랍게도 김여물의 병세는 거의 호전되어 가고 있었 다. 김여물은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군의의 말로 는 열도 거의 내렸고 한잠 자고일어나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기뻐하였으나 강효식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더욱 의심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증폭 될 뿐이었다. 아까 자신이 보았던 그 알 수 없는 기 운이 정말 김여물을 공격하여 작전 회의에서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내 놓고 발설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차도가 있어 다행이오. 그럼 이만…….”

의외로 밝지 못한 그의 말투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다른 사람들을뒤로 하고, 강효식은 김여물의 장막을 나서서 신립의 막사로 향했다.

“장군. 소인 강효식이옵니다.”

“어서 들게.”

강효식은 불안한 마음으로 막사 밖에서 자신이 왔음을 아뢰었으나,신립은 쾌히 그를 안으로 들게 하였 다.

안으로 들어가 신립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까의 그 늘진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평상시대로 활달하고 호쾌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강효식은 속으로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태라면 이야기해도지 장이 없으리라.

“그래, 어쩐 일인가?”

“장군. 아니… 도순변사 나으리.”

“왜 이러시나? 허허………정색을 다 하고서…….”

신립은 마냥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강효식은 신립의 말처럼정색한 얼굴을 풀지 않고는, 숨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가 입을 열었다.

“논의에서 결정된 일을 다시 왈가왈부하는 것은 외 람되옵니다만… 어찌하여 탄금대에 진을 치기로 결의하셨는지요?”

그러나 신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앞에 펼쳐 놓은 문서와 필묵을치우면서 말했다.

“자네도 내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는가? 다른 생 각이 있었다면 그때 발언을 하지 그랬나.”

“그것이 좀…………. 김목사께서 혼절하시는 바람에 이 야기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사옵니다.”

김여물은 전에 의주목사를 지낸 일이 있고 강효식이 김여물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시절었기에, 강효식 은 아직도 그를 김목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신립은 김여물의 이야기가 나오자 새삼 정색을 하면서말했 다.

“그래, 김공의 상태는 어떻던가? 좀 나아지기는 했는가?”

“많이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방금 그곳에 들렀다 오는 길이옵니다.”

“오오, 그래. 그것 참 다행이로군.”

신립은 김여물이 쾌차했다는 말을 듣자 금세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립은 기분이 좋을 때면 늘 수염을 꼬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러했다. 그것은 본 강효식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강효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마침내 결심을 했다.

“그런데 도순변사 나으리.”

“그냥 편하게 부르게나…… 허, 이 사람, 아니 대 체 무슨 이야기를하고 싶어서 이러는 겐가? 허허 …….”

“근자에 혹 무슨 일은 없으셨는지요?”

“무슨 일이라니?”

“나으리의 안색이 어째 좀 창백해 보여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그러나 신립의 얼굴은 마냥 태연했다.

“안색이? 허, 그런 일은 없는데? 전쟁을 앞둔 장수가기가 빠져서야되겠는가.”

“몸이 허하신 것이 아니라……. 음, 나으리.”

“왜 그러나?”

“제가 나으리를 몇 년 모셨습니까?”

“허, 오늘 밤엔 별 걸 다 묻는군그래. ….벌써 십년이 되어가지, 아마?”

“예, 그렇사옵니다. 소인은 이날 이때껏 나으리의 큰 은혜를 잊지않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죽어서라도 나으리의 명을 따를 것이며, 나으리의 은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강효식은 본디 성정이 다소 급하고 누구에게도 말을 듣기 싫어하는 한낱 병졸 출신이었다. 특히 그는 자 신의 핏줄 속에 각인되어 있는무당이라는 천민의 핏 줄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신립이 여진 장수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러 갈 때의 일이었다. 이때출정군의 일원으로 참가한 강효식은 동료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게되었는데, 그 자로부 터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한 비난을 듣고는 참지못하고 상대를 다치게 하고 말았다.

전장을 코앞에 둔 진영 안에서 동료와 사사로운 싸 움을 벌여 군기를 흐트러뜨리는 일은 참형에도 처할 수 있는 중죄였다. 하지만 신립은 진즉부터 강효식 이라는 병사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효 식이 매우 충성스럽고 용맹하다는 것, 그러나 양반 출신은커녕 오히려 그 윗조상 가운데 무당이 있는 탓에 툭하면 천민의 자손이라는빈정거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립은 싸움의 당사자들을 엄중히 문책하는 자리에 서 강효식으로하여금 자신을 변론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강효식은 일체 변명을하지 않고 죄를 달게 받겠노라고만 했다. 신립은 싸움이 벌어진 이유를 내심 짐작하고 있었으나, 공정을 기하기 위해 목격 자들로부터 증언을 듣는 절차를 밟았다. 그런 다음 에 강효식의 잘못을 꾸짖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 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 무리지었다. 그리고 밤에는 그를 개인적으로 불러 따뜻한 위로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부터 강효식은 신립의 관대한 성품에 감격하여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싸웠고, 그 결과 숱한 전공을 세워 오늘날 어엿이 기마 부대를 통솔하는 부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그것도 이미 오래 전 의 일.

신립은 강효식이 새삼스레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 유가 무엇일까생각하며 허허 웃고만 있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는가, 허허허…………….”

“아니옵니다. 저는 지금 진정으로 드리는 말씀이옵 니다.”

강효식은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신립에게 큰절을 올 렸다. 장난기가조금도 없는 아주 엄숙한 인사였다. 신립은 그제서야 정색을 하고 강효식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무슨 일인가, 자네?”

“소인, 진중(中)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 되옵지만, 감히목을 걸고 여쭙겠사옵니다. 도순변사 나으리께서 과거 소인에게 은혜를 베푸실 적에 소인 의 조상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을 것으로 아옵니다.”

“조상이라니?”

“……소인의 조상 중에 무당이 있사옵니다. 삼 대 전의 할머님입지요. 소인은 이제껏 천출임을 부끄러 워하여 그 일을 극구 부인하여 왔습니다만 그것은 사실이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오면, 소인도 그 할 머님의 핏줄을 받아서 그런지 종종 묘한 것을 보곤 하옵니다.”

신립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강효식의 얼굴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강효식은 조금도 깜박거 리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소인, 장군의 주위에 이상한 기운이 있음을 느꼈사 옵니다. 물론 장군의 기개는 백귀가 침범하지 못할 만큼 강건하오나, 세상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였사옵니다. 특히 이번 전쟁은 유달리 고약한 징 조가 많았고 이상한 소문이 많이 돌고 있사옵니다.” 

신립은 아무 대답 없이 잠자코 강효식의 말을 듣고 있었다.조정의 관료들은 대부분 그러한 징조를 부인 하였지만 괴변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고, 신립 또한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전라도 운봉 고을 팔량치라는 곳에 태조대왕이 소년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죽여 붉게 물들어 있다 는 피바위라는 돌이 있는데, 그바위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니 왜국이 난리를 일으킬 징조라는 이야기 도 있었고, 대궐 종묘에서 한밤중에 통곡 소리가 흘 러나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평양 서쪽 의주 로 가는 길의 한 고개에 석장군이라는 오래된 돌이 있는데, 거기서 피가 흘러 맞은편의 부산마루라는고 개까지 흘러내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신립은 자신과 동서지간인 이항복(李恒福)에게서 괴이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이항복은 신립과 같이 권률(權慄) 대장의 사위로, 젊을 때부터 가까 이 지내는 사이라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들려 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묘년(1591년), 그러니 까 난리가 나기바로 전 해의 겨울에 이항복이 나갔 다가 집에 돌아오자 흉측하기가이를 데 없이 생긴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스로를 가리켜 자칭백 악산의 도깨비라 하면서 내년에 큰 난리가 날 터인데 누구 하나 대비하는 자가 없어 알려주러 왔다고 말하고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때는 신립도 심상치 않게 듣고 넘겼으나, 막상 왜란 이 일어나자 그 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한양을 떠나올 때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가사가 영 수상했다. 

‘경기감사(京畿 監司) 우장직령(雨裝直嶺)’, 즉경기감사와 비옷을 노래 부르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상감조차도궁금 하게 여겼으나 아무도 풀어 맞추는 자가 없었다.

“장 군께서는 지금 막중한 임무를 띠고 조선군의 그나마 남은 정예를 모두 이끌고 왜구를 상대하시고 계십니 다. 송구스러운 말씀이오나, 이번 싸움에 임하여 만 에 하나라도 차질이 있으면 도성까지는 허허벌판, 무인지경이옵니다.”

신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효식의 말은 옳았다. 만일 신립이 거느린 군사가 패한다면, 도성까지 왜병을 저지할 만한 병력이 남 아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상감(선조)은 보검까지 하사하며 신립을 격려해 주었던 것이다.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네.”

“그래서 허튼 일로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을 확실히 알아 두는 것이 좋겠기에 이렇게 여쭙게 된 것이옵니다. 망언이라고만 생각하 지 마시고 고려해 주시옵소서.”

신립은 가만히 강효식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쓸쓸해보이는 미소였다.

“자네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 내, 이야기를 해 줌세.”

신립이 의외로 선선히 나오자, 강효식은 오히려 깜짝 놀랐다.

“그러면 정말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이걸 보게나.”

신립은 장막 한구석에 놓인 궤짝을 열고 천에 싸인 물건을 꺼내 풀어 보였다. 천으로 싸인 것은 깨어진

병의 조각들이었다. 강효식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신립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귀신이 들었던 병이지.”

“예?”

“그런데 오늘 이 병이 깨어졌다네.”

강효식은 그 말만 듣고는 짐작 가는 바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신립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옵소서.”

“어디 한 번 들어 보게나. 이미 오래 전 일일세. 나 자신도 거의 잊고 있었던 일이네만………….”

신립은 막사의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천천히 젊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 내기 시작했다.

신립이 과거에 응시하기도 전인 아주 젊을 때의 일 이었다.

신립은, 훗날 명재상이자 ‘오성과 한음’의 오성으로 도 알려진 백사 이항복과 함께 노재상인 권철(權轍) 의 문하에 있었다. 그런 연유로 하여, 신립과 이항 복은 권철의 손녀들, 그러니까 권률 대장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날, 권률 대장은 둘을 불러서 젊은 시절의 호 연지기를 키우기위해 여행을 할 것을 권유하였다.

스승의 말대로 여행 길에 나선 신립은 어느 깊은 산 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내 민가를 찾게 되 었다. 그 민가에는 젊고 아름다운여인 한 명만이 살 고 있었다그런데 그 집의 분위기가 영 수상했다. 신 립은 여인을 불러 추궁한결과, 그 집이 포악한 도둑 이 사는 집이고 그 여인은 도둑에게 잡혀와 강제로 수발을 들며 도둑질에 협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 다. 여인이 객을 안내하여 약을 탄 밥으로 깊은 잠 에 들게 하면, 도둑이 뛰쳐 들어와 사람을 해치고 재물을 약탈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둑의 기운이 어찌나 세고 포학한지, 여인은 달아나고 싶어도 달 아날 수없다고 했다.

이에 비분강개한 신립은 자신의 무예를 한껏 발휘하 여 도둑과 일전을 치르다가 활로 쏘아 죽였다. 이에 여인은 기뻐하면서 이제 도둑은 죽고 자신은 갈 곳 이 없으며, 또한 신립을 연모하는 마음이 짙어진지 라 신립을 따라가겠다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남녀가 유별한것을 들어 한사코 여인이 따라오는 것 을 거절하였다.

결국 여인은 상심하여 신립이 집을 나서자마자 집에 불을 질렀는데, 비명 소리를 들은 신립이 놀라 돌아 가 보았으나 여인은 양 손을 내민 채 이미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저런…….”

강효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신립은 씨 익 웃으며 다음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립은 이항복과 함께 권률 대장을 만났다.

그런데 권 대장은 크게 놀라면서, 예전에는 이항복 의 관상이 좋지않고 신립의 관상은 비할 데 없이 좋 았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은 신립의 얼굴에 요기가 돌고 이항복의 관상은 오히려 신수가 훤해졌다고말 하는 것이었다. 이에 신립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하자 이항복도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였는데, 이 항복의 경험은 신립과 정반대였다.

이항복도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어느 민가에 유숙하게 되었다. 밤이 되자 덩지 큰 여인이 들어와 다짜고짜로 이항복을 품으려했다. 이에 놀란 이항복이 연유를 물으며 꾸짖자, 여인은 자신의 용모가 너 무도 추해서 어떤 남자도 자신을 돌아보려 하지 않 으매, 생전에단 한 번만이라도 운우(雲雨)의 정(情) 을 나누었으면 죽어도 원이 없다고 했다. 이항복은 여인의 용모가 정말 이를 데 없이 추악함에도 불구 하고 하룻밤 정을 나누었는데, 그 여인은 정을 나누 자마자 크게 웃고는 그대로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권 대장은, 일부함원(一婦含怨)이 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는데 신립은 여인의 원을 매몰차게 거절함으로써 한이 서리게 한 대가를 치르 게 될 것이요, 이항복은 죽기를 불사한 여인의 필사 의 원을 풀어준 공덕이 있으므로 관상이 뒤바뀌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 뒤 대장께서는 내게 호리병 하나를 주시며 나를 침범한 요기를잡아 병에 가두었으니 잘 간수하라고 당부하셨네. 하지만 난 그걸 간수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지내다가, 오늘 아침 군장을 꾸리다 잘못 하여 그 병을 깨트리고 말았네그려. 이게 바로 그 병의 조각들일세.”

그 말을 듣자 강효식은 몹시 불안해졌다.

“그랬군요… 그런 병을 깨뜨리시다니…….”

“그런데 더더욱 희안한 일은, 그 병에는 아무 것도 없고 웬 흰 연기같은 기운이 나오더란 말일세. 그러 고는 귓가에 ‘탄금대로…………… 탄금대로…’ 하는 소 리가 세 번 들리더구먼. 괴이한 일이라 생각하였으 나 입 밖에는 내지 않고 있던 참이네만, 마침 자네 가 와서 이야기를하고 보니 기분이 개운해지는 것 같구먼.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는 발설하지 말게나. 안사람이 알면 좋을 게 없으니 말 야, 허허허………….”

신립은 허물 없이 웃으며, 반 농조로 강효식에게 당 부를 하는 것으로 말을 마쳤다. 당연히 왕실의 부마 인 신립에게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은 좋을 턱이 없었 다.

그러나 장본인인 신립과는 달리 강효식의 얼굴은 심 각하기만 했다.강효식은 직접 만나 본 일은 없었으 나, 권률 대장과 그의 부친인 권철대감에 대해 어느 정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권철 대감은 재상이자 거유(巨儒)였으며 심산에 들어가 도를 닦은 적이 있는 사람이었고,권률 대장이라면 조선에서 둘째 가 라면 서러워할 무인이었다. 그런권률 대장이 요기를 잡아 가두었다면 결코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닐것이 다. 그런데 병이 깨어졌고, 거기에서 이상한 기운이 나왔다니…. 이는 절대로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 었다.

윤걸의 자못 풍류연한 말을 듣던 태사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야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들 에겐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는 것이겠지요. 한편 으로 생각하면 우리들도 그렇게살아가던 시절이 있 었을 터이고요.”

“허…………….”

그 말을 듣고 보니, 윤걸도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계의 존재들 또한 거의가 생계에서의 삶을 지내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특이한 인연으로 말 미암아 윤회의 길을 중지하고 그쪽세계에서만 지내게 된 존재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과거 기억은 세심천의 물을 마심으로써 깔끔히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은 생계의 인간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비록 영력을 자기 몸 주 위에 두른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같은 형태의옷을 입고 있었으며,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풍습을 지니 고 있었다. 그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자는 없지만, 대강 알려진 바로는 사계가 죽은 사람 들의 영혼을 관리하는 곳이니만큼 그 영혼들이지나 친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차차 적응해 나가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풍습에 맞추어 사계를 바꾸어 나간 결과라 하였다.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계의 모 습도 인간 세상의 모습과 비슷하게 변모되어 왔다. 인간 세상에서 통나무집, 돌집만 지어지던 시절에는 사계에서도 그러한 모습의 건축물이 주를 이루었고, 기와집이 많은 요즈음에는 사계의 건물들도 기와집 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셋은 그런저런 생각들과 또 그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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