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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2권 – 8화


‘지금은 계속 이기고 있다. 그러나………….’

지금 왜군들이 이기고 있음은 장비와 보급이 앞서 있고 결집된 수효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 은 적지이다. 만약 투지가 앞선 적들 속에서, 적들 이 자신들보다 많은 수로 집결하거나 그들이 좋은 장비로 무장할 경우, 그리고 자신들의 보급이 악화 되면 승리는 어려울것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출병 전부터 고니시가 지니고 있던 생각이었으며전투를 치르면서 내내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비록 승리를 거듭하여이제 조선의 도성인 한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조선군의 투지가줄 어들지 않는다는 꺼림칙한 마음 때문에, 이번에 호 랑이가 날뛰는현장에 직접 가보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가 한양을 점령할 수 있을지 이 화살로 점을 쳐보리라.’

고니시의 마음은 어느덧 그렇게 정해지고 있었다.


“이 녀석! 여기에 있었구나!”

은동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태을사자였다. 은동 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가 스르르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영혼인 몸도 마치 천 조각이흘 러내리는 것처럼 덩달아 주르르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아이구, 어디 가셨더랬어요?’

은동은 아무 생각 없이 태을사자에게 말을 하려 했 다. 그러나 은동은 도력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며, 영 혼의 상태가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심 법으로 전해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스스로 말 을 걸 재주는 없었다. 입이 움직여지기는 했으나 소 리가 나오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영혼은 숨을 쉬지 않으니 내뱉을 숨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은동이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리자 태을사자 는 귀찮은 듯이 말했다.

“너 참 대단한 놈이로구나. 아무리 동자가 인솔했기 로서니 슬그머니 빠져나와 도망을 치다니!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느냐?”

태을사자는 동자를 재빨리 뒤따라가 나중에 판관께 고하겠다고 말한 뒤 은동을 되찾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자를 만나니은동과 여인의 영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을사자는 동자와 함께 사방을 뒤지다가 할 수 없이 이판관에게 다시 고하려고 자비전으로 가는 길에 요행히 은동을 발견하게된 것이다. 은동을 발 견했다기 보다는 넋을 놓고 서 있는 여인의 영을발 견하게 된 것이라는 편이 맞지만…………….

은동은 일단 태을사자를 보자 안심이 되어 얼른 이 판관이 노서기를 소멸시켰던 일을 말하려 했으나 도 대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예전처럼 자기 말을 좀 들어주려고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마음이 급한 태을사자로서는 은동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없었다.

“이 녀석! 너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지 않았느 냐? 그러다가 신립 장군이 패하면 어쩌려고 그러느 냐! 마음대로 저승을 돌아다니다가 정말 죽은 몸 이 되고 싶으냐!”

태을사자가 은동에게 야단을 치자 은동은 불현듯 신 립의 밑에 종군하고 있는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찔 끔거렸다. 아버지가 위급하다는생각을 하니 이판관 이 누구를 죽이건, 설령 저승을 통째로 망하게 한다 해도 말할 기분이 싹 가셨다.

태을사자는 놀란 은동의 기색을 보고는 얼른 은동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내 뒤를 바싹 따라오거라!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 저 여인네도 그렇고! 뇌옥 으로 갈 때에는 영혼을 몸에 지니고 갈 수 없으니 그냥 날 따라와야 한다.”

태을사자는 사실 위험한 뇌옥에 은동과 그 여인네를 혹으로 달고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저승에 처음 와보는은동이나 여인의 영이 홀로 헤매이다가는 동자나 다른 누구에게 잡혀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일단 뇌옥까지는 데리고가되 울달과 불솔에게 부탁하여 둘을 잘 감시하도록 이르고 정작 호유화가 있는 뇌옥 안으로 는혼자 들어갈 심산이었다.

은동은 마치 벙어리가 된 것 같아 몹시 답답했지만 태을사자에게의사 소통을 할 방법이 없었다. 태을사 자의 등에다 글자라도 써서 말을 해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태을사자가 곧 은동과 여인의 영을 달고 번개같이 몸을 이동시키기 시작하여 은동은 어지러워 그나마도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이상한 연못 하나가 보였다. 바로 그 연못이 십팔층 지옥의 가장 깊은 뇌옥 입구로 통 하는 ‘무겁연(無劫淵)’이었다.

그곳에는 키가 엄청나게 크고 덩치가 큰 두 명의 거 인이 서 있어서은동은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은 울달과 불솔, 두 문지기였다.

‘저들도 사람인가? 아니지, 참. 저들은 귀신이겠지. 그건 그렇고 우와, 정말 크다.’

울달은 은동을 보더니 조금 놀란 얼굴로 히죽 미소 를 띠더니 태을사자에게 말했다.

“이…. 이….. 이 아이도….. 가….. 가…. 같이 가나?”

그러자 태을사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곁 에 있던 말수가적은 불솔이 여인의 영을 힐끗 쳐다 보며 눈짓을 하자 태을사자는 또한 번 고개를 끄덕 였다.

다행히 울달과 불솔은 그 둘의 영혼과 함께 뇌옥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모든 것 이 이판관의 명에 따른 것이려니생각하는 모양이라 태을사자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저승사자는 거짓 말을 할 줄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울달과 불솔이 만약 묻는다면답변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은동은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눈을 동 그랗게 뜨고 울달과 불솔을 올려다보았다. 울달과 불솔의 키는 1장(약 3미터)도 훨씬넘을 것 같았다. 울달은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지고 전체적으로 울상 을 띤 듯한 선량한 얼굴이었고, 불솔은 눈꼬리가 쭉 치켜올라간 것이무섭게 보였다.

은동은 자연스럽게 조금이라도 덜 무서워 보이는 울 달 쪽으로 조금 치우쳐서 그 뒤를 따랐다. 울달은 은동이 몹시 조그맣고 귀여워 보이는 듯 은동을 쳐 다보며 연신 히죽히죽 미소를 지었다. 비록 그 웃는 입술만 해도 은동을 한 입에 삼켜버릴 만큼 커 보였 지만 그래도 웃는얼굴이라 은동은 울달과 불솔이 그 다지 무섭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먼저 무뚝뚝한 불솔이 무겁연으로 뛰어들었고 그 뒤로 태을사자가은동에게 손짓을 했다. 은동은 무서워 서 뛰어들지 않으려 했으나 울달이 히죽 웃으며 은동을 어마어마하게 큰 손으로 살짝 잡더니 덥썩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여인의 영이 역시 태을사자에게 밀 려서 무겁연으로 뛰어들어갔고 마지막으로 태을사자 가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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