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3권 – 5화 : 홍의장군(紅衣將軍)과 석저장군(石底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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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3권 – 5화 : 홍의장군(紅衣將軍)과 석저장군(石底將軍)


홍의장군(紅衣將軍)과 석저장군(石底將軍)

호유화와 태을사자, 그리고 흑호가 은동과 강효식 의 몸을 들쳐업고 금강산 어귀에 당도한 것은 거의 새벽이 다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은동은 영혼의 몸으 로 너무 많은 모험을 한 탓인지 그때까지도 깨어나 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강효식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위중한 상태였다. 길을 가면서 흑호는 조부 호군이남겼던, 왜란종결자에 대한 말을 태을사 자에게 해 주었고 태을사자도 그것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호유화도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보 았으나 호유화는 묻고 듣기만 할 뿐 자신의 의견은 통 말하지 않았다. 태을사자는 길을 가면서 깊은 생 각에 빠졌다.

‘왜란종결자라… 왜란종결자… 그 사람이 있으면 이 난리가진정된다는 말인가? 이 난리가 진정되면 마계의 음모도 자연히무너질 터이니 우리도 그 일에 반드시 협력을 해야 하겠구나. 그런데 아직도 알 수 가 없다. 마계는 어째서 이 난리를 일으킨 것일까? 인간영혼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시투 력주가왜 필요한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직은 모든 일을 하 나로 이어주는 단서가 부족했다. 할 수 없이 태을사 자는 좀 더 여러가지 일들을 모아 해석해야 겠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럭저럭 그들은 표훈사에 당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표훈사로 당장 들어갈 수가 없었다. 표훈사는 지금 수많은 승려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산대사와 유정이 의병을 모집한다는 공 고를 내어 이미 가까운 곳의 승려들은표훈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골치 아픈걸? 저렇게 인간들이 많으니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수. 어떡허지?”

흑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태을사자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지금표훈사에서 오리(五里) 정도 떨어진 어 느 덤불 숲에 있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각은 오리 밖에 있는 사람들도 환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글쎄. 이거 야단이군. 새벽녘이 되어가니 나는 이 제 더 이상나다닐 수 없는데… 자네, 도력이 는 것 같은데 더 사람의 모습에 가깝게 둔갑할 수는 없겠

는가?”

“음.. 둔갑도 둔갑이지만 나도 이렇게 시커매진 몰골로 절에뛰어들 수는 없지 않수?”

아닌게 아니라 흑호는 홍두오공의 독에 씌워져 온 몸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비록 독이 몸 속으로까 지 침투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정말 이름에 걸맞게 시커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둔갑 한다 해도 그 색은 독에 물든 것이라 지우기 어려울 테니 지금의 흉악한 몰골로 어찌 하겠는가 하는 것이 흑호의 주장이었다.

“더군다나 날이 밝으면 그나마 둔갑도 안되우. 아무리 살생 안하는 절간이래두 호랑이가 뛰어들면 소

란이 벌어지지 않겠수?”

“그건 그렇군…”

“태을사자, 댁은 어떠시우?”

그러나 태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어려울 것 같으이.”

태을사자는 비록 사람들이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나 곧 날이 밝는 터라 더 이상 양광 아래서 나다닐 수 가 없는 것이다. 할 수없이 그들은 자연스럽게 고개 를 돌려 호유화를 바라보았다. 호유화는 부아가 났 는지 조금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긴 절간 아니야? 내가 여자의 몸으로 어찌 징 그러운 중대가리들이 득실거리는 절간에 들어간단 말야?”

“그러면 남자 중으로 둔갑하면 될 것 아니냐?”

태을사자의 말에 호유화는 날카롭게 외쳤다.

“뭐? 남자로?”

“안될 것이 있는가?”

“싫어! 내가 미쳤냐 지저분한 남자로 둔갑하게? 죽으면 죽었지그렇게는 못해!”

고집도 이만저만한 고집이 아니었다. 흑호가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아니,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우? 남자가 어디가 어때서?”

그러자 호유화는 흑호를 한 번 흘겨보다가 쏘아 붙였다.

“어린 것은 좀 빠져!”

그러자 흑호도 화가 났다. 흑호는 호유화의 전력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뭐라구? 아니, 내가 팔백년동안 도를 닦었는데 어리다는 소리를 들어야 겠수? 엉? 시퍼렇게 젊은 것이 어디서 큰소리여? 엉?”

그러자 호유화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귀엽구나 귀여워. 너 지금 재롱 떠니?”

“뭐..뭐라구?”

“나는 너보다 네 배는 더 살았어. 내가 이천 살이 넘었을때 네가 태어났을 거야. 근데 불만 있어? 응?”

그러자 흑호는 기가막힌 듯이 다시 호유화를 찬찬 히 훑어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호유화의 모습은 젊 고 아리따운 여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두면 호유화가 흑호를 더 몰아세울 것같아서 태을사 자가 나섰다.

“그만들 해라. 이러다가 은동이나 은동이 아버지에 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호유화. 너 뇌옥에서 한 맹세를 잊은 것은 아니렷다? 우리 에게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할 수 없다만은동이를 보살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호유화도 쑥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호유화는 할 수 없이내키지 않는다는 듯 뭐라고 혼자 궁시렁 대더니 휙 몸을 돌렸다.

옆으로 세 바퀴를 돌고나자 호유화는 전에 뇌옥에서 보았던 승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되지?”

“분신을 보내지 않고 직접 가나?”

그러자 호유화는 역정을 냈다.

“저 놈의 절에는 묘한 기운이 가득해. 아마도 고승이 여러 명있나봐.”

“그러한데?”

“절간하고 나하고는 잘 맞지 않는 것을 알면서 왜 그래? 분신술이 저 안에서까지 통할 것 같아? 그나 마 모습을 둔갑하는 것도간신히 하는 것인데.”

그리고보니 호유화는 지금 법력이 많이 손상되어 있어서 절 안에까지 분신술을 쓰며 간다는 것은 오 히려 쉽지 않을 듯 싶었다.

그러나 승아로 변한 다음에도 호유화는 양 팔에 상 처자국이 여전히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태을사자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계집아이의 모습으로 변하여 가도 괜찮겠 는가? 그것도상처 입은 모습으로?”

“나한테 맡겨. 그런건. 중대가리들이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할테니. 좌우간 들어가서 뭘 어쩌란거야? 빨리 말해.”

그러자 태을사자가 잠시 생각을 해 본 연후에 말했 다.

“일단 은동이의 아버지와 은동이를 승려들에게 인 계하여라.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승려들이니 잘 간 호해 줄 것인즉.”

“그리구?”

그러자 흑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유정 스님을 찾으슈. 유정스님 을 만나고 싶으니 밖으로 좀 나와 달라구 말이지.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기가 껄끄러우니깐.”

그러자 태을사자도 동의했다. 더구나 유정스님은 은동이 지니고있던 녹도문해를 가지고 갔었고 흑호 의 증조부 호군이 남겼던 왜란종결자를 보호하라는 해석도 해 주었으니 뭔가 더 아는 것이있을지도 몰 랐다. 태을사자는 유정을 만나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좌우간 호유화도 순순히 고개 를 끄덕였고호유화는 승아의 모습으로 변한 채양 손으로 은동과 강효식의몸을 번쩍 들고 나가려 했 다. 그러자 흑호가 질겁을 하며 호유화를 말렸다.

“어이쿠. 이봐. 무슨 계집아이가 그렇게 힘이 세? 그러면 안돼!”

그러자 호유화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강효식과 은동 의 덜미를 잡아 질질 끌었다. 그러나 도대체가 힘이 과한 것이 탈인지 조그마한 꼬마 계집아이가 장대한 어른과 아이 하나를 끄는데 무척 가볍게 힘도 들이 지 않는 것이다. 흑호는 그것을 보고 또 잔소리를했 고 호유화는 조금 샐쭉해져서 말했다.

“제기랄. 거 참 복잡하기도 하네. 알았어. 그럼 내 가 가서 중들을 불러 올테니까 잘 숨어 있어. 햇빛 쐬지 않게.”

“저만치에 마침 동굴이 하나 있구나. 우리는 거기 에 가 있을테니 후에 유정스님을 모시고 와라.” 

“알았대두.”

그리고 호유화는 승아의 모습을 한 채 쪼르르 절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호유화는 정말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통곡소리를 내서 흑호와 태을 사자마저도 깜짝 놀랐다. 호유화는절문 앞에서 정 말로 측은해 보이게 주저 앉아서 통곡을 하며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승려들이 그런 것을 못본 척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승려들이 우르르 나와서 강효식과 은동을 조심스 럽게 안아갔다. 호유화는 그때까지도 정말서러운 일 을 당한 아이처럼 측은하게 울면서 아장아장 승려들 을따라 다녔다. 승려들은 그 계집아이가 너무도 가 련하게 생각되어 무척 생각해주고 보살펴 주려는 듯 했다. 먼발치에서 그것을 보던 흑호는 너무나도 그 럴듯 하고 깜찍한 호유화의 연기에 한숨을쉬었다. “원 세상에. 여우여우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여우 중의 여울세 그려. 잘하기는 하지만 소름이 다 쭉 끼치네.”

태을사자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으 나 곧 정신차리고 하늘을 본 후 말했다.

“호유화가 저렇게 영악하니 무난히 잘 해낼 걸세. 우리는 어서동굴로 가서 기다리세나. 곧 날이 샐 것 같네.”

그리고 흑호와 태을사자는 곧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동굴안으로 순식간에 몸을 숨겼다.


한바탕 소란을 부려서 은동과 강효식을 안채로 옮 겨지게 한 호유화는 일단 한가지 일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승려 중에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몇몇 있 었다. 강효식은 비록 갑주나 패검은 모두 강물에 쓸 려 잃어 버렸지만 아직도전복(戰服) 차림이었기 때 문이다. 특히 주변이 소란스럽자 내려온 무애는 은 동의 얼굴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이 아이는 애가 업어다 이리로 옮겨온 아이가 아 닌가? 유정 스님이 탄금대에 갔다가 헤어지게 되었 다 하였는데 그 아이가 어떻게 수백리가 되는 이곳 에 와 있을까? 이 아이는 축지법도 할 줄모르는 데..’

무애가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은 그것 한가지 만이 아니었다.

이 일대는 아직 난리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조정의 군관복을 입은 장정이 부상을 입고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 군관의 용모는 은동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기이한 일이로구나… 이게 어찌된 일이지?’

무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고를 알 수 없어서 은동 을 발견하여데려왔다는 계집아이, 즉 호유화를 부르 게 하였다. 호유화는 조금 직책이 높아 보이는 승려 가 부르자 조금 찔끔했다. 하지만 막상 대하고 보니 그 승려는 비록 상당한 법력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 의 변신을 알아 볼 정도의 인물 같지는 않았다. 호 유화는 다시내숭을 떨면서 어느 정도 진정된 듯한 모습으로 무애 앞에 앉았다. 무애는 의문스러운 듯 한, 그러나 따스함을 결코 잊지 않은친절한 어조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고?”

“승아라 합니다.”

“저 사람들을 어디에서 발견하였느냐?”

호유화는 천성적으로 다소 간교한 면이 있어서 이 정도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절 안에 들어와있는 것이 마음에 꺼려서 적당히 받아 넘겼다.

“이 부근에서 발견했습니다. 거의 다 죽어가는 사 람이라… 너무 놀라서…”

호유화는 훌쩍거리면서 다시 측은하게 울기 시작했 다. 둔갑과변신까지 하는 호유화로서 정말로 눈물을 흘리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다만 속으 로는 중대가리가 의심은 되게 많다고 욕을 하고 있 었지만…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냐?”

“난리통에 피난을 가다가 부모님과 헤어졌습니 다… 그리고 헤매다가…”

“허어… 이 금강산 깊은 곳으로 피난을 왔다고?” 

호유화는 조금 당황했다. 거짓말을 술술 할 수 있 는 호유화였지만 조선의 지리나 지명은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하마터면 탄금대를 댈 뻔 했지만 그곳 은 하루만에 오기에는 너무 먼 곳이었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꼬리를 잡힐 위험이 있어 서 호유화는대강 주워섬겼다.

“난리가 났으니 차라리 산 속이 안전하다고 생각하 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벼랑에서 발을 헛디뎌서 그 만…”

중얼거리면서 호유화는 얼른 옷의 한쪽을 찢어지고 긁힌 것처럼만들었다. 호유화가 걸치고 있는 옷 또 한 실은 호유화의 영력으로 둘러진 것이라 얼마든지 눈깜짝 할 사이에 변하게 만들 수 있었다. 벼랑에서 굴렀는데 옷이 온전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여 그런것 이다. 호유화는 찢어진 치마자락을 무애에게 보이게 몸을 조금꼬았다. 그런데 무애는 확인할 생각도 않 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가엾은 것 같으니. 그런데 부모님은 널 찾지 않으셨느냐?”

“찾으셨겠지요. 그러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밤이 너무 깊고 어두워서… 너무 무서웠어요…”

호유화는 다시 흑흑거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중대가리놈. 고만 좀 물어봐라. 이 어르신께서 피곤하단 말이다.’

하지만 무애는 여전히 친절하게 말했다.

“너는 어디에 살았느냐?”

할 수 없이 호유화는 되는대로 말했다.

“메주골입니다.”

“어디에 있는?”

“인가도 십여호가 넘고…. 나지막한 산이 있구요.. 그리고 뒷산에는 소나무가 아주 많아요. 그리고..” 

호유화는 지명을 갖다 붙일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뇌옥에서자신이 만들어 놓고 지내던 마을의 경 치를 장황하게 말했다. 그러나 정작 무애는 다른 생 각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 말하는 것이 조금 묘하구나. 말투가 달 라. 혹시…’

조금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잠시 무애에게 들었으나 무애는 설마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눈치 빠른 호유 화는 무언가 좀 잘못되는것 같아서 얼른 응석을 부 렸다.

“그런데.. 저.. 정말 배가 고파요.. 어떻게 하죠?”

그러자 무애는 아차 하면서 부랴부랴 선반위에 올 려 놓았던 바구니를 꺼냈다.

“내가 깜박 잊었구나. 미안하구나. 밤새 헤매었으 니 시장할 텐데… 하지만 공양시간이 되기 전까진 절에는 밥이 없단다. 이것이라도 일단 먹고 허기를 좀 메꾸렴.”

그러면서 무애는 곶감과 약과를 꺼내어 호유화에게 주었다. 호유화는 꾸벅 절을 하고는 그것을 맛있다 는 듯 허겁지겁 먹었다.

‘으음. 달기는 되게 다네. 이런 것 말고 좀 화끈한 것 없나? 기왕이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살 코기로…’

호유화는 이미 수천년간 무엇을 먹어 본 적이 없었 으나 생계로옮겨지면서 생계의 몸으로 변한 터라 자 연 시장기도 어느정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호유화는 육식동물이었던지라 자연히시장기를 느낀 다면 고기를 찾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절에서 고기 를 달릴 수는 없었다. 약과는 기름기가 있어서 그래도 좀 나았지만 곶감은 정말 질색이었다. 하지만 호 유화는 꾹 참고 정말 맛있다는 듯 질리는 곶감을 꾸 역꾸역 삼켰다. 무애는 그냥 사람 좋게숭아 (실은 호 유화)가 먹는 모습을 미소를 띈 채 바라보고 있었 다. 수행을 많이 한 승려라서 별 생각을 한 것은 아 니지만 나이어림에도 불구하고 승아의 모습이 몹시 도 예뻐 보였다.

‘저 아이는 정말 예쁘구나. 다만 다소 음(陰)한 기 운이 너무 짙은 것 같지만… 크면 절세 미인이 되 겠구나.’

그러나 호유화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중놈이… 뭘 자꾸 힐끔힐끔 쳐다봐?’

호유화는 적당히 먹자 은동이 궁금해졌다. 유정을 만나고 싶기도 했지만 유정은 높은 승려일테니 그리 로 금방 가자고 할 수도없었다. 그래서 호유화는 은 동을 보러가고 싶다고 말했고 무애는쾌히 응락해 주 었다. 걸어가면서 호유화는 딴 생각을 했다. 무애는 그래도 수행이 어느정도 깊은 승려였지만 모여든 승 려중에는승아의 미모를 보고 넋이 나간 것 같은 작자들도 있었다. 비록먼 발치에서 숨어 보는 것이었지만 호유화의 이목을 속일 수는없었다.

‘이것들이 어딜 흘금거려? 기분 나쁘게… 배도 고 픈데 여기서그냥 요 중대가리들을 다 잡아 먹어 버 려? 천년만에 먹는 거니깐 좀 두둑히 먹어야 겠 지? 한 삼백 명만 먹으면 배가 불러질 것같은데..’ 

요사한 생각이 발동하자 호유화는 또 다른 생각까 지했다.

‘그나저나 그 은동이라는 놈도 확 잡아 먹거나 해 치워 버리면?

아까 마수 놈들은 그래도 꽤 세던데… 앞으로 왜 공연히 그런고생을 해야 해? 확 잡아 먹고 입씻어 버릴까?’

그러나 호유화는 그런 생각을 애써 지웠다.

‘아니야. 그래도 내 입으로 약속을 했는데… 내가 누구라고 한입으로 두 말을 한담? 그런 것은 내 자 존심이 용납 못 해. 그럼그럼…’

그러면서 호유화는 이상하게 은동이의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이상했다. 자꾸 은동이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 자 은동이가 또 괜시리 미워져서 잡아 먹어 버리고 싶었고 또 그런 생각을 지웠다. 마침내 은동과강효 식이 같이 치료받는 승방의 한켠에 도달하였는데 그 때까지목이 몇 번이나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것도 모르고 은동은 아직까지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곳 에는 흰 수염이 길고 눈썹까지 희게 변하여 길게 늘 어진 노승 한 명이 은동의 맥을 짚으면서 계속고개 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무애가 상태를 묻자 노승은 여전히버릇인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글쎄… 어른은 상처가 몹시 중하네. 피를 너무 많 이 흘렸어. 그런데 아이 쪽은…”

강효식이야 죽거나 살거나 상관 없는 호유화는 은 동의 이야기가나오자 눈을 빛냈다.

“아이는 어떻습니까?”

호유화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해 버렸다. 그러자 노승은 그냥자비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데..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하구나… 무애야.”

“예.”

“나는 잘 모르겠구나. 이것은 아마 유정이 더 잘알 수 있을게야.”

호유화는 유정이 오게 될 것 같자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은동의 증상이 아무래도 궁금하 여 다시 불쑥 물었다.

“아이의 증상이 어떤데요?”

그러자 노승은 승아를 보고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너는 아직 몰라도 된단다. 기이한 일이지…”

그리고 노승은 무애에게 말했다.

“이런 일은 유정도 처음 보는 것일테니 기왕이면 지금 와 계신손님도 같이 청하는 것이 좋겠구먼.”

그러자 무애도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노승에게 전염된 것 같았다.

“지금 홍의장군과 석저장군이 오셔서 유정과 이 야기를 나누고계실 것이야. 수고스럽더라도 그 분들을 오시게 하는 것이 좋을듯 싶네. 도력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시니…”

“예…”

호유화는 도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조금 찔 끔 했지만 곧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감히 인간 따위가 어찌 자신을 알아보랴 하는 교만한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호유화는 유정을 만날좋은 기화라 여겨 여기 잠시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무 애는 곧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호유화는 노승과 함 께 있게 되었다. 호유화는 곧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은동을 바라 보았다. 은동의 증상이 도대체 무엇인 지 궁금하였지만 너무 물어보면 노승에게 꼬리를 밟 힐 것 같아서 호유화는 묻지 않았다. 그러나 노승은 그냥 빙긋이 미소를 띄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호유 화는 잠든 은동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 다.

‘은동아. 어서 일어나서 나랑 놀자꾸나. 어서어서 일어나야지응?’

그리고 있는 중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법력이 충만해보이는 중년 쯤 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리 고 호유화의 느낌으로는세사람이 더 있었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가 보통이 아니었는데그 중 두 사람의 도력은 유정의 법력에 못지 않을 성 싶었다. 유정은 법력이라 주로 안으로 갈무리된 것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유정과 비슷하였으나 한 사람은 외공(외공)쪽 의 도력이 무지무지했고 또 다른 자의 도력도 만만 치 않았다. 호유화는 인간계에서도 상당한 자들이 있구나 싶어 자신도 모르게 조금 몸을 움츠렸다. 

“대사님. 불러 계시옵니까?”

“그래. 유정이냐?”

호유화가 보니 여기 노승은 나이만 많은 것이 아니 라 항렬도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사실 이 노승은 바로 서산대사였던 것이다. 노승은 밖을 향해 마치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했다.

“홍의장군, 석저장군도 오시었소?”

‘예.”

‘예!”

온화한 말투와 굉장히 씩씩하게 들리는 말투가 들렸다. 호유화는 이상하게 점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처(處)도 왔느냐?”

“예.”

“그래. 잘 되었다.”

호유화는 이 노승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 런데 노승은갑자기 천만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 다.

“나는 대단한 요물이 나타난 줄 알았는데, 그리 나 쁜 요물 같지는 않구려. 그러니 너무 심하게 다루지 는 마시게들.”

호유화는 깜짝 놀랐다.

“요.. 요물이라니요? 무섭습니다. 요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노승은 허허 하고 웃었다.

“왜 여기에 오셨는지, 무슨 속셈으로 오셨는지 말씀해 보시지요.”

그래도 호유화는 안간힘을 썼다.

“저 말입니까? 아니 제가 무슨…”

그러나 그때, 와락 승방의 장지문이 열리면서 누군 가가 뛰어 들면서 외치듯 말했다.

“정녕 인간은 아니고, 오래 묵은 짐승이 분명하구나!”

그 사람은 보통 키에 체구도 그다지 큰 사람은 아 니었다. 목소리도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크지 않은 목소리에는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힘 이 있었다. 그리고 눈에서는 퍼런 불꽃같은 것이 번 쩍이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생김새는 몹시 온 화해 보였지만 몸놀림이 몹시 민첩했다. 그 뒤에는 중년의 승려와 조금 더젊어 보이는 힘이 있어 보이 는 승려가 있었는데 그들은 아직 방안으로 뛰어 들 지는 않았다. 그러나 호유화는 그것만으로도 이미충 분히 놀란 상태였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를 대번에 간파해 낸것도 놀라울 뿐더러, 그런 인간이 다섯 명 씩이나 한 곳에 모여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한사람 한사람의 법력은 비록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 같았지만 결코 만만하지는않아 보였 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바로 승려 들이었는데, 호 유화는 본래 어느정도 사마외도(邪魔外道)에 속하는 존재라 신앙심이나 불력에 대해서는 거의 속수무책 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역시 연륜이 연륜인지라 호유화는 당황하지 않고 훌쩍 몸을 변화시키면서 몸 을 날렸다. 그러나 어느새 안광이 형형한 장부는 이 미주먹을 뻗고 있었다. 비록 적수공권의 맨주먹이었 지만 그 힘은무시무시했다.

‘인간 중에도 이런 힘을 지닌 자가 있다니, 정말 놀랍구나.’

호유화는 옆으로 몸을 세 번이나 돌리면서 우아하 게 그 주먹을피했다. 그러자 노승과 문 밖의 두 승 려는 합장을 하면서 중얼중얼 무슨 불경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유화는 금새머리가 빠개 질 듯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고. 이 고약한 것들 보게나. 이 놈의 땡중들

이 나를 괴롭혀?’

호유화는 분신술을 펼치려 했지만 승려들의 불력때문에 장애를받아 잘 되지 않았 다. 그런데 거기다가 붉은 옷을 입은 남자까지부채 를 훨쩍 펴더니 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비록 힘 은 안광이 형형한 사람 만큼은 못했지만 도력이 깃 들어 있어서 수월하게볼 수는 없었다. 호유화는 화 가 치밀어서 이것들을 당장 죽여 보렸으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불력의 제재는 생각보다 강해서, 호유화는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만 간 신히 두남자의 공격을 피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 고 더 큰 이유는, 혹시라도 싸우는 중에 은동의 몸 이 밟히거나 다칠 것을 무서워한것이다. 그러나 승 려들의 불호는 점점 강해졌고 호유화는 골치가 아파 서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호유화는 재빨리 붉 은 옷 입은 남자의 부채를 피하면서 은동을 안아 들 었다. 그리고 몸에서확 빛을 내쏘자 두 사람은 눈이 부셔서 자연 공격이 뜸해지게 되었다. 그 다음순간, 호유화는 이미 긴 백발을 지닌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두 사람은 조금 어리둥절하는 듯 했지만 금새 침착을되찾고 소리쳤다.

“이 놈.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려고 얼쩡대는 것이냐!”

그러자 호유화도 지지않고 소리를 질렀다.

“너희 놈들은 왜 다짜고짜 덤비는 거야? 그래. 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너희가 뭐 보태준 거 있어? 내가 너희한테 뭘 잘못했다구! 난 이 아이를 구해 주었는데!”

그러자 문 밖에 서 있던 유정이 호유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이 아이를 구했다구? 네가 해친 것이 아니 더냐?”

“내가 미쳤어! 흠… 좌우간 나는 흑호의 부탁을 받고 온 거야.

자꾸 이렇게 대하면 이 놈의 절간을 허물어 버릴테 다!”

그 말을 듣고 안광이 빛나던 장사는 다시 덤비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유정이 말렸다. 흑호라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움직인 것같았다.

“김공. 잠시만 손을 멈추시오.”

김이라 불리운 장사는 태연하게 막 내치려던 주먹 을 거둬 들였다. 그렇게 강렬한 힘으로 내치는 것도 어렵지만 매치던 주먹을저렇듯 태연히 거두어 들이 는 것 또한 보통 힘이 아니었다. 그러나 호유화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유정은 방 안이 일단 조용해지 자 방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흑호라고? 네가 그 호랑이를 아느냐?”

“알다마다. 그 꼬마 고양이도 내가 구해 주었는 걸?”

“그러면 정말로 너는 흑호의 부탁을 받고 이 아이 를 이곳으로데려온 것이란 말이냐?”

“그렇대두! 안그러면 내가 뭐하러 이 지긋지긋한 절간까지 왔겠어!”

그제서야 유정은 의심을 푸는 것 같았다. 유정은 노승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이는 한편, 두 장사 에게도 조그마한 소리로 말을 했다.

“그렇다면 요사스러운 존재는 아닐 듯 하오. 일단 말을 들어 봅시다.”

일단 그렇게 되어 살벌했던 분위기는 가라 앉았다. 호유화는 호유화대로 인간들이 자신의 정체를 대번 에 눈치채고 만만치 않게공격하려 들었던 것에 조금 은 주눅이 들었고, 서산대사와 유정을비롯한 사람들 도 이 여자가 비록 요물이라고는 하나 대단한 법력 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었기 때문에 양 측 다 섣불리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쪽은 저의 스승이신 서산대사님이십니다.” 

유정이 서산대사를 소개하자 그 자존심 강한 호유 화가 꾸벅 고개를 살짝 숙인 정도였다. 그리고 유정 은 두 장사를 소개했다.

“무례가 많았구려. 이 쪽은 곽공이오. 자는 계수 (季)라고 하며 붉은 옷을 즐겨 입기 때문에 사람 들이 홍의장군(홍의장군)이라 부르는 분이지요.” 

그러자 붉은 옷의 장사는 구김없이 웃었다. 어느모 로 보나 도력을 감춘 사람 같지 않고 그냥 마음 좋 고 구김없는 선비 풍의 남자같았다. 하지만 호유화 는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냥 곽재우(郭再祐)라고 부르시오. 망우(忘憂: 곽재우의 호)라고 부르셔도 좋고.”

“나는 호유화라고 합니다. 환계의 구미호지요.” 

호유화가 자신을 밝히자 안광이 빛나던 장정이 고 개를 갸웃했다. 그 남자의 눈빛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 앉았고 몸에서 풍겨지던 기운도 어느 틈엔가 사라져서 괴력을 지닌 장사로 보이지않았고 다만 순 박한 시골청년 같이만 보였다.

“환계란 어느 곳이오?”

“말해도 잘 모를 걸요?”

그러자 유정이 미소를 띄며 그 남자를 소개했다. 

“이 쪽은 김 공. 자는 경수(景樹)라고 합니다. 광 주 석저촌 출신으로 사람들이 석저장군(將軍)이 라 부르지요.”

“나는 김덕령(金德齡)이라 합니다.”

“두 분은 평소에는 몸을 잘 드러내지 않으나, 대단 한 도력을 지닌 분들로 각기 좌도방(道房)과 우도 방(右道房)의 빼어난 분들이시지요.”

“그런가요?”

호유화는 잘 모르고 있었으나 곽재우와 김덕령은 이미 친한 사이로, 각기 좌도방과 우도방의 중심적 인 인물로 꼽히고 있었다.

곽재우는 의령 사람이고 김덕령은 광주사람이었는데 그 둘은 도방에서 알게 되어 서로 교류가 많았던 사 람들인 것이다. 곽재우의 나이가 조금 많았지만 그 들은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곽재우는 평소 허 구한날 낚시질만 다닌다고 하여 ‘곽태공’이라는소리 를 들었으나 실제로는 도를 깊이 닦고 있었다. 그는 주로 병법과 술법을 연구하여 깊은 지식을 쌓았는 데, 후에 곽재우는 의병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이 게 된다. 김덕령은 평소에는 효성이지극한 그냥 가 난한 집의 자식으로 보였으나 광주, 특히 석저촌사 람들 중 아는 사람들은 그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이 있어서 였다. 김덕령이 어 렸을 적에 억울한 일을당하여 관가에 호소하려 하였 으나, 김덕령이 나이가 어리고 의복이 남루한 것을 보고 문지기 조차 아예 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에 김덕령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몹시 화를냈다. 그는 비록 그다지 좋은 집 출신은 아니었 지만 어려서부터글공부에 힘써 당시의 석학 중 한 사람이었던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 하기도 했어서 머리도 명석했다.

‘관(官)이라는 것은 백성의 일을 해결해 주려고 만 든 것인데 이곳 관아의 장이라는 작자는 권세만 부 리고 백성을 우습게 보는구나. 도저히 참을 수 없 다!’

화가 치민 김덕령은 눈에서 불이 솟았다. 원래 김 덕령의 눈은유명했다. 그는 화를 잘 내지 않았으나 화가 한 번 나면 눈에서 안광이 불빛처럼 솟구쳐서 밤에는 십리 밖에까지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화가 나면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나무를 머리로 들이받으 면,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채 넘어갈 정도로 타고난 신력(神力)의 소유자였다. 그는 곧 산으로 내달아 호랑이 굴을 찾았다.

마침 재수 없는 대호 한마리가 덕령의 눈에 띄자 덕령은 대뜸 그녀석을 잡아 목을 옭아매었다. 산중왕 인 호랑이도 덕령의 괴력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 다. 덕령은 호랑이를 산채로 질질 끌고 와서 관아 앞에서 호통을 쳤다.

“어르신네들! 만약 내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면 나 는 이 놈을 당장 풀어 놓을 테니 알아서들 하시 오!”

호랑이를 보기만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보통 사람들 이니 오죽 놀랐으랴? 포졸, 군관, 문지기도 간 곳이 없고 아전, 서기까지 도망쳐서 숨을 곳만 찾으니, 그나마 사또가 위엄을 세워 자리에 앉은 채 덕령을 달랬다 한다. (일설에 의해서는 위엄을 세운 것이아 니라 오금이 저리고 똥오줌을 싸버려서 움직이지 못 했다는 말도 있다.) 좌우간 호유화는 그들의 전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좌우간 그들이 비범한 사람들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유정이 왜 이리 모든 사람이 급히 달려왔는지에 대해 설명 해 주었다.

“지난 번 흑호에게 마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스승님과 함께많은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소. 그 런데 난데 없이 그대가 이리오니 묘한 기운이 느껴 지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는 그대가 바로마수인 것 으로 생각하였다오. 그래 법석을 떨었으니 너무 허 물하지 마시오.”

그리고 유정은 곽재우와 김덕령에게도 말했다. 

“두 분의 도력의 도움을 받으려 한 것이었으나 잘 못 알고 그런것이었구려. 과히 허물치 마시오.” 

그러자 곽재우는 미소를 머금고 공손히 고개를 숙 였지만 김덕령이 이를 드러내며 시원스럽게 웃었다. 

“원 별 말씀을.”

좌우간 어느정도 진정 된 다음 일단 호유화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은동의 안위였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서산대사는 웃었다.

“그대는 이 아이에게 퍽 관심이 많구려.”

그러자 호유화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말했다.

“네. 그럼요.”

호유화는 비록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여자가 부끄러움도 없이, 그것도 어린아이에게 음심을 품은것 같으니 정말 요물은 요 물이라고 속으로 탄식하였다. 그러나서산대사는 원 래 화통한 사람이라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나서 호 유화에게 말했다.

“이 아이에게 무슨 기이한 일이 있었소?”

“네?”

“이 아이의 몸에는 수십 명의 기운이 있는데… 정 상적인 방법으로 얻어진 것 같지는 않소이다.” 

그러자 호유화는 은동의 몸에 홍두오공이 지니고 있던 인혼주가들어갔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하지만 호유화는 인혼주니 홍두오공이니 하는 이 야기를 길게 하기도귀찮아서 그러한 말은 하지 않았 다.

“은동이의 몸에 수십명의 기운이 있다뇨?”

그러자 서산대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곽재우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더니 곽재우는 은동의 맥을 짚어 보고 흐음 하고 신임 비슷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유정도 은동의 맥을 짚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질 급한 호유화는답답해져서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된거냐구요!”

그러자 유정이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고작해야 열살도 안되어 보이고, 또 지 난 번 나와 만났을적에는 아무런 공력도 내력도 없 었는데, 지금은 장정 이십명에 달하는 기운을 지니 고 있소. 다만 그 힘이 몸 속에서 잘 융화되지 못하 고 들끓고 있어서 기절해 있는 것 같소이다.” 

호유화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흠. 홍두오공의 인혼주는 사람의 영혼을 빨아 들 이는 물건이었는데그게 은동의 몸으로 들어가서 그 리 되었구나. 그러면 홍두오공은 이십명정도의 영혼 을 삼켰던 모양이지? 좌우간 잘 되었네. 은동이가 스무명 분의힘이 생긴다면 천하장사 취급을 받을테 니 축하할 일이야.’

호유화는 기뻐서 자칫하면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정 을 이야기 할 뻔 했다. 그러나 호유화는 다시 생각해보게. 인혼주가 영혼을 흡수한 것이니, 이 사실을 말하면 저자들이 인간들 영혼을 구한 답시고 인혼주를 도로 빼낼 것 아니겠어? 그러면 은동이는 도로 힘없는 꼬마가 되겠구나. 에이. 다른 인간 놈들이야 죽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은동 이가 힘이 세지는게 더 좋다.’

호유화에게 있어서는 은동이만이 조금 중요한 존재 였지, 다른 인간 들은 모두 시시껍절하게 밖에는 보 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은동이가 장정스무명 분의 힘이 생긴다면 대략 2천근 남짓의 힘을 얻게 되는 셈이니 흑호나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놀라운 역사(力士)가 되는 셈이었다. 그것도 열살 나이에 말이다.

‘호호호… 우리 은동이가 천하장사가 되겠구나. 거 기다가 은동이는총명하고 영리하니 힘을 갈고 닦아 주기만 하면 길이 이름을 남길 대장군이될 수도 있 겠구나..’

생각하면서 호유화는 장래 강은호라는 장군이 사백 년 후에 사적에 남는지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몸안에 있는 시투력주를 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에도 호유화가 말했던 것과 같이 그러한 자세한 미래의 사정을알아낸다는 것은 거의 힘든 일 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진 호유화는 계속 비지 땀을 흘리면서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호유화는 이 미 은동이를 무척 마음에 들어하게 된 터라 이런 수 고 같은 것은 수고스럽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 지만 서산대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호유화가 아 무 말도하지 않고 땀을 흘리고 있자 은동을 걱정해 서 그러는 것으로 알고 호유화를 위로했다.

“염려 마시오. 아마 며칠만 조섭하고 나면 깨어날 것이오. 몸이 잘못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걱정하실 건 없소이다.”

그리고 유정은 강효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헌데 이 분은 또 누구시오? 은동이와 얼굴이 아 주 닮았는데.. 혹시?”

하지만 호유화는 미래를 알아보려 진땀을 흘리느라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정이 호유화가 말이 없자 의 아해서 바라보는데 호유화는 갑자기 욕을 했다.

“에잇. 제기랄. 안되는구나, 안돼. 전혀 쓸모 없는 물건이로구나.”

“무슨 말씀이오?”

그러자 제 정신을 차린 호유화는 배시시 웃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인사치례 로 강효식은 어떠냐고 물어보았는데 강효식은 이미 피를 많이 흘린데다가 상처가 심하고, 무엇보다도 살고자 하는의지가 없어서 힘들 것 같다는 말이었 다. 사실 슬픈일 이엇지만 호유화는그냥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나자 서산대사는 호유화에 게 말했다.

“그러면 이제는 돌아가서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마 저 나누도록 하지.”

그러자 호유화는 태을사자와 흑호의 생각을 했다.

“잠깐만요. 유정스님은 저와 함께 가주실 수 없겠 습니까?”

“어딜 말이오?”

“태을사자와 흑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절에 들어오기도 어렵고, 또 날이 밝을 때가 되었는 지라 밖에 나갈 수가 없지요.”

“용건은 무엇이오?”

“이번 난리에 대해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나 봅니다.”

그러자 김덕령이 유정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저 요물을 따라 혼자 가시면 어떨는지요? 저는 아직 완전히 믿을 수가없구먼요.”

그러자 유정은 그냥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서 산대사에게 말했다.

“소승, 좀 다녀오겠사옵니다.”

서산대사도 유정에게 왜란종결자의 예언이 흑호의 발에 새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유정에 게 다녀오라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유정 은 일어났는데 김덕령도 따라 일어났다.

“저도 같이 가보겠습니다.”

호유화는 김덕령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몸 을 옆으로 슬쩍 우아하게 돌리자 호유화는 다시 조 그마한 승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서산대사 를 향해 말했다.

“은동이를 잘 돌봐줘요. 안 그러면 이 절간은 없어 지는 줄 아시구.”

험악한 말이라 오히려 옆에 있던 처영과 곽재우의 낯빛이 변했지만 서산대사는 그냥 미소만 띄고 갸웃 거리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호유화와 유정, 김덕령이 밖으로 나가자 처영이 서산대사에게 물었 다.

“저 요물은 어찌 된 것입니까?”

“글쎄… 나라고 알겠느냐? 하지만 그리 악한 것 같지는 않느니.”

“그리고 흑호니 태사자니 하는 것들은 또 무엇들 입니까? 도깨비나잡귀들입니까?”

“아마도 그런 부류일테지.”

“허허. 난리가 나니 그런 것들마저 활개치고 다니 는군요…”

그러나 서산대사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다시 갸웃거렸다.

“누가 또 아느냐? 저들이야 말로 중요한 일을 할 자들인지..”

‘예? 아니, 요물들이 무슨 일을 한단 말씀이십니 까?”

서산대사는 그냥 버릇처럼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은동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말 을 한마디 할 뿐이었다.

“이 아이를 반드시 잘 가르쳐야 할 것 같느니. 반 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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