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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3권 – 7화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런 것들이 대국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오. 어떻게 악귀 따위가 인 간세상을 그렇게 전면적으로 범접한다는말이오?” 그러나 태을사자는 침착하게 말했다. 태을사자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심법에 의해 목소리 만 들려왔고, 그것이 김덕령으로서는 다소 무시무시 하게 들렸다.

– 그들은 그냥 악귀가 아니오. 인간세상의 악귀 라 면 나나 흑호 정도로서도 충분히 제지가 가능할 것 이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힘도 없고. 허나 그들 은 다른 계에서 온 것들이오. 마계는 신계와도 우열 을 가리려고 하는 강한 세상이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더 당신 말을 믿 지 못하겠소.”

– 무엇 때문이오?

“당신은 우주가 신성광생(神聖光生),사유환마(死幽 幻魔)의 팔계로 갈라져 있으며 각각 사계 씩 구분되 어 빛과 어둠을 대표한다고 하였소. 그러나 당신은 사계의 저승사자라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여기 호유화는 환계의 존재이고. 그렇다면 당신들 또한 어둠의 세계에 더 가까운 존재들이 아니오? 당신들은 마계의 일부가 아니오?”

김덕령은 날카롭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쪽을 물 고 늘어졌다. 그러나태을사자는 시종 침착하게 말했 다.

비록 사계나 환계도 어둠의 세계이기는 하나, 생 계에는 그 영향을 끼치지 않소. 각각의 팔계는 나름 대로의 존재가치가 있고 그럼으로써 우주전체의 질 서가 바로잡히는 것이오. 그러나 지금 마계가 꾸미 는 짓은 그 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뒤흔드는 짓이오. 

“그러면 이번 일에 마계 외에는 관계가 없다는 말이오?”

– 솔직히 그렇지 않을 수도 있소. 나의 상관이었던 이판관은 어느새 마계의 백면귀마라는 마수와 바꿔 쳐져 있었고, 사계의 접경에는 유계의 대군이 진을 치고 있었소. 환계는 내 비록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볼 때 마계의 손길은 상당히 많은 곳에 미쳐 있음이 틀림없소. 그리고 그 모두의 관건은 생계에서의 이 전쟁에 달려 있음이 틀림없소.

그리고 태을사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 했다.

– 솔직하게 말해, 이것이 보통의 전쟁이었다면 생 계의 일이니 우리는관심조차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이 난리는 우리들 다른 세계의 조화마저도 심각하게 위협할 가능성이 있소. 나는 그 비밀을 파헤치려다 가 좋은 동료들을 모두 잃고 모함까지 당하여 사계 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소. 그리고 여기 흑호는 조 부인 호군을 여의었소. 호군은 조선땅 금수의 우두 머리였는데 호군만이 아니라 조선땅의 영통한 동물 들과 토지신들, 산신들마저도 모두 이유없이 소멸되 어 버렸소. 이것만으로 볼 때에도 크나큰 음모가있 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소. 더구나 우리는 마수들 을 이미 몇 번이나보아서 겨루기까지 했소. 정 내가 다른 존재라 믿기 어렵다면….

그러자 흑호가 불쑥 말했다.

– 은동이에게 물으시우. 우리와 함께 별별 일을 다 겪었으니.

— 그렇소. 은동은 당신네 세계의 인간이고, 거짓을 모르는 어린아이이니 믿을 수 있을 것이오.

김덕령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금 말투가 변했다.

어쨌거나 반신반의이기는 하나 믿어보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헌데 이 전쟁을 일으켜서 마계는 무엇을 얻 혼. 인간의 영혼이지요.”

“영혼?”

– 그렇소. 그 이유는 우리도 아직 모르오. 그러나 이미 조선군이 패배한 많은 전투에서 수많은 인간의 영혼이 사계로 넘어오지 못하고 마수들에게 흡수되 었소. 원래의 천기는 나도 잘 알지 못하지만, 조선 군이 이렇게추풍낙엽처럼 패하지는 않을 것이었소. 그러나 마수의 영향과 간섭으로인하여 조선군은 계 속 무너져가고 있으며, 그에따라 조선사람들의 영혼 들이 계속 마수들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있소. 그러자 유정이 말했다.

“해동감결의 왜란 예언에는 사년(巳年: 뱀해)에 난리가 일어나면 돌림병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 었소이다. 그것은 전염이 된다는 뜻이니다른 나라에 까지 전화가 퍼질 수 있다는 말과 부합하는 것 같소 이다.”

그러자 태을사자도 대답했다.

— 옳소이다. 왜국은 지금 조선을 정벌한 다음 명국을 정벌하려 하고 있소.

그러자 김덕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쳤군.”

김덕령은 다시 조금 뭔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풍신수길이란 자가 무슨 계획으로 그랬는지는 모 르지만 미친 짓이오. 명국까지의 보급로는 일만리가 넘어갈 것이고 왜병 이 제 아무리 용맹하게 싸운다 해도 명국을 정복하지 는 못할 것이오. 절대.”

그러자 흑호가 의아해 했다.

– 왜 그렇수?

“명국의 땅은 엄청나게 넓으며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소. 그러니 가령왜병들이 잘 싸워 북경성까지 함 락한다 하여도 명국을 손아귀에 넣을 수는없소. 왜 병 백만을 가져와 풀어 넣는다 해도 명국 전체를 장 악할 수 없기때문이오.”

군대가 이국땅에 진주할 경우 그 나라의 백성들은 자연히 그 군대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할 것이 기정사 실이다. 그것은 그 나라 내에서 왕조가 바뀌는 것보 다도 몇 배 큰 반발을 가져오게 된다. 하물며 왜국 에서 중국을점령한 경우에는 그 반발은 수십배 더 클 것이고 그러려면 그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수많 은 군대가 점령지마다 주둔하여야 한다는 것이 김덕 령의 주장이었다.

“왜국이 비록 수백년 동안 전쟁을 치러서 그 군대 가 수십만에 이른다해도 명국 전체에 흩어 놓으면 모두 부스러져 흔적도 없어질 거외다. 그것을 막으 려면 다스림에서 덕을 베풀어 명국사람들이 마음으 로부터 따르게만들어야 하는데, 풍신수길이 그만한 역량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소.”

김덕령의 주장은 옳은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이후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국 을 점령하려 했을 때, 당시 세계 최강의 육군이라 자랑하던 수십만의 관동군은 너무나 資ᄌ점령지에 분산되어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오합지졸이 되 고 말았다. 그로 인해 결국 관동군은제대로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없어진 기이한 군대가 되고 말았 던 것이다. 또한 이후 명이 망하고 청국이 섰을 때, 반청복명을 부르짖는 중원인들의 반발은 수를 헤아 릴 수 없이 일어났다. 기실 명의 멸망도 거의 기적 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자성의 내란과 오삼계의 반란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다. 그러나 강희제 등의 명군이 치세를 잘하여 천하 에 태평성세가 오게 만들었기 때문에 반청복명은 민 중에게 그다지 큰 호응은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결 국청은 이백년 이상을 존속할 수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백성의 고통을 돌보지 않고 무모한 원정을 일으키는 풍신수길에게 그러한 명군다운 자질은 없 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김덕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풍신수길이 무모한 자라 하나, 그 정도의 안목도 없을 리는 없소. 이 난리가 왜 일어났는가는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구려. 아마 나만이 아니라 왜장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오.”

– 그러나 문제는 난리가 이미 일어났다는 점에 있소. 마수들의 음모도계속 되고 있고 말이오.

그러자 유정이 말했다.

“신립장군이 탄금대에 진을 쳐서 패배하였으니 한 양의 점령은 기정사실이오. 문제가 크구려. 헌데 신 립 장군이 탄금대에 진을 친 것도 마수들의 조작에 의한 것이었소?”

– 틀림없소. 우리는 마수들이 농간을 부려 신립을 속이게 만든 금옥이라는 여인과 동행까지 했었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금옥이라는 여인은마수의 습 격을 받아 소멸되고 말았소.

그리고 그들은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흑호 마저도 심각하기는마찬가지였다. 아무 생각 없는 것 은 호유화 혼자 뿐이었다. 호유화는 그들의 말에는 관심 없다는 듯, 한켠 구석에 앉아서 그동안 못 잔 잠에 조용히 빠져 있었다. 호유화에게는 세상이니 인간들이니 난리니 아무 관심이 없었고 오직 은동과의 약속과 맹세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한참 지나서 유 정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구려. 일단 마수 들이 무엇을 꾸미는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오. 이 것은 우리들로서는 힘이 닿지 않는 일이니그대들이 도와주었으면 하오.”

– 좋습니다.

그러자 흑호도 좋아서 소리쳤다.

・좋수. 나는 솔직히 말해 인간들을 그리 좋아하지 는 않지만 왜놈들은더욱 싫수. 우리도 힘을 써서 조 선군이 승리하도록 만들어 드리지.

그러자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됩니다. 그대들은 이 전쟁에 직접 영향을 미쳐서는 아니될 것이오.”

– 에? 도와준다는데 왜 그러우? 우리가 마수들만 못할 것 같수?

“아니오. 마수들이 그릇된 것은 이미 정해진는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려는 데 있소. 그러나 당신들이 인간의 일에 개입한다면 물론 조선으로서는 좋을 지 모르지만 당신들 또한 천기를 어그러트리는 것이오. 그래서는 아니됩니다.”

그러자 태을사자도 동의했다.

– 그건 유정스님 말이 맞네. 흑호.

– 제길! 그럼 어쩌라는 거유?

그러자 유정은 조용히 말했다.

“정녕 마수들이 천기를 어기려 한다면, 그대들은 그 천기를 어기지 못하도록만 하면 될 것이오. 그대 들은 마수들만을 막아야지 왜군들을 건드려서는 아 니됩니다. 마수들이 어그러트리려는 천기를 원래대 로 되돌리는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오.”

– 좋습니다. 저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요?

“일단 마수들의 저의를 알아내고 그 정체를 밝히기 전에는 무엇도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소이다. 그런데…”

유정은 호유화를 돌아 보았다.

“그 시투력주라는 물건… 그것을 마수들이 노린다하지 않았소?”

– 그렇소.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그러는 지는 알수 없지만.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 소. 내게 무슨 생각이드는데, 맞을지는 모르겠소 만… 일단 이것을 보시오.”

말하면서 유정은 품에서 첩지 한 장을 꺼냈다. 바 로 서산대사가 해석한, 해동감결의 예언을 해석한 글이었다. 태을사자와 흑호는 그것을 읽어보았다. 조금 머리가 우둔한 흑호는 그 뜻을 잘 알 수 없었 지만, 예민한태사자는 몇가지 문구가 눈에 확 들 어왔다. 그중 가장 기이하게 보이는것은 바로 그 ‘ 왜란종결자’라는 단어였다.

– 허어… 왜란종결자라고요?

“그렇소. 이 말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런 지요? 왜란종결자라함은 실제로 왜란을 종식시키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니, 모든 것이 이 한마디에 통하지 않겠소?”

그러자 흑호도 말했다.

– 그렇수. 조부님이 남기신 말에도 왜란종결자를 찾아 보호하라고 했었수! 왜란종결자라… 그 사람 이 대단히 중요한 사람임에 틀림 없구려! 

“혹시 마 수들이 미래를 알아보려고 한 것은 이 왜란종결자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태을사자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그 의 모습이 보였더라면 태을사자가 무릎을 치는 모습 을 보았을 것이다.

— 그렇군요! 그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란종결자를 마수들이 해치울 수만 있다면, 왜란을 막을 수 없게 될 터이니까요! 태을사자는 이제야 머리가 맑게 개 이는 것 같았다. 유정의 생각이 틀림 없을 것 같았 다. 사계의 판관이나 염왕조차 가까운 생계의 미래 를 잘알 수 없는데 하물며 머나먼 마계의 존재들이 생계의 천기를 알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그 들도 나름대로 조사를 했을 것이다. 해동감결은귀한 책이지만 마수들이 그 내용을 보지 못했으리란 법도 없다. 호군이 알고 왜란종결자라는 말을 짚을 수 있 었으니 마수들도 알았을 것이다. 좌우간 마수들은 왜란종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이제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호유화가가진 시투력주를 그리 애를 써서 얻으려 한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아니 라면, 시투력주를 그리 탐할 필요가 없었다. 백면귀 마는 사계에서 이판관으로 변하여 잠입했었다. 그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시투 력주를 얻기 위해서는 그리 힘들게 잡은 요직도 버 릴 수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분명 마수들도 그 왜 란종결자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호군이 죽으면서까 지 왜란종결자를 찾아 보호하라고 한 말도 이해가 갔다. 왜란종결자가 바로 이 난리 전체의 향방을 잡 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흑호도 흥분된 듯 입을 열었다.

– 그런데 그게 누구일까요?

그러자 유정은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나로서도 알 수 없소. 허나 신씨와 이씨, 김씨 중의 한 명일것만은 틀림 없구려….”

“신씨는 아마도 신립장군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김덕령이 말하자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허나 신립공은 이미 전사하 지 않았소?”

“하지만 그 외에 신씨성을 가진 무장이나 신하는 특별히 두드러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알 수 없소. 장군의 신분일지, 신하의 신 분일지, 혹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산림의 처 사일지도 모르오. 그 사람으로 인해 난리가끝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싸움에서 이기는지, 정치나 외교 를 하는지, 백성을 간수하고 뜻을 모으게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소?”

“하지만 전쟁중이오. 전쟁의 승리 외에 다른 방법 으로 전쟁이 끝난다는 것은 이치가 닿지 않을 것 같 습니다.”

“흐음…”

유정과 김덕령은 이미 전에 한참동안 머리를 맞대고 그에 대해 의논한바가 있었다. 그리고 서산대사와 처영, 곽재우도 같이 약간 토의했었다.

그러나 성씨만 가지고 그것이 누군지를 알아내기는 아무래도 막막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호유화가 포휸사에 들어오자 논의 를 중단하였기 때문에유정과 김덕령도 아직 이것이 다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그러자 흑호 가 호유화를 툭툭 쳤다.

– 이봐이봐 호유화. 자네ᄆ가진 시투력주를 좀 써먹을 수 없을까? 누군지 좀 알아봐.

그러자 호유화는 신경질을 냈다.

“그게 그렇게 말 같이 되는지 알아? 제기. 이거 마수들하고 똑같이 멍청하네. 털복숭이 발이나 치워. 징그러워.”

– 뭐?

흑호가 화를 내려 했으나 태을사자가 말렸다.

– 가만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느니. 그러면 호유화. 그것을 알아내려면 얼마나 걸리겠는가?

그러자 호유화는 귀찬다는 듯 인상을 쓰고 말했다.

“장담 못해. 일단 시도라도 해 보려면 최소한 열흘 은 걸릴 걸?”

– 어허. 그건 너무 긴데?

“그럼 관둬! 그럴려면 난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 구! 머리가 뽀개지도록 생각하고 생각해야 하는 데…”

– 그래그래. 그러면 일단 천천히 생각해 보아라. 지금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호유화는 호유화대로 투시를 해보라고 내버려두기로 하고 자신들도 생각할 수 있 는만큼은 생각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더구나 태을사자와 흑호는 현재 조선의 인물들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유정은 다시 차근차근 생 각하기로 하고 땅바닥에 이름을 써내려 갔다.

“일단 무장부터 생각해 봅시다. 현재 도원수는 김 명원이오. 그러나 이사람은 허명 뿐이오, 능력이 없 는 사람이외다. 신립은 이미 죽었고… 권율 대장이 비록 문관 출신이지만 무에도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는데…”

권율 장군은 우리도 조금 압니다. 신립 장군의 장인이 아니었습니까? 도력도 높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자 김덕령이 고개를 저었다.

“허나 너무 연로하셨고 성씨가 맞지 않으니 왜란종결자는 되지 못할듯 합니다.”

그러자 유정이 말했다.

“조정의 대장 중에서는 일단 없는 것 같구려.”

“지방의 절도사나 통제사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군사도 별로 거느리고 있지 못하고, 너무 수가 많소. 일단은힘들다고 보아야겠지요.”

사실 조선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던 장수들은 이미 거의 모두 죽거나 싸움에 패한 뒤였다. 할 수 없이 유정은 김덕령에게 물었다.

“공도 의병을 일으키실 계획일 것 같고, 우리도 승 병을 일으키려 하고있소이다. 그러니 혹 의병장 중 에 왜란종결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자 김덕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의병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잘해야 후방이나 어지럽히고 자기 고향이나 지키는 정도이지, 대세에 일시에 영향을 줄 역할은 되지 않겠지요.”

“산림에 계신 분들중 무략이 뛰어난 인물은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대부분 도방과 관련이 있을 것으 로 봅니다만.”

“도방에서 무략을 지닌 분이 두 분 계시지요. 정기 룡 공과 정문부 공이십니다. 허나 두 분 다 성이 틀 리시지 않습니까?”

정기룡과 정문부는 후에 의병장으로 맹활약을 하게 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왜란종결자로는 볼 수 없었다. 그러 자 유정이 미소를 띄며말했다.

“김씨성의 왜란종결자는 여기 김공이 아니실런지 요?”

“아이구. 저같은 무지렁이가 어찌. 그런 말씀은 마 십시오.”

그러나 유정은 김덕령을 찬찬히 훑어 보고 있었다. 김덕령의 신력은조선 전체에서 으뜸이었으며 비록 겉으로는 순박하고 무지렁이처럼 하고다녔으나 그의 지략이나 식견은 대단히 뛰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김덕령은 결코 자기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 일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그 사람이 된다 는 것 부터가 이미아니될 일입니다. 저는 아직 병사 한사람 모으지 못했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자.. 우리 이씨 성을 지닌 인물 중에서나 찾아 보지요.” 유정도 더 말하지는 않고 다시 인물들을 논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장군만 놓지 않고 조정의 여러 인 물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이름들 중 한 명의 이름을 보고 흑호가 말했다.

– 잠깐. 저 사람…?

흑호가 가리킨 이름은 바로 이항복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 바로 뒤에는 이덕형도 씌어져 있었다. 오 성과 한음으로 후대에까지 널리 알려진명신들이었던 것이다. 유정도 아무 말이 없던 흑호가 이름을 지목 하자 긴장했다.

“호공(公)께서도 그 분의 이름을 들으셨는가?” 

흑호는 강효식과 신립의 대화를 들으면서 이항복의 이름을 들었었다.

이항복은 신립과 동문수학을 했었고 김여물을 살려낸 복인(人)이었던것이다.

– 나는 식견은 없수만… 신립공이 만약 첫번째 왜란종결가 아니라면, 가장 가까웠던 이항복 공이 왜란종

결자가 되지는 못할까요?

유정도 흑호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 한양은 점령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상감을 피난시 켜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승지로 있는 이항복이야 말로 그 일을 책임질 사람이 아닌가? 김덕령도 같 은 생각이었다.

“그럴수도 있소! 상감을 보호하여 조선의 기를 보 존하는 것. 그것은확실히 큰 공이 될 수도 있소!” 

“그렇군요…”

유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유정은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있소. 지금 조선군의 의병이 사 방에서 일어난다고하지만, 왜군의 승승장구한 기세를 꺾기는 역부족이오. 이것을 타개하려면 명군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것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거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조선은 명국을 상국으로 받들며 살아왔다. 지금 명 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당장 왜국의 예봉을 막 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자 김덕령이 물었다.

“그렇다면… 명군을 요청하는 임무를 맡을 사람 은..?”

“지금 조정에서는 두 사람 뿐이오. 그러한 막중한 외교 임무를 수행할사람은 명석하고 기지에 뛰어나 야만 합니다. 그만한 인물은 이항복, 이공과…” 

유정의 손가락은 바로 이항복의 밑을 가리켰다. 

“이덕형, 이공 뿐이오. 아마 이항복 공은 승지로서 상감을 곁에서 모셔야 할 것이니 이덕형 공이 사신 으로 갈 것이오. 그 사람 밖에는 없어요. 거의 틀림 없소.”

두 사람이 거론되자 태을사자와 흑호도 긴장하였 다. 유정과 김덕령의말대로라면, 두 사람 모두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두 사람 모두 신립이 죽은 지금 왜란종결자가 될 수 있는 이씨였다. 태을사자는 조용히 말했다.

– 둘 중 누구일지는 모르니… 이 둘 모두를 살피 고 보호하는 수 밖에는 없겠군요.

그런데 김덕령이 이의를 제기했다.

“가만가만… 황공하옵지만 당금 상감도 이씨가 아 닌지요?”

선조는 분명 암군(君)이었고 성격이 음흉하며 잔 혹하였다. 그러나누가 뭐래도 선조는 조선의 임금이 니 김덕령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결국그들은 한참 이나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침내 태을사자가 결론 을 내렸다.

–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 수 밖에는 없겠소이다. 이항복 공을 살피는 일은 이 항복 공이 상감의 곁에 계실 것이니 한 패의 일일 것이고, 이덕형 공은 유정 스님의 말대로라면 필경 명국으로 갈것이니 또 한 패로 가야 하겠군요. 

“좋은 생각이오.”

– 그리고 호유화는 계속 생각을 잘 해보도록 하고… 그러려면 일단 호유화는 갈 수 없겠군.

그러자 호유화는 인상을 썼다.

“가라고 해도 안가! 난 은동이가 깨어나는 것을 보아야 해.”

그리고 호유화는 중얼거리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절간에 있는게 맘에 안들기는 하지만…”

그러자 태을사자는 허허 웃었다.

– 누가 뭐랬는가?

그리고 태을사자는 일동에게 고개를 돌렸다.

– 그러면 일단 명국으로는 가게 되면 내가 가도록 하지요. 이항복 공의곁에는 흑호가 좀 수고 하게나.

그러자 흑호는 인상을 썼다.

–  제기. 이 몰골로 어찌 가? 상감 옆에 호랑이 모습을 하고 뛰어들란말여?

그러자 김덕령이 미소를 띄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주고 싶지만, 우리는 그런 둔갑도 하지 못하고 미천한 신분이니 상감을 바로 옆에서 뵐 수가 없네.”

그러자 호유화가 말했다.

“야. 고양이. 너 그러면 내게 절 백번 만 해라.”

– 뭐?

“그러면 내가 사람으로 변하는 둔갑법을 가르쳐 주 지. 네 머리만 따라준다면 누구의 얼굴로도 변할 수 있을거야. 어때?”

흑호는 자존심이 상해 화를 내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결국 흑호는호유화에게 나중에 절 백 번을 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둔갑법을 배우기로 하 였다. 결국 일은 일단 정리가 된 셈이었다. 유정과 김덕령은 각각 의병을 모아 왜군들과 직접 맞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흑호는 상감의피란길에 어가를 따라가며 이항복의 주변을 살핀다. 태을사자는 일 단 흑호와 동행하다가 이덕형이 명국으로 군사를 빌 리러가면 명국으로 이덕형을 보호하러 간다. 그리고 호유화는 은동과 함께 일단 표훈사에 남아 미래를 투시하여 왜란종결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다. 정리를 하고 나자 유정이 말했다.

“좋소이다. 나는 일단 스승님께 이 내용을 알려야 하겠소. 세 분, 잘부탁하오. 세 분은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이 일은 조선만이 아니라 생계전체가 달 린 일 같구려. 애 써주시오. 애써주시오…”

그리고 유정과 김덕령은 굴을 떠났다. 그리고나자 호유화는 샐쭉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 땡중.. 그래도 마음 씀씀이가 괜찮네 그려. 화 통한 인물이야.”

그러자 자존심이 상해 볼이 부은 흑호가 말했다. 

“왜?”

“중이면서 우리 생각을 해서 그 항상 입끝에 달고 다니는 나무아미타불.. 같은 불호를 한 번도 안 외 웠어. 여기 오래 있어도 별 탈은 없겠구먼.”

생각해보니 그랬다. 흑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 자 태을사자는 말했다.

“아뭏든 속히 이 일을 해결하여야 해. 그래야 흑호는 원수를 갚을 것이고, 나도 사계로 돌아갈 수 있 을 것이야.”

그러자 호유화는 다시 대들었다.

“제기랄. 그럼 나는?”

그러자 태을사자는 다시 웃었다.

“너는 그래야 은동이와 한 약속을 다 이룰 것 아니냐?”

그러자 호유화도 흥 하고 한 번 코웃음을 치더니 입맛을 다시며 웃었다.

“그건 그렇구먼. 알았어. 나도 애써볼께.”

비록 논의가 끝났지만 태사자와 흑호는 금방 출 발할 수 없었다. 한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산대사는 유정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서 그때 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하나 생각해 냈던 것 이다.

“그래… 기이한 일이나 잘 된 일이로구나. 허나 그 태을사자 라는 자는 어찌하려 한다는 것인가?”

“예? 무슨 말씀 이시온지…”

“태을사자께서는 그래서 낮에는 활동할 수 없다던데 어찌 명국으로 가서 이덕형 을 보호하겠는가? 그렇지 않으냐?”

그것은 유정으로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정도로 수련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나 다행히 곽재우는 도가에서도 양신법의 술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태을사자에게도 가르쳐 줄 정도의 수련 을 이미 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오래 후의 일이지 만, 곽재우는 나이가 든 후 세상을 떠날 때 좌탈, 즉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그의 육신은 빈 옷 가지 같이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 한다. 또 그가 죽은 직후 주변 사람들은 곽재우가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큰학을 타고 지붕 위로 날아가 는 것을 보았다고도 한다. 곽재우는 양신법의대가였 기 때문에 양신을 극대화 시켜 신선의 경지로 들어 선 것이다. 그리고 훨씬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이때 곽재우가 탔던 학은 태을사자의 묵학선이 변하여 된 백학이었다.

좌우간 그러한 연유로 태을사자는 곽재우에게서 양 신법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흑호는 호유화에게 서 인면둔갑(人面遁甲)의 술을 배우느라며칠 정도가 소모되게 되었다. 그러나 왜군이 언제 한양으로 들 이닥칠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마수들이 그 사이에 또 무슨 농간을 부리지 않는다는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각자는 최선을 다하여 술수를 가르치고 익힐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은 시 간싸움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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