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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3화


“좋다. 그러면 되겠구나.”

“하온데 무슨 일을 합니까?”

그러자 고니시는 엄숙하게 말했다.

“과거를 캐는 것이다.”

“어떤 과거 말입니까?”

“오다 가와 아케치 가의 과거이다…”

고니시는 과거의 목소리, 즉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가토 등이 그 미지의 목소리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말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과거의일을 조사하 여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하여 겐끼를 파견하 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잊고 있었으되 지금은 한양 을 점령하여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거기다가 가토 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져서 고니시 는불안했다.

‘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간빠꾸 (관백. 토요토미를말함)님의 신변에 그러한 기운이 미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어째서 그런 옛 일을?”

겐끼는 조금 의아해 했다. 암살이나 그런 종류의 일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니시는 엄숙하게 말했다.

“조심하여라. 일본국 전체가 걸린 일일지도 모르고, 한 없이 위험한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간빠꾸 님을 위한 일이다.”

고니시의 마음은 순수했다. 그는 어찌되었건 토요 토미에게는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 었다. 그러나 고니시로서 이러한 의문을겐끼에게 이 야기 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겐끼 자신은 절 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니시는 알고 있 었다. 이가패들은 닌자의 일을대대로 가업으로 삼는 다. 그러나 닌자의 입에서 비밀이 누설되었다는 것 을 세상이 알게되면 닌자에게는 아무도 일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닌자들이죽으면 죽었지 청부받은 일을 누설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유때문이었던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누설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다. 하 지만 오다나 토요토미가를 조사하게 되면 겐끼의 행 동은 보통의 활동범위를 넘어가게 된다. 닌자의 암 살 위험도 있으므로 닌자들은 경호업무를 맡기도 한 다. 그러한 자들에게 꼬리를 잡히지 말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으며 자칫 하면 대역죄로 몰릴 염려도 있었다. 그러나 만의 하 나겐끼의 행동이 탄로나더라도 자신이 대공을 세운 근래에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겨졌던 것이 다. 실제로 토요토미는 고앱Q챨 한양을 점령하였 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 기뻐하였다. 가토의 측근들 은 토요토미에게 고니시의 술수를 고자질 하려 했으 나 토요토미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앞으로 고니시 유기나가는 내 자식이다. 아무도 그를 헐뜯어서는 안된다. 그를조금이라도 비방하면 엄벌에 처한다.’ 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던 것이다.

고니시는 비록 이런 사실은 아직 모르고 있었으나 토요토미가 미친 듯 기뻐하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행여 위험한 오해를 낳게 될위험이 있는 일은 지금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고니시 는 거기까지 생각한 다음 겐끼에게 천천히 그간의 일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태을사자와 흑호는 내내 상감의 어가를 따르며 그 주위를호위하였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는 달리 마수들은 어가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다. 물 론 조선군을 옹호하는 둘의 입장에서 어가 주변에 마수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흑호는 어느 면으로는맥이 빠지는 면도 있었 다. 자신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흑호가 바보는 아니었다.

어가의 몽진이 평양을 그리 멀리 두지 않은 곳에 위치할 무렵, 흑호는태을사자에게 말했다.

“보슈. 아무래도 우리가 헛발 짚은 것 같으우.”

“헛말..?”

태을사자가 의아해하자 흑호는 툴툴거렸다. “만약 이항복이나 이덕형이 왜란종결자라면 마수들 이 따라와 죽이려고 했을 것 아니우? 헌데 마수들 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으니… 그러니 그 두 사람은 왜란종결자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사실 태을사자도 간혹가다가 그런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태을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단정을 내리기에는 이르네.”

“왜 그렇수? 저 두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훌륭한 인물이오, 좋은 신하이기는 하지만 이 난리를 혼자 뒤집을 수 있는 그럴만한 경륜은 없는 것같으우. 아 무래도 토지신들이 한 말이 맞는 것 같단 말씀이 야.”

사실 태을사자도 그런 불안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태을사자에게는 그렇게만은 볼 수 없는 근거 한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일일세. 금 마수들이 나타나 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왜란종결자가 아니 라 단정할 수는 없단 말일세. 생각해 보게나. 마수 들이 미래의 천기를 짚어 알 수 있었다면 굳이 호유 화의 시투력주를 그렇게 빼앗으려 했겠는가? 아직 마수들도 우리처럼 누가 진정 왜란종결자인지는 모 르는 것이 분명하네.”

그러자 흑호는 조금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번에 흑호는 다른 말을 하였다.

“그런데 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수.”

“뭔가?”

“음… 그러니까.. 내가 마수들의 입장이었다면 말 이우, 굳이 이거저거고 가리지 않을 거유. 좀 빼 어난 인물이 있으면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아니겠 수? 유정 스님이나 곽재우 같은 사람이라면 좀 힘 들겠지. 허나 그외에 마수들의 힘을 당해낼만한 인 간은 별로 없잖우. 하물며 놈들은 조선땅의 영통한 금수며 신령들을 마구잡이로 없애 버리지 않았었 수? 헌데 왜그놈들은 멈칫거리고 있는 거지?”

그것은 태을사자로서도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난제 (難題)였다. 분명마수들은 흑호의 일가를 몰살하였 고 그 외의 신령한 짐승들을 모두 해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인간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일 은 거의 없었다. 어째서 그러는 것일까? 신립의 경 우만 해도 그렇다. 마수들은 차라리 신립을 결전 전 날에 죽여 버리는 편이 일을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수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금옥을 조종하고 술수를 부려서 신립을자멸의 길로 이끌었을 뿐이다. 흑호도 그에 대해 같은 뜻을 가지고 있어서 둘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태을사자는 그 일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네. 만약 신립이 급사당 해 죽었다면 사기는떨어졌을 지언정 꼭 탄금대에 진 을 치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네. 조선군에게 배 수의 진을 치게 하여 전멸시키려 한다면 탄금대에 진을 치게 하였어야 할 것이야. 그러려면 신립을 죽 이는 편보다 신립의 힘으로 탄금대에 진을 옮기게 하는 편이 옳아서 그랬을 것이야.”

그러자 흑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우.”

“무슨 말인가?”

“나는 옛날 이야기들을 생각하였수. 그렇게 본다면 그렇지 못할 것이우.”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 보게나.”

그러자 흑호는 천천히 말했다.

“옛부터 우리 호랑이 족 중 사람을 잡아 먹는 친구 들이 많앗수. 또한사람들은 호랑이를 사냥하기도 했 지. 헌데 거기에는 한가지 제약이 있었다우.”

“그건 뭔가?”

“장차 나라에 큰 일을 할 사람이나 뭔가 세상의 일 에 영향을 끼칠 인물은 해칠 수 없었단 말유. 그건 호랑이 말고도 귀신이나 도깨비, 무엇이든마찬가지 였수. 그것이 우리에게 내려진 하나의 금제였고 제약이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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