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64화
부관이 다시 악을 썼다. 누각은 삽시간에 여기저기 가 깨어져 나가고 불이 붙어 처참한 폐허가 되어 버 렸다. 기지마가 받치고 있던 붉은일산은 어느새 날 아가 보이지도 않았다. 부관이 기지마를 억지라도 붙들고 내려가려는 순간, 천자총통에서 발사된 대장 군전이 부관의 몸을반 토막내며 누각을 글자 그대로 뚫어 버리고 지나갔다. 부관의 몸뚱이 반쪽은 아직 도 기지마를 붙잡고 있었다. 놀란 기지마는 부관의 몸뚱이를 떼어내려 했으나 구멍이 크게 뚫린 누각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통에 기지마는 균형을 잃어 비 틀거렸다.
“왜장을 화살로 맞추어라! 그 공이 크리라!”
이때 태을사자는 이순신에게 크게 감탄하였다. 조금만 더 화포를쏜다면 왜장은 박살이 날 것이었다. 그 러나 이순신은 화포 사격을 중지시키고 화살로 왜장 을 맞추게 했다. 이전까지 이순신의 부하들은 화포 만 죽어라 쏘아댔지, 직접 공을 세울 기회가 없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산 채로 움직이는 왜장 을 직접 쏘라 명한 것이다. 병사들은 자연 불이 붙 은 듯 분발하게 되고, 왜장이 쓰러지면 그야말로 실 컷놀림을 당하다가 비참하게 죽는 것이므로 적군의 사기가 순식간에 땅에 떨어지리라. 이순신은 그 짧 은 시간에 그런 판단을 할 만큼 머리가기민했다. 조선군은 와아 하는 함성을 올리며 누각에 화살을 집중시켰다. 기지마는 완전히 살아 있는 과녁이 된 꼴이었다. 이미 누각의 사다리는부서져서 달아날 길 도 없었다. 바다로 뛰어들면 살아날 수 있을지 몰라 도 갑옷을 벗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홀몸으로 조 선군의 농락을 받는 와중에 옷까지 벗고 바다로 뛰어 든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수모가 아닐 수 없었 다. 기지마는 머리털을 곤두세우며 최후의 발악을하 였다. 이미 화살과 조선군의 작은 총통의 탄환들이 어지럽게 주변에꽂히고 있었다. 하지만 기지마는 산처럼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 먹으며 마지막으로 장엄한 최후를 맞기 위해 악을 썼다.
“나 기지마 미치노는………….”
말하는 순간 승자총통의 탄환 한 개가 날아와 기지 마의 이마에 콱박혔다. 기지마는 말조차 나오지 않 았다. 거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이 꼴이 되다니 왜? 도대체 왜・・・・・・?
‘왜… ・・・・・・? 나는 대장으로서 모든 것을 했는데…. 병법을 지키어 잘못된 점이 없었고 승리하지 못한 싸움이 없었다. 그런데 이리도 순식간에 패하다 니……. 어찌하여 이리도 순식간에 …………….’
다음 순간, 사기가 드높은 조선군들이 왜군의 대장 선으로 전선을몰고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왜군들은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조총조차도 쏘지 못하고 도 망치기에 바빴다. 용기를 얻은 조선군들 중 위장 권 준이 활을 쏘았다. 그 화살은 기지마의 가슴에 푹 하고 깊이 박혔다. 가까이에서 쏜 화살이었던 것이 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기지마는 악을 쓰려고 했으나 다리가 휘청거리며 풀 렸다. 기지마의몸이 누각에서 떨어져서 마침 대장선 에 충돌중이던 사도첨사 김완의배 갑판에 떨어졌다. 그때까지도 기지마는 의식이 있었다. 조선군의갑판 에 떨어지자 군관인 진무성이라는 자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나 기지마 미치노가 평생에 걸쳐 무명(武名)을 쌓은 내가…정신차릴 겨를도 없이 패하다니…………. 조선군의 대장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그 순간 진무성의 칼이 꼼짝도 하지 못하는 기지마 의 목에 깊숙이박혔다.
바로 그 시각, 가메이는 선창 아래에서 밀려들어오 는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으 로 싸울 채비도 하기 전에 이런 꼴을 당하다니, 너 무도 기가 막혔다.
“가메이님! 어서 피신을!”
가로인 신하가 소리쳤다. 가메이는 그쪽으로 가려고했으나 문득 부채가 떠올랐다.
“간파쿠님이 하사하신 부채…………!”
가메이는 과거 히데요시에게 친히 금부채 한 자루를 선사받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대단한 명예였으며 비록 이렇듯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부채만은 꼭 챙겨 야 했다. 가메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그 때 신하의 몸이 한쪽 벽을 뚫고 들어온 포탄에 박살 이 나 버렸다. 가메이는 방금 눈앞에서 신하의 몸이 박살이 나 버리자 부채고 뭐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앞뒤 잴 것 없이 무작정 물로 뛰어들어 배 밑창의 깨진 부분을 통해 도망쳤다. 그 명예로운 부채도 내팽개치고……가메이는 이때 불 행 중 다행으로 육지로 헤엄쳐 들어가 목숨을 건졌 는데 한동안은 실종되어, 죽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 러나 가메이의 수하 장수들과 신하들은 거의 다 죽 음을 당하여 가메이는 이후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왜선들은 거의 파괴되었으며 몇 척만이 간신히 도망 쳤다. 죽고 상한 왜군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였고, 특히 맹장이라 일컫던 대장인 기지마 미치노 가 죽은 것은 왜군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허나 이순신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도망치는 왜선들이 있었지만 이순신은 일부러 놓아주었다. 더 많은 왜적들을 격파할 미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무리한 추격을 하지 않고 밤을 샌 이순신 함대는6 월 3일에 개도를 협공하였으나, 이미 왜군들은 사기 가 밑바닥까지 떨어져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모조 리 도망친 뒤였다. 그날 편안히 휴식을 취한 조선함 대는 6월 4일에 이억기 함대와 합류하였다. 겨우 이십여 척 되는 병선이 두 배로 늘어났으니 이순신 은 물론이고, 장병들까지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 다.
그 다음날인 6월 5일, 이순신은 다시 오오구로마루 한 척을 포함한삼십여 척의 기지마 잔류함대를 박살 내 버렸다. 이때 이순신은 실로교묘한 전술을 보여 주었는데, 조선수군들은 시야가 좁아 그 전술의 교 묘함을 잘 알 수 없었다. 그 전술을 보고 끊임없이 감탄한 것은 공중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던 흑호와 태을사자였다.
잔뜩 겁에 질린 왜군들은 방진을 형성하고서 조총과 철환만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철환들은 바 로 부산포 함락시 왜군들이 노획한 조선 총통에서 발사되는 것들이 아닌가! 다만 다행한 것은 왜선은 큰 화포를 장비할 만한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작 은 총통만을 계속쏘아댄 것이다.
이순신은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분노가 극에 달했 다. 먼저 거북배를 돌입시켜 적진의 정보를 차단시 켰다. 전령들이 오고가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면, 거 북배의 미르머리에서 나온 연기로 시야를 가려 대장 선의 깃발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 다음 각 전선 들을 몇 대씩 조를짜게 하여 돌아가며 화포를 쏘고 물러나면 다시 다른 배가 화포를 쏘아대는 차륜전술 을 썼다. 이 또한 교묘한 작전이었다.
왜선들의 화기 사정거리는 조선배보다 짧았다. 그 경계 부근까지만배를 접근시켜 사거리가 긴 화포만 을 쏘고는 물러나 다시 화포를 장진한다. 그 사이 다른 함선이 나와 또 화포를 쏘는 것이니, 조선군측 에서는 무슨 놀이와 흡사했지만, 당하는 왜군 측은 계속하여 포화를 얻어맞는 꼴이 되는 것이다. 견디다 못한 왜군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도망치려 하였 으나 이순신은 그것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왜군의 배가 움직이자 이순신은 교묘하게 대열이 허물어진 척하면서 퇴각할 기세를보이게 하였다. 이 진퇴는 실로 교묘하여 지령을 내리는 이순신말고는아무도 그 순간을 파악하기는커녕 직접 몸으로 행하면서도 알지 못했다. 다만 공중에서 전황을 한 눈에 내려다 본 태을사자와 흑호만이 알수 있을 뿐이었다. 진퇴가 헷갈린 것처럼 보이는 순간, 포위망의 구석 에 틈이 생겼다.
왜군들은 이순신 함대의 포위망이 열리자 추격한다 기보다는 도망쳐서 살길을 찾으려고 허겁지겁 배를 몰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순신의 계책이었다. 포 격을 받던 가메이군의 제2호 대장선인 오오구로마 루가 그 틈을 타서 나오려다가 맹렬한 협공을 받았 다. 이 거선은 오오구로마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 개의 검은 돛과 화려한 붉은 휘장을둘렀으며, 가메 이 휘하의 가장 용맹한 부장이 탑승한 배였다. 허나 결국은 산산조각으로 박살난 채 불타 없어져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6일에는 다시 전날과 같은 일 이 반복되었다.
기지마와 가메이 휘하의 나머지 후발대를 만난 이순 신은 그들마저도모조리 전멸시켜 버렸다. 여기에는 나머지 세척의 대선인 오오구로마루가 있었고, 역 시 가메이의 친척뻘인 젊은 부장이 지휘를 하였다. 그러나 왜장이 지휘하는 충각은 거북배의 좋은 사격 목표가 될 뿐이었다.
거북배가 돌입하여 미르머리의 현자포로 충각을 맞 추는 방법은 상당히 효능이 뛰어났다. 미르머리의 위치가 높고 시야가 트였기 때문에층각처럼 작은 목 표물을 맞추기에 유리했다. 그 부장은 나이가 스물 네댓밖에 되지 않은 미남이었으며 용기와 담력, 지 략이 뛰어나 가메이가 애지중지하던 장수였으나, 결 국은 기지마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휘하의 여덟 명의 친위병을 거느리며 그 상황에서도용맹스럽게 항전하였다. 하지만 이순 신의 휘하에 명궁으로 알려진 방답첨사 이순신이 연 속해서 쏜 여덟 대의 화살을 받더니 더는 견디지못 해 크게 통곡하면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는 이내 어육이 되어 목이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때 왜군 은 기지마와 가메이 (가메이도 그때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의 죽음에 분노하여 ‘전원 목숨을 걸고 싸 워 원수를 갚는다’는 의미로 피로 서명한 ‘분군기’ 를 작성하였는데, 이는 기지마 휘하의 정예병 3040 명이 서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투혼과분투에 도 그들은 결국 하나도 남지 않고 이순신의 화포에 의해 물고기밥이 되고 말았다.
6월 7일에 이르러서는 율포 앞바다에서 다시 왜선 다섯 척을 만났다. 하지만 그때부터 왜선들은 이순 신 함대만 보면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아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왜선이 잡히게 되자 모든 왜병들과 수부들은 너무도 겁에 질린 나머지 바닷물에 뛰어들고 말았다. 이순신은 기가 막혀서 그들을 죽이지 않았고 저항하는 36명만잡아 목을 베었다. 덕분에 6월 7일의 해전 같지 않은 해전에 서는 세척의 왜선까지 흠 하나 없이 고스란히 손에 넣었다. 결국 가메이와 기지마의 완벽한 패전은 왜 군의 사기를 송두리째 꺾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순신과 이억기의 연합함대는 남도 일대를 며칠이 나 더 돌아다녔지만 단 한 명의 왜군도 그들의 눈앞 에 나타나지 않았다. 모조리 겁을 먹고 피해 버린 것이다. 7월에 이르기까지 이순신 함대는 왜군 구경 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게 되어 도로 돌아오게 된 다. 왜군은 이순신이 진을 친 바닷가에는 아예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태을사자는 묵묵히 흑호와 함께 그 전투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태을사자는 말했다.
“흑호, 이래도 이순신이 왜란종결자가 될 수 없다고 여기나? 이런대승을 거두었는데 조선군은 단 한 척 의 작은배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역대에 이런 싸움 이 있었는가?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네.”
“헤헤………그거야, 뭐…………. 과연 이순신은 대단한 인물이우. 겉으로보는 것과는 다르구먼.”
흑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을사자가 조용히 말했다.
“이순신은 정말 왜란종결자야. 아니, 왜란종결자가 되고도 남는 인물일세.”
왜군은 수만 명이 죽어 물귀신이 되었으며, 도합 72척의 전선을 잃었다. 수군대장인 기지마가 죽임 을 당했고 가메이도 천신만고 끝에 목숨만 건져서 달아났으며 그 두 사람의 부대는 글자 그대로 완전 히 궤멸되어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목베기를 하지 않을 작정으로 작전을하던 이순신 함대의 배에 시체 가 떨어지거나, 그 시체를 주워서 벤 왜병의 목만 88개였으며 원균이 ‘이삭줍기’를 하여 벤 목 또한 1백 개가넘었고 이억기가 벤 것도 비슷하여 도합 그 수급만도 3백 개에 달했다.
옥포해전에서 단 2개의 목을 벤 것에 비하면 이번 의 승리로 얼마나 많은 왜병이 몰살당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세 번에 걸친 대전의 결과 로 입은 조선군의 피해이다. 조선군의 사망자는 도합 13명, 부상자는 34명에 지나지않았으며 전선은 단 한 척도 잃지 않았다. 그 결과를 보고 흑호는 거 의질리다시피 했다. 제대로 무장을 갖춘 훈련된 군 인들이 맨손의 전혀훈련받지 못한 사람들과 싸우더 라도 이보다는 훨씬 많은 피해를 입을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순신은, 전사자 중의 한 사람인 손 장수(水)의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손장수는 다른 사람처럼 재수없이 날아드는 총알이나 화살에 맞은 것이 아니라, 왜병을 추적하여 목을 베려고 육지에 올랐다가 칼에 맞아 죽은 것이다. 이는 이순신이 금 하고 있는 일이었는데도 들뜬 나머지 뭍에 올랐다가 죽음을 당한 모양이라며 이순신은 아까워했다. 그것 을 들은 흑호는 거의 아연해졌다. 이런 승리를 거두 고도 그런 한탄을 하고 있다니・・・・
“이제 이순신이 왜란종결자가 되고도 남는 사람임을 믿겠나?”
태을사자가 미소를 띠며 말하자 흑호는 완전히 헤벌 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군들이 몰살당하는 것이 흑호로서는 너무 기분 좋았던 것이다.
율포에서의 해전이 끝난 6월 8일. 흑호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자 연신 몸을 뒤틀며 따분해했다. 그것 을 보고 태을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싸움이 나지 않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마수놈들은 뭘 하고 있는지…. 답답허우. 은동이한테 가보는 게 어떻겠수?”
“은동이는 상처를 입었다니 나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일지달이 있으니 거기는 별 문제 없을 걸세. 마수들도 은동이가능력을 얻은 것만은 모를 테니 그 아이에겐 위험이 없어. 일단 이순신의 주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네.”
“제길…………. 하지만 영 답답해서………….”
“지금은 여기가 중요하네. 그리고 왜군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 왜군이 아예 나타날 엄두를 못 낸다는 것은 큰 전략적 의미가 있는 것아니겠나? 이순신으 로 하여 난리가 전환기에 접어들지도 모르네. 아니, 이미 난리는 전환점에 접어 들었다고 보아야 할 지 도….”
“어째서 그러우? 수군이 아무리 이긴다고 해두, 이 미 왜군들은 평양까지 진군하지 않았수? 수군이 땅 에 올라간 적을 잡지는 못할 건데?”
“그러나 제해권을 잃으면 그들은 보급받을 수도 없 고, 도로 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네. 이미 왜군은 한양을 점령했을 적부터 진군 속도가 느려졌어. 이 십여 일 만에 부산부터 한양까지 휩쓸어 버린 왜군 이여태 개성까지도 진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 않았 나? 두고보게. 왜의육군도 이제부터는 큰 힘을 쓰지 못할 것이야.”
흑호는 이미 조선땅 금수의 우두머리가 된지라 가보 지 않고도 전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모든 금수 들의 눈과 귀가 흑호의 것이나 다를바 없었기 때문 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황을 소상하게 알 수 있었 다.
“하지만……”
흑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군이라고 그냥 있지는 않을 거유……. 뭔가 다른 방법을 마련하여 이순신을 없애려고 할 텐데………….”
“그렇겠지. 그리고 마수들도…… 술책을 부리고 있 을 거야. 그 ‘려’란 도대체 무엇일까?”
거기까지 말하더니 태사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 고 흑호도 이유없는 두려움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 았다. 둘이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그러다가 흑호 가 먼저 입을 떼었다.
“제길, 어쨌거나 은동이를 데려와야 하지 않겠수? 이대로라면 이순신하고 말 한 번 못해 보지 않겠 수?”
흑호와 태을사자는 둘 다 어떤 인간에게도 접촉하지 말라는 명이내려져 있었으니 실로 답답하기 그지없 었다. 하루라도 빨리 은동이를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은 태을사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의 정황이 불안하여 이순신이 또 기습을 받을까 두려워 움직이 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은동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 것도 걱정되었고………. 어쨌거나 이제 큰 전투가 한 차례 끝난 것 같으니 이순신의 주위도 자못안전 해진 것 같았고, 은동이도 이제 일주일 이상 시간이 지났으니 조금 움직여도 될 듯싶었다.
“그러면 자네가 수고 좀 해주게. 은동이가 나았으면
데리고 오고,아니면 조금 더 두기로 하세.”
“헤헤, 좋수. 내 그럼 다녀오리다.”
흑호가 싱글거리자 문득 태을사자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은동이말고 딴 생각이 있는 건 아닌가?”
태을사자는 하일지달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흑 호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껄껄대면서 평양을 향 해 떠나 버렸다.
한편 태을사자와 흑호가 이순신을 보호하는 사이, 은동은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아직 몸의 상처가 완쾌되지 않아 허준의 치료와 하일지달의 보호를 받 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행재소가 난리가 났다. 평양 을 노리고 왜군이 돌출하여 나타났다는 기별이 온 것이다. 그때 조선군은 약 일만 명 가량의 많은 병 정을 새로이 초모해 두고 있었지만,그들은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농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을 무 장시킬 군기(軍器)도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도원수라며 대동강가를 순시하던 김명원은 왜군이 나타나자 임진강에서와 마찬가지로 종적을 감추고 말았으니 싸울 장수도, 통솔한 군사의 체계 도 갖추지 못한 꼴이었다. 결국 조정에서는 급히 중 신들의 회의를 열려 했으나 그럴 틈도 없었다. 왜군 의 선봉이 거의 대동강변에까지 돌입하여 뗏목을 찍 어 배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것이다. 그 왜군 부대는 바로 고니시가 조선의 국왕을 잡기 위해 특 별히 파견한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겐소 대사가 이끄 는 기병대였다. 대동강을 건너면 평양까지 돌입하는 것은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 조선상감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이때 이덕형이 나섰 다.
“척후병의 말에 의하면 이 부대는 겐소와 야나가와 가 이끄는 부대라고 합니다. 그들은 전에 조선에 통신사로 온 적이 있으며 저와는 안면이 있습니다. 제가 강으로 나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터이니 어서 몸을 피하여 옥체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 이는 실로 비장한 각오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무리 겐소와 야나가와가 이덕형과 안면이 있다고는 하나, 전쟁터에서 그런 안면을 생각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자칫하면 단칼에 목이 달아나거나 헛되이 포로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상감인 선조 역시 놀란표정을 지었으나 오히려 친구인 이항 복만은 크게 소리쳐 간했다.
“마마, 한음의 변설(辨)과 기지를 믿으시옵소서! 그 길밖에는 없사옵니다!”
다른 중신들이 놀라 이항복을 돌아보았다. 이항복이 그리 위험한일에 친구인 이덕형을 내세울 줄은 몰랐 던 것이다. 그러나 이항복은이덕형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화의가 성립되는 것은 말도 안 되겠지만 시간이라 도 끌어주게. 자네는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올 것이 네. 믿기 때문에 추천하는 것이야.”
그러자 이덕형은 어릴 적부터 죽마고우인 이항복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이항복은 이덕형에 대해 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그런 이항복 이 성공을 확신한다니, 이덕형도 마음이 차분히가라 앉는 것 같았다. 이덕형은 이 믿음직하고 재미있는 친구에게 슬쩍미소를 보냈다.
마침내 하도 위급한 상황이라 선조는 다시 한번 서 둘러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가 문제 였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북행’
즉, 명나라로 넘어가자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러나 강력하게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하나 있었 다. 바로 유성룡이었다.
“북행을 하시면, 모든 백성들은 이 땅을 버린 것으 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 되면 어찌 훗날의 일을 수습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땅을떠나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자 뭇 신하들이 물었다.
“그러면 어디로 가자는 말씀이오?”
“의주요.”
유성룡의 말에 뭇 신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의주는 아주 변방, 압록강가에 있는 춥고도 변변치 않은 조그마한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거의 작은 군 사거점이나 다름없는 곳에 어찌 어가가 머물 것이 며, 그 불편 또한 어찌 감당하겠는가.
“의주? 의주같은 작은 마을에 어찌 어가를 모신다 는 말이오? 또다시 피난을 가는 것이 불 보듯 훤한 일이거늘!”
“다시 피난을 가게 되더라도 이 땅을 버리는 것은 아니 됩니다!”
“의주에는 백성이 너무 적고 거처도 없지 않소?”
“어가가 계시면 백성이 모이게 되고, 사람이 늘게 되면 집 같은 것은 얼마든지 생기는 법입니다. 그러 나 민심이 떠나고 혼란스러워지면모든 것이 끝납니 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이번에는 군사적인 이유를 들어 의주행을 막으려 했다.
“의주는 명국과의 접경이라, 남쪽으로의 방비가 전 혀 되어 있지 않소. 그런데 어찌 의주같이 작은 성에서 어가를 지켜낼 수 있단 말씀이오?”
“적이 어가에 다다르면 이미 끝입니다. 의주에 오기 전에 막아야지요! 지금 의병들과 지방 군대들이 다 시 전열을 가다듬어 왜군의 진격로와 보급로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야 합니 다!”
유성룡은 몽진길이 송도에 이르렀을 때 영의정에 올 랐다가 좋지 않은 소문을 듣고 그날로써 깨끗이 사 퇴해 버려 ‘하루 영의정’이라는 별명이 나돌았다. 그러나 영의정에 오를 만큼 공이 크고 발언권이 강 해져 있었기에 혼자의 의견만으로도 무시 못할 비중 이 있었다. 그러나실은 유성룡은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이순신의 승전보를 보고 앞날을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유성룡은 식견이 이를 데 없이 크고 재능이 뛰어나, 이순신의 전략 역시 유성룡이 써서 보낸 병 서인 <증손전수방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비록 문관이라 재능을 드러낼 기회는 적었지만, 군사적으 로 뛰어난 전략적 두뇌를 가진 유성룡은 지금의 전 황을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순신의 장계를 보건대, 이 사람은 반드시 계속 이길 것이다. 그러면 고니시는 보급이 끊겨 진격을 못하게 된다. 의주까지 올라올 여력이 없을 것이 다!’
비록 아직은 입증되지 못한 일인지라 입 밖에 낼 수 는 없었으나 전략감각이 예민한 유성룡은 이미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추호도 의심치않았다. 그래서 그렇 듯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중신들 은 유성룡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선조는 의주행을 결 의하게 되었다.
아니,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회의를 마 치고 나오면서 이덕형은 이항복에게 말했다.
“오성, 시간은 내가 끌어볼 것이니 뒷일을 부탁하네. 이곳의 수습은모두 자네에게 달렸네.”
“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네!”
그리고 이덕형은 몇몇 노를 저을 부하들만 거느리고 단신 대동강가로 향했다. 그때가 6월 8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