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04화
그리고 그런 이드의 한탄과 함께 그래이의 목소리가 일행들의 귓가를 울렸다.
“저기…. 영지가 보이는데…”
그래이의 목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일행들의 눈으로 꽤나 번화해 보이는 커다란 영지가 들어왔다.
그 영지의 이름은 시케르 영지로, 시케르 백작이 다스리는 영지였다. 또한 이드 일행이 카논에 들어선 지 삼일 만에 처음 들르는 영지이기도 했고, 자신들이 맡은 세 가지 임무 중 하나인 귀족들에게 진실 알리기 임무를 처음으로 수행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그 임무라는 것이 차레브와 바하잔, 그리고 아수비다의 인장이 찍혀 있는 서류와 파이안이 증인이 된 자세한 상황 설명으로 끝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만의 하나의 경우, 아니, 십만의 하나의 경우 백작이 게르만에게 붙겠다고 할 경우 조금 곤란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위의 말처럼 만의 하나, 십만의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한 일일 뿐이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드라는 든든하다 못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방어벽이 존재하는 이상은 전혀 걱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일행들이었다.
“자, 그럼 빨리 가자… 카논에서 처음 들어서는 영지잖아.”
그리고 이어진 그래이의 외침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기도 하면서 그래이의 뒤를 따라 말을 몰았다. 그리고 얼마 달리지 않아 몇몇의 사람들이 검문을 받고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쟁 때문인지 검문을 하는 경비병들의 무장이 평소보다 더욱 강화되어 있었고, 그 수 역시 거의 두 배에 달하고 있었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을 검문하는 모습도 평소와는 달리 신중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파이안이라는 든든하고 확실한 배경 덕으로 경비병들의 인사까지 받아가며 영지로 들어서는 일행들에겐 그것은 그냥 눈에 보이는 모습 이상의 것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경비병의 인사까지 받으며 들어선 영지는 밖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활기차 보이는 것이 마치 전쟁이라는 단어와는 상관이 없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용병들의 수는 이곳이 전쟁터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이, 어이… 구경하는 건 나중일이야. 우선 여관부터 잡아야지. 거기다 식사 시간도 다 돼 가잖아. 그전에 여관을 잡아놔야 된단 말이다.”
영지에 들어서고부터 여기저기로 두리번거리는 일행들의 모습에 라일이 정신 차리라는 듯이 말하자, 그레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에요. 아직 저녁 식사 시간이 되려면 몇 시간 남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요?”
“하~~ 그레이, 그레이…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그동안 여관을 잡아야 된단 말이다. 그래야 그동안 짐도 풀고 몸을 좀 앉던가 할 거 아니냐. 거기다 특.히. 나는 네 녀석이 삼일 동안 이것저것 묻느라 괴롭힌 덕분에 특.히. 더 피곤하단 말이다.”
그레이의 말에 라일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대꾸하자 순간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거기다 특히라는 말에 액센트까지 가하면서 피곤하다는 라일의 말은 은근히 그레이의 양심을 찌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라일의 말에 그레이는 아무런 말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그리고 봐라! 저기 용병들 보이지. 여긴 카논과 아나크렌이 대치하고 있는 곳과 그렇게 멀지 않아서 용병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여관의 방도 많이 필요하단 말이지. 한마디로 우리도 여관을 쉽게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해서 여유를 부리다가는 저녁도 못 먹고 여관을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알겠냐? 좋아. 알았으면 빨리 여관부터 잡자.”
라일의 말에 그레이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깨끗하고 괜찮아 보이는 여관을 찾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서 푸른색의 깨끗해 보이는 ‘하늘빛 물망초’라는 꽤나 분위기 있는 이름의 여관을 찾아 들어설 수 있었다.
여관의 내부는 밖에서 본 것과 같이 상당히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아직 식사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알맞게 배치된 테이블도 몇몇 자리만이 손님을 맞고 있을 뿐 대부분이 비어 있어 조용한 것이, 일행들의 지금껏 들른 여관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일행들이 그렇게 생각할 때, 일행들의 앞으로 푸른색과 하얀색이 적절하게 섞인 깨끗한 앞치마를 두른 소녀가 다가와서는 생긋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하늘빛 물망초에 잘 오셨습니다. 저는 네네라고 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런 소녀의 모습에 일행들은 이 여관에 묵었으면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그만큼 그 소녀가 일행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친절했던 것이다.
“아, 우리는 여행자들인데… 이곳에서 2, 3일 정도 묵을 예정인데… 방이 있을까? 아가씨.”
라일의 말에 네네라는 소녀는 일행들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운터로 다가가서는 숙박부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왔다.
“네, 마침 사인실 세 개와 이인실 한 개가 비어 있네요. 일행분들이 모두 12분이시니… 4인실 3개면 될 것 같은데… 투숙하시겠어요?”
네네의 말에 라일은 뒤쪽의 일행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가 내미는 숙박계에 자신의 이름과 일행들의 인원수를 적었다.
“네, 여기 열쇠고요. 손님들의 방은 삼 층 계단의 오른쪽에 있는 32호, 33호, 34호 실입니다. 그리고 식사는 어떻게… 식사 시간이 다 되어가니 미리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드리겠…”
“에? 이, 이보세요.”
라일이 사인해서 건네주는 숙박부를 받아 들며 열쇠와 함께 방의 위치와 이것저것을 말하던 네네는 중간에 불쑥 들이밀어진 손이 네네의 손위에 있던 열쇠를 낚아채듯이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고, 라일을 비롯한 이드 일행 역시 중간에서 자신들의 휴식처로 통하는 열쇠를 낚아챈 손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