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09화
‘라미아… 혼돈의 파편이라는 녀석들 왜 이래? 저번에는 곰 인형을 든 소녀더니, 이번엔 푼수 누나 같잖아~~’
[…]
이드가 그렇게 한탄했다.
하지만 라미아 역시도 이드와 같은 한탄을 하고 있던 탓에 이드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을 아시렌이라고 밝힌 아가씨가 이드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쪽 분 성함이… 이드씨 맞죠?”
방긋방긋 웃어대며 물어보는 그녀의 말에 이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카나 때도 그랬지만, 이번의 혼돈의 파편 역시 전투 시의 분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성격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아~ 맞아요. 제가 이드입니다. 그러는 아시렌은 혼돈의 파편이 맞죠?”
그러자 이드의 대답을 들은 아시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은 듯이 말했다.
“역시, 제가 조금 둔해서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데 이드씨는 금방 알아보겠어요. 메르시오와 모르카나 그리고 칸타에게서 이드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참, 그냥 이드라고 부를게요. 이드씨라고 부르니까 조금 불편하네요. 그런데 옆에 있는 분들은 누구시죠? 한 분은 엘프 분이시고, 한 분은…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음… 뭘까?… 음… 잠깐만요. 말하지 말아요. 제가 맞춰볼게요….”
거의 몇 번의 호흡 동안 모든 말을 쏟아낸 아시렌이 세레니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드와 일리나 등은 한순간 말 많은 푼수 누나 같은 이미지가 완전히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황당함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단번에 세레니아가 인간이 아닌 걸 알아내는 모습에 놀라는 한편으로는 역시 혼돈의 파편이라는 생각에 벌써 저만큼 멀어져 버린 긴장감을 다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드가 그렇게 전신에 내력을 전달할 때 세레니아와 일리나가 이드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그중 세레니아는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이 들켜버려서인지 꽤나 강대한 마나를 자신과 일리나의 주위에 유동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시렌이 알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방긋이 웃어 보였다.
“알았다. 드래곤, 드래곤이군요. 레드 드래곤. 맞죠? 맞죠?”
이드는 방긋이 웃어 대면서 물어오는 아시렌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어 주었다.
“…. 네. 맞아요. 이쪽은 레드 드래곤 세레니아라고 하죠. 그리고 이쪽은 엘프인 일리나라고 하지요. 그런데 아시렌님은 저희들이 온 걸 어떻게 안 거죠? 여기까지 오면서 눈에 띌 짓이나 강한 마나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 아시렌님?”
하지만 세레니아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낸 것에 즐거워하던 아시렌은 이드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드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아시렌을 불렀다.
그제서야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린 아시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드를 바라보았다.
이드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조금 전 던졌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아, 그건 저 결계의 특성이에요. 아까 저분 세레니아님이 말씀하셨듯이 보통의 결계와는 질적으로나 용도 면에서 확실히 다르다고요. 그리고 그 용도 중에서 한 가지가 자신이 펼친 결계를 통해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방금 전 이드가 결계를 두드리는 느낌을 느끼고 온 것이고요.”
그녀의 설명에 이드와 일리나 그리고 세레니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있는지 없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어 세레니아가 이드와 일리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아시렌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저 결계를 치기 위해서는 그 시전자가 결계의 중앙에 위치해야 할 텐데… 아시렌님이 여기 있는데 결계는 아직 유지되는군요.”
“헤헤… 사실 성 안에 세 명이 더 있거든요. 이 결계는 왕성을 중심으로 두 명이서 유지하고 있었는데, 내가 맞고 있는 결계 쪽에서 여러분이 보여서 잠시 결계를 맡기고 제가 온 거예요. 메르시오들에게서 이드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한 번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이드는 아시렌의 말을 듣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기로는 혼돈의 파편은 여섯 명이었다.
만약 그 여섯 명이 모두 이곳에 있다면 두말 않고 세레니아와 일리나를 데리고 도망치려 했는데… 네 명이라니?
그런 의문은 곧바로 물음이 되어 이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시렌… 내가 알기로는 당신들 혼돈의 파편은 모두 여섯 명 아닌가요? 그럼 두 분은 어디에…”
“아, 그거요? 그러니까… 모르카나와 칸타는 다시… 아… 어디였다라? 이름은 모르겠는데 며칠 전 이드와 싸운 곳으로 갔고요. 페르세르는 라일로… 합!!!”
이드의 말에 방긋이 웃으며 대답하던 아시렌은 뭔가 생각이 난 듯이 급하게 입을 손으로 가로막았지만, 이미 들을 대답을 모두 들어 버린 이드와 일리나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시렌은 그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다… 들었어요?”
아시렌의 말에 세 명이 모두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떻게…. 이건 아무한테나 말하지 말라고 한 건데… 저기요. 못 들은 걸로 해주는 건… 안되겠죠?”
아시렌의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세 명.
아시렌은 그 모습에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시 얼굴에 방긋한 미소를 띄어 올렸다.
“그럼, 그럼… 세 사람이 이곳에 잠시 남아 있어요. 오래 있지 않아도 되고… 음… 2, 3일 정도만 있어 주면 돼요. 어때요?”
이드는 애교스럽게 방긋이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말에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의 말대로 아마타와 라일론으로 혼돈의 파편이 갔다면… 뭐, 아마타나 라일론 두 곳 모두 그레이트 실버급에 이른 인물들이 두 사람씩 머물고 있긴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불현듯 이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저들 혼돈의 파편의 목적이 뭔지…’
“미안하네요. 부탁을 들어주질 못해서… 지금 곧바로 가봐야 할 곳이 두 곳 생겼거든요.”
이드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라미아를 잡으며 라미아에게 준비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일리나와 세레니아에게도 눈짓을 해보이고는 다시 아시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푼수 누나 같은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상대는 혼돈의 파편이니 말이다.
[조심하세요. 어쩌면 저 수도 안에 있다는 또 다른 혼돈의 파편이 공격해 올지도 몰라요.]
이드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시렌을 바라보았다.
그때쯤 아시렌은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이 다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살을 찌푸린 아시렌이 이드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여기서 세 사람을 못 가게 막고 있어야겠네…. 에효~~ 난 싸우는 건 싫은데…”
짤랑…….
그 말과 함께 한 차례 흔들려졌다. 그와 함께 아시렌의 팔목 부분에서 맑은 금속성이 울리며 각각 한 쌍씩의 은빛 팔찌가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