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11화
발그스름한 빛이 이는 것과 동시에, 마치 공기가 찧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드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바람의 성이 찧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이드들의 주위로 강렬한 기류가 잠깐 머물다가 사라졌다.
“그런걸론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
이드의 말에 아시렌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옥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으응, 그런가 봐. 메르시오하고 모르카나에게서 듣긴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원드 오브 루렐(Wind of Ruler)! 오랜만의 춤이야… 즐겁게 춤을 추어보아라. 변덕스런 바람의 지배자들이여.”
짤랑… 짤랑… 짤랑…
마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아시렌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양팔에 걸려 있던 나머지 세 개의 팔찌들이 빠져 나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허공에 떠있던 나머지 하나의 팔찌와 뒤엉키는 듯 하더니, 한순간 넓게 퍼지며 어지럽게 휘날렸다. 그 모습은 꼭 장난기 심한 바람과도 같아 보였다.
“후~ 꽤 복잡한 공격이 들어오겠는걸…”
이드는 허공에서 어지럽게 은빛의 선을 만들어 내는 팔찌들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라미아를 부드럽게 고쳐 잡았다.
지금 허공에서 날아다니는 팔찌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난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람, 그것은 자연의 힘 중 가장 자유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장 변덕스럽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원의 초식들 중에서도 바람의 움직임에 의해 창안된 초식들의 대부분이 강한 파괴력이 없는 대신, 방금 전 이드가 사용했던 삭풍처럼 날카롭거나 복잡다난한 초식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초식들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세를 고쳐 잡은 이드는 전방의 아시렌과 네 개의 팔찌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세레니아와 일리나에게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면서 짧게 전음을 보냈다.
“-가까이 있으면 휘말릴지 모르니까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요. 그리고 세레니아는 보고 있다가 제가 신호하면 곧바로 아시렌을 공격하세요. 혼돈의 파편 둘이 아나크렌과 라일론으로 간데다가, 언제 또 다른 혼돈의 파편이 튀어나올지 모를 이런 곳에 더 머물러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알았어요. 이드님도 조심하세요.-
이드의 전음에 메시지 마법으로 대답한 세레니아는 일리나와 함께 이드의 오른쪽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기척으로 일리나와 세레니아가 뒤로 물러난 것을 느낀 이드는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아시렌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몸을 날리며 라미아를 살짝 흔들었다.
우우우웅…
그와 함께 어느새 내력이 주입된 라미아의 검신으로부터 발그스름한 빛의 반달형 검기 다발들이 아시렌을 향해 쏘아져, 순식간에 아시렌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하지만 정작 공격을 당한 아시렌은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검기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방긋이 웃는 얼굴로 발그스름한 빛의 검기들을 예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태평한 모습과는 반대로 당황해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드였다. 아시렌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날린 검기였는데 상대가 방긋이 웃고 있으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검기가 아시렌 가까이 이르렀을 때쯤 바람소리와 함께 아시렌을 향해 날던 검기들이 무엇엔가 막혀 버리는 모습을 보며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바람의 칼날(風刃)… 검기들이 네 개의 팔찌들로부터 형성된 무형의 검에 의해서 막혔어. 그것도 네 개의 팔찌가 두 개씩의 검기를 맡아서 말이야. 마치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 같거든. 라미아, 저 팔찌들에도 의지가 있는 것 같아?”
이드는 라미아에게 그렇게 물으면서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난화 십이식 중의 난화를 펼쳤다.
하지만 이번엔 마치 회오리 치는 듯한 바람의 칼날에 꽃잎이 흩날리듯이 검기의 꽃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리는 검기의 꽃잎들에 하마터면 허탈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때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애매해요. 의지력이 조금 느껴지는 듯도 한데… 살펴보면 매우 약한게. 잘 모르겠어요. 아마 저 아시렌이라는 여자가 조정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드는 라미아의 말을 들으며 정말 못 말리는 상대라는 생각에 피식 웃어 버렸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라미아에 좀 더 강한 내력을 주입해갔다. 그러자 라미아를 둘러싸고 있던 검기의 색이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아시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머? 왜 색깔을 바꾸는 거야? 아까 전에 초승달 모양도 그렇고 방금 전의 붉은 꽃잎 모양도 예뻐서 보기 좋은데… 계속 그렇게 보기 좋을 걸로 하자~~ 응?”
아시렌의 말에 이드는 순간적으로 라미아에 주입하던 내력을 끊어 버렸다.
덕분에 점점 짙어지고 있던 라미아의 검기가 한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발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에효~~~…”
[이래서야 어디 제대로 된 전투라도 벌일 수 있겠어요?]
다시 한 차례 한숨을 내쉰 이드는, 자신의 말을 이은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라미아를 그대로 내뻗어 십여 발의 검기를 내쏘았다.
“좀 진지해져 봐요. 군마락.”
이드는 군마락의 초식에 의해 수십여 발의 검기를 내쏘고는 조금의 여유도 두지 않고 몸을 뛰어올리며 비스듬하게 라미아를 그어내렸다.
“빠르게 갑니다. 무형일절(無形一切)!”
이드의 기합성과 함께 라미아가 그어 내려진 괴도를 따라 거대한 은빛의 검강이 형성되어 뻗어 나갔다.
앞의 십여 발의 검기로 시야를 가리고, 그 뒤에 바로 강력한 검강을 날리는 꽤나 잘 짜여진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땅에 부드럽게 내려서던 이드는 십여 발의 검기 사이로 흐르는 아시렌의 목소리와 바람의 기운에 고개를 흔들고는 곧바로 몸을 날려야 했다.
“어머… 이쁘다. 발그스름한 것도 좋지만 은색으로 반짝이는 것도 이뻐~~ 그렇지 애들아? 그물로 잡아봐. 윈드 오브 넷(Wind of Net)!”
“으이그…. 어째서 저런 푼수누나하고 검을 맞대게 됐는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이드의 눈에 군마락에 의해 날아간 십여 가닥의 검기들이 마치 그물에 걸린 듯 힘없이 방향을 트는 모습과, 네 개의 팔찌 중 하나가 강렬히 회전하며 무형일절의 은빛 검강에 곧바로 부딪혀 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