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12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이드의 눈에, 군마락에 의해 날아간 십여 가닥의 검기들이 마치 그물에 걸린 듯 힘없이 방향을 트는 모습과, 네 개의 팔찌 중 하나가 강렬히 회전하며 무형일절의 은빛 검강에 곧바로 부딪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푼수답지 않게 실력은 좋단 말이야. 수라만마무(壽羅萬魔舞)!”
그 말과 함께 돌아선 이드는 아시렌을 향해 몸을 날리며 라미아로부터 붉은 강선들을 내뿜어 아시렌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 버렸다.
그에 이어 아시렌의 머리 위쪽으로 급히 몸을 뽑아 올린 이드는 운룡번신(雲龍飜身)의 수법으로 아시렌의 머리 위쪽에서 순간적으로 몸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손에 잡고 있던 라미아를 허공에 잠시 뛰우며, 양손으로 각각 청옥빛의 유유한 지력과 피를 머금은 듯한 강렬한 붉은색의 지력을 아시렌을 향해 뿜어내었다.
“취을난지(就乙亂指)! 혈뇌천강지(血雷天剛指)!!”
그렇게 지력을 내쏟아낸 이드는 잠시 허공에 뛰어두었던 라미아를 붙잡고는 천근추의 신법을 사용하여 아시렌의 뒤쪽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는 숨 돌릴 틈도 없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지력을 바라보고 있는 아시렌을 향해 라미아를 그어 내렸다.
“천뢰붕격(天雷崩擊)!!”
이드의 기합성과 함께 라미아의 검을 따라 거의 백색에 가까운 파르스름한 뇌전이 형성되어 아시렌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거의 순식간에 아시렌의 앞과 뒤, 그리고 위의 세 방향을 점해 공격한 것이었다.
공격을 펼치는 속도 또한 엄청났기에 마치 세 사람이 같이 공격하는 듯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고, 덕분에 허공에서 바람의 결을 따라 날고 있던 네 개의 팔찌들이 바람의 결과는 상관없이 거의 직선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아시렌을 향해 몰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들려오는 푼수 아시렌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드는 급히 세레니아를 바라보며 전음을 날렸다.
“아악…. 이드, 보기 좋은 것도 어느 정도지. 이건 너무 빠르….. 아악… 머리에도 있잖아. 수다쟁이 바람아 막아.”
“쳇, 끝까지 푼수같은 말만. -세레니아, 지금이에요. 공격해요.-“
이드의 전음과 함께, 꽤 떨어진 곳에서 이드와 아시렌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세레니아가 준비해 두었다는 듯이 양팔을 앞으로 내뻗으며 아시렌을 목표로 잡았다.
그런 그녀의 손에서는 작은 계란 정도 크기의 불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형성되어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마법진이 이루는 뜻과 마법의 위력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상당히 귀엽거나 예쁘다고 할 모양이었다.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여, 원혼을 태우는 불꽃이여… 지금 이곳에 그대를 불태워라. 헬 파이어(hell fire)!!”
세레니아의 시동어와 함께 그녀의 손 위에 있던 불꽃의 마법진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마치 붉은 안개와 같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뀌어진 불꽃의 안개는 그 크기를 점점 키우며 아시렌을 향해 곧바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드의 귓가로 라미아와 세레니아의 메시지 마법이 같이 들려왔다.
[이드님, 피하세요. 자칫하면 헬 파이어의 영향권 내에 들 수 있어요.]
-좀 더 뒤로 물러나요. 이드, 그곳이라면 헬 파이어의 영향이 있을 거예요.-
이드 역시 헬 파이어의 모습에서 그 위력을 느낄 수 있었기에 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분뢰보를 발아 몸을 뒤쪽으로 빼내려 할 때였다.
붉은빛과 은빛 등의 강기들, 그리고 헬 파이어의 목표점으로부터 강기들이 부딪히는 폭음을 뚫고 아시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앗, 뭐야… 이것만 해도 복잡한데… 메르시오, 왔으면 보고만 있지 말고 당신이 처리 좀 해줘요.”
메르시오??!!!
이드는 아시렌의 말에서 그 단어가 특히 크게 들린다는 생각을 하며 급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시선에 아시렌의 앞, 그러니까 헬 파이어가 날아오는 앞의 공간이 일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역동적이기까지 한 일렁임이 사라질 때쯤 반갑진 않지만 익숙한 목소리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시렌, 아시렌… 그 성격 빨리 고치는 게 좋아. 실버 쿠스피드(silver cuspid) 크러쉬(crush)!”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이드의 눈에 메르시오를 중심으로 세 개의 은빛 송곳니(실버 쿠스피드)가 형성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은빛의 송곳니는 메르시오와 따로 떨어지더니 맹렬히 회전하며 앞에서 다가오는 헬 파이어를 향해 맹렬히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서는 마치 거대한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고 먹이를 잡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곧이어 세 개의 은빛 송곳니와 붉은 불꽃의 안개가 부딪혔다.
화아아아아아…..
폭음은 없었다. 그 대신 송곳니의 강렬한 회전에 따라 불꽃이 허공에 일렁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느 한쪽이 밀리거나 약해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메르시오는 이드를 보며 늑대 입의 한쪽 끝을 슬쩍 들어올려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그의 한쪽 팔이 들어 올려졌다.
“오랜만이지. 그때보다 더 좋아 보이는군… 스칼렛 버스트(scarlet burst)!”
파아아아…
메르시오의 팔에서 진홍빛의 무리가 뻗어 나왔다. 그 빛은 회전하는 세 개의 송곳니의 정중앙을 지나 헬 파이어에 부딪혔다. 곧이어 엄청난 빛과 열이 발생했지만, 이번에도 폭음은 없었다. 마치 서로를 불태우는 것처럼 빛과 열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빛과 열은 어마어마했다. 그 영향으로 이드들이 서 있는 땅마저 은은한 울림을 토할 정도였다.
꾸우우우우…
[이드님, 빨리 대비를… 굉장한 열기예요.]
“알아… 하지만 정말 굉장한 열기야. 이러다가는 익어 버리겠어… 한령빙살마강(寒令氷殺魔剛)!”
이드가 라미아의 말에 따라 주위로 빙강을 펼치자, 얼어붙는 듯한 쩌쩡 하는 소리와 함께 강기의 막이 형성되었다. 강기의 막은 외부의 열기를 완전히 차단했고, 안쪽은 선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 바깥에서는 여전히 열기가 강력해 강기의 막 전면에서 쩌쩡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드가 열기에 사람들이 없는 평원임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세레니아와 일리나가 붉은 빛을 내는 막 안에 안전히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돌린 이드의 눈에는 아시렌과 메르시오가 열기를 막아내며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은빛 팔찌들이 주위를 돌며 두 사람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아시렌은 이드를 향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푼수… 진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손을 흔드는 건지… 에이구…”
이드가 아시렌의 행동에 고개를 저을 때,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드님, 지금 푼수 타령 할 때가 아니라구요. 지금이라도 기회를 봐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죠.]
“아…”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열기가 유지되는 동안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세레니아와 일리나 쪽을 향해 분뢰보의 보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메르시오가 다가오는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아시렌과 메르시오를 보호하던 팔찌들 중 하나가 허공에서 회전하며 열기를 빨아들여 열기가 빠르게 식어갔다.
“에고… 저쪽 행동이 조금 더 빠른 것 같네…”
[아니에요. 이드님 행동이 느린 거라구요. 빨리 움직였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는데… 괜히 푼수니 뭐니 하시면서…]
“쳇… 그게 왜 내 탓이야… 그나저나 한 명 더 늘어 버렸으니…”
이드가 라미아의 말에 쏘아붙이듯 대답하며 메르시오를 주시했다. 다가오는 메르시오를 막기 위해 라미아를 바로 잡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검신에 은빛 검기를 형성하려던 찰나, 라미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드님, 저기…]
“… 저기 뭐? 말할 거 있으면 빨리 말해.”
라미아의 검신에 무형검강의 은빛 검기를 형성하던 이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니까요.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저 둘과 꼭 싸울 필요는 없잖아요.]
“응, 그래서?”
[기회를 봐서 저 둘에게 이드님의 12대식 중 화려한 기술을 사용해 시선을 가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 틈에 세레니아의 도움으로 텔레포트하면 돼요. 간단하긴 하지만 제일 빨리 빠져나가는 방법인 것 같아요.]
라미아의 말을 들은 이드는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동작만 빠르다면 충분히 가능한 계획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러다가 한 명 더 튀어나오면? 그럼 더 골치 아파지는데…’
이드의 시선이 발라파루 쪽으로 향했다. 이드는 아시렌의 말대로라면 저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의 영향이 미치는 곳을 알 수 있다면, 라미아의 말처럼 아시렌과 메르시오의 시야를 가려도 둘 중 하나는 이드들을 감시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이드들의 도주를 혼돈의 파편들이 가만둘 리 없었다. 이드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해 라미아와 논의했다.
그러는 동안 메르시오와 검을 맞대고 있었다. 방어에 집중하던 이드는 어느새 해결 방안을 찾은 듯, 갑자기 공격적으로 전환하며 메르시오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세레니아에게 전음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