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14화
이드는 자신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 오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이드의 시선을 받은 남자는 이드의 얼굴을 확인하듯이 한번 바라보고는 뒤에 있는 일리나와 세레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확실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뒤에 엘프분도 그때 뵌 것 같군요. 그런데 그때 볼 때보다 머리가 많이 짧아지셨군요.”
이드는 무표정하던 얼굴에 약하긴 하지만 반갑다는 표정을 뛰어 올리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뒤쪽의 일리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이드로서는 어디선 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기사가 자신과 같이 거론한 일리나를 돌아본 것이었다.
“에?… 저기 일리나…”
일리나는 그런 이드의 모습에 살짝 웃으면서 이드의 곁으로 다가와 앞에 있는 기사에게 인사말을 건네고는 이드에게 속삭이듯이 귀뜸해 주었다.
“네, 반가워요. 그리고 이드…. 이분들은 용병이에요. 블랙 라이트라는…. 저번 크라인 폐하와의 동행 때 길을 막으셨던 사람들이요.”
이드는 그녀의 말에 그제서야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서있는 기사… 아니, 용병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많이 낯익은 갑옷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특히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코앞에서 봤던 얼굴로 그때 숲에서 일행들이 이드가 펼친 천변미환진(千變迷幻陣)의 진 속에 숨어 있을 때 일행들의 앞에서 일행들이 피웠었던 모닥불의 온기를 느끼고 일행들이 자리를 떠났을 시간을 예측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하… 이제야 생각이 나네요. 반가워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곳 성문에…?”
일리나의 말에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과 그가 속해 있는 블랙 라이트를 생각해 낸 이드는 곧바로 이어지는 의문에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받은 그 용병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편하게 대답했다.
“한 가지 일로 고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성문을 지키는 건 그 일의 연장이지요.”
이드는 그의 말에 무슨 의뢰 일이었냐고 물으려다가 아까 처음 말을 걸었던 은빛 갑옷의 기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기사의 표정과 행동은 아까 전과는 꽤나 달라져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스이시씨도 아시는 분이십니까?”
“예. 저번 저의가 맞았던 임무 때 만났었습니다. 그때 지금은 아나크렌의 황제가 되신 크라인 드 라트룬 아나크렌님과 함께 하고 있으셨습니다. 통과시켜 주십시오. 이분에 대한 신분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 서던 스이시는 이미 성안으로 들어서는 길이 훤하게 열어주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에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 은빛 갑옷의 기사는 스이시의 말에서 아나크렌의 황제 이름이 나오는 순간 길을 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동맹국인 아나크렌에서 그 먼 거리를 오셨다면 오히려 제 무례를 사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드는 그런 그의 말에 괜찮다고 말해주고는 세레이아와 일리나에게 눈짓을 해보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드의 곁으로 스이시가 따라붙었다.
“제가 안내해 드리죠. 공격받은 지 얼마 되지 않기에 함부로 다닌다면… 이드님이야 괜찮겠지만 이드님을 경계할 라일론의 기사들이나 저희 용병들이 위험할지도 모르거든요. 후훗…”
이드는 스이시의 농담에 같이 웃어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를 부탁하고는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성문 입구는 의외로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폐허에 해당하는 지점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서부터였다. 그런 사실에 이드가 의문을 표하자 스이시가 눈썹을 슬쩍 찌푸리며 대답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로디니님과 그분 케이사 공작님께 들으시겠지만, 대충 이야기하자면 반역이었습니다. 저번 아나크렌의 라스피로 공작이라는 작자와 상당히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귀족들이었기에 성문을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별다른 전투도 없었고 말입니다.”
이드는 그의 말에 아나크렌에서의 일과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몇몇 가지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는데, 처음 반란군이 수도 안으로 들어선 것이 전날 새벽이었다고 한다.
베르제 후작과 로이드 백작 등- 여기서 이드의 고개가 약간 갸웃 거렸다. 로이드라는 이름을 들어본 듯해서였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베르제 후작과 로이드 백작을 비롯한 다섯 인물들은 전날 이드가 카리오스와 같이 라일론의 시장에서 보았던 그 기사학교의 개망나니 6인조의 부모들이라는 것이었다.- 꽤나 권력있고 돈이 있다는 다섯 인물들과 50여 명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수도로 들어섰다고 한다.
물론 성문 앞에서는 별다른 제제 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하지만 그 다섯이 성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과 같이 온 50여 명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순식간에 경비대를 제압하고 성문을 크게 열었다고 한다.
사실 경비대의 대원들 역시 40명으로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었으나 어떻게 된 것이 그들 50명의 인물들이 모두 소드 마스터였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경비대의 저항이 거의 한순간에 제압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열려진 성문 안으로 거의 1500여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들은 바로 황궁으로 알려져 황궁의 모든 기사단들과 병사들이 그들을 막기 위해 나섰다.
그런 그들의 선두에는 케이사 공작과 두 명의 중년이 같이 따르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보다 먼저 나서서 그들의 앞으로 막어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블랙 라이트들과 그 의뢰인들이었다.
“의뢰인들이라니요?”
스이시의 말에 이드가 중간에 말을 끊으며 물었다.
스이시는 이드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희들에게 의뢰한 의뢰인들은 총 7명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름은 그 중에서 제일 앞장서던 사람이 쿼튼 남작이라는 것 정도죠. 그럼 계속 하겠습니다.”
이드는 시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인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전날 카리오스와 같이 시장에서 구해 주었던 기사학교의 학생, 그때 듣기로 분명히 쿼튼 남작가의 차남이라고 한 것이 기억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듣기로는 분명히 …
[그때 그 쿼튼가의 장남은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요?]
‘응, 나도 분명히 그때 그 남자한테서 그렇게 들었거든… 뭐,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
라미아의 말에 그렇게 답한 이드는 옆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스이시를 바라보았다.
이백의 블랙 라이트들이 우선적으로 그들을 막아서긴 했지만 워낙에 수가 밀렸다고 한다.
게다가 1500여 명의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소드 마스터들 역시 여간 문제가 아니었단다.
하지만 곧 케이사가 이끄는 기사단들이 합류했고 곧 양측은 팽팽하게 맞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사단에서 케이사 공작이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수도의 삼분의 일이 날아가 버리는 전투가 벌어진 것이었다.
“대단했습니다. 팽팽하게 대립하던 양측이 케이사 공작이 나서서 정령술을 사용하자 조금씩 무너지며 아군 측으로 기우는 듯 했습니다. 덕분에 기사들과 저희 용병들의 사기도 올랐는데… 그런데 차츰 아군이 조금 우세해지자 반군 측에서 다섯의 중심인물들과 같이 있던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군요. 특이하게 허리 양쪽으로 길고 짧은 검을 네 자루나 차고 있는 거 빼고는 검은머리에 보통 키, 크지도 마르지도 않은 보통의 몸, 거기다 나이도 20대 중, 후반 정도로 보여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남자가 나서는 게 저런 사태로 이어질 거라고 말입니다.”
싸움에 정신이 없어서, 또는 보았더라도 별다른 특징이 없는 모습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사내는 눈앞의 전투를 한번 바라보고는 자신의 허리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허리에 걸린 네 자루의 검을 고르듯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스이시가 봤다고 한다. 로디니와 같이 지휘관이 있는 곳에서 전투를 살펴보다가 그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고 봤다고 함)
그리고 이어 결정했다는 듯이 오른쪽 허리에 걸린 붉은 색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그 검이 보통의 검이 아니었단다.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신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일검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더더욱 보통의 것이 아니었는데 그의 일검과 함께 검에서 뿜어진 붉은빛을 따라 엄청난 폭발이 뒤따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폭발에 휩쓸린 부분은 완전히 시커멓게 타버렸고 덕분에 전투까지 순식간에 멈춰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명령에 따라 반란군들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자 아군 측이 순간 술렁였다.
하지만 곧 이어진 케이사와 함께 왔던 두 명의 중년 중 검은머리의 중년인의 명령에 아군 측도 즉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아군 측의 두 중년인과 반란군 측의 남자가 서로를 확인하듯이 잠시 바라보더니 몇 마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때까지는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부터 이어진 그 세 명의 전투의 여파 덕분에 아군이든 적군이든 서로 간의 전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서로 살기 위해서 전투의 여파가 미치는 전장에서 도망쳐 다녀야 했다.
그런 상황은 한참을 계속되어 수도의 삼분의 일이 날아갔을 때인 정오 경에서야 끊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들이나 용병들로서는 누가 이기고 졌는지 예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잘 싸우다가 서로 그만둔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전투가 끝난 후부터 기사단과 용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반란군들을 잡아들이고 각개 전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한 일은 해가 기울어 자신의 몸을 지평선에 거진 반을 담갔을 때야 끝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모두 다 잡아들였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기사들과 용병들이 돌아다니며 수도 전체를 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중 일부는 폐허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말입니다.”
스이시가 지금도 한쪽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검은 갑옷의 용병들과 은빛 갑옷의 기사들을 보며 하는 말에 이드와 일리나, 세레니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쯤 그들의 눈에 정원의 반이 날아가 버린 거대한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음… 케이사 공작님의 저택… 저기에도 피해가 있었던 모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