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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16화


“이제 왔는가. 여기 자리에… 응? 동행 분들이 있었던가? 레이디 분들도 여기 자리하시지요.”

이드는 크레비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리나와 세레니아를 데리고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소파로 갔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모습에 크레비츠가 자리를 권하며 자리에 앉았고 그 뒤에 이드들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직 나가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메이라의 모습에 케이사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메이라, 수고했다. 너도 이만 가서 쉬거라. 아, 그리고 나가는 길에 밖에 있는 시녀들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일러라.”

“….. 네.”

케이사의 말에 메이라는 잠깐 이드를 돌아보고는 크레비츠와 베후이아 여황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메이라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케이사가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인상 좋게 웃어 보였다.

“내 듣기로 카논 제국 내로 간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공격받은 바로 다음날 갑자기 이곳에 온 것을 보면 이곳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나 보구만. 참, 대강의 사정 이야기는 들었겠지?”

“네, 이곳에 들어서면서 정문을 맞고 있는 스이시라는 용병에게서도 들었고 공작님의 저택에 머물고 있는 가이스들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드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카논에 들어서고부터 이곳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면서도 전해야 할 이야기는 확실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지던 이드의 이야기를 듣던 크레비츠와 베후이아 여황 등은 이드의 말 중에서도 특히 카논의 수도가 결계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는 말을 들으며 얼굴 가득 의문부호를 그려 넣으며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혼돈의 파편이라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결계라니… 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로서는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이드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머리를 싸맨다고 알게 되는 일이 아닌 이상은 그냥 두는 것이 좋다. 알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드는 다시 결계라는 주제를 들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려는 네 사람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 왔다는 그 혼돈의 파편 말입니다. 페르세르라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아? 아… 그 사람 말인가? 음… 뭐랄까. 한마디로 갈 때 없는 검사? 다시 태어나도 검사가 될 그런 사람인 것 같더군. 그때 메르시오라는 놈… 흠, 죄송합니다. 폐하. 이런 속된 말은…. 하여간 그 존재와는 다른 사람이더구만. 덕분에 크레비츠님과 내가 신관의 신세를 지기도 하고 수도의 절반이 날아가긴 했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전투였네. 그렇지 않습니까. 크레비츠님.”

이드는 바하잔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크레비츠를 보며 전날 있었다는 전투를 상상해 보았다. 서로를 향해 오고 가는 검. 팽팽한 긴장감. 그 속에서 오고 가는 서로에 대한 감탄. 이드는 그런 생각과 함께 자신과 아시렌과의 전투와 자연스레 비교되기 시작했다.

“후~ 그러시다니 부럽네요.”

이드의 작은 중얼거림에 이드에게서 아시렌과의 전투를 대강이나마 들었던 크레비츠들은 허허거리며 웃어버렸다. 하지만 자신들 역시 그런 존재와 싸우라면 거절할 것이다. 긴장감 없는 싸움. 그건 어쩌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한 정신력이 소모되는 지도 모르는 그런 전투이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허허거리는 크레비츠들을 보며 같이 씩 하니 웃어주고는 다시 케이사 공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 이번에 블랙 라이트라는 용병단과 퀘튼 남작이던가? 그 사람과 그 사람을 따르는 귀족의 자제들의 활약이 컸다고 하던데… 어디 있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궁에 있다고 하던데요. 게다가 블랙 라이트 용병단의 단장이라면 저도 안면이 조금 있거든요.”

“오… 그런가. 자네도 참, 인맥이 넓구만,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야… 그래 자네가 말한 두 사람, 모두 궁에 있지 아마 반란군의 처리 문제로 한창 바쁠 거야.”

하여간 이번 일에 그들의 공이 상당하다네. 그들이 반란군들의 진로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황궁이 날아갈 뻔했으니까 말이야. 어떻게 만나 보겠나? 만나겠다면 내 불러주겠네.”

“아니요.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만나보죠. 케이사 공작님의 말씀대로 라면 상당히 바쁠 것 같은데요.”

그런 이드의 말과 함께 이드와 그들 간에 서로 몇 마디 더 오고 갈 때쯤 노크 소리와 함께 서재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시녀가 은빛의 작은 차 수레를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수레에는 각각의 색과 모양을 가진 네 개의 아름다운 문양의 차 주담자와 일곱 개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앉아 있는 일행들의 앞으로 다가온 한 명의 시녀가 네 개의 차 주담자를 하나하나 잡으며 각각의 주담자에 담겨져 있는 차의 이름을 말하며 고르라는 듯이 기다렸다. 그러자 이드를 비롯해서 각자 마실 차의 이름을 입에 올렸고, 잠시 후 실내에는 부드럽고 은은한 차향과 함께 쪼르르르륵 거리는 차 따르는 소리가 흘렀다. 그리고 차를 따르는 순번에 따라 이드의 앞에 한 시녀가 주담자를 들고 섰을 때였다.

“부드러운 향과 투명한 색을 간직하고 있는 실론(Ceylon)입니다.”

시녀가 그 말과 함께 막 차를 따르려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은은한 대지의 진동이 느껴졌고, 그 갑작스런 일에 놀란 시녀는 막 이드에게 따라 주려던 차 주담자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폭발음과 함께 들려야 할 주담자가 깨지는 소리는 중간에 이드가 받아드는 덕분에 주담자의 뚜껑이 딸깍이는 소리조차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드는 받아든 주담자를 다시 당황하고 있는 시녀에게 건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열려진 테라스 쪽으로 걸어갔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사람들도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나섰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떠올라 있었다.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테라스에 나선 이드와 크레비츠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은빛과 함께 너무도 쉽게 허물어지고 있는 성벽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테라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불안감을 딱딱하게 굳히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콰콰콰쾅…………..

덜컹… 쾅…..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속도를 부추기는 듯한 폭음이 다시 들리는 것과 함께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리던 서재의 문이 부서지듯이 열려지며 검은 갑옷의 로디니와 검은빛이 도는 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를 비롯한 일단의 인물들이 들이 닥쳤다. 그리고 그 중 날카로운 눈빛의 사십 대로 보이는 인물이 급박하게 소리쳤다.

“폐하…. 지금 수도의 성벽이…”

급하게 소리치던 코레인은 그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베후이아 여황의 목소리에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여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수도의 모든 병력과 기사들에게 특급 비상령을 내리고 왕성과 수도를 호위하세요.”

“예, 이미 이곳으로 오는 도중 기사 단장들에게 명령을 내려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저번의 검사와 같이 보통의 적이 아닌 듯 합니다. 그러니…”

코레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슬쩍 말을 끌며 여황의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 중 크레비츠와 바하잔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반란군들의 전투에서 그 두 사람의 힘을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황 역시 코레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기에 몸을 돌려 크레비츠와 바하잔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 전보다 더욱 심각하게 굳어져 있는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쉽게 말을 꺼내지를 못했다.

“할아버님…..??”

“음… 무슨 말인지 안다. 베후이아… 그런데 말이다. 이번엔 저번과 같은 적이 한 명이 아닌 것 같구나. 아마도 두 명 정도….”

“무슨….?”

크레비츠의 말에 여황과 뒤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코레인과 로디니를 비롯한 사람들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날 반란군을 제외한 한 명의 상대 덕분에 수도의 삼 분의 일이 폐허로 변했었다. 그런데 둘이라니… 그렇다면 수도가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귓가로 그들을 더욱더 절망하게 만드는 바하잔의 말이 들려왔다.

“거기다 크레비츠님과 제가 신관에게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 걱정은 안으셔도 될 듯 합니다. 조금 힘들어 질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건 또 무슨…”

여황은 바하잔의 말에 의문을 표하다가 바하잔이 한곳을 바라보자 그 시선을 쫓았다. 그리고 곧이어 시선에 들어 온 사람의 모습에 뭔가 생각이 난 듯이 딱딱하던 얼굴을 조금 펴며 크레비츠를 바라보았다. 여황은 자신의 눈길에 고개를 끄덕이는 크레비츠의 모습에 다시 이드를 돌아보았고, 그런 여황의 시선을 받은 이드는 싱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이드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방금 전 폭발과 함께 눈에 들어왔던 마치 달빛과 같은 은색의 빛 때문이었다.

‘저게 메르시오라면….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네. 그럼 빨리 서두르지요.”

갑작스런 이드의 말에 코레인과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이드에게 모였다가 그에 대답하는 크레비츠의 목소리에 다시 크레비츠에게 돌려졌다. 하지만 두 개의 시선만은 여전히 이드에게 묻어 있었는데 바로 로디니와 회색 머리카락의 사내였다.

“그래 빨리 서둘러야지. 성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될 수 있으면 성밖으로 밀어 내야 돼. 그리고 베후이아 너는 걱정 말고 성안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 네, 조심하세요.”

“좋아, 자 그럼 가지.”

크레비츠의 말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레니아를 돌아보았다.

“세레니아가 저분들 쪽을 맞아 줘야겠는데… 괜찮죠?”

“그럼요. 이제 저와도 관련된 일인걸요.”

“좋아요. 그럼 제가 안내할께요. 그리고 일리나는 여기서 여황님과 같이 기다리고 있어요. 노드 넷 소환!”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이드의 말에 따라 허공 중에 에메럴드 빛깔의 긴 머리카락을 허공에 날리는 네 명의 모습이 같은 소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드는 소환된 네 명의 정령에게 세레니아를 비롯한 네 명을 이동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명령에 네 명의 정령은 크레비츠들의 뒤로 돌아가 마치 껴안는 듯한 행동과 함께 허공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네 명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드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드를 선두로 무너진 성벽이 있는 쪽으로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런데 그 시선들 중에 두 개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의문과 의아함을 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저 꼬마가…. 어떻게 여기에…”

블랙 라이트의 단장 로디니와 회색 머리의 사내 오스먼트 미라 쿼튼 남작, 이드가 카리오스와 함께 시장에 갔을 때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허공을 날아 온 덕분에 순식간에 성벽이 바로 코앞인 폐허지역 상공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네 명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막 무너진 성벽을 넘어 들어서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인형 중 은은한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몸체를 가진 인형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반월형의 거대한 강기(剛氣)였다. 그것은 척 보기에도 강렬해 보여 그대로 뻗어 나간다면 폐허지역이 더욱더 넓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이드!!”

은빛 강기의 모습에 크레비츠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어느새 세레니아의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있던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환했던 노드들을 돌려보내 버렸다. 그런 그들의 높이는 지상 50미터 정도였다.

“알았어요. 그럼 착지할 때 조심하세요. 노드, 돌아가.”

이드의 말에 따라 노드가 돌아가자 크레비츠와 바하잔의 신형이 마치 줄 끊어진 인형처럼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드는 그런 두 명과는 달리 세레니아의 허리를 안은 채 부운귀령보(浮雲鬼靈步)를 시전해서 유유히 허공을 밟으며 먼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쯤 그 두 사람은 착지할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허리에 매어진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이미 그레이트 실버라는 지고한 경지에 든 그 두 사람으로서는 50미터라는 높이는 전혀 부담되는 높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지상과의 높이가 10미터 정도 되었을 때 바하잔의 손에 들린 검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드는 우유빛의 검신과 그 검신의 중앙 부분에서 황금빛을 머금어 황홀한 듯한 은빛을 발하고 있는 바하잔의 검이 바하잔의 마나를 전부 감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볼 수 없는 보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 굉장한 검인데… 일라이져에 뒤지지 않은 검이야. 라일론에서 구한 검인가?”

이드의 말에 이드의 품에 편안하게 안겨 있던 세레니아도 라일론의 검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예요. 옥시안이라는 검인데, 저번에 잠시 외출했을 때들은 바로는 라일론이 아니라 카논에 있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저 녀석은 저희 대륙에서도 이름 있는 검인데 검신이 드래곤 본과 오리하르콘으로 되어 있어요. 비록 마법적 능력은 없지만 마법에 대한 저항력과 강하기는 확실할 거예요.”

이드는 세레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바하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하잔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뒤를 이어 옥시안의 검신으로부터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이구만. 웨이브 웰(waved wall)!”

쿠아아아아….

순간 옥시안으로부터 뻗어 나가기 시작한 황금빛의 강기는 마치 높은 파도가 넘실대듯이 은빛 강기의 앞을 가로막았고 곧이어 엄청난 폭음을 만들어 냈다. 그 덕분에 생겨난 충격에 주위에 널려 있던 폐허의 잔재들이 날려갔고 크레비츠와 바하잔, 그리고 세레니아를 안고서 유유히 내려선 이드들은 울퉁불퉁하지 않은 평평하고 깨끗한 당에 착지할 수 있었다.

“환영인사인가? 우리가 설자리도 깨끗하게 치워 주고 말이야.”

“후훗.. 그런 모양입니다.”

이드는 크레비츠와 바하잔의 장난스런 말을 들으며 앞에 달빛 아래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비록 밤이긴 하지만 이드의 내공으로 이 정도의 어둠을 뚫어 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선에 크고 작은 두 인형의 모습을 담은 이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심 이번에 이곳을 공격한 것이 자신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이드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어둠 사이로 보이는 한쪽 눈을 읽은 메르시오의 모습은 평소와 꽤나 달라 보였다. 지난번까지 두 번밖에 상대해 보지 못했지만 항상 처음 나타날 때는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살벌한 분위기네….”

조금 곤란한 듯한 얼굴로 말한 이드의 말에 라미아와 세레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번이 두 번째 보는 거지만… 처음 볼 때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데요. 하지만…”

[이드님께 한쪽 눈을 잃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아무래도 저희가 그곳에서 빠져 나오고 나서 곧바로 뒤쫓아 온 것 같은데요.]

“하.하…. 하지만, 전투 중에 생긴 상처라구… 내가 어쩌겠어?”

“하지만 당한 쪽에서는 그런 생각이 아닐껄요.”

[그럼요.]

이드는 세레니아와 라미아의 말에 모르겠다는 듯이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고는 시선을 돌려 메르시오 옆에 서 있는 작으마한 인형을 살펴보았다.

“라인델프……”

이드가 그 인형을 보는 것과 함께 떠올린 이름, 드워프인 라인델프. 메르시오 옆에 서 있는 작은 인형은 어깨에 거의 자기 머리만 한 크기의 커다란 워 해머(War hammer)를 어깨에 매고 있는 탄탄해 보이는 몸매의 드워프였다. 헌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무언가 빠진 듯한 드워프의 얼굴… 바로 드워프들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수염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모습을 보았는지 얼굴을 기묘하게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수염도 없이 맨 얼굴에 거만하게 서 있는 드워프의 모습.

[특이한… 혼돈의 파편이네요. 드워프, 그것도 수염 없는 드워프라니…]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드의 눈에 뭔가 재밌다는 듯이 드워프를 바라보고 있는 세레니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이드의 머릿속으로 주점 등에서 들은 드워프와 드래곤과의 관계가 떠올랐다.

“이드, 저 드워프는 제가 맞을 께요. 괜찮죠?”

“그럼… 부탁할께요.”

세레니아의 말에 대답하던 이드는 강렬한 마나의 흔들림과 함께 반대편에 서 있던 메르시오의 몸에서 은빛의 강기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 역시 급히 내력을 끌어올리며 세레니아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무래도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크레비츠와 바하잔에게 세레니아의 정체를 알리는 것이 좋을 듯 했기에 그것을 허락 받기 위해서였다.

“-세레니아, 아무래도 전투 전에 저 두 사람에게 세레니아가 드래곤이라는 걸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해도 괜찮겠죠.-“

이드의 말에 세레니아는 별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드는 두 사람에게 세레니아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이드에게 세레니아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두 사람 역시 잠깐 흠찟하며 세레니아를 돌아볼 뿐.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쪽을 향해 은빛으로 물든 팔을 들어 올리는 메르시오를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저 드워프는 여러분들에게 맞기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혼돈의 파편의 수를 하나라도 줄여야 합니다. 부탁드릴께요. 우선 저들을 수도 밖으로 밀어내는 건 제가 하죠. 윈드 오브 플레임(wind of flame)!!”

이드의 외침과 함께 주위가 순간적으로 황금빛으로 번져 나갔다. 하지만 그 황금빛은 순식간에 붉은 빛으로 변하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수도의 대기를 진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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