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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20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빨리 구출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및에 있는 두 사람…. 호흡이 상당히 불안한데…”

“….. 응?”

제프리와 애슐리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 이드가 천시지청술(千視祗聽術)의 지청술을 사용해 들었던 것을 이야기했다. 공기가 나쁜지 기침을 하는데… 그것도 호흡이 불안정한 것이 지 않은가. 이드의 말을 들은 제프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드와 세레니아들을 바라보더니 황급히 아까 자신들이 파내던 곳으로 뛰어가더니 땅에 뒤를 대고 무슨 소리를 들으려 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애슐리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이드를 바라보더니 곧 제프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서서는 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제프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애슐리의 뒤를 따라 이드들이 다가갈 때쯤 급하게 몸을 일으킨 제프리가 흥분한 얼굴로 이드들을 바라보았다.

“마, 맞아. 아주 약하긴 하지만 기침 소리가 들려… 도대체…. 마법인가?”

“뭐… 그 비슷한 겁니다. 그리고 우선 밑에 깔려 있는 사람부터 구하는 게 먼저 일 것 같은데요.”

“아, 그, 그렇지. 그럼 부탁하네. 이봐, 자네들 뒤로 물러서.”

이드의 말에 제프리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급히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자신도 뒤로 물러섰다. 이드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품에 안고 있던 아라엘을 메이라 옆에 내려놓고는 일리나와 함께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세레니아 만을 데리고 앞으로 나갔다. 그 앞에는 크고 작은 돌덩이와 바위, 그리고 굵지가한 나무도 보였는데, 특히 눈에 뛰는 것은 마치 널판지와 같은 모양에 넓이가 거의 3, 4미터가 족히 되어 보일 듯 한 엄청난 넓이를 가진 돌덩이와 2미터 정도로 보이는 돌덩이가 마치 책을 겹쳐 놓은 것처럼 겹쳐져 있다는 모습이었다.

“음… 분명히 사람들의 기척은 저 큰 돌덩이 아래에서 나는 것이긴 한데… 두 개가 겹쳐져 있으니…. 세레니아는 알겠어요?”

“… 잘은…. 혹시 저 두 개의 바위가 겹쳐진 틈새에 있는 게 아닌지…. 잠깐만요. 리드 오브젝트 이미지.”

이드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세레니아가 시동어를 외쳤다. 그와 함께 이드는 세레니아로부터 퍼져 나온 마나가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놓여진 부분을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간의 시간이 흐르자 세레니아의 손 위로 우우웅 거리는 기성과 함께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는데, 그냥 평범한 그림이 아니라 마치 만들어 놓은 듯 입체감이 생생했다. 그런 영상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드와 세레니아의 눈에 보이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와 두 바위 중 아래에 있는 바위 끝에 서 있는 또 다른 작은 바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바위 바로 옆에 두 개의 밝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골치 아픈 곳에 있네.”

“맞아요. 이런 곳이라면….. 하나의 바위를 빼면 곧 균형이 무너져서 바로 밑에 있는 사람들이 깔려 버릴 테니까요.”

“음…”

괜찮은 방법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러길 잠시, 이드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세레니아를 보며 싱긋이 웃는 것이었다. 이어 아직도 세레니아의 손 위에 있는 영상 중 사람들을 덮고 있는 바위의 위쪽 부분을 손가락으로 뚫어버리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꼭 바위를 치울 필요는 없잖아요. 어떻게 해서든 사람만 꺼내면 되니까요.”

이드의 말에 세레니아도 뭔가 생각이 난 듯이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번에 땅을 뚫었던 그걸로… 좋은 생각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생긋 미소짓는 세레니아의 머릿속에는 저번 타로스의 레어를 땅을 뚫고 들어갔었던 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이드가 돌과 단단한 흙으로 가로막혀 있는 땅을 한 번에 1미터 정도를 파내었었다.

“좋았어. 그럼 한번 해 볼게요.”

이드는 세레니아에게 그렇게 말하며 싱긋이 웃어주고는 사람들을 덮고 있는 바위 위에 올라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몸을 굽혔다.

그리고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었다. 그것도 잠시 뭔가를 결정한 듯 움직이는 그의 오른쪽 팔에는 어느새 푸른색의 회오리 치는 듯한 형상의 강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범위도 넓지 않고, 암석의 강도도 그렇고, 황석진결 보단 파옥청강살(破玉靑剛殺)이 더 좋겠지. 부셔져라. 쇄(碎)!!”

이드의 말과 함께 이드의 손은 어느새 손바닥 정도의 깊이로 바위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순간 이드의 팔을 감고 있던 푸른색의 강기가 주위로 퍼지는 듯한 후 파싯하는 소리와 함께 이드의 손을 중심으로 약 70세르(70cm) 정도가 가라앉아 버렸다. 그렇게 가라앉은 부분은 더 이상 바위가 아니었다. 그저 고운 가루와도 같았다. 이어 소환해 낸 실프로 바위가루를 날려 버리자 깊이 10세르 정도의 홈이 모습을 보였다.

“어…. 어떻게…..”

“자네, 어떻게 한 건가.”

그 모습에 놀란 애슐리와 제프리 등의 사람들의 물음이 들렸지만 그걸 완전히 무시해버린 이드는 다시 몇 번 더 파옥청강살을 펼쳤고, 어느 한순간 돌이 아닌 깜깜한 어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바위에 뚫려진 구멍 속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 흑…. 엄마, 아빠…. 아앙~~~”

“여기에요, 여기, 저희 여기 있어요. 빨리 좀 구해 주세요. 기레네 울지마, 이제 나갈 수 있어. 그러니까 울지마…”

“기레네? 설마, 너 가르마냐? 가르마 맞아?”

“마, 맞구나. 이 녀석들…. 여기 있는 것도 모르고…. 어이, 빨리 푸레베에게 달려가서 가르마하고 기레네 찾았다고 데려와. 기레네, 가르마 조금만 기다려라. 곧 아버지도 오실 거다.”

“자, 자… 제프리씨 아이들을 빼내야 하니까. 뒤로 좀 물러나 주세요. 노드!”

뚫려진 구멍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흥분해서 말하는 제프리를 떨어트린 이드는 곧바로 바람의 중급정령이 노드를 소환해서 두 명의 아이를 꺼냈다. 그런 두 아이의 모습은 건물이 무너질 때 묻은 듯한 먼지와 크진 않지만 몇 군데 찧어져 피,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힘들고 애처로운 모습이 안돼 보인 이드는 두 아이를 곧장 땅에 내려놓지 않고 요즘 자신이 아침마다 씻는데 사용하는 방법으로 물의 정령 운디네를 소환해서 순식간에 두 아이를 씻겨냈다. 덕분에 방금 전까지 꼬질꼬질하던 두 아이와 아이들이 입고 있던 옷이 깨끗하게 변했고, 상처 부분 역시 깨끗하게 소독이 되었다. 거기에 부수적인 영향으로 순식간에 자신을 씻어내는 운디네의 모습에 울고 있던 여자아이가 울음을 그쳐 버린 것이었다. 이어 옷이 조금 찢어지기는 했지만 방금 집에서 나선 듯한 모습으로 땅에 내려서는 아이들의 주위로 방금 전 아이들에게 소리쳤던 제프리와 애슐리를 비롯해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들어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잠시동안 계속되자 아이들 옆에 서 있던 애슐리가 소리쳤다.

“그만해요. 큰 상처가 없긴 하지만 애들은 몇 일이나 갇혀 있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피곤할 거란 말이에요. 빨리 옮겨요. 우선…. 저기로 옮겨요.”

“그래, 그래야지. 자 기레네, 이리 오너라 아저씨가 안고 가마. 이봐, 자네는 가르마를 안아줘.”

“아, 아니요. 전 아직 괜찮아요.”

“아니다. 힘들어 보이는데 이리와라… 웃차…”

제프리의 말에 몇 번 거절하던 가르마는 결국 어떤 남자에게 안겼고, 폐허 밖 그러니까 상점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는 방금 전까지 누군가 앉아 있었던 듯한 커다란 의자에 앉혀졌다. 그런 둘에게 어느새 준비했는지 애슐리가 포션과 맑은 물 두 잔을 가지고 다가왔다. 두 잔의 물은 천천히 마시라면서 건네었고, 가지고 온 힐링 포션은 약간씩 손에 묻혀 아이들의 몸에 있는 잔잔한 상처에 발라주었다. 포션을 다 발랐을 때쯤 어느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대운 듯한 말간 스프를 들고 다가와서는 두 아이에게 건네 줄 때쯤, 뒤쪽의 폐허 쪽에서부터 커다란 외침과 함께 누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사십대 중반 정도의 남자는 씻지 않은 듯 머리가 엉망이 되어 있고 수염이 불규칙하게 자라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까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지저분한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진 않을 것이다.

“……레네, 가르마!!! 기레네, 가르마 애들아!!! 애들아… 오! 감사합니다. 니스크리드님, 이리안님, 비니블렌스님, 모든 신님들 감사합니다…. 저희 애들을…. 살려 주시어…”

연신 두 아이의 이름을 외쳐대며 정말 엄청난 속도로 폐허를 질주해온 남자는 받아 들고 있던 스프를 다시 애슐리에게 건네며 일어서는 두 아이를 꽉 끌어안고는 두 아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에게 안긴 두 아이들 역시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는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렇게 한 덩이가 되어 울고 있는 세 사람에게 다가간 제프리가 두 아이의 아버진, 푸레베를 진정시켜 떼어 내고는 애슐리에게 말해 다시 아이들에게 스프를 건네 먹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제프리와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던 푸레베라는 남자가 이드들에게다가 오더니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이는 것이다.

“이야기는 저기 제프리에게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들을 살려주신 이 은혜는…”

“아, 아니요. 저희들은 단지 저 아이들이 구출되는 속도를 조금 빨리 한 것뿐입니다. 저희가 한 건 별것 아닙니다. 오히려 저기 제프리씨와 애슐리양이 고생했지요. 그러니 이러지 마세요.”

“아닙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하는 그를 괜찮다고 말하며 겨우 돌려보낸 이드들에게 이번엔 제프리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잠시 이드들을 진지하게 바라보더니 씩 웃으면서 말을 했다.

“고맙다. 덕분에 아이들을 아무런 위험 없이 일찍 구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서 처음 너희들을 보고 무시했던 점을 사과하마. 미안했다.”

“아니요. 저희들도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더구나 저희들이 어린 건 사실이니까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하하… 그럼 그렇게 하지. 근데, 부탁할게 있네. 아까 보니까 저 아가씨가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찾아내더구만. 사실 그런 일은 보통의 마법사들은 할 줄 모르는 마법 같던데… 그걸로 이 폐허 어디에 사람들이 깔려 있는지 좀 가르쳐 주게나. 이대로 있다간 살아있는 사람도 제때 구조를 받지 못해 죽게 될 걸세.”

이드는 제프리의 말에 세레니아를 바라보았다. 세레니아가 비록 자신의 결정에 잘 따라주기는 하지만 그녀의 의견도 물어봐야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세레니아는 자신의 의견을 묻는 듯한 이드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아요.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니까요.”

“알았어요. 네,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프리씨. 하지만 저희는 일이 있기 때문에 중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그건 걱정 말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고맙네, 그리고 승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디. 하하하…. 참, 그리고 자네들 귀족의 자제들 같은데… 나한테서 존댓말들을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속 편할 거야.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아니면 내가 인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존대를 하지 않거든. 알겠지?”

“뭐, 저도 제프리씨께 존대 말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희 중에 귀족은 여기 로베르와 저기 메이라뿐이니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드의 말을 들은 제프리는 다시 한번 일행들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고급의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고 꽤나 귀티가 나 보이지만 본인들이 아니라니, 아닌 거겠지. 하는 편한 생각을 하는 제프리였다.

“좋아, 그럼 내가 앞장서지. 그럼 가볼까 가 아니라 잠깐만, 이봐, 애시…. 젠장, 폐허를 작성한 지도 들고 빨리 따라와.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가만히 서 있지 말고 계속 가서 일해! 또 어디 사람들이 묻혀 있을지 모른단 말이다.”

애슐리의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려다가 실패함으로써 더 커져버린 그의 목소리에 기레네와 가르마 주위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폐허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의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지 못해 분해하는 제프리에게 “네~ 제.리 아저씨”라고 말한 애슐리가 대위로 뛰어 올라 지도를 가지고 오자 제프리를 선두로 일행들도 폐허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이드와 일리나는 폐허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딤과 동시에 각자 천시지청술의 지청술과 리드 오브젝트 이미지를 시전했다.

“저기 저쪽으로 먼저 가보죠.”

이드는 앞에 있는 제프리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었다.

“근데, 제프리씨, 지금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표정이 의외로 은데요.”

“응? 그게 어때서. 설마, 모두 다 같이 머리 싸매고 눈물 흘리고 있어야 하는 건가?”

“아니요. 저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단지 이곳의 모습이 다른 곳과는 좀 다르길 레요.”

“뭐, 좀 그렇긴 하지. 당장 저쪽 편에만 가도 분위기가 영 아니거든. 뭐, 우리 측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얼굴을 구기고 심각한 분위기로 있어야 하는가? 그래봤자 나오는 것도 없고, 오히려 분위기만 무거워지고 사람들의 슬픔만 돋굴 뿐인데 말이야. 이럴 때일수록 웃으면서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덕분에 이곳에 몇 명 속해 있는 폐허의 피해자들도 옆 사람들의 도움으로 쉽게 충격에서 벗어났지.”

이드는 제프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과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붙잡고 늘어진다고 해결될 것도 아닌 일. 차라리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일을 풀어 나가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이드들이 바쁘게 폐허를 뒤지고 다닐 그 시각, 라일론의 대 회의실인 크레움에서는 라일론, 아나크렌, 카논 세 제국 간의 기고 길었던 회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본 국과의 불침범 조약을 채결해 주신 라일론 제국의 아름다우신 여 황제 폐하, 베후이아 카크노 빌마 라일론 여 황제님과 아나크렌 제국의 성군이 남으실, 크라인 드 라트룬 아나크렌 황제폐하께 저 카논 제국의 공작, 바하잔 레벨레트 크레스트가 본 국의 황제폐하를 대신하여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케이사 공작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바하잔이 일어나 베후이아 여황과 허공에 영상으로 보이는 크레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다시 자리에 앉자 그의 인사를 두 황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사가 과하십니다. 공작. 이미 저희 라일론과, 아나크렌, 그리고 카논 이 세 제국은 서로 힘을 합하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어찌 따져보면 카논 제국 역시 저희들과 같은 피해국가가 아닙니까. 그렇게 따진다면 불침범 조약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아 주시요.”

“황공하옵니다.”

바하잔은 두 황제의 말에 다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사실 꽤 많은 병사들과 기사들을 잃은 아나크렌이나 수도의 삼분의 일이 날아가 버린 라일론이 이번 사건이 끝나고 카논을 친다고 하더라도 카논으로서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두 나라가 자국이 받은 피해를 카논을 향해 묻지 않겠다 한 것이니, 카논의 안전을 생각하고 있던 바하잔 공작에게 실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크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 쪽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본국 역시 만약을 대비해 일을 해두어야겠지요.”

크라인의 회의의 끝을 알리는 듯한 말에 베후이아 여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크라인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그녀를 향해 말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부탁입니다만, 귀 궁에 머물고 있는 이드 백작에게 안부를 좀 전해 주십시요. 텔레포트 되어 사라지고 나서도 연락이 없더니, 이번 회의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으니… 얼굴 보기가 힘들어서 말입니다.”

조금 섭섭한 미소를 띄우며 말하는 크라인의 모습에 베후이아 여황의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만약 단순히 타국의 귀족 정도였다면 여황에게 직접 안부를 전해 달라는 크라인의 말이 무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상대가 라일론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해주었던 이드이기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지요. 헌데, 제가 전하는 것보다는 황제께서 직접 말을 전하는 것이 낫을 듯 한데요.”

“…. 그렇지요. 헌데, 갑자기 앞으로 언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번 일에 대한 걱정의 영향인가 봅니다. 아, 그리고 한마디 더 전해 주십시요. 돌아올 때는 시르피 공주에게 당할 각오 단단히 하고 오라고 말입니다. 하하하…”

“호호… 이드군이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군요.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면 귀국과는 더욱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군요.”

“그것은 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네…”

크라인이 말을 끝마치고서 베후이아에게 약간이나마 고개를 숙여 보였고 베후이아도 그 인사를 맞아 약간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와 함께 팟 하고 허공 중에 일렁이던 영상이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잠시 침묵이 흐르던 크레움이 다시 시끄러워지며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회의가 잠시 오고가기 시작했는데, 개중에 몇몇 노귀족들의 지친 듯한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앉아 있다지만 몇 시간씩을 앉아 있으면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인 귀족들이었기에 앉은 자세에서 각자의 방법대로 몸을 풀며 막바지에 이른 회의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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