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24화
“약속이라… 혹시 그 약속이라는 것에 게르만이라는 마법사가….. 흡!!! 일리나!”
메르시오를 향해 뭔가 물으려던 이드는 갑작스럽게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일리나가 날아갔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 뒤를 이어 한순간 강풍이 일어나 이드들과 메르시오들의 옷자락을 뒤흔들며 지나갔다.
이드는 자신들을 지나치는 바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방금 전과는 달리 눈가에 살기를 담으며 메르시오를 바라보았다.
“메르시오…”
살기 담긴 이드의 시선을 받으며 메르시오는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하게 됐군. 우리 여섯 중 제일 막내인데. 느릴뿐만 아니라 장난기도 심하고 자기 딴에는 머리 쓴다고 하는 녀석이지.
전번에 아나크렌과 라일론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저 녀석 생각이었지.
녀석 조금 늦는 줄 알았더니 언제 자네 옆에 있던 엘프에게 갔는지.
걱정 말게, 녀석이 자네의 엘프를 데려오면 무사히 넘겨줄 테니.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만. 자네가 보호해줄 존재를 미리…. 훗, 왔군.”
메르시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간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나의 인형이 걸어 나왔다.
밑단에 날카로운 칼에 의해 찢어진 듯 자국을 가진 검은 로브에, 하얀 백색의 깨끗하게 다듬어 놓은 머리를 뒤로 넘긴 마치 한나라의 왕과도 같은 기도를 뽐내는 노년의 인물이었다.
이드는 그가 바로 마지막 남은 네 번째 파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옆에서 뻗쳐 올라오는 가공한 두 개의 살기에 그 인물이 게르만이라는 이번 일의 핵심인 마법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려야 하는 이드였다.
자신들의 추측으로는 분명히 게르만이 혼돈의 파편들을 봉인에서 풀어주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살기를 뿜어대는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역시 가지고 있는 의문이었다.
“허헛… 수도의 사람들을 재우느라 늦었길래 인질이라는 걸 한번 잡아보려고 했다가 산산조각 날 뻔했구만…
노드 하나만 있길래 만만하게 봤는데 갑자기 노드가 사라지고 바람의 정령왕이 튀어나오다니…
근데 그 엘프가 계약자는 아닌 듯한데. 누가 붙여둔 거지?”
비록 산산조각 날 뻔했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게르만의 얼굴에서는 전혀 낭패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말과 함께 고개를 돌리는 그를 향해 세 개의 살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일리나를, 인질을 잡으려는 데 대한 이드의 것이었고, 다른 두 개는 그 게르만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살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그 정도의 살기에 움츠릴 인물은 없었다.
“훗, 쓸데없는 짓을 했군. 인질은 잡아서 뭐 하려고?”
“몰라서 묻는 거냐? 라인칸 스롭의 몸을 사용하더니… 머리도 그 수준으로 떨어졌나?”
“후후훗….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상대가 엘프라는 걸 모르나?”
메르시오의 말에 게르만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탁 쳤다.
인간이라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엘프의 경우 자신이 인질로 잡히거나 그 비슷한 일로 인해 자신의 짝이 위험해지면 짝이 다치기 전에 자살해 버린다.
그런데 게르만은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쿡…. 인질을 잡아봤어야지. 그냥 잡을 생각만 했지 상대가 엘프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거든.
근데 무슨 이야기하던 아니었나? 나 때문에 끊어진 것 같았는데…”
게르만의 말에 메르시오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이드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실수한 부분도 있으니… 아까 자네가 물었던 걸 대답해 주지.
우리들이 약속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카논 제국의 대륙 통일과 게르만 자신의 이름을 날리는 것, 그의 명예를 세워주는 것이지.”
“뭐, 뭣!”
“명, 명예라니…. 니 놈이 그런 짓을 해놓고도 명예를 말할 수 있느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혼돈의 파편이란 존재들이 움직였단 말이야.”
메르시오의 말에 바하잔과 차레브는 살기를 뿜어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황당함에 메르시오를 바라볼 뿐이었다.
혼돈의 파편이라는 신화의 존재들이 봉인에서 깨어나 완전한 힘을 회복하기도 전에 전투를 벌인 것이, 고작 제국의 대륙 통일과 게르만이라는 놈의 이름을 날리는 것 때문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찮은 이유이긴 하지만, 우리를 봉인에서 풀어준 존재에 대한 약속이었기에 나섰던 일이지.
그리고 너와 저 뒤에 있는 저 드래곤만 없었다면, 쉽게 성공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고 말이야.”
그 일만 성공시켜 주고 우린 다시 힘을 되찾는 일에만 전념하면 되니 말이야.
그리고 명예라는 말, 그건 단지 내 생각이야.
그 녀석이 죽을 때 말한 것은 카논의 대륙 통일과 자신의 이름이 모든 곳에 알려지는 것이었으니까.”
메르시오의 말에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던 바하잔과 차레브 두 사람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져 버렸다.
그의 말 중에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집어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평소 그의 목소리보다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게르만은…. 눈앞에 있지 않은가?”
바하잔의 말에 메르시오가 직접 말하라는 듯이 게르만을 툭 쳤고, 그런 메르시오의 모습에 눈썹을 찡그리던 게르만이 귀찮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는 우리들을 봉인에서 꺼내준 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죽었다.
우리들을 봉인하고 있던 것은 신의 봉인.
게르만이 뛰어난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풀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지.
우리는 그가 죽기 전 말한 그의 말에 따라 그가 원한 것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지.
그리고 그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선 그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그의 몸을 사용하는 중이고.
한마디로 이건 껍데기일 뿐이야.”
“그, 그런…”
“크레비츠님. 저놈은…. 저희가 맞지요.”
게르만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바하잔이 크레비츠에게 말했다.
“그러지.”
하지만 그 말에 메르시오는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이 녀석은 전투 인원이 아니거든.”
“…..?”
갑작스런 메르시오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의문에 가득한 얼굴로 메르시오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모든 힘을 되찾았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태라면 하나의 손도 더 필요한 이때에 전투 인원이 아니라니.
그런 의문을 담고 있는 이드들의 표정에 메르시오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고, 그의 대답과 함께 게르만은 급히 뒤로 빠졌고 페르세르와 아시렌은 자신들의 무기들을 꺼냈다.
“우리 쪽에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자네들을 상대로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원으로는 그게 어렵거든.
그래서 다시 봉인되기 전에 우리를 봉인에서 풀어주었던 게르만의 소원이나마 들어주려는 것이지.”
“자네들과의 만남이 짧았지만 기억해 줄 거라 믿지.
아무렴, 자신들을 죽음으로 이끈 존재를 잊을 수는 없겠지.
하아아압!!”
그리고 이드들이 메르시오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게르만의 몸이 서서히 허공 중으로 떠오르더니 강렬한 회색의 빛을 뿜으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하나의 거대한 회색 빛 구가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그 회색의 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물이 흐르듯이 구 안쪽에서 무언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메르시오와 게르만의 말에 회색의 구를 바라보며 메르시오들과 접전에 들어가지 않은 채 회색의 구를 바라보았다.
메르시오와 게르만의 말대로라면 저 회색빛의 구가 어떤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고, 만약 이드들이 전투 중에라도 회색빛의 움직임을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색의 구가 희미하지만 붉고 푸른 두 가지 색을 발하며 태극(太極)의 문양처럼 변해가는 것이었다.
“저건……”
세레니아가 먼저 변해 가는 회색 빛 구의 정체를 알아본 듯 기성을 발했고, 그 뒤를 이어 이드도 그 회색 빛의 구를 보다가 메르시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무슨 생각이지.
저게 폭발하면 이곳에 있는 우리들도 죽게 되지만 너희들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뿐만이 아니라 저 정도의 양이라면 제국의 삼분의 일은 날려 버릴 정도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방금 게르만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하지 않았었나.”
어느새 이드의 말은 반말로 변해 있었고, 그의 한쪽 손은 왼팔에 있는 듯 없는 듯 차여져 있는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분명 타로스의 레어에서 저것과 비슷한 마나 구를 흡수하면서 어둠이라는 자, 어둠의 근원이라는 자인 아크로스트에게서 인정을 받았었다.
그때 이드의 말에 답하는 메르시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한번 본 사람들답게 알아보는군.
하지만 그때와는 달라.
그건 제어구도 없이 무조건 폭발하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있는 건 게르반에 의해 만들어진 것.
저걸 네 개로 나누어서 두 제국의 수도와 꽤 덩치가 큰 두 국가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순간 크레비츠의 얼굴이 처참히 구겨졌다.
“설마… 저것 때문에 우릴 일부러 기다려 준 건가?
우리가 두 제국에 남아 있으면 혹시라도 저것을 막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뭐, 쓸데없이 우리가 찾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때 스르르릉 거리는 살 떨리는 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침묵만을 지키고 있던 페르세르가 입을 열며 크레비츠와 바하잔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의 장검과 투명한 일라이저 크기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사라져 버린 내 ‘브리트니스’의 빛은 받아 내야겠지.”
“……”
하지만 그의 지목을 받은 크레비츠와 바하잔은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 아시렌이 앞으로 나서며 양쪽 팔에 걸려 있던 네 개의 팔찌를 모두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드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었다.
“이드, 이번에도 반짝반짝 거리는 거 많이 보여줘야 돼.”
“아시렌, 아시렌… 내가 먼저라구.
내 상대를 가로채면 안 되지.
너는 저기 있는 인간과 드래곤 중에서 상대를 찾아봐.
자, 그럼 저번에 약속한 대로 끝을 볼까.”
이드는 메르시오의 목소리에 이미 반듯한 태극 모양을 그리고 있는 구를 바라보던 시선을 내려 주위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메르시오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메르시오를 바라보던 이드는 싱긋이 미소 지어 주고는 손에 들고 있던 라미아를 허리의 검집에 다시 꽂아 넣었다.
“미안하게 됐네요.
메르시오가 특별한 걸 준비한 덕분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까지 메르시오와의 약속을 미루어 두어야겠네요.”
“….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이드의 말에 메르시오가 당황하며 외쳤으나 이드는 그런 메르시오를 무시해 버리고 세레니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드의 행동을 바라보던 세레니아 역시 뭔가를 짐작한 듯 손에 끼고 있던 세 개의 나무줄기를 꼬은 듯한 붉은색의 반지를 빼내어 이드에게 건네었다.
“제 드래곤 본이에요.
드워프였을 때 만들어 본 건데.
가져가세요. 발열(發熱), 발한(發寒)의 마법이 걸려 있어요.
제 마나가 들었기 때문에 제가 찾을 수 있죠.
찾아갈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일리나 부탁할게요.
첫날밤도 지내지 못했지만 제 아내니까요.
그리고 못다 한 13클래스는 돌아와서 마저 전할게요.”
그 말을 하며 볼을 살짝 붉히는 이드를 보며 세레니아가 웃어 보였다.
“걱정 마시고 꼭 돌아오기나 하세요.
이드님의 시체라도 발견되지 않는 한 절대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아요.
엘프는…”
둘 사이에 그런 말이 오고 가는 사이, 주위에서는 의아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전투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어디 먼데로 가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 이드와 세레니아의 모습에 크레비츠와 메르시오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죠.
세레니아에게도 말해 놨지만 일리나를 부탁드릴게요.
마지막으로…. 메르시오와 아시렌이 제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좀 막아 주세요.”
크레비츠와 바하잔 등은 밑도 끝도 없는 이드의 말에 어리둥절해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한 건 일이 모두 끝나고 들으시고요.
자, 그럼 갑니다. 12대식 패엽다라기(貝曄多拏氣)!”
이드의 기합성과 함께 이드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안개와도 같은 기운이 이드의 주위를 휘돌더니 하나의 모양을 갖추었다.
패(貝), 이드를 둘러싸고 있는 기운의 모양은 입을 꼭 다문 조개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세레니아의 주위에도 까만색과 하얀 백색의 화살 수십 개가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서야 이드와 세레니아의 행동에 정신을 차린 크레비츠와 메르시오 등도 급히 자신의 무기를 챙기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마주섰다.
양측 간에 잠시간의 긴장이 흐르고, 폭발하는 듯한 이드의 움직임과 기합성에 터져 버리고 말았다.
“분뢰(分雷), 운룡출해(雲龍出海)!”
“플레임 젯(flame jet), 아이스 일루전(ice illusion)!”
“트윈 블레이드!”
“웨이브 웰!”
페르시르와 크레비츠, 바하잔이 부딪치며 사방으로 줄기줄기 검기들을 뿜어 댔다.
“원드 오브 루렐(wind of ruler)! … 와~ 이쁘다.”
“타겟 컨퍼메이션(target confirmation), 파이어(fire)!”
“으아아아압….. 에루핏(erupt)!”
아시렌과 세레니아, 클린튼이 부딪치면서 푸르고 검고 희고 번쩍이는 축제와 같은 기운들이 뒤엉켰다.
“이 자식 어디 가는고냐. 실버 쿠스피드 미사일!”
“흥, 우리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 하앗!!”
“디스파일이여…. 디스파일 가드!”
운룡출해의 신법으로 허공에 태극 모양의 마나구에 다가가는 이드의 모습에 급히 은빛의 송곳니를 뿜어내는 메르시오와 주홍색 검기를 뿜으며 은빛의 송곳니를 막아서는 차레브, 회색빛의 거검으로 메르시오를 베어 들어가는 프로카스 사이에서는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는 사이 거대한 태극, 붉은빛과 푸른빛의 사이로 몸을 쑤셔 넣은 이드는 양측에서 밀어대는 힘에 굉장한 압력을 느끼며 구의 중심부에 이르렀다.
그리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한 이드는 태극만상공(太極萬象功)을 운기하여 주위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패엽다라기를 내부로 받아들여 주요 대맥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의 경험으로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특히 왼쪽 팔의 혈도를 활짝 열린 성문처럼 열어 온몸으로 흡수되어 오는 뜨겁고 차가운 음과 양의 기운을 그대로 팔찌로 보내 버렸다.
전혀 아끼지 않고 말이다.
“크흡…. 하지만 여전히 몸에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힘내세요. 이드님. 이번 일만 잘 끝나면 키스해 드릴게요.]
“크… 크큭…. 하앗!!”
이드는 라미아의 말을 들으며 찡그린 얼굴로 웃음을 짓고는 다시 혈맥을 보호하는 데 힘을 더했다.
그리고 이드가 들어앉아도 넉넉하던 태극형 구의 크기가 이드만 해지고, 이드의 혈맥을 보호하는 데 본원진기까지 동원하려 할 때, 이드의 왼팔에서 들어오는 마나를 쉼 없이 받아 마시던 팔찌에서 푸른빛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빛은 이드의 양측에서 붉고 푸른색을 뛰던 마나까지 푸르게 물들었을 때, 팔찌는 다시 마나구 안을 천사의 날개와 같은 순결한 백색으로 물들였다.
저번에 들렸던 모든 것의 근원인 듯한 존재감을 지닌,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목소리가 이드의 머릿속을 감싸 안았고, 저번과 같은 거대한 음성이 이드의 머릿속을 감싸기 시작했다.
[어둠을 만들어 내는 빛. 태초의 순결을 간직한 빛. 그 창공의 푸른빛의 인장은 그대를 인정한다. 나, 빛의 근본이며 근원된 자. 브리지트네의 이름으로.]
처음 들었던 것과 같은 모든 것의 근원인 듯한 존재감을 지닌 목소리,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목소리가 이드의 머릿속을 감싸 안았다가 팔찌로부터 나오는 빛과 함께 목소리가 그쳤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닥치는 빛.
그런데 그 빛을 바라보던 이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야…. 도대체 얼마나 멀리 던져 버리려고.”
이드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번과 같은 빛 무리가 아니라 이드의 주위에 머물던 마나가 하나의 통로로 변해서 이드를 감싸는 모습이었다.
이내 빛의 회오리가 이드의 주위를 휘돌았다.
이드는 그 빛의 회오리 속에서 마치 거인의 손에 휘둘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머릿속을 헤집는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크윽…. 내가 이놈의 빛에 당한 게 몇 번인데…. 이젠 당하지 않는다. 금령단공(金靈丹功)!!”
츄리리리릭…..
주위로 번쩍이는 백색의 스파크가 일며 이드를 감싸 안았다.
그제야 이드도 자신을 뒤흔드는 느낌과 머릿속을 헤집는 짜릿한 전율이 그쳐진 걸 느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좋아, 끝까지 정신 차리고 봐…. 어…. 엉? 뭐야!!!”
하지만 이드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붉은빛이 이드를 때렸다.
그리고 이드는 뭔가 자신의 허리를 휘감는 듯한 느낌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기, 기습……. 제에엔장!!”
이드는 분한 마음과 함께 정신을 놓아 버렸다.
꾸아아악….
씨아아아앙…..
투두두두두두……
꾸아아아아아아
“으음…. 시끄러워…….”
그리 크지 않은 동굴, 그리 깊지 않은 동굴.
거친 동굴 바닥에 기절해 몸을 누이고 있던 이드는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괴성과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한 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천천히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헌데 팔 안에 가득히 안기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얼굴에 느껴지는 몰캉한 감각에 급히 눈을 떴다.
‘뭐, 뭐야…….’
눈앞에 붉은 천에 싸인 봉긋한 두 개의 언덕에서 느껴지는 몰캉한 감촉과 향긋한 향기에 당황하던 이드는 끌어안고 있던 몰랑몰랑한 물체의 손을 풀고 누운 채로 몸을 조금씩 뒤로 뺐다.
그에 따라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뒤로 빼던 몸을 그대로 굳혀 버렸다.
“누구…..?”
붉은 옷에 은빛의 긴 머리카락으로 자신과 이드의 몸을 휘감고 있는 17, 8세 가량으로 보이는 소녀.
반듯한 아미와 오똑한 코, 그리고 깨물어 버리고 싶은 발그스름하면서도 작은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은 감은 눈을 제외하더라도 엘프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동안 멍하니 보고 있던 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본 듯한데……. 하지만, 분명히 나만 이동됐을 텐데…..”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드는 다시 한 번 들려오는 투두두두두 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기성에 고개를 들어 환하게 빛이 들어찬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고는 소녀가 깨지 않도록 하면서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빼냈다.
이어 조용히 일어난 이드는 다시 한 번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붉은색의 길게 늘어져 허벅지까지 덮는 웃옷에 복숭아뼈를 덮을 정도의 붉은 치마, 모두 강해 보이면서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옷들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드는 이번에는 꾸아아악 하는 괴성을 듣고는 동굴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이드의 머릿속에는 이곳이 라일론이나 아나크렌에서 얼마나 멀까 하는 생각이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환한 빛을 받으며 동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던 이드는 얼굴을 그대로 딱딱하게 굳혀 버렸다.
구비구비 거대한 몸을 뉘이고 있는 초록색의 중원과 비슷한 모습의 산.
그건 좋았다.
문제는 허공에서 날고 있는 두 개의 물체에 있었다.
하나는 이드도 본 적이 있는 거대한 몸체에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입에서 불을 뿜는 와이번이라는 이름의 몬스터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와이번과 싸우고 있는 물체였다.
회색의 와이번보다 작은 삼각형의 몸체에 뒤쪽 꽁지에서는 두 개의 불꽃을 뿜고 있고, 그 펼쳐진 날개에는 기다란 막대기가 한 개 달려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몸을 뒤집을 때 보이는 그 물체의 머리 부분.
거기에는 투명한 막이 있었고, 그 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것은…
“설마 사람은 아니겠지? 설마…. 으….. 도대체….. 여긴 또 어디야!!!! 이놈에 팔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