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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29화


“보석에 대한 저희 ‘메르셰’의 감정가는 10억입니다. 하지만 경매에 붙이신다면 다이아몬드에 양각된 세공 때문에 더욱 높은 가격도 기대해 보실 수 있습니다.”

우루루루…

천화와 라미아, 연영은 각자의 손에 가득히 들고 있던 종이 가방과 종이 상자들을 거실에 쏟아 놓았다.

모두 종이였기 때문에 천화들이 내려놓은 짐들은 앞으로 천화와 라미아, 연영이 같이 지내게 된 방의 주방 겸 거실 바닥을 뒤덮었다.

천화는 그 많은 짐들을 바라보며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에 너무 많이 산 것 같은데…”

천화는 앞에 놓여있는 물건들의 반 정도를 샀을 때와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레센 대륙에서 보석을 처분했을 때도 필요한 옷 몇 벌과 가방을 샀을 뿐 이렇게 많이는 사지 않았다.

그때가 여행 중이라 옷을 적게 샀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천화였다.

오죽했으면 이 물건들을 구입한 백화점이란 곳에서 차를 내주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자신이 그 말을 했을 때와 똑같이 대답해오는 라미아와 연영의 목소리와 그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었다.

“괜찮아, 열심히 입으면 된다니까. 라미아, 이것 봐. 살 때도 봤지만, 정말 예쁘다. 그지.”

“맞아요. 어차피 앞으로 살걸 미리 산 것뿐이잖아요.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이거 한번 입어 보세요.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천화의 말에 그렇게 대답한 두 사람은 얼굴 가득히 환한 미소를 띠고서 정신없이 앞에 펼쳐진 물건들의 포장을 뜯어내고 있었다.

천화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어 버리고는 라미아와 연영의 반대편에 앉아 가방들과 상자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뭐… 상관없겠지. 어디 보자. 내 옷이 어디 있더라…”

진혁과 있는 나흘 동안 어느 정도 한국의 화폐 단위를 익힌 천화였지만 메르셰가 내어놓은 10억이라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놀란 얼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연영의 모습에 꽤 큰돈이겠거니 하고 처분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곳 주인의 말대로 경매에 붙이게 되면 좀 더 높은 가격에 처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천화는 지금 쓸 수 있는 돈을 필요로 했고 아직 자신의 주머니에는 꽤나 많은 양의 보석이 들어 있었기에 당장의 돈에 그렇게 욕심이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반면 귀한 보석을 자신의 가게에서 처분하게 된 메르셰의 주인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감사를 표했고 돈의 지불 방법을 물었다.

마침 정신을 차린 연영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통장을 내밀었다. 아직 통장이 없을 두 사람 때문에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통장을 받아 든 주인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급히 가게의 문을 나섰다.

나머지 세 명의 점원들에게 손님들을 접대하라는 말을 남기고서 말이다.

헌데 잠시 후 돌아온 가게 주인이 다시 곤란한 표정을 보이며 연영의 통장을 내밀었다.

지금 당장 지불할 수 있는 유통 가능한 액수가 9억 정도로 1억 정도가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기다렸다는 듯 이어진 라미아의 말에 의해 해결되었고 덕분에 지금 라미아의 손가락과 연영의 목에 반짝거리는 것들이 매달려 있었다.

천화가 일리나에게 예물로 주었던 반지가 상당히 부러웠나 보다.

그리고 그런 라미아 덕분에 덩달아 받게 된 연영.

처음엔 받을 수 없다며 사양했지만, 라미아가 가이디어스의 교문을 나서며 연영이 했던, 오누이처럼 지내자는 말을 들먹이자 머뭇거리며 라미아가 건네는 목걸이를 받아들었다.

그러는 중에 사천만 원이 추가되었지만, 메르셰 측에서는 어떻게 되든지 자신들이 득을 보는 것이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다음으로 연영을 따라 간 곳이 백화점이었는데, 라미아와 연영 둘 다 생각도 않은 보석 때문에 들뜬 때문인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것들을 구입해 지금 눈앞에 있는 분량이 되고서야 돌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물건들을 뜯어 각자의 옷들을 골라내고, 각자가 쓰는 방안에 걸어 두고 청소하는 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돌아오는지 기숙사 건물이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연영이 천화와 라미아, 두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옮겨온 C-707호 실은 원래 연영이 쓰던 곳보다 넓은 곳으로 원룸 형식의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두 개의 방과 하나의 욕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두 개의 방 중 큰 것을 연영과 라미아가 쓰기로 했고 그것보다 좀 작은 방을 천화가 쓰기로 했는데, 연영이 그렇게 정한 것이었다.

처음 연영의 말에 라미아가 천화와 같이 쓰겠다고 말했지만, 아직 성인이 아닌 애들이 같은 방을 쓰는 건 선생님으로서 봐줄 수 없다는 천화와 라미아가 모를 소리로 반대한 것이었다.

물론 이때에도 그레센에서의 약속 때문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천화였다.

기숙사가 시끌시끌해지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저번 학장실에서 들었던 종소리가 기숙사 복도로 울려 퍼졌다.

연영의 설명을 들으며 라미아와 함께 정신없이 TV를 바라보던 천화는 갑작스러운 종소리에 뭔가 해서 연영을 바라보았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에 연영은 라미아의 손에 잡혀 있던 리모컨을 받아 TV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 배고프지 않아? 저건 밥 먹으러 오라는 종소리거든…. 가자. 아까 말했던 대로 이곳에서 어떻게 식사하는지 가르쳐 줄 테니까.”

연영의 말에 천화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라미아와 같이 연영의 뒤를 따랐다.

식사하는 데 무슨 특이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천 명 이상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식당은 2층부터 4층까지로 3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 번에 1000명 정도가 식사를 할 수 있어서 학생들은 두 번에 나뉘어 식사를 하며 그 천 명은 선착순이라고 했었다.

연영을 따라 4층으로 내려간 천화는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는 문에 세 줄로 서 있는 수십 명의 남녀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상당히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연영을, 정확히는 천화와 라미아에게 서서히 시선이 모아지면서 시끄럽던 소음이 차츰 줄어들었다. 개중에는 연영에게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인사를 한 그들의 시선 역시 천화나 라미아를 향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웅성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천화와 라미아에게 향해 있는 시선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저, 저… 완전히 세 송이의 꽃이구만….”

“혹시 새로운 입학생인가?”

“….. 그럼 우리 반이었으면 좋겠는데…. 저런 미인들과 같은 반이라면… 우…. 연영 선생님과 함께 있는데 연영 선생님 반은 아니겠지. 그 반은 그렇지 않아도 연영 선생님이 담임이라 부러운데….”

“어머, 저 애 봐… 은발이야. 은발. 게다가 저렇게 길게….. 거기가 발그스름한 우유빛 살결이라니….꺄~ 부러워~~”

“얘, 얘. 그보다 저 얘 옆에 있는 저 검은머리 얘. 남자니? 여자니? 중성적인 게 묘하게 매력 있다. 남자 얘라면 한 번 사귀어 볼까?”

“근데 재들 무슨 전공이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두 사람, 천화와 라미아는 그런 이야기와 시선에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연영이 예의 방긋거리는 보기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호홋…. 너희 둘 벌써부터 대단한 인기인데… 둘 다 자신의 짝 빼앗기지 않게 관리 잘해야겠는걸…”

천화는 그녀의 말에 호호홋 거리며 웃어 보이는 라미아를 보고는 연영을 향해 생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러는 연영….. 누나도 인기가 좋은데요. 특히 지금같이 웃으니까 황홀한 표정까지 지어 보이는 걸요.”

“호홋, 아무리 그래도. 같은 남자들의 시선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너만 하겠니.”

“윽…..”

“두 사람 잡담 그만하고 앞으로 가요.”

라미아의 재촉으로 식당에 들어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천화들은 연영에게서 내일부터 생활하게 될 2학년 5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저녁때와 같이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끝낸 세 사람은 방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수업시간이 다 되어 연영을 선두로 어제 가보았던 본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세 사람의 주위로는 등교하는 듯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남녀 모두 한결같이 재킷이라고 하기도 뭐 하고 코트라고 하기도 뭐한 이상한 모양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하얀색 바탕의 그 옷은 어깨에서 약간 내려오는 반 팔에 목 주위를 감싸며 꽤 크고 보기 좋은 모양의 칼라를 가졌다.

그리고 옷의 양쪽 옆구리는 허리 부근까지 오는 반면 앞쪽과 뒤쪽의 옷은 역삼각형 형태로 좀 더 내려와 허벅지에 닿아 있었으며, 옷의 전체 끝단을 따라 약 1.5센티미터 정도 넓이가 검은색으로 되어 상당히 깨끗하고 심플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사실 이 옷은 이곳 가이디어스의 교복이었다.

처음 가이디어스가 개교했을 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에 조금의 동질감을 주기 위해 교복을 입히기로 했었다.

그런데 개중에 몇몇 인물들, 특히 가디언 프리스트의 학생들이 자신들 특유의 옷을 입어야겠다고 하는 통에 보통 학교와 같은 교복을 생각하던 것을 조금 바꾸어 지금과 같이 옷 위에 걸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특이한 교복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더구나 이 교복을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이기에 학생들도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천화와 라미아 역시 연영을 따라 들어선 교무실에서 부학장인 영호가 어제 잘 다녀왔냐는 말과 함께 건네주는 교복을 받아 입었다.

그리고 “따라다다단따” 하는 종소리에 교무실을 나서는 여러 선생님들과 연영을 따라 3층의 2학년 5반의 문 앞에 섰다.

교실 안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웅성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영은 그 문 앞에서 천화와 라미아를 슬쩍 돌아보고는 방긋이 웃으며 교실 문을 열었다.

“자, 들어가 볼까. 얘들아, 오늘 새 친구들이 왔다.”

연영의 그 말과 함께 세 사람이 5반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5반 교실로부터 와아 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몇몇 반의 아이들은 무슨 일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 결국 5반이구나…. 5반 녀석들 좋겠다. 연영 선생님이 담임인데다 그런 초절정의 미인 둘이 들어왔으니….. 부러워라….”

“후훗…. 저 얘들이 새로 들어온 애들 맞군. 그럼…. 한 번 사귀어 볼까?”

“호홋, 효정아, 어제 걔들 새로 입학한 것 맞나 본데. 있다 나하고 가보자. 그 중성적이던 얘. 남자가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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