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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39화


그 자세 그대로 뒷통수를 돌 바닥에 갔다 박은 천화는 순간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별들 사이를 유성이 지나 치듯이 새하얀 검기가 지나 갔다.

하지만 지금 천화의 눈에는 그런게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새 뒤로 돌려진 손에 앞쪽에서 느껴지던 것과 같은 볼록한 혹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혹에서부터 시작되는 욱씬거리는 통증을 느낀 천화는 한 순간이지만 저 안에 있는 것들이 모두 짜고 저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어째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쪽이 죄다 자신이 도와 주러온 가디언들이란 말인가. 지금의 검기가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그리고 저 안에 있는 인간은 가디언들과 기절해 있는 사람뿐이고.

“우씨……. 다 죽든지 말든지 내비두고 그냥 가버려?”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문 안쪽에서 다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슬금슬금 몸을 일으키는 천화였다. 그런 천화의 앞쪽 문에는 방금 전 검기의 흔적인 듯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길쭉한 틈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높이가 방금 전 쪼그려 앉아있던 천화의 목이 있을 높이였다. 천화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긴 한숨과 함께 옷을 대충 털어 내고 빼꼼히 열려 있는 문이 아닌 꼭 닫혀 있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저 빼꼼히 열린 문 앞에 서 있다 혹을 두 개나 달았기에 자리를 바꿔본 것이었다.
자리를 옮긴 천화는 파옥수를 운용한 손가락 두 개로 자신의 눈 높이 부분을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화의 손가락이 닫는 부분이 소리 없이 보드라운 밀가루처럼 변해 떨어지는 것이었다. 잠시 후 천화의 손가락이 머물던 장소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 정도의 구멍이 생겨났다. 꽤 큰 구멍이라 가디언들이나 도플갱어 쪽에 들킬지도 모르지만 방금 전 자신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에도 꿈쩍않을 정도로 전투에 정신이 팔린 것을 보아 그럴 가능성은 아주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 천화는 그 구멍을 통해 문 안쪽의 상황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여성형 도플갱어를 맞고 있는 가부에와 이상한 보석 폭탄을 던지는 남자. 남성형 도플갱어와 치고 박고 있는 좀 뚱뚱해 보이는 외공을 연마한 듯한 남자. 그리고 방금 검기의 주인공이라 생각되는 라이컨 스롭을 상대하고 있는 두 성기사.
아까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천화의 눈에는 두 성기사를 상대하고 있는 라이컨 스롭이 슬슬 밀리기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갈색 머리 기사의 침착하고 안정된 빈틈없는 검법과 검은 머리 기사의 과격하지만 거침없는 검법. 두 사람의 실력도 훌륭한 데다 그들의 무기에 라이컨 스롭이 질색하는 축복 받은 은이 들어 있다는 점 때문에 라이컨 스롭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천화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런 천화의 눈에 상석에 놓인 의자 밑에 쓰러져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을 지키듯 서 있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도플갱어가 들어왔다. 천화는 그 중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 사람 때문에 가디언들이 실력으로나 숫자적으로 앞서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키와 옷차림, 그리고 뒤로 넘겨 푸른색 길다란 리본으로 묶은 긴 머리로 봐서는 십오 세도 돼지 않은 소녀 같았다. 아마 저 소녀만 빼낸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풀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는 게 지금 상황이었다.

“하지만 쉽게 움직일 수는 없지. 저 놈들을 조종한 놈이 어딘가 있을 텐데….”

하지만 연회장은 사면이 막혀 있는 곳으로 지금 천화가 서 있는 문 말고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여기 들어오는 입구처럼 마법으로 막혀 있거나 무슨 장치가 있다는 건데….”

천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연회장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세 번째로 연회장을 살펴보던 천화는 고개를 흔들었다. 직접 만지면서 찾는 것도 아니고, 문 뒤에서 기척을 숨기고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마법으로 숨겨진 문이나 무슨 장치에 의해 숨겨진 문을 찾아내는 건 힘든 일이었다. 특히 마법으로 숨겨진 문을 찾아내기에는……

“노이드, 윈드 캐논.”

“끄아악… 이것들이…”

쿠콰콰쾅…………

……. 정령력과 검기들이 난무하는 통에 마법에 사용된 마나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시간을 죽이고 있으면 해결은 되겠지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마냥 기다리겠는가. 천화는 그런 생각에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소녀와 한창 전투 중인 가디언들을 바라보았다.

“…. 이렇게 되면, 저 놈들을 빨리 해치우고 다 같이 뒤져 보는 게…..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천화는 단전에 갈무리 해두고 있던 내공을 온 몸으로 퍼트리며 소녀를 다치지 않고 구해낼 방법에 대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사파의 잠무은신술(潛霧隱身術)이나 무무기환술(無誣奇幻術)과 같은 상대방 코앞에서도 모습을 감출 수 있는 기공(奇功)이 제일 적당하다. 하지만 천화는 그런 생각을 접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도 그런 절정의 은신술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상대가 한눈을 파는 순간을 잘만 이용하면 바로 코앞까지 들키지 않고 갈 수 있는 만류일품(萬流一品)이라는 오행대천공상의 은신술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천화가 그 만류일품이란 은신술을 익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원에 있을 때도 어디 바위 뒤나 나무 위에 숨어 기척을 죽이고 있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니…. 따로 익힐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 연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지 천화는 머리를 긁적이며 곧게 뻗은 눈썹을 슬쩍 찌푸렸다.

“…. 은신술이 안 된다면… 역시 기회를 봐서 저 도플갱어가 반응하기 전에 저 소.. 녀….. 를……”

말을 이으며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리던 천화는 옆으로 흩어져 있던 소녀의 머리카락이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그녀의 몸 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말을 길게 늘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눈에 공력을 더 해 소녀가 쓰러져 있는 곳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천화는 곧 그녀의 머리카락이 왜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쓰러져 있는 백색의 대리석 바닥이 마치 사막의 유사(流沙)가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또 아주 느릿느릿하게 소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를 같이해 그녀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던 도플갱어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느릿하면서도 커다란 움직임. 천화는 그런 움직임에 고개를 저었다. 만약 뒤쪽에 대리석의 기이한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면 원래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뭔가가 있는 것을 확인한 천화에게 도플갱어의 움직임이란 시간 끌기와 시선 끌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우기 도플갱어의 그런 움직임은 정확히 먹혀들어,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가디언들의 시선이 모조리 그 도플갱어를 향해 있었다. 그렇게 도플갱어의 시선 끌기가 성공하자 기다렸다는 듯 소녀가 쓰러져 있던 바닥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그녀가 매트리스 위에 누운 것처럼 조금씩 이긴 하지만 밑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희한한 수법인데….. 가디언들은 아직 눈치도 못 챈 것 같고, 설령 눈치 챘다고 해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니…. 내가 움직여야겠지.”

천화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소녀의 한쪽 팔이 완전히 바닥 속으로 빠져들었다. 천화는 그런 소녀의 모습과 가디언들, 그리고 도플갱어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는 빼꼼히 열려 있던 반대쪽 문을 조심조심 열어 젖히고는 천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과 소녀가 쓰러져 있는 상석의 딱 중간 정도 되는 부분으로 광구와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옮겨 쓰러져 있는 소녀의 뒤쪽 벽을 바라보더니 다시 소녀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러던 한 순간이었다.

“…. 지금. 분뢰보(分雷步)!”

가디언과 도플갱어의 눈치를 살피며 움츠려 있던 천화의 몸이 작은 기합소리와 함께 빛이 터져 나가듯 그 자리에서 쏘아져 나갔다. 그 빠름에 천화의 몸에서 채 떨어지지 못한 바람이 연회장으로 불어 들어와 도플갱어를 바라보는 네 사람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힐 정도였다. 그 바람의 기운에 남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돌아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 두 사람과 나머지 도플갱어, 그리고 시선을 끄는 목적으로 움직이던 도플갱어는 연이어 들리는 소리에 정신없이 고개를 돌려야 했다.

투파팟….. 파팟….

“뭐, 뭐냐….”

“멈춰…. 남명화우(南鳴火羽)!”

파아아아…..

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움직인 천화는 순식간에 천정과 벽을 차는 반동으로 순식간에 소녀에게 손을 뻗히고 있었다. 염명대의 대장답게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천화의 모습을 시야에 담은 고염천은 아직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도플갱어와 가디언들과 달리 옆구리에 차고 있던 손가방에서 연홍색 부적을 꺼내 날렸다. 부적은 그의 손이 떨어지는 순간 연홍색 불길에 휩싸이며 막 쓰러진 소녀를 안아드는 천화를 향해 쏘아져 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전설 속 불사조의 깃털(羽) 같았다.
막 소녀의 허리를 안아 올리던 천화는 바닥에 빠졌던 팔이 쭉 빠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팔을 삼키고 있던 바닥이 이제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 밑으로 푹 꺼져 내리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뭔가를 내쏠 듯한 기분에 천화는 그 즉시 뛰어 올랐다. 과연 천화의 그런 기분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는지 천화가 뛰어 오름과 동시에 꺼졌던 부분이 순식간에 원상태를 찾으려고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 모습이 호수에 커다란 돌을 던졌을 때 물이 뛰어 오르는 것과도 같았고, 또 속도 역시 만만치 않았기에 천화는 튀어 오르던 자세 그대로 검을 휘두르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전방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급히 고개를 들었다.

“응? 파이어 에로우?….. 뭔진 모르겠지만 내 대신 잘 부탁해.”

고개를 든 천화는 방금 전 자신이 서 있던 곳으로 날아드는 불꽃의 깃털을 보고는 검을 휘두르려던 것을 멈추고 한쪽 발로 반대쪽 발등을 찍으며 운룡유해(雲龍流海)식을 시전해 갑작스런 상황에 아직 정신 못 차리다가 지금 바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어리버리해 있는 가디언들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한순간 앞으로 나서는 천화와 불꽃의 깃털이 엇갈리고 나자 천화의 등 뒤쪽에서 굉음과 함께 여기 저기도 대리석의 파편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앙…. 투둑툭…. 투두두둑…. 후두두둑….

등 뒤에서 들리는 폭음을 들으며 몸을 날리던 천화는 이제야 자신의 얼굴이 생각 난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고염천을 지나 세 명의 가디언들 사이로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염천과 도플갱어의 외침에 치열하던 전투도 멎어 버리고 각자 양측으로 갈라졌다.

“너, 너는 연영양의 …..”

“크아….. 뭐냐 네 놈은…..”

천화는 양측에서 쏟아지는 눈길을 받으며 고염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가이디어스의 학생이죠. 이름은 예천화, 천화라고 불러주세요.”

천화는 고염천과 다른 가디언들을 향해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서 몸을 돌려 금발의 외국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전투 때라서 그런지 모두들 자신들의 기운을 숨기지 않았고, 덕분에 천화는 그녀에게서 그레센 대륙에서 느껴 보았던 정확히는 하엘을 통해서 자주 느껴 보았던 신성력의 기운을 느낀 때문이었다.

“사제님 같은데, 여기 이 아이가 괜찮은지 좀 봐주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응? 아, O.K”

그녀는 천화의 말에 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천화에게서 소녀를 받아 안고는 일행들의 뒤쪽으로 물러나 바닥에 눕히더니 가만히 소녀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이며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소녀가 괜찮은지 살피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여전히 귀여운 모습의 꼬마가 서 있었다.

“…… 어떻게 니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거기다 그런 경공을 펼치면서…. 정말 학생인가?”

고염천이 여 사제에게 소녀를 건네고 돌아서는 천화를 향해 언성을 높여 물었다. 생각도 못한 상황 전개에 놀란 모양이었다. 고염천의 물음에 시선을 저 뒤쪽에 두던 천화가 손가락을 들어 고염천의 어깨 넘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상당히 위험한 녀석이 숨어 있다는 걸 알려 드리려구요. 저기 지금 땅에서 나오는 저 녀석도 그 중 하나고요.”

천화의 말에 고염천을 비롯한 가디언들이 급히 천화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천화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정확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녀가 누워 있던 곳으로, 지금 그곳에서는 밝은 남색 머리에 이지적인 보라색 눈에 엘프처럼 길고 날카로운 귀를 가진 인물이 백색의 대리석 바닥과 함께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보기 싫었는지 가디언들의 얼굴이 조금씩 구겨졌다.

“쳇, 왜 꼭 우리 염명대가 맞는 일은 이런 거야….”

“왠지 싫은 녀석인데…..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 저런 모습의 몬스터는 없어.”

“….. 손영아, 저런 것에 대한 자료….. 알고 있냐?”

염명대 대원들의 투덜거림 속에 고염천이 남손영이라는 보석폭탄을 던지던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나 연금술 서포터로 이런저런 정보나 자료들에 대해 해박한 남손영도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지 얼굴만 찡그릴 뿐 뭐라고 대답은 해주지 못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몸을 체크하던 여 사제가 어느틈에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 표정이 아까와는 다른 게 살풋이 굳어져 있었다.

“확실 하지는 않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저 존재는 몬스터 같은 괴물이 아니에요.”

“그럼 뭐지?”

고염천 등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어 들려오는 그녀의 말에 조금씩 구겨지던 그들의 얼굴이 구겨진 신문지처럼 변해 버렸다.

“….. 마족입니다.”

그녀의 말에 고염천이 고개를 홱 돌려 그 여 사제, 세이아를 돌아보았다.

“마족, 마족이라니? 아직 어디에서도 마족이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었어, 더구나 세이아 사제도 마족이란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저도 우연히 알게 됐어요. 성황청에 있던 책들 중 거의 보지 않는 책이 있는데 제가 호기심에 읽었어요. 사제들이 그 책을 보지 않는 이유는 그 책에 쓰여 있는 마족의 모습이 그 사악함과는 달리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어서인데, 그 모습이 저기 저 마족과 똑같거든요. 하지만 정확히 마족이 맞다고는 저도….”

“사제님 말이 맞아요. 저기 저 놈은 하급 마족이죠.”

말끝을 흐리는 세이아의 말에 천화가 한마디를 덧붙이자 세이아를 향하던 시선들이 모두 천화를 향해 돌려졌다. 개중에는 반대편에 서 있던 그 마족의 시선도 썩여 있었는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정확히 아는 천화의 말에 호기심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천화는 그런 열화와도 같은 시선에 답하듯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 녀석은 마계에서 활동하는 여러 계급의 존재들 중 하급에 속하는 마족이죠. 하지만 하급이라고 해서 가볍게 봤다간 곧바로 지옥행이죠. 하급이라곤 하지만 그 가진 바 능력과 힘은 이 세계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여기에 한마디 더 한다면 저기 저 녀석은 생명력을 한계치까지 흡수하여 마족으로 진화한 도플갱어라거죠.”

“…..”

“…..자세히 알고 있군. 그런데 위험한 녀석들 중 하나라면 저 마족이라는 게 또 있단 말이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저 녀석보다 좀 더 강한 녀석은 있을 것 같거든요.”

그 말에 천화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가디언들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저 눈앞에 있는 마족이라는 처음 보는 녀석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문제인데….. 그보다 더 강한 녀석이라니. 그런 생각에 천화에게 다시 뭔가를 물으려던 고염천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포악한 기운에 급히 손에 든 남명을 휘둘렀다.

“뭐냐…. 남명좌익풍(南鳴挫翼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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