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 146화


그날 천화들은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를 두드려 맞으며 전 속력으로 내달려 아슬아슬하게 지하광장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이 빠져 나온 직후 광풍이 터져 나오듯 쏟아져 나온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지하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별일 아니었다.
더구나 피해자는 천화들뿐만 아니라 고염천의 명령으로 먼저 나가 있던 가디언들도 포함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천화를 비롯한 모두는 머리를 하얀색으로 물들이는 먼지를 털어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달려야 했는데,
그들이 뛰쳐나온 ‘작은 숲’을 비롯한 롯데월드 일대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땅 아래로 내려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광장이 무너진 덕분에 그 위에 위치하고 있던 석실이 무너져 내려 롯데월드가 세워진 지반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고염천과 천화들이 합심하여 무너뜨린 지하광장과 석실의 넓이가 보통 넓은 것이 아닌 만큼, 또 보통 깊은 것이 아닌 만큼,
지하광장과 석실이 무너지면서 그 위에 꾸며져 있던 ‘작은 숲’을 비롯한 롯데월드의 놀이기구들과 건물들이 말 그대로 폭삭 내려앉아 버린 것이다.
다행히 롯데월드 내에 있던 사람들은 고염천의 명령에 따라 연영과 롯데월드 내의 직원들이 모두 대피시켰기에 별다른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불안한 마음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영과 라미아, 그리고 고염천의 명령으로 ‘작은 숲’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가디언들이
조마조마하는 심정으로 고염천등이 나올 때까지 무너져 내리는 건물과 땅을 피해 이리저리 뛰다가 머리나 몸 여기저기에 작은 혹이나 멍을 만든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게 롯데월드를 완전히 벗어난 고염천들과 가디언들은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급한 상황 중에서도 언제 업힌 것인지 천화의 등에 업힌 라미아는 뿌연 먼지와 굉음을 일으키며 무너지는 롯데월드를 구경하고 있었다.
롯데월드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라는 싸움구경과 불구경 중, 불 구경에 버금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모두 대피한 관계로 아무런 사상자도 나지 않는 장면이니 말이다.

와글 와글…… 웅성웅성……..

“우웅~~ 결국 놀이기구는 하나도 타보지 못했잖아요.”

월요일 아침. 연영과 라미아와 함께 거의 매일 앉은 덕에 지정석이 되어 버린 식당의 창가 자리-사실, 아침이 이 세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 이 자리로 다가오면
앉아 있던 대부분의 남, 녀 학생들은 세 사람의 모습에 멍해서, 또는 잘 보이려는 생각에서 스스로 비켜준다.
덕분에 지금은 아침, 점심, 저녁…. 이 세 자리에 앉는 사람은 라미아와 천화의 눈에 뛰고 싶어하는 몇몇 학생들을 빼고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에 앉아 있던 천화는 식사는 할 생각도 않고
손에 쥔 포크만 달그락거리며 투덜거리는 라미아의 모습에 막 입에 넣으려던 고기 조각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침부터 저렇게 투덜대고 있으니….

“그만 좀 해. 라미아. 전부 무너진 덕분에 놀진 못했지만 대신에 푸짐하게 얻어먹을 수 있었잖아.”

천화의 말대로였다. 롯데월드 주변으로 일어나던 먼지가 가라앉을 무렵, 뒤처리를 위해 소방관과 가디언을 비롯한 많은 인원이 도착하자
고염천은 천화와 연영 등 일행들을 대리고서 뒤쪽으로 빠져 나왔다. 그들 염명대가 처리해야 할 일은 끝난 것이었다.
그 뒤처리는 지금 도착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일행들을 대리고 뒤로 물러난 고염천은 연영과 그녀가 이끄는 2학년 5반 아이들에게 수고의 말을 건네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던 라미아는 그 말은 들은 척도 않은 채 놀이기구를 타지 못한 것에 투덜대었고
마침 그 소리를 들은 고염천은 자신들이 도움도 받았으니 작은 보답으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고염천의 그 말은 점심 식사를 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아이들은 푸짐하면서도 화려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화는 식사 도중 아이들이 시켜 대는 고급 음식들의 양에 고염천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 주었고,
그 대답으로 롯데월드의 붕괴건과 함께 상부에 올리면 된다는 고염천의 가뿐한 대답에 그의 호탕한 성격만큼 그의 얼굴 두께가 두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하고 있던 롯데월드의 놀이기구를 타지 못한 것이 상당히 아쉬운지 라미아는 쉽게 표정을 풀지 않고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연영이 생긋이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천화 말대로 제대로 놀진 못했지만, 구경하기 힘든 고급 요리들을 시식해 봤잖아.
그리고 정 아쉬우면 이번 주일에 다시 놀이공원에 놀러 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만 얼굴 펴라.”

연영의 말에 이번엔 효과가 있었는지 라미아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천화는 라미아의 그런 모습에 연영의 말에 열심히 맞장구 치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아이들이 듣는다면 질투의 시선과 함께 무더기로 날아오는 돌에 맞아 죽을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라미아가 옆에 붙어 있는 천화로서는 라미아의 투덜거림이 상당히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라미아. 이번 주일에 연영 누나하고 내가 대려가 줄 테니까. 그때 가서 이것저것 라미아가 타고 싶어하던 놀이기구 타고 놀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만 기분 풀어. 응?”

“…… 정말이죠? 약속하시는 거예요.”

천화는 자신의 말에 확답을 받으려는 것 같은 라미아의 말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라미아의 투덜거림을 막는다는 것만 생각하고 맞장구를 치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되면 자신도 라미아를 따라 가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 사람 많은 곳을 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오는 천화였다.
그러나 어쩌리요. 이미 쏟아진 물이고, 내쏘아진 화살인 것을….
천화는 다음부터 입 조심하자는 심정으로 어느새 얼굴이 풀려 있는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런 라미아의 표정에 천화는 처음부터 이걸 바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그러니까 그만 표정 풀어라….. 게다가 네가 아침부터 그렇게 꽁해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힐끗거리잖아.”

아닌 게 아니라 아침부터 뾰로통해 있는 라미아의 표정 덕분에 천화와 연영들은 방에서 나오고서부터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주목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천화의 말에도 라미아는 남의 이야기인 양 방긋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호호호, 알았어요.”

“…… 에휴~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지?”

천화는 자신의 말에 금방 호호거리는 라미아를 보며 방금 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에게 휘둘리는 주인이라니…..

“쩝, 보르파 녀석만 한심하게 볼 게 아니구만….”

“응? 보르파라니? 보르파라면, 어제 지하석실에서 봤다는 하급 마족 이름이잖아.”

천화의 작은 신세한탄을 들었는지, 어제 천화로부터 지하석실에서 설치던 하급 마족의 이름을 들은 연영이 되물었다.

“아, 아니요. 별거 아니예요.”

“별거 아니긴…. 그 마족을 처리 못한 게 걸리는 모양이지?”

천화는 연영의 말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전엔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도 웬만하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연영이나 라미아나 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침 식사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라니까요.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중얼거린 거예요.”

“음…. 그래? 그럼 그런 거겠지. 어쨌든 넌 걱정할 거 없어. 들어보니까 상당히 약해 빠진 마족인 것 같은데….. 그 녀석 아직 이 지구상에 있다면 얼마 못 가서 잡힐 거야.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세계 각국으로 그 녀석에 대한 정보가 퍼졌을 텐데, 뭔가 일을 저질렀다간 그대로 걸려들게 될 껄.
더구나, 그런 실력이라면 쉽게 도망가지도 못할 거야.”

“네, 네…. 알았어요. 걱정하는 거 아니라고 하는데도…. 응?”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을 잊는 연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천화는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도중에 말을 끊고 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엔 금발에 아이돌 스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년이 서 있었는데, 분명히 어제 태윤이와 함께 왔다가 되돌아갔던 아이였다.
이름이….. 카, 카…..

“응? 카스트 아니니?”

‘맞다. 카스트, 카스트 세르가이라고 했던 것 같았는데….’

천화가 연영의 말에서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을 때 카스트는 저번에 지었던 것과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려 보이며 연영과 라미아, 천화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리고 어제 큰일을 겪으셨다고 하던데, 무사하셔서 다행이군요. 레이디 라미아. 그리고…. 천화…. 라고 했던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천화는 자신의 이름에서 머뭇거리며 인사를 건네는 카스트에게 마주 인사를 건네며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방금의 인사로 어째서 저 카스트라는 소년이 가이디어스의 남학생들에게 적으로 간주되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별다른 악의가 있거나 의도된 바는 아닌 것 같은데, 연영과 라미아에게 인사를 건넬 때까지만 해도 걸려있던 미소가 천화의 차례에서는 점점 옅어져 가서는 끝에는 별다른 표정을 뛰우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다시 고개를 들어 라미아를 바라보며 생글거리는 모습이라니….
저것이 정말 카스트가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완전히 선천적이 바람둥이 일 것이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여자만 보면 지어지는 미소라니.

‘쯧쯧…. 왜 남학생들이 저 녀석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간다. 가.’

그때 식사를 모두 마친 연영이 수저를 놓으며 다시 카스트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네가 이렇게 일찍 웬일이니? 항상 친구들-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여자 친구다. 전에도 말했듯이 카스트 녀석의 친구는 팔, 구십 퍼센트가 여자다.-과 같이 늦게 와서 식사했었던 것 같은데…”

연영의 말대로 였다.
카스트는 식사시간이 꽤 지난 다음 그러니까 식당이 조금 한산해질 무렵 식당에 나와서 식사를 해왔던 것이다.
덕분에 그런 그와 식사하기 위해 느긋히 식당에 나오거나 식당에 나와 기다리는 여학생들도 있어서 카스트에 대한 남학생 등의 거부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헌데, 그런 카스트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좀 이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식당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항상 함께 다니는 여학생들도 없이 말이다.

“하하하…. 별건 아닙니다. 단지 아름다운 미녀 두 분께서 일찍 식사를 하신다기에 두 분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나왔지요. 그런데 제가 좀 늦은 것 같네요.”

연영은 자신과 라미아, 특히 라미아를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카스트의 모습에 멀뚱히 카스트를 바라보는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어제 김태윤과 함께 집합장소에 나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라미아를 바라보는 것이 보통의 다른 여학생을 바라보는 눈길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단순히 친구를 바라보는 그런 눈길이 아니라 보통의 남학생들이 라미아를 바라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듯 한, 사랑을 담은 그런 시선이었던 것이다.
연영은 그런 카스트의 눈길을 알아채고는 맘속으로나 안됐다는 모양으로 쯧쯧 하고 혀를 차주었다.
남학생들에게 바람둥이로 통하는 저 카스트가 이 곳, 가이디어스에 입학하고서 사귀었던 그 많은 여학생들 중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일명.
애인으로 삼고 싶은 사람을 만난 듯 한데….

‘쯧쯧….. 불쌍한 카스트야…. 상대를 잘못 골랐어. 확실히 라미아가 아름답긴 하지.
아니,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긴 하지. 하지만….’

그랬다. 연영이 생각하기엔 카스트는 정말, 아주 안타깝게도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