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47화
그랬다. 연영이 생각하기엔 카스트는 정말, 아주 안타깝게도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었다.
연영이 봤을 때 카스트에게는 전혀 가망이 없어 보였다.
혹시 다른 여학생이라면 카스트 정도의 남자가 적극적으로 나간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상대는 라미아.
상대가 나빴던 것이다.
천화와 라미아가 가이디어스에 입학하고서 십 여일, 학교에서 또 기숙사에서 두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보며 함께 생활한 연영이다.
그런 그녀가 봤을 때 카스트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틈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카스트만이 아니라 그 누가 오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 라미아의 마음을 얻어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전공시간을 제외하고서는 눈에 뛸 때는 언제나 함께 있는 두 사람이었다.
아마 자신이 정하지 않았다면 자면서도 붙어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십여 일간 보아온 라미아의 성격과 강하게 밀어붙이는 라미아에게 이기지 못하는 천화의 성격상 같은 방을 사용했을 것이다.
거기다 서로를 챙기는 건 또 어떤가.
라미아는 말해봤자 입 만 아프고, 라미아에게 끌려 다니는 인상을 주고 있는 천화조차도 라미아를 가장 가까이 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 중 라미아에게 반하다니….
그저 카스트가 불쌍할 뿐이다.
승산이 없는 일에 도전하려는 카스트가 불쌍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라미아와 천화도 식사를 마친 듯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과 포크를 내려놓았다.
연영은 그 모습에 자신의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도 식사를 마친 것 같으니까 그만 일어나자. 그리고 카스트는 다음에 같이 식사하기로 하고, 맛있게 먹어.”
“네, 그래야겠네요. 라미아양은 오후에 뵙지요.”
“아? 아, 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는 라미아의 대답을 들으며 카스트는 세 사람이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 주고는 방금 전 천화들이 앉아 있던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카스트 주위로 몇몇의 여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연영과 천화, 라미아는 그 모습을 보며 식당을 나서 천천히 학교 건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수업에 필요한 책과 같은 것은 전혀 들려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교실 안에 설치된 각각의 사물함 안에 수업에 필요한 책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기숙사와 학교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놓여 있는 가이디어스의 편리한 점이었다.
“너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 거야?”
“….. 에? 뭐, 뭐가요?”
천화는 연영의 갑작스런 질문에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럴 만한 것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 라미아와 느긋하게 TV를 바라보던 천화였다.
그런데 갑자기 후다닥거리며 날듯이 들어와서 천화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서 한다는 게 이런 머리, 몸통을 다 떼버린 질문이니….
천화로서는 황당할 뿐인 것이다.
다행이 연영도 그런 천화의 표정을 잃은 모양인지 이번엔 몇 마디를 덧붙여서는 대답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뭐가요.’ 가 아니야. 네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냐는 말이야.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저 가디언 본부로부터 그런 공문이 내려오느냐는 말이야.”
그러나 여전히 핵심적 내용 중 한 가지가 빠져 있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천화는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우… 그러니까 무슨 공문이냐구요. 급하게 서두르지만 말고 천천히 이야기를 해줘야 내가 대답을 할 거 아니예요.”
“….. 오늘 한국의 가디언 본부로부터 공문이 내려왔어. 부 본부장님과 고염천 대장님의 이름으로 된 공문인데 거기에 바로 너. 예천화. 네 이름이 거론되어 있단 말이야. 그것도 아주 대단한 내용으로 말이야.”
거기서 다시 말을 끊어버리는 연영의 말에 천화와 함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라미아가 대답을 재촉했다.
“그게 무슨 내용인데요?”
라미아의 물음에 막 대답을 하려던 연영은 그때서야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는 걸 자각했는지 천화의 코앞에 들이대고 있던 몸을 슬쩍 바로 하고는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오늘 오후에 가이디어스로 내려온 공문의 내용을 두 사람을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내용이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이거든. 그 문서의 내용대로 라면, 천화 너! 네 실력을 정식의 가디언으로 인정한다는 거야. 하지만 네가 라미아 없이는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당분간, 그러니까 라미아가 이곳 가이디어스를 졸업할 때까지 정식 가디언으로서의 임명을 미룬다는 거야. 그런 이유로 학교에서는 이런 점을 봐서 네가 라미아와 같은 학년에 머물도록 해달라는 거지. 그리고 학장과 부 학장님의 재량으로 가능하다면, 네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임시교사를 맞기는 게 어떻겠냐 하는 내용이었어. 자, 이제는 내 질문이 이해가 가지? 도대체 네 실력이 얼마나 되면 이런 공문이 내려오느냐 말이야. 담 사부님께 네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몇 일 전부터 딱히 가르칠 게 없어서 바둑을 두는 걸로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대체 지하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 거야?”
모든 설명을 마치고 대답하라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연영의 모습에 그제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가는 천화였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아마도 전날 롯데월드 지하의 연회장에서 염명대 대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문제인 것 같았다.
천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가디언으로 임명하겠다는 둥, 염명대로 데려온다는 둥의 이야기.
천화가 라미아를 핑계로 대충 던져 넘겨버렸던 그 이야기가 그 일이 있은 바로 다음날인 오늘 그대로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라미아를 핑계로 댄 자신의 상황에 맞게 말이다.
‘근데, 뭐가 이렇게 빨라? 그 일이 있은 게 어제인데 벌써 공문서가 날아오다니… 빠르구만.’
그렇게 생각하던 천화는 불현듯 얼마 전 TV에서 들었던 ‘한국인의 빨리빨리 병’ 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 말대로 정말 빠르긴 빨랐다. 아무리 빨라도 어제 보고가 올라갔을 텐데… 오늘 오후에 공문서가 날아오다니.
거의 반나절 만에 보고서가 처리되고, 공문이 날아 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하지는 못했다. 바로 눈앞에서 대답을 재촉하고 있는 연영의 모습 때문이었다.
사실 연영이 천화와 가디언들에게서 연회장과 지하광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서는 누가 이렇게 했고, 누가 저렇게 했다는 정도로까지 정확하지는 않았었고,
듣는 연영도 천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뭐, 굉장한 일을 저지른 건 아니구요. 단지 몇 가지 무공을 펼친 것뿐이죠. 단지 문제가 있다면….”
“…… 뭐야.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괜히 말을 끊었던 천화는 연영의 재촉에 멋적은 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제가 펼쳐 보인 무공의 위력이 꽤나 강했다는데 있죠. 그때 같이 들어갔었던 가디언들의 위력에 전혀 뒤지지 않는 위력을 보였었거든요.”
천화의 말과 함께 대답을 기다리던 연영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생각했던 대로라는 양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공문을 받고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천화의 입으로 그 실력에 대한 확답을 듣고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정식의 가디언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가디언들 중 천화의 나이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찾아보면, 천화보다 어린 가디언들도 있다. 그 예로 전날 보았던 강민우를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부분의 가디언들도 강민우와 같이 선천적으로 그 능력이 뒤따라 줘야 하는 경우인 스피릿 가디언이나 가디언 프리스트가 대부분이지,
매직 가디언과 나이트 가디언은 아주 적은 인원뿐이었다.
그리고 그 둘 중에서도 내공을 쌓고, 또 초식을 익혀야 하는 나이트 가디언의 수는 더욱 적을 수밖에 없어 아주 극소수만이 천화와 비슷한 나이에 정식 가디언으로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천화가 바로 그 극소수의 인물들 중에 들어가는 실력을 가졌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국에 있는 아홉 개 부대(部隊) 중에서도 그 실력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염명대의 대원들과 같은 실력이라니….
“대단한 실력이란 말을 들었지만…”
천화는 크게 뜬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연영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천화는 아직도 감탄을 바라며 자신을 바라보는 연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그 공문에 대해서요.”
“…..”
“누나!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냐니까요?”
“아?, 아… 학교? 뭐, 가디언 본부에서 직접 내려 온 거니까. 공문의 내용대로 네 학년을 라미아가 진급해 나가는 학년에 맞추기로 했어. 그리고 널 임시 교사로 채용하는 문제는 학장님 재량에 맞긴다는 말에 따라 테스트 후에 결정하기로 했어.”
“테스트…. 라뇨?”
천화는 연영의 말에 인상을 긁으며 되물었다. 학년을 정하는 일이야 어찌 되어도 좋지만….. 임시 교사로서 일하는 건 별로였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닌 만큼 별로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몇 일 동안 담 사부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맛을 들인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하기 싫은 일에 테스트 라니.
“별건 아니고. 말 그대로 간단한 테스트야. 원래 이 일이 아니라도 몇 일 뒤에 시험 치기로 되어 있었잖아. 그래서 그때 네가 임시나마 교사로 활동할 정도의 실력과 능력을 가졌는지 알아보려는 거지. 뭐, 못 친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는 시험이야.”
하지만 그런 연영의 말이 별로 믿기지 않는 천화였다.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연영부터 꽤나 기대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에휴~~~ 편하게 있나 했더니…. 쩝.”
천화의 작은 한탄이었다. 그리고 그런 한탄을 라미아가 들었는지 천화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그 곳(그레센)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에구, 불쌍한 우리 천화님.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랑 단둘이 산속에 들어가서 사랑을 속삭이며 살아요.”
“…… 하…. 싫다. 싫어~~”
왠지 내쉬는 한숨만 무겁게 지는 느낌의 천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