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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48화


연영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그럭저럭 몇 일의 시간이 흐른 금요일. 바로 7월의 마지막 날로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승급시험이 실시되는 날로서 천화가 기다리고 있던 날이기도 했다. 원래 천화는 이 테스트라는 것을 상당히 못 마땅해 했었다. 그러나 지난 삼 일 동안 일어났던 일 덕분에 그 상황이 바뀌어 오히려 빨리 오늘이 오길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연영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부터 도대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알아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디언 본부로부터 온 공문에 대한 것과 가이디어스에서 내려진 결정을 알아낸 아이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천화에게 달라붙어 질문을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롯데월드에서 가디언들과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느냐, 그렇게 굉장한 실력이냐, 그렇다면 그 실력을 한번 보여줄 수 없느냐 등등해서 천화를 아주 들들들 볶아 대는 것이었다. 덕분에 천화는 수업시간과, 기숙사 자신의 방에 있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모두를 아이들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고, 급기야 빨리 시험 일이 되기를 바라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그 질문에 간단히 대답을 해주면 간단한 일이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한 사람에게 대답해 주면, 다음 사람이 물어오고, 그 다음 사람이 또 물어오는데다가 간단한 대답보다는 자세한 설명을 원했고, 개중에 특이한 몇몇은 들어 줄 수 없는 것, 그러니까, 실력을 보여 달라거나, 대련을 청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천화로서도 피해 다니는 것 외에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천화가 그렇게 피해 다녀 준 덕분에 이렇게 엄청난 인원이 모여 들었지만 말이야.”

연영은 시험이 이루어질 운동장 주위에 가득히 모여들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빙글빙글 웃는 모양으로 천화를 바라보며 말했는데, 그 모습이 꼭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와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연영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시험준비가 한창인 운동장을 바라보던 천화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뭐가 저 때문이란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힐끔거려서 신경 쓰이는 구만….”

과연 천화의 말대로 여기저기서 궁금함이 가득 묻은 시선으로 천화를 힐끔거리거나 아예 내놓고 바라보는 눈동자들이 보였다. 덕분에 천화는 상당히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놓고 보는 쪽은 참겠는데, 힐끔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오늘만 넘기면 아이들이 따라 붇는 것도 끝이라고 생각에 오늘을 기다리던 천화에게는 또 다른 골치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 이어진 연영의 말이었기에 천화의 귓가에 상당히 거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말을 꺼낸 연영은 그러길 바랬겠지만 말이다.

“당연하지. 네가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은 덕분에 궁금증이 쌓인 아이들이 네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모두 몰려 나온 거니까 말이야.”

“….. 누가 그래요?”

천화는 약올리는 것 같은 연영의 말에 투덜거리듯 말했다.

“척 보면 알 수 있는 건데, 모르는 모양이지? 첫째 가이디어스가 세워진 처음 몇 달간을 제외하고 조금씩 감소하던 시험 관람 참석 인원이 유독 오늘 확 늘어난 점. 그 애들이 누굴 보기 위해 나왔는지는 그 애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면 답은 나오는 것이겠지?”

“………..”

“둘째, 이번 시험 참가자 수가 평균 이하로 적다는 것. 이번에 시험 칠 것 같았던 아이들 몇몇이 자신들의 시험을 미루고 뭔가를 구경할 사람들처럼 저기 구경꾼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점인데….. 이만하면, 내가 한 말이 이해가 가지?”

“…. 칫.”

연영의 말에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천화는 약이 올라 연영에게서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저번 식당에서 팔짱을 낀 것도 그렇고, 왜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서만 약을 올리는 건지. 그런 생각에 고개를 돌린 천화였다. 하지만 연영의 피해 돌려진 시선 안으로 방긋 웃으며 연영에게 당하는 자신이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라미아의 모습에 긴 한숨과 함께 다시 고개를 돌리는 천화였다.

“에휴~ 빨리 오늘이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태양이 아직도 저기 걸린걸 보니 오늘 하루도 상당히 길겠구나.”

즐거운 사람에겐 빠르게 흐르는 것이 시간이고, 괴로운 사람에겐 길게 흐르는 것이 시간인 만큼, 오늘 하루 연영과 라미아에게 시달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천화에게는 오늘 하루가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그때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임시 시험 진행 석으로부터 듣기 좋은 낭랑한 목소리가 스피커로 확성되어 흘러나와 천화와 연영, 구경꾼들의 시선을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아, 알립니다. 곧 가이디어스의 정기 승급시험이 시작됩니다. 시험 참가지 분들은 본 시험 진행석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험이 운동장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오니, 지금 운동장 내에 계신 분들은 모두 운동장 밖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가이디어스 구석구석으로 울려 퍼지고 나자 이곳저곳에서 시험이 시작하길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고 있던 시험 참가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천화와 라미아도 그런 사람들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 운동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음, 이제 슬슬 시작할 모양인데…. 그럼 둘 다 시험 잘 쳐라.”

천화는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연영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으로 시험 진행석 쪽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바로 옆에 앉아서 자신을 놀리며 장난을 치고는 있었지만, 일단 시험이 시작되면 그녀도 움직일 줄 알았는데… 지금 모습으로 봐서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천화의 표정을 읽었는지 천화와 함께 양쪽을 두리번거리던 라미아가 연영에게 물었다.

연영은 라미아의 물음에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운동장 쪽을 가리켜 보이며 간단히 답하고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저기 봐, 선생님이 모자라 보이나. 원래 이 정기 승급 시험엔 가이디어스의 선생님들 중 반만 참가해도 충분해. 나나 다른 선생님들은 다음 달에 있을 승급 시험에 투입되니까 더 묻지 말고 빨리 가. 저기 벌써 모여서 줄 서는 거 안 보여?”

천화는 연영의 말에 시험 진행석 앞쪽의 운동장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연영의 말대로 꽤 많은 아이들이 줄을 맞춰 서고 있었다.

천화는 그 모습에 연영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 준 후 라미아의 손을 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진행석 앞엔 척 보기에도 어느 과목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의 선생님 다섯 분이 서 있었고 그 앞으로 각각 두 줄씩 아이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천화와 라미아는 마치 “내가 무슨 전공 선생님이다.”라고 선전하는 듯한 선생님들의 모습에 서로 마주 보며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는 그중 가벼운 갑옷 차림에 롱 소드를 허리에 찬 선생님과 붉은 옷 칠을 한 듯 은은한 검붉은 색의 로드를 든 선생님 앞에 늘어서 있는 네 개의 줄로 다가갔다.

그런데 막 천화와 라미아가 줄을 서려 할 때였다. 라미아가 서려는 줄의 저 앞에서 반듯한 용모의 금발 미소년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천화와 라미아는 자신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문 채 다가오는 소년, 카스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월요일 날 아침 식사시간을 시작으로 조금 여유롭다 싶으면 으레 나타나서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천화는 한쪽으로 밀어 놓고, 라미아에게만….

그러니, 천화는 천화대로 무시당하는 느낌에서, 라미아는 라미아대로 흥미 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귀찮음에 카스트를 상당히 안 좋게 보고 있었고, 그리고 카스트와 같은 매직 가디언 수업을 듣는 라미아는 그것이 천화보다 더했으니…..

라미아에게 좋게 보이려던 카스트의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쳇, 또 저 녀석이야….’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카스트는 반갑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 조금 늦었네. 난 또 두 사람이 승급 시험을 치르지 않으려는 줄 알았지. 오… 오늘은 머리를 뒤로 묶었네, 보기 좋은데. 라미아.”

몇 일간 이런저런 말이 오고간 덕분에 서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 연영 선생님 이야기를 듣느라고.”

카스트에게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천화는 그렇게 간단히 대답하고는 라미아와 함께 아이들의 뒤쪽으로 가 줄을 서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카스트의 말에 천화는 의아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 잠깐만, 전 할 말이 있어. 방금 전 처음 줄 설 때 나이트 가디언 선생님이 말한 건데. 천화, 네가 오면 여기 줄 서지 말고 저기 앞에 시험 진행석으로 와 달라더라.”

“선생님이? 왜?”

천화는 카스트의 말에 시험 진행석 쪽을 바라보았지만, 한여름의 햇볕을 가리기 위해 낮게 설치된 천막 덕분에 그 안쪽은 잘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야 나도 모르지. 그나저나 어서 가봐. 이제 곧 시험 시작이니까. 그리고 라미아는 여기 같이 줄 서자. 라미아 실력이 좋으니까 나하고 같이 3학년으로 충분히 승급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같이 수업 받자고.”

“뭐, 그러던지…. 천화님, 가보셔야죠.”

카스트의 말에 싫은 기색을 조금 담아 건성으로 대답한 라미아는 시험 진행석 쪽을 바라보고 있는 천화에게 말했다. 여전히 님 자를 붙인 높임말이었다. 이미 가이디어스의 아이들에겐 익숙해진 라미아와 천화 간의 말투였다.

“응, 갔다 와야지. 그리고 라미아…. 시험 잘 쳐.”

천화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마음으로 다른 말을 건네며 몸을 돌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혹시 모르니까. 다른 사람의 실력을 잘 보고 5학년으로 판정 받을 수 있도록 해 봐. 그래야 저 녀석이 귀찮게 하는 시간도 조금 줄어들 거 아니겠어.’

카스트가 상당히 귀찮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라미아도 천화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그런 뒷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카스트로서는 가볍게 천화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웃는 얼굴로 라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경우를 한자 성어로 뭐라더라…?)

천화는 그런 두 사람을 뒤로 하고 곧바로 시험 진행석 쪽으로 다가갔다.

“흐음…. 무슨 일이지.”

자신을 부르는 이유가 전혀 짐작되지 않은 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험 진행석 앞으로 다가갔다.

시험 진행석의 천막은 마치 아랍의 유목민족의 천막이나 아프리카의 천막과 비슷한 형태로, 천막의 중심은 높은 반면 그 끝은 꽤나 나지막해 천화의 가슴 정도 높이로 낮았다. 더구나 운동장을 향한 정면 쪽의 책상을 놓고 세 명의 고학년 학생들이 앉아 있는 곳을 제외하고 사면을 두툼한 천으로 막아 놓은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더운 한여름의 날씨에 더욱 더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천화는 곧 천막을 그렇게 쳐 놓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책상 옆으로 몸을 숙이는 천화에게 시원한 냉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시원하데~ 천막이 이렇게 낮은 건 이 냉기가 쉽게 빠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가 보네…’

천막의 모양을 알게 된 천화는 곧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연영과 TV를 통해 에어컨이란 것에 대해 듣긴 했지만, ‘그 날’ 이후 전력량을 생각해 정부 산하의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도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것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막의 중앙에 거대한 얼음기둥이 천막을 지고서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과연, 이 냉기는 전부 저 기둥 때문이군…. 보아하니…. 마법으로 얼린 건가?’

천화는 형광등 불빛에 반짝이는 얼음기둥을 잠깐 살펴보고는 곧 주위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려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았다. 누가 자신을 불렀나 해서였다.

하지만, 천화가 그 사람을 찾기 전 그쪽에서 먼저 천화를 알아본 듯한 사람이 손을 들어 보이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그의 모습에 놀란 천화는 그 자리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야~ 왔구나. 여기다.”

“에?….. 에엣? 손영… 형!!”

“그래, 그런데 뭘 그렇게 놀라?”

바로, 육일 전에 같이 움직였던 염명대의 남손영이었다.

“그래, 그런데 뭘 그렇게 놀라?”

바로, 육 일 전에 같이 움직였던 염명대의 남손영이었다.

천화는 벙긋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팔을 툭툭 치는 남손영의 자세를 바로 하고는 남손영에게 인사를 건네며, 혹시나 또 다른 사람은 없나 하는 시선으로 그가 앉아 있던 자리 주위를 바라보았다.

“놀라는 거야 당연하죠. 형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근데, 형 혼자 왔어요? 다른 사람이 또 있는 건 아니죠?”

또 놀라지 않겠다는 듯이 두리번거리는 천화의 모습에 남손영이 우습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옆자리로 천화를 앉혔다.

“나 혼자 왔으니까 그만 두리번거려. 이 녀석아. 그리고 가디언이 시험 치는데 우르르 몰려다닐 정도로 한가한 줄 아냐? 그래도, 같이 싸운 정이 있고, 염명대 이름으로 널 추천한 건덕지가 있어서 나라도 이렇게 온 거지. 그런 일이 아니면 아무도 여기 안 왔을 거다.”

천화는 남손영의 말에 중원 어느 객잔의 점소이 마냥 양손을 마주 비비며 황공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 마디로 비꼬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천화의 모습이 남손영에게는 귀엽게만 보였는지 낄낄거리며 천화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고,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남손영의 반응에 괜히 멋적어진 천화는 남손영의 손을 쳐내면서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물었다.

곧 시험이 시작될 이때에 단순히 얼굴을 보자고 불렀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과연 그런 천화의 생각이 맞았는지 남손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천화는 대경할 수밖에 없었다.

“아, 널 부른 것도 시험 때문이야. 원래는 너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시험을 치르게 할 생각이었지만, 네가 치는 시험의 성격이 다른 아이들이 치는 시험의 성격과 난이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의견이 있어서 네 시험만 따로, 다른 아이들의 시험이 끝난 후에 치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천화 너는 저기 있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단 말이지. 그걸 말해 주려고 오라고 한 건데…. 표정이 왜 그러냐?”

“그, 그….. 런게, 갑자기 그러는 게 어딨어요!!!!!”

“뭐, 뭐야. 임마. 뭐 그런 걸 가지고 흥분해서 큰 소리야?”

천화가 거의 반사적으로 내질러 소리가 꽤나 컸는지 남손영이 투덜거렸지만, 지금 천화에겐 남손영의 그런 타박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기 싫었던 테스트였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섞여서 간단하게 치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한쪽으로 빠져 있다가 다른 시험이 끝나고 나서 혼자 시험을 치르게 한다니,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시선에 거북하기 그지없는데 누굴 시선에 파묻혀 죽이려고.

천화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양 남손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내저었다.

“싫어요. 절대로 싫어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섞여서 시험치는 건 몰라도, 방금 말한 것처럼 혼자 테스트 받으면서 구경거리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구요.”

딱 잘라 거절하는 천화의 모습에 남손영도 대강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뿐. 이해는 하되 천화의 말대로 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남손영은 천화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 내가 네 마음 다 이해한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거든?”

“……..”

“아, 아…… 그런 눈 하지 말고 내 설명부터 들어봐. 사실 네가 이번에 치르게 되는 테스트가 어디 보통 테스트냐? 아까도 말했지만, 밖에 있는 아이들이 칠 승급 시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 테스트를 다른 아이들이 시험 치는 중간에 하게 된다면 다른 아이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냐? 혹시라도 네가 치른 테스트에 신경을 쓰다가 시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번 테스트라는 게 천화 너를 가이디어스의 선생으로 채용하는 문제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네 실력이 가디언 급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자리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거다. 그러니까 두 말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서 다른 아이들 시험 치는 거 구경이나 하다가 네 차례가 되면 나가. 알았지?”

“……”

“알았지??!!!”

다시금 자신의 대답을 재촉하는 남손영의 말에 천화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내키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남손영의 말에 뭐라 대꾸할 건덕지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최후의 방법으로 가이디어스를 나가버리는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승낙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표정이야 어쨌든 천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만족한 남손영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천화를 일으켜 세우고는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화를 향해 남손영은 천막 앞쪽을 가리켜 보였다.

그런 남손영의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오십 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이 서 있었다. 옅은 녹빛이 물든 베옷을 걸친 그는 삼십 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임시 교단 위에 서서 이번 승급 시험의 주인공인 가이디어스의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여 마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당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자기 자연의 기운에 자신을 던진 사람이야.’

그를 보고 천화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 뒤를 이어 남손영의 설명이 들려왔다.

“저분이 바로 가이디어스의 학장님이신 소요(蔬夭) 하수기(河修己) 노사님이시지. 아마 라미아와 넌 처음 보는 모습일 거다. 저 분이 맡고 있는 직책이 가이디어스의 학장직만이 아니라서 꽤나 바쁘신 분이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이 기회에 잘 봐둬라. 저분 노사님은 세계적으로도 꽤나 알려지신 분이니까.”

“예, 그런데 별호가 소요라니, 특이하네요. 어린 푸성귀라니….. 그런데, 다른 직책이라뇨? 뭔데요?”

“아, 그건 말이야….. 아, 노사님 훈시가 있으실 모양이다. 자세한 건 훈시가 끝나고 말해 줄게. 그리고 저분이 맡고 계신 다른 직책이란 건, 바로 한국 가디언의 부 본부장 직이다.”

남손영은 자신의 말에 놀란 얼굴로 뭔가 말을 꺼내려는 천화의 모습에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아마 하수기 노사가 이곳 가이디어스의 학장이면서 가디언 본부의 부 본부장이라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을 것이라고 추측하곤 하수기 노사가 서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원래가 그런 직책이란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천화였다. 거기다 중원의 유수한 문파의 장문인을 만나본 데다 그레센에서는 제국의 황제와 황후 등과도 안면이 있는 천화에게 이곳 가이디어스와 가디언 본부의 학장과 부 본부장이란 직책은 그런 놀람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천화가 놀란 표정을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저 소요라는 특이한 별호를 가진 하수기 노사가 앞의 두 직책을 맡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천화가 알기론 하수기 노사처럼 자연에 녹아드는 듯한 기도를 가진 사람들은 거의가 어디에 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속해 있던 문파나 혈연으로 이어진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린다는 말은 아니지만, 여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도가에 속해 있는 무당파의 어른신들 중 검의 뜻(劍意)을 얻으신 경우 그런 성격이 더해서 거의가 자파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떠돌거나 자파와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기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수기 노사는 꽤나 중요한 직책, 그것도 두 가지나 떠맡고 있으니….. 천화에겐 의외였던 것이다.

그리고 천화가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하수기 노사의 훈시가 끝을 맺었다.

일 분도 되지 않는 짧은 훈시였다. 하기사 열일곱 번의 승급 시험 때마다 이곳에 나와 훈시를 했을 테니…. 뭔 할 말이 많겠는가. 꼭 필요한 주의 사항들과 학생들의 격려 내용이었다.

물론 훈시를 마친 하수기 노사는 학생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일 년 칠 개월 전 대부분의 학교 교장 선생들의 자기 체면 세우기식의 훈시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박수 소리였다. 뭐니 뭐니 해도 훈시는 간단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모든 학생들의 공통된 의견일 테니 말이다.

“자, 그럼 제18회 가이디어스 정기 승급시험을 시작합니다!!”

훈시를 마친 하수기 노사가 시험의 시작을 승인하자 그 앞에 서 있던 젊은 기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후 다시 돌아서서 그 앞에 정렬해 있는 전공 과목 선생들과 학생들을 향해 다시 한번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옛, 제18회 정기 승급시험 시작. 제일 먼저 시험을 치를 나이트 가디언 파트의 학생들은 즉시 준비해 주시고 진행을 맡은 선생님들은 속히 시험 준비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네 개 파트의 학생들은 대회장 양쪽에 마련된 대기석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도록 한다. 자, 빨리 빨리들 움직여 주세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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