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57화
“….. 공처가 녀석….”
한심하단 표정의 이태영의 말이었다.
천화는 그의 말에 별말 없이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느긋한 한 마디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마는 이태영이었다.
“흥, 그런 형은 나처럼 공처가 노릇할 애인이나 있는지 모르겠네…..”
“…… 크윽….”
이태영이 자신의 말에 꼬리를 말자 천화는 다시 시선을 남손영에게 주었다.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남손영은 약간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그 위험한 곳으로 가는 길에 비록 5학년이라지만 가이디어스의 학생을 포함시킨다는 게 상당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 위험함 때문에 중국어를 통역할 사람을 보통의 가디언들 중에서 찾지 않고, 자신들이 그 실력을 체험한 천화에게 그 일을 맞겼겠는가 말이다.
남손영이 그런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습에, 옆에 앉아 있던 천화가 그의 생각에 참고하라는 식으로 몇 마디 말을 이었다.
“이건 그냥 알아두라고 말하는 건데, 라미아의 실력은 저번 시험 때 내보인 그것이 전부는 아니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한참 머리를 굴리며 천화 대신에 그냥 가디언 중에서 통역을 찾을까 라고 생각하던 남손영은 그리 크지 않은 천화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내보였다.
그 모습에 천화가 다시 입을 열었는데, 만약 위와 같은 남손영의 생각을 알았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남손영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천화로서는 그의 말에 충실히 대답할 뿐이었다.
“무슨 소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예요. 라미아의 진짜 실력은 가디언들과 같다는 말이죠. 단지, 필요가 있어서 시험 때 그 실력을 다 보이지 않은 것뿐 이예요. 이제 같이 가도 되죠?”
“물론, 그럼 가서 짐 꾸리고 있어. 내일 오후에 출발할 예정이니까, 우리가 그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가이디어스로 들를 테니까.”
남손영은 천화의 말에 고민거리가 확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로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하고 싶을 정도였다.
한국 내에서 아니, 세계적으로도 꽤나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염명대였지만 단 하나 모자라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마법사였다.
비록 다른 대원들의 실력이 뛰어난 덕분에 그렇다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마법사가 끼어 든다면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는 그들이었다.
마법의 그 다양성. 뭐, 각국에서 파견되는 가디언들인 만큼 그 속에 마법사 한 둘이야 없겠냐 만은 어쨌든 그들은 다른 나라 소속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 실력이 매직 가디언들과 같은 것이라면 전력도 보탬이 되니 더욱더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자 남손영에게 준비할 것에 대해 들은 천화는 곧 바로 그들과 헤어졌는데, 이태영은 그때까지도 의기 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화의 말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 길로 가이디어스로 돌아온 천화는 곧 바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직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지 않은 덕분에 연무장 여기 저기서는 한창 수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 중 일부가 주룩주룩 땀을 흘려가며 줄을 맞추어 연무장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하지마 그냥 도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변화와 격식을 가진 보법을 밟아가면서 검초를 휘두르며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연무장을 두 번 돌 때마다 시전하는 보법과 검초를 달리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들이 천화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 3학년 학생들이었다.
“후우~ 당분간 훈련을 못하게 되겠는걸…. 뭐, 저 녀석들은 좋아라 하려나? 쩝….”
천화는 뭔가 조금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연무장을 돌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다가갔다.
훈련시킬 때는 스트레스 쌓이고, 짜증이 났는데, 막상 자리를 비우려니까 그 동안 시킨 훈련이 아까웠던 것이다.
사실 남손영에게 자신이 맞고 있는 선생의 직함과 라미아의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었다.
하지만 남손영은 후에 학교로 연락이 갈 것이란 간단한 말로 끝내 버렸다.
뭐, 저기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뺑뺑이 도는 녀석들은 아마 좋아할 것이다.
천화 자신이 3학년 선생으로 오면서 그들이 받는 수업의 난이도가 한두 단계 높아졌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천화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그 난이도는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천화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무장 한편에 서서 연무장을 돌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주목!! 나이트 가디언 파트 3학년 집합!!”
약간의 내력을 담은 덕분에 나즈막 하지만 모두의 귀에 분명하게 울려오는 천화의 목소리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헥헥 거리며 연무장을 돌던 아이들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천화의 앞에 대열을 갖추었다. 그런 아이들의 움직임에 훅 하고 밀려나오는 바람에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땀 냄새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냄새를 맡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천화였기에 천화의 입이 슬쩍 열렸다.
“소환 실프. 저 녀석들 사이사이에 흘러들어 저 냄새를 저 쪽으로 날려 버려죠. 미안해 이런 일 시켜서….”
끄덕끄덕….
천화가 소환해낸 실프는 천화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곧 그 진한 땀 냄새를 맡았는지 얼굴을 살짝 찌푸려 보였지만 곧 들려온 천화의 말에 빙긋 웃어 보이고는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져 날아갔다. 그리고 실프가 완전히 허공에서 사라지자 천화의 등 뒤로부터 선선하면서도 맑은 바람이 불어와 일대에 감돌던 불쾌한 공기를 싹 날려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아아아…..”
“흐아~ 살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정령을 가까이서 본 것과 자신들의 땀 냄새에 턱턱 막히던 숨이 시원하게 트여진 데 대한 탄성 이 두 가지였다. 잠시 후 주위가 조용해지자 천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지만, 한 가지 아쉬운 소식을 전해야 될 것 같다.”
“…..”
순간 기분 좋게 바람을 맞고 있던 아이들 사이에서 불안함을 가득 담은 침묵이 흘렀다. 저기 자신들과 같은 또래의 선생에게 아쉬운 소식은 곧 자신들에게는 불행한 소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천화의 말은 그들에겐 ‘아쉬운’ 것이 아닌 반기고, 반기고, 또 반기고 싶은 소식이었다.
“오늘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인데, 우연히 가디언 본부에서 하는 일에 참여하게 됐다. 덕분에 내일부터 중국으로 가야 하거든. 아직 어떻게 될지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내가 없는 내 대신 다른 선생님이 대신 수업을 진행할 것 같다.”
“…… 와아아아아아!!”
“야호~~ 이제 이 지옥 같은 훈련도 끝이다..”
천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로서는 이 지옥과 같은 훈련에서 벗어난 것이 그 무엇보다 기뻤던 것이다. 처음엔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의 천화가 선생으로 와서 만만하게 보고 기뻐했지만….. 지금은 전에 자신들을 지도하던 선생이 그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기쁨을 토하는 중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었으니, 바로 자신들에게 그 지옥과 같은 훈련을 시킨 인물이 앞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환호성을 지르려거든 천화가 없을 때 했어야 하는 것. 순간 천화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하게 3학년 아이들의 귓가를 떨어 울렸다.
“동작 그만!! 모두 집중해라. 너희들이 이렇게 까지 아. 쉬. 워. 하니. 내가 어찌 그냥 가겠는가.”
움찔!
환호를 터트리고 기뻐하던 아이들은 웅웅 울리는 천화의 목소리에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방금 전 보였던 행동을 되새기고는 얼굴을 하얗게 물들였다. 상대가 누구든, 어딜 간다고 하면 아쉬운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는 못 해줄 망정 당사자를 앞에 두고 환호성을 질렀으니. 더구나 자신들과 나이는 같지만 선생이 아닌가. 게다가 왠지 불길하게 천화의 말끝에 붙은 말.
“오늘은 남은 시간이나마 내가 직접 특. 별. 하. 게. 지도해 주도록 하겠다.”
천화는 자신의 말에 부르르 몸을 떠는 아이들을 보며 득의의 웃음을 지어 보이며 훈련 메뉴 하나하나 명령하기 시작했다. 아주 빡빡하고 어려운 것들만을 골라서 말이다. 그리고 그러길 얼마. 드디어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지만. 천화가 맞고 있는 3학년 중에서 걸어나가는 인물은 천화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다 수업 종과 함께 그 자리에 그대로 뻗어 버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천화였기에 연무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라미아와 함께 곧장 기숙사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지금 그 두 사람에겐 연무장의 아이들보다 내일 떠나기 위해 준비물을 챙기는 것이 더욱 바빴던 것이다. 물론…… 옷가지 몇 개를 제외하면 챙길 것도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