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59화
‘에효~ 왠지 사천까지 저 수다가 이어질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드는구나….. 으~’
우우우우웅…………. 우아아아앙……..
“탑승하고 계신 가디언 분들께 알립니다. 이 비행기는 약 20분 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겠습니다. 모두 안전 벨트를 다시 매어주시고 착륙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 주무시고 계신 분도 좀 깨워 주십시오. 착륙할 때 충격으로 부상을 입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는 경비행기 조종석의 문을 열고 나온 부기장의 말에 앨범 정도 크기의 창을 통해서지만 몇 달만에 자신의 고향인 중국 대륙을 바라보던 천화는 드디어 살았구나 하는 표정으로 나직이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천화만의 심정이 아닌 듯 이태영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런 표정을 지으며 힐끌힐끔 뒤쪽에 앉은 라미아와 신우영 등의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비행기에 오르기 전 느낀 천화의 불길한 예감이 그대로 들어맞은 때문이었다. 중간에 그녀들이 잠든 몇 시간을 제외하고 한 시도 쉬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녀들의 수다 덕분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남성들은 그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치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별로 움직이지 못하고 한 자리에 앉아 있는 자세가 불편한데, 거기에 웅성웅성 이어지는 그녀들의 수다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조용하고, 조신해 보이는 모습 그대로 처음엔 조용하던 가부에까지 어느새 라미아들의 수다에 휘말려 같이 떠들어 대고 있었으니…..
그래도 라미아와 연영의 수다에 어느정도 단련이 되고, 또 오랜만에 보게 되는 자신의 고향 땅에 감격-그것도 처음 중국대륙이 보이기 시작한 몇 십분 뿐이었지만 말이다.- 하고 있던 천화였기에 귓속을 후벼파는 소리들을 어느정도 외면할 수 있었지만, 그 외 남성 가디언들은 눈에 붉은 기운까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이태영이었다. 그는 평소의 그 털털하다 못해 거친 용병과도 같은 성격답게 라미아들의 수다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게 꼬까지 골아가며 골아 떨어져 있었다.
방금 부기장이 깨워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다름 아닌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이태영이었다. 하지만 부기장의 말에 따라 이태영도 그만 일어나야 했다. 그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딘이 그를 두들겨 깨운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로 라미아와 천화, 그리고 가디언들이 하나씩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뭐…. 따로 챙길만한 짐이랄 게 없어 단순한 점검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라미아를 비롯한 여성들의 수다도 끝이 나고 있었다. 도착할 곳이 가까웠다는 말에 모두 비행기의 유리창가로 얼굴을 내민 까닭이었다.
20 분 후 부기장이 나와 비행기 착륙을 알리고 다시 한번 안전 벨트의 착용을 당부했다. 그리고 서서히 일행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비행장. 헌데, 이상한 모습이 일행들 몇몇의 눈에 들어왔다.
“저… 게 뭐야? 어떤 놈이 인도등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야?”
성질 급한 이태영이 버럭 소리를 내 질렀다.
그랬다. 지금 일행들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어슴푸레 밝혀진 비행장의 한쪽에서 거의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는 불빛이었다. 인도등이 뭔가. 바로 밤에 비행기의 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지금 밝혀진 정도만으로도 착륙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그런 인도등을 가지고 저런 식으로 휘두르다니…. 일행들이 보기엔 황당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사이 비행기는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과 함께 비행장 주위를 한바퀴 돌아 착륙했다. 그 비행장은 임시로 만들어 진 곳인지 간단히 주위를 정비한 들판에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주위로는 다른 곳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몇 대의 비행기가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아마 꼭 비행장이 아닌 상황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한 경비행기라는 점을 생각해서 경운석부가 가까운 이곳에 임시 비행장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정비된 비행장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듯 비행기 안에 앉아 있던 일행들은 굉장한 떨림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 떨림이 완전히 멎고, 엔진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 다시 조종석의 문이 열리며 부기장을 비롯한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며 기장으로 보이는 노년의 인물이 말을 이었다.
“장거리 운항이었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하지나 않으셨는지 모르겠구만. 자 모두 내리도록 하지. 밖에서 차가 대기하고 있겠다고 했네.”
“별말씀을요.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헌데, 기장님과 다른 분들은….”
기장의 말과 함께 부기장이 비행기 도어를 여는 모습에 고염천이 나서서 물었다. 자신이 듣기로 이 경비행기는 자신들이 돌아갈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했었다. 사실, 전투 능력이 없는 비행기가 가디언도 태우지 않은 채 비행한다는 것도 불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 우리들도 여러분들과 같은 차를 타고 갈 꺼야. 그 쪽에 조종사들을 위해 마련된 숙소가 있으니까 우리들은 거기서 자네들의 일이 끝날 때 가지 대기하고 있게 되어있네. 자, 어서 나가지 들.”
기장의 말에 고염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일 먼저 이태영이 비행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마도 방금 전 인도등을 가지고 장난친 인물을 찾으려는 듯 했다. 그 뒤를 언제나 처럼 딘이 뒤따랐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섰다.
“후우~~ 과연 오랜만인걸….”
천화는 달빛을 통해 어슴푸레 보이는 주변의 풍광에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자주 들르던 곳도 아니고, 650여 년 동안 어떻게 변했을지도 모를 모습이긴 하지만, 몇 달만에 중원 땅의 모습을 본 천화에겐 괜한 친근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 것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기분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런 천화의 모습에 그 곁에 있던 라미아는 따로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천화의 시선을 따라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라미아의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그 기분을 그렇게 오래 느낄 수 없었다. 비행장의 저 한쪽, 아마 조금 전 인도등이 흔들리던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시끄러운 이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어 보이는 남손영을 선두로 이태영과 딘, 그리고 인도등을 요란하게 뒤흔든 인물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휴우~ 저 놈은 저 성격 평생 못 고칠 거야.”
“그러게요.”
“호홋, 그래도 재밌잖아요.”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문제의 지점으로 다가간 일행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구도의 모습이었다. 이들의 생각 대로라면 이태영이 당장이라도 상대에게 달려들듯이 으르렁거리고 딘이 그 상황을 막고 있어야 하는데…..
“허, 참…. 오랜만에 짝짝꿍이 맞는 인물을 만났구만…..”
“에효~ 저 태영이 놈 만해도 감당하기 벅찬데…. 저건 또 뭐야?”
고염천과 남손영 등은 자신들이 상상하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황당하다는 듯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를 내고 있는 이태영의 모습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자신의 나이 또래의 갈색 머리 외국인과 히히덕거리고 있는 이태영의 모습과 그런 그의 옆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통역을 하고 있는 딘의 모습이었다.
그때 이런 일행들의 모습을 보았는지 이태영과 그 외국인을 선두로 일행들을 향해 다가왔다. 외국인은 아까의 말대로 이태영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는데, 꽤나 섬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다분히 떠올라 있는 장난기는 이태영의 털털함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행들이 그렇게 그를 평가하는 동안 그 외국인 역시 일행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들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의 눈은 라미아에게 고정되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 뭐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염명대의 대원들 역시 처음 라미아를 보고 저러 했으니 말이다. 단지 이태영이 시간 나는 데로, 라미아와 천화의 관계를 설명해 줘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천화와 라미아 두 사람과 잠시만이라도 같이 지낸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 챌 수 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가 틈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그러니 방금 사귄 이 마음이 맞는 친구가 괜히 헛물만 켜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허나 그런것은 잠시 후의 일. 이태영은 그를 고염천에게 안내했다. 그 옆으로는 어느새 딘이 와서 서 있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고염천을 위해 방금 전과 같은 통역을 맞기 위해서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영국에서 온 스피릿 가디언의 메른 디에스토 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티벳의 라마승 분들이 도착하셔서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또 한국의 염명대 분들을 만나게 되다니…. 오늘 재수가 좋은 날인가 보네요. 라고 하는데요.”
“나 역시 자네를 만나 반갑네. 나는 염명대의 대장 직을 맞고 있는 고염천이라고 하지. 우리들이 꽤나 늦은 모양이구만.”
“아닙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저희들이 조금 빨리 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군요. 랍니다.”
“… 딘 그냥 직역해 주게나. 그리고, 이 근처에 마중 나온 차가 있는 걸로 아는데, 혹시 알고 있는지 물어 봐주게.”
딘은 고염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말대로 메른이란 이름의 외국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참으로 간단했는데, 바로 자신이 타고 온 차가 일행들을 마중 나온 차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다르면 잠도 오지 않고 심심해서 드라이브나 할 요량으로 숙소를 나가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마침 염명대로부터 무전이 들어왔고 그걸 듣고서 자신이 드라이브를 하는 김에 그 일을 맡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설명을 마친 메른은 일행들을 비행장의 한쪽 공터로 안내했는데, 거기엔 꽤나 옛날 것으로 보이는 낡은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메른은 일행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하하… 워낙 시골이다 보니 이런 것밖에 없더군요. 그래도 이 녀석이 그 중 가장 잘 빠졌길래 제가 몰고 왔습니다. 타시죠. 그리고 한 사람 정도는 여기 앞에 앉아도 되는데 어느 레이디께서 타시겠습니까?”
차 창 밖으로 개를 내민 메른의 말이었다. 아마도 은근히 라미아가 자신의 옆 자에 앉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행 중 네 명의 여성 모두 그 자리를 사양해버렸고 덕분에 그 자리는 이태영의 차지가 되었다. 이태영은 일행들이 모두 뒷 칸에 오르자 차문을 탕탕 두드리며 메른을 재촉했다.
“자, 빨리 가자구.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다 뻐근하다. 어서 가서 편안하게 누워서 자야겠다.”
그런 이태영의 말에 메른은 뜻도 모르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하지만 그 출발하는 소리에 메른과 이태영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뒷 칸의 일행들이 이태영의 말에 얼마나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지 말이다.
“저 자식은 잠이란 잠은 혼자 코까지 골아가면서 자놓고는….. 누가 들으면 비행기 타고 저 혼자 생고생 한 줄 알겠군.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