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66화
만족스런 모습으로 돌아서던 제갈수현과 이드는 갑자기 자신들이 공격했던 여덟 군데의 구덩이로부터 하얀색의 분말이 터져 나오자 라미아의 허리를 감싸며 급히 뒤쪽으로 물러서야 했다.
문옥련은 갑작스런 상황에 급히 뒤로 물러서면서도 재빨리 일행들을 향해 주위를 경계하도록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 전방 경계에 들어갑니다.
나이트 가디언들은 앞으로, 그 외 매직 가디언들은 뒤로 물러서 주세요.
그리고 당장 스피릿 가디언은 사방에 뿌려진 정체 불명의 가루의 접근을 막아요.”
“맡겨 두십시오. 스티브, 베어낸은 앞으로 나서라.”
“줄리아는 뒤로 물러서고, 몰리! 전방의 시야를 확보해.”
그녀의 말이 이어지는 도중 주위에서 자신들의 팀원에게 명령을 내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들도 각국에서 내로라 하는 실력자들이기에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보다 먼저 움직인 인물도 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 그들 누구보다도 익숙한 인물, 바로 이드였다.
“소환 실프. 저 앞의 날리는 가루들은 한 구석으로 끌어 모아 줘.
빨리….”
급히 이어지는 이드의 말에 실프는 상황이 급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모습이 채 다 나타나기도 전에 통로를 매우고 있는 뿌연 가루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후우우 하는 서늘한 소성과 함께 실내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 소용돌이는 주위에 떠도는 백색의 가루를 강력히 빨아들이더니 그 크기를 점점 작게 만들어 한곳에 모여들었다.
이드는 한구석으로 상당량의 가루가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더 이상 가루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그 앞으로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살포시 웃어 보이는 실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했어. 고마워, 실프.
다음에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를게.
그만 돌아가도 돼.”
끄덕끄덕…..
이드의 칭찬이 기분이 좋았던지 실프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허공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사이 일행들은 확보된 시야를 하나하나 뒤지며 위험물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아무 것도 없었다.
뒤로 물러나 있던 제갈수현이 앞으로 나서서 천장건으로 주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들이 뚫어 놓은 여덟 개의 구덩이 사이로 아직 남아 있는 상당량의 하얀 가루가 보이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곤 정말 아무런 위험물도 발견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삭아버린 암질의 가루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특별한 위험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의 기관은 완전히 해제됐습니다.”
“…. 그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구덩이에서 쏟아져 나온 이 가루엔 독성분 같은 건 없는 것 같거든요.
저분 말대로 정확히 어떤 물건인진 모르겠지만 말이죠.”
제갈수현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어느새 실프가 모아 놓은 가루를 살피던 옅은 갈색 머리의 줄리아란 여성이 동의를 표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인 일행은 문옥련의 지시를 받으며 아까와 같은 순서로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중 두 사람, 이드와 라미아의 위치는 아까보다 좀 더 뒤쪽으로 쳐져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은 조심스럽게 펼쳐져 있는 이드의 손바닥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의 손바닥 위에는 아까의 그 백색 가루가 조금 올려져 있었다.
라미아는 그 가루를 조금 집어 만져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돌가루는 아닌 것 같아요.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보기엔 입자가 너무 곱고….
그렇다고 독이 함유된 것도 아니고….
이드님, 혹시 생각하고 있는 것 있으세요?
아까 이 가루를 집어 드는 걸 보니까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게다가….”
‘이드님은 원래 이런 건물이 지어지던 시절에 살고 계셨었다고 하셨잖아요.’
마지막 말은 누가 듣지 않게 마음속으로 전하는 라미아의 말이었다.
이드는 그녀의 말에 손에 든 가루를 탁탁 털어 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게 있어서 집어들긴 했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거든….”
“그럼, 의심가는 건 있단 말이잖아요. 뭔데요. 뭔데요?”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추종향(追從香) 종류가 아닌가 싶어.
자연적으로 이런 게 생길 리가 없으니까 사람이 손길이 갔다는 거지.
그것도 진법을 해제하기 위한 요소요소 지점에 묻혀 있었다는 건 무언가 있다는 말인데….
하지만 독 종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렇게 가루 형태로 쓸 수 있는 무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해 보니 추종향이 딱 떠오르더라.
내가 들은 바로는 추종향을 대량으로 모아 보관할 경우 이런 가루 형태를 이룬다고 들었었거든.”
이것저것 이유를 들긴 하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하는 투로 말하는 이드였다.
그리고 라미아 역시 그런 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런 곳에서 그런 걸 어디다 사용하겠어요?
이렇게 오래된 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 바로 그것 때문에 짐작만 하는 거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 앞에 가는 제갈형도 꽤나 찝찝할 거야.
뭔가가 있긴 한데, 그 정체를 모르니까.”
과연 그럴 것이다.
라미아는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두 사람에게 그리 오래 관심을 끌지 못하고 흐지부지 뒤로 밀려나 버렸다.
이드와 라미아 두 사람의 성격과 실력 상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건, 그 일이 닥치면 힘으로 깨고 나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조금 지루할 정도의 느린 전진이 계속되었다.
그러길 두 시간.
제법 느린 속도로 전진했고, 중간에 하나의 기관을 만나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깊이 들어온 일행들은 목적지처럼 보이는 작은 연무장 크기의 꽤나 큰 석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행들이 이곳이 목적지처럼 보인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 뭐야.
사방이 다 막혔잖아.
게다가 이 조각들은 또 뭐야!!”
그랬다.
일행들이 들어선 석실은 입구를 제외하고 열세 개의 벽으로 이루어진 방이었는데, 각각의 벽에는 하나씩의 동물이 양각되어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정교하거나 높은 기교가 보이는 조각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그 동물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생동감 있어 보이는 그 조각들은 입구의 오른쪽부터 해서,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순이었다.
“십이지(十二支)를 상징하는 열두 동물들입니다.
잘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느낌은 굉장히 좋은데요.”
미국 가디언 팀에게 그렇게 대답한 메른은 무심코 앞에 서 있는 말의 조각에 손을 대려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갈수현의 다급한 제지에 흠칫하며 급히 손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갈수현의 설명에 메른의 등 뒤로 서늘한 식은땀이 솟아올랐다.
“만지지 말아요.
내가 들어올 때 말했지 않소.
만지지 말라고.
이곳이 석부의 끝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요.
고작 이런 석실을 보호하려고 통로에 그런 위험한 기관들을 설치했겠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지금까지 우리가 거친 기관보다 몇 배는 위험한 기관이 설치된 곳일 거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아무 것도 만지지 마십시오.”
“히익….”
타탓….
그의 말에 메른뿐 아니라 조각 가까이로 다가갔던 모든 사람들이 주춤거려 뒤로 물러서며 석실의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역시 이곳으로 들어오며 기기묘묘한 두 개의 기관진식을 목격했었기에 만약 그런 것이 발동될 때 얼마나 골치 아프고 위험한 일이 일어날지 대충 예상이 되었던 것이다.
“어?
저기 좀 봐요.
저 벽엔 그림 대신 뭔가 새겨져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