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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02화


1437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며 고개를 흔드는 스폴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만, 고양이도 고양이 나름이다.

검후는 고양이가 아니라 곰이고, 트롤이다. 쥐가 아무리 악을 써도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상대라는 말이다.

아니, 감히 이빨을 들이밀 시도나 할 수 있을까.

그나마 이쪽 전력이 검후와 자신들 은색 기사단뿐이었다면 아군의 피해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에게는 이드 명예 후작 부부가 함께다. 그들과 함께라면 아군의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들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자신들만 움직이는 일도 없었고 만 말이다.

좌우간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최후의 발악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자칫 검후의 분노만 더할 가능성이 크니까. 어차피 지금 저들이 저러는 것도 전부 제 한 목숨 이어가고 싶어서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자면 검후의 분노를 더하는 일은 무조건 피해야 옳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우리도 알고 저놈들도 아오.”

“그렇겠죠.”

“거기에 그 연장선에서, 자신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음도 잘 알 거요.”

“……지금 하는 짓들을 보면 잘 아는 것 같지 않은데요.”

내성에 틀어박혀서는 마르텔을 앞세워 어떻게든 살아 보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흉해 보이기까지 하는 상황이 아닌가.

“살고자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 아니겠소. 더욱이 그런 소인배들이기에 지금과 같은 참혹한 죄를 범하는 것이고. 아무튼, 그런 입장인 만큼 그들은 손톱만큼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오. 망극하게 검후께서 자신들에게 살길을 열어 주고 계시다고.”

물론 그의 말처럼 진짜 살길을 열어 준 것은 아니었다.

검후는 단 한 번도 저들을 용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용서할 때도 이미 지나버렸다. 지금 정확히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소드 팰러스에 저들의 더러운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것.

검후가 이번 일을 이리 복잡하게 꾸민 이유는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다름 아닌 소드 팰러스에 담긴 추억과 세간의 믿음을 위해서.

“이러니 누가 나서 저 멍청이들을 깨우쳐 주지 않는 이상, 저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거요. 조금이라도 더 목숨을 이어갈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오. 이제 이해가 되오?”

“음, 대충은요. 결국 이런 거잖아요. 너무 목이 말라서 우물 옆에 놓여 있는 컵을 못 보고 물에 입부터 가져다 대는 멍청이.”

과연 옳은 비유일까.

클라인 백작은 살짝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이해해도 무리는 없네.”

“그렇죠? 어차피 멍청이들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굳이 복잡할 필요 있나요?”

“음? 그것도 그렇군. 하하하!”

“꺄하하하하!”

선생과 제자가 되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이제는 갑자기 친구가 된 것처럼 마주 보며 껄껄 웃어 댄다.

웃을 일이 뭐가 있다고?

마치 술에 취한 술꾼들 같다.

원래 두 사람이 저렇게 쿵짝이 잘 맞았던 걸까? 내심 혀를 차던 이드는 문득 궁금증이 일어 확인을 위해 검후를 찾았다.

한데 거기에는 못 볼 꼴을 본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린 검후가 이드의 질문을 거부하고 있었다.

“뭡니까?”

“부탁이니, 아무 말도 마시오.”

가려진 손가락 사이로 비치는 볼이 매우 붉었다. 이 나이에 부끄러울 것이 뭐냐며 항시 당당하던 검후도 아끼는 부하의 추태는 감당이 어려운 모양이다.

이드는 어쩐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툭툭.

그런 위로를 담아 검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지만, 어쩐지 붉은 기가 더 진해지기만 한다.

‘이거…….’

불에 기름을 부은 것 같다. 어쩌면 그냥 넘어갈 일을 키운 것일지도. 이드는 이 뒷감당을 하게 될 두 원흉에게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고는 조용히 손을 거뒀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수치스러웠던 시간이 지난 후.

감히 주군 앞에서 수다를 떨었다는 것을 깨달은 클라인 백작이 신색을 정리하고는 검후의 심기를 살폈다.

“혹 제가 감히 주군의 뜻을 곡해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과연 클라인 백작. 검후에 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진심인 사람답게 그녀의 얼굴에 남은 불편함을 놓치지 않았다.

문제라면 그 불편함이 그가 걱정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말이다.

‘자고로 중이 제 머리 못깎는 법이지.’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내심 혀를 찼다.

“그런 것이 아니니, 백작은 걱정하지 마라. 편지에 허락의 글이 적혔다면, 그대가 옳게 본 것이 맞다.”

“다행입니다. 하면 얼굴에 근심은 무엇 때문이옵니까?”

일단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데 가슴을 쓸어내린 클라인 백작은, 곧 검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대상을 향해 적의를 끌어 올렸다.

“……하아. 그저 명예 후작 보기에 이 모든 것이 부끄러워 그럴 뿐이다. 신경 쓰지 마라.”

“황공합니다.”

새삼 이드와 검후의 관계를 인식한 클라인 백작은 분노가 일었다.

오래된 인연이며, 과거의 친구였고, 또 사제 관계라는 복잡 간단한 두 사람. 그러나 어떤 흐름이라도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운 상대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상대에게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모자라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어떠할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검후께서 말이다.

“신 클라인! 최선을 다해 한시라도 빨리 이 모든 비극을 종결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북받친 감정을 비장하게 토해 내는 클라인 백작.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 특히 그를 향한 이드 일가 세 사람의 눈가가 기묘할 정도로 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나저나, 빈 기사단이라고 했더냐?”

“삼검왕이 은밀히 직접 키운 것들입니다. 개개인의 전력은 오색 기사단에 비견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겠지. 때때로 내가 살피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오색 기사단의 무공은 삼검왕이 지도한 것이니까.” 예외가 있다면 은색 기사단이다.

아무래도 곁에 있는 만큼 공평하려 해도 배움의 기회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오색 기사단에서 이를 시기하는 기사는 없었다. 은색 기사단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히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오색 기사단에 들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머지 기사단에 소홀하지는 않았구나.”

아무래도 자기 자식이 있다면 그쪽에 마음이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에 대해 클라인 백작은 냉정히 비웃었다.

“감히 검후께서 보고 계신데, 그런 수작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검후께서 가르치신 오색 기사단에 모자라지 않는 것만 보아도, 삼검왕이 빈 기사단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가끔.

검후의 눈에 들었을 때 내려지는 가르침은 결코 길지 않다. 그리고 자세한 것도 아니다. 검후는 기사단의 성장을 위해 나아가야 할 큰길을 알려 줄 뿐이다.

바로 그런 가르침이야말로 오색 기사단이 가진 강함의 비밀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검후의 가르침 없이 성장한 빈 기사단이 오색 기사단에 비견된다. 그 말은, 검후의 가르침을 커버할 정도로 삼검왕이 열정을 쏟았다는 의미다.

“그들이 소드 팰러스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러합니다.”

그와 함께 클라인 백작은 그간 자신이 파악한 사실을 검후에 보고했다. 검후의 소문이 시작되는 순간 시작된 빈 기사단의 움직임과 그들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놀아나고 있는 쭉정이들의 상황.

그런 한편, 도주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자 이드는 혀를 찼다.

“쯧쯧쯧. 의리 없는 것들. 아니, 가려면 다 데려가지. 굳이 급을 나눠서 이용해 먹는 건 뭐랍니까?”

“애초에 그런 놈들, 아니, 그런 ‘놈’입니다.”

과연 빈 기사단이 자의로 움직였겠는가. 기사단은 검이다. 명령이 없다면 검이 혼자서 움직일 리가 없다.

당연히 이번 일을 지시한 자가 검왕일 것은 뻔한 사실.

“그래도 아쉽네요. 어쩌면 진짜 소드 팰러스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라미아가 검후를 돌아보며 아까워했다.

저들의 목적과 검후의 목적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앞서 클라인 백작의 설명처럼, 저들로서는 검후가 살길을 열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쭉정이들을 이용해 검후의 눈을 속인 후 빠져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기는 하죠.”

그 말대로다.

빈 기사단이 없었다면 어쩌면 쭉정이들뿐 아니라 모든 죄인이 남아 농성을 벌여 큰 사달이 났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마르텔의 변덕이 크네요.”

거기에 갑자기 용감한 죽음을 바란다며 난데없이 끼어든 마르텔.

사실 그의 존재는 반갑지 않으나 그의 목적은 내심 바라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의 바람으로 인해 최소한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같은 배움을 나눈 동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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