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05화
1440화
죽음을 각오하고 전령으로 나섰던 코랄.
무사히 내성으로 돌아온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생각지도 못한 죽음의 위기를 또 한 번 맞이해야 했다. 시작은 마르텔 앞에 똥 덩어리를 꺼내놓은 직후였다. 구린내가 퍼지기도 전에 마르텔이 그답지 않게 하얗게 웃었다. 그와 함께 서늘한 무언가가 가슴을 쑥 관통하고 지나갔다.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에 코랄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일순간 말라 버린 입술이 하얗게 갈라지며 피가 새어 나왔다.
꿀꺽!
겨우 정신을 차린 코랄이 바짝 마른 입에 침을 내어 넘기고는 급히 사실을 말했다.
“오, 오해십니다! 이건 클라인 백작이 보낸 답신이란 말입니다!”
다행히 오해는 쉽게 풀렸다.
대신 코랄은 마르텔이 풀어 내는 엉뚱한 분노를 감당해야 했다. 마르텔은 눈앞의 똥 덩어리와 코랄이 클라인 백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걸쭉한 욕설을 퍼부어 댔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조금 전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간 무언가. 그 소름 끼치는 느낌보다는 차라리 심신이 편했다.
그러나 조금, 아니, 많이 어이가 없기는 했다.
마르텔은 자신이 가져온 똥 덩어리를 두고 악취미라고 한다. 변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럼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게 고작 악취미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멸시와 조롱이 아니냔 말이다.
백이면 백 치솟는 혈압에 머리를 잡고 쓰러질 수준.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다. 불같은 성질로 세상 유명한 마르텔이 그저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알려진 대로라면 당장 검을 들고 달려 나가도 모자랄 일인데.
익숙한 것일까?
‘그런 거라면 왜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거야?’
사람인 이상 입이 근질거려서라도 지켜질 수 있는 비밀이 아닌데. 어째서 검은 여우의 정체가 똥개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엉뚱한 생각에 빠진 탓이다.
“재밌는 놈이네. 감히 내 앞에서 딴생각을 해?”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시큼한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마르텔이 어느새 똥 덩어리를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코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우욱~ 그, 그걸 왜 저한테…….”
“맹한 데다 유난스럽기까지 골고루 한다, 골고루 해. 닥치고 이거나 씻어 와라.”
마르텔이 후다닥 물러나는 코랄을 보며 혀를 찼다.
“그걸 왜 제가 씻어야 합니까!”
“그럼 내가 씻어야겠냐?”
“아무 하인이나 불러서 시키십시오.”
“흥, 여기 답신에 무슨 글이 쓰였을 줄 알고? 뭐, 그 내용이 밖에 있는 쭉정이들에게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면 나도 괜찮다만?”
괜찮다면 그리 해 주겠다며 웃는 마르텔. 극도로 사람의 신경을 긁어 대는 면상에 코랄은 주먹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뻔히 알면서 저딴 소리라니.
“백작이 직접 만든 답신입니다. 직접 처리하시는 것이……”
“백작이 만들면 똥이 금으로 변하기라도 해? 똥은 똥이야. 애초에 네놈이 이딴 걸 받아 온 게 문제라는 말이다.”
억울했다. 만약 검후가 아니었다면 말을 꺼내는 순간 목이 잘렸어도 이상하지 않은 임무였다.
그런 임무에서 답신까지 얻어 왔으면 충분한 거 아니냐고!
자신은 그저 단순한 전령이었다. 더해 클라인 백작에게 정체까지 알려진 상태.
거기다 대고 깨끗한 답신을 달라는 요구를 하라고?
아니, 왜? 차라리 대놓고 죽고 오라고 하지!
“전 어디까지나 전령으로서…………….”
“날 상대로 혓바닥 길게 놀릴 생각은 마라.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냐? 그리고 네가 단순한 전령이냐? 빈 기사단 소속이면 내 제자나 마찬가지잖아. 아니냐?”
“저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가 빈 기사단에 입단해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이 삼검왕에게서 나왔으니, 딱 잘라 아니라고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코랄의 은근한 부정에 마르텔이 다시 낄낄거리며 웃었다.
소드 팰러스의 수많은 수련생 중 검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영광을 얻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모든 수련생은 하나같이 검후를 자신들의 가장 큰 스승으로 마음에 담고 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빈 기사단 소속의 이놈이 하는 말을 보라. 비교되지 않을 수가 없다.
‘스승을 배신한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지. 다 자업자득이다.’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는 마르텔이었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좋다. 네놈은 이 안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 것으로 알겠다. 물러가라.”
“……”
“물러가라니까?”
내밀었던 쟁반을 거둬들이는 마르텔의 말에 코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흥, 그놈이 여기다 적은 내용이 궁금하긴 한 모양이지?”
궁금하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꼭 확인 과정이 필요했다.
같은 빈 기사단의 동료들보다 먼저 마르텔을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에 적힌 내용에 따라 빈 기사단의 계획을 달리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 사승 관계는 부정할 수 있어도 임무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래서야 기사가 아니니까.”
“・・・빌어먹을.”
“하하하. 옜다.”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건방진 제자 놈을 이겨 먹은 게 기분이 좋은 것일까.
마르텔은 시원하게 웃으며 쟁반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 위에 있던 똥 덩어리가 허공을 날아 코랄의 손에 툭 하고 떨어졌다. 끈적하고 물컹한 표현하기 힘든 촉감에 이어 미묘하게 기분 나쁜 온기가 신경을 타고 뇌로 전해지는 순간.
“우웩!”
저절로 구역질이 올라왔다.
까딱하다가는 진짜 속에 든 것을 다 올려 버릴지도 모르겠다. 코랄은 황급히 방문을 차고 달렸다.
“피 냄새에는 끄떡도 하지 않던 놈이 겨우 말똥 좀 만졌다고 구역질이라니. 여러모로 재밌는 놈이야.”
마르텔은 코랄의 반응에 피식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쟁반을 휙 하고 던져 버렸다.
찌르르릉!
은 쟁반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중에 마르텔은 자리로 돌아가 코랄을 기다렸다. 그런 마르텔의 얼굴에는 묘한 아쉬움이 있었다.
“빈 기사단에 저런 놈이 있다는 걸 일찍 알았으면 내 밑에 두고 굴리는 건데. 아쉽군, 아쉬워.”
그랬다면 소드 팰러스의 생활이 한층 더 즐거웠을 텐데 말이다.
코랄이 들었다면 답신이고 뭐고, 다 던져 버리고 전력으로 도망쳤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마르텔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구역질을 참은 코랄의 희생 덕분에 클라인 백작의 온전한 형태로 마르텔에 읽혔다.
물론 이때도 마르텔은 답신에는 직접 손을 대지 않았다. 코랄이 새로운 쟁반에 답신을 담아 올린 것이다.
글은 짧았다.
“테무른인가, 그리운 이름이군. 내가 적은 편지의 내용에 대한 답신으로는 최고야.”
편지의 앞면에는 마르텔과 검후의 즐거웠던 기억을, 그리고 뒷면에는 함께였지만 마르텔이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이.
그러나 결국 둘 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다.
편지를 받은 검후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마르텔은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 오른쪽 가슴 부근을 쓰다듬는 무의식적인 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 편지에서 눈을 뗀 마르텔이 코랄을 보았다. 깨끗하게 세척한 편지를 들고 올 때부터 얼굴에 가득하던 의문이 여전하다.
어째서인가 했더니, 테무른이라는 이름을 보자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과연 간단하게 적힌 이 이름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을 테지.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내가 배신자가 될 줄도 몰랐고, 너희 빈 기사단도 없던 때였지.”
“무슨 말씀이신지……?”
“너. 여기에 적힌 이름이 뭔지 모르지?”
“모릅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흐흐, 대가리 치켜들고 제자 아니랄 때는 언제고 가르침을 달라니. 뭐, 주지. 어차피 돕기로 한 것. 알려 주겠단 말이다.”
찌이이익!
내가 이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전혀 인자하지 않지만, 인자한 얼굴을 한 마르텔이 입고 있던 자신의 윗도리를 당겨 찢어 버렸다.
그러자 굴곡이 선명한 강철처럼 단련된 상체 근육이 드러났다. 마르텔의 나이를 생각하면 기적 같은 몸이었다. 하물며 뜨거운 젊은 기사들의 몸도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그런 몸에 크고 작은 흉터가 훈장처럼 가득했다.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치명적인 위치에 남겨진 흉터.
신성력, 마법, 초인기 등. 특별한 저주가 담긴 것이 아니라면 흉터조차 남기지 않고 지워 버릴 방법은 많다. 그럼에도 선명하게 남은 흉터는 당연히 마르텔이 일부러 남긴 것이다.
마르텔은 그 중 오른쪽 가슴 중간에 남은 가장 큰 흉터를 가리켜 보였다. 그의 몸에 남겨진 흉터들 중 가장 크고 치명적인 위치였다. 심장에서는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떨어져 있지만, 한쪽 폐를 관통하는 위치.
“거기 적힌 자가 남긴 흉터가 바로 이것이다. 테무른의 흉터지. 내가 처음으로 흉터를 남겨 두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르텔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딱 41년 하고도 208일 전이었다. 정말 죽을 뻔했어. 흐흐흐,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적이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놈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클라인 놈. 잘도 테무른의 이름을 알아냈구나.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전투인데.”
아니, 당신의 흘러간 추억담은 필요 없다니까!
“답신이 그 이름을 적은 이유는, 그럼?”
“그때의 재현이라는 의미겠지. 예쁘게 죽여 줄 테니, 한판 연극을 하자는 말이다. 날이 밝기 전 새벽의 기습으로 테무른 대족장을 죽였거든. 위대하신 검후께서 말이지.”
“그 말씀은…….”
“내일 날이 밝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낸다. 저 쭉정이들은 내 길동무로 삼아 주겠다. 너희는 그사이 도망을 치든, 죽음을 기다리든 알아서 하면 된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죽을 놈은 아무도 없겠지?”
“탈출 계획은 완벽합니다. 도주로도 확보된 상태입니다.”
“너무 자신하지 마라. 저쪽에 똥개가 있는 걸 잊지 않았겠지? 그리고 흑색과 적색의 눈도 있다.”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흥, 자신만만하구나. 과연 내일 나와 다시 재회하지 않기를 바라지. 그만 가 봐도 좋다. 마지막 임무도 완벽한 성공이다.”
・・・・・마지막에 마르텔 경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흥, 제자도 아니라던 놈이 무슨.”
마지막으로 예를 다하는 코랄에 마르텔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코랄이 나간 조용한 방.
홀로 앉은 마르텔이 쟁반에 올려진 답신을 손에 들었다.
테무른 대족장 이름 아래 적힌 짧은 글.
“부끄러움을 아는 기사인가…….”